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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1대왕은 덕종입니다

덕종의 덕자는 德자로 말그대로 덕있는(착한)왕이라 합니다

10대 고려왕 현종이후부터 태평성대의 왕들 이야기가 나올거 같습니다

현종의 아들은 3명이나 왕이되는데요(덕종,정종,문종) 이는 신라 48대 경문왕과 비슷합니다

경문왕의 아들,딸들은 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이 됩니다


덕종2년에 북방민족 침입을 대비하려 천리장성을 쌓습니다

고구려도 중국침입을 막으려 천리장성을 쌓는데요 그런 정책이었을거 같습니다,,

덕종은 아버지 현종의 뒤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려하고 정치를 해나갔으나

몸이 약해서 재위 3년에 사망합니다,,결혼도 이복여동생과 했네요,,

덕종의 아버지 현종은 왕건의 손자인데도 피가 50퍼센트가 흐르고

현종의 아들역시 이렇게 근친혼들을 해서인지 몸이 약했던것은 아니었을까요,,


10대 고려의 왕은 정종입니다

3대 왕 정종과는 발음은 같으나 한자가 다릅니다

이외에도 21대왕 정종도 있으나 희종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종은 덕종이 3년만에 일찍죽자 왕이되는데요

정종 역시 덕종의 정치를 계승하며 정치를 하다가

문종에게 물려주고 사망하십니다


고려 11대 왕은 문종 입니다 글월 문 文자의 문종으로

고려의 성군이라 합니다

문종때는 현종대부터 이어진 태평성대로 고려역사의 황금기라 합니다

이때부터 고려 문벌귀족,문벌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할수 있겠습니다

문벌귀족,문벌 정치는 한 가문에서 고위 관직이 있다면 대대로 세습해가는 정치로

능력과 상관없이 핏줄로 하는것이기에 왕정의 부자상속의 귀족,관료판이라 할수있겠습니다

고려 왕실에서 혈연으로 극단적인 근친혼등으로 왕권을 유지하려했다면

역시 귀족사이에서도 결혼으로 이런 세습이 있어왔다 할수있겠습니다

저역시 맞선이나 소개팅 이런 사례들을 보고 들어온거 같은데요(저에게 들어온게아니라

주변 사람들거를 봤다는 말입니다)

확실한것은 사랑없는,재물이나 이익,욕망으로 하는 결혼은 암이나 사고가

날거 같습니다 생명의 고귀함과 사랑이 아닌 결혼을 왜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대충 결혼한거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나 만화 같은거는 보면서 스트레스가

생겨서 못볼거 같습니다,,

이익을 보고 하는것이겠으나 사실은 이익을 얻으려면 차라리 오늘날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존경,존중받게 되는데 욕망의 결혼은 정작 하나의 이익도 찾을수 없을것입니다,,

당장의 돈으로 그런거를 매꾸려한다면 대신 건강,사회적 평판을 해칠것이니 손해일것이고요


이런게 고려 왕족,귀족 사회에서 반복되고 왕실에서는 기형아가 태어나고

귀족 사회는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고려역사는 그랬습니다

물론 고려의 해상무역이나 즐거운 이야기도 있으나 오늘날 현대인들도

경계해야할 이야기 같습니다,,


고려 지배(귀족)계층은 이렇게 건국,초기때는 호족,

문종때부터는 문벌귀족, 그러다 문벌귀족들에 차별이 생기게된 무인들의

무인정권,무신정권 이후 원나라 침략이후 원나라에 연줄이 있는

권문세족, 이후에는 고려를 개혁하려한 신진사대부(조선 건국공신)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지배계층,지배자라는 말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 <민주 공화국>입니다

문벌귀족 이야기나 폐단은 아직은 적다 할수있겠고요

폐단은 갈수록 커지다 무인정권 등장 바로이전이 최악이 되는거 같습니다,,


문종은 낭비를 줄이게 하고

백성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못하게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내치 안정에 신경을 쓰고

외국과의 외교는 거란,요나라 이외에도

송나라와의 외교도 다시 했고 요와 송을 고려의

상국으로 했으나 요,송에서도 고려의 사신들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작고 자원이 없는 나라여도 인구는 세계 국가에서 매우많은 나라에 속하는거 같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같습니다 다른기록에서도 신라에는

인재가 많다른 이야기가 있었다고 본거 같고요 비록 이런게 립서비스라 생각될수도 있겠으나

저는 한국에서 살면서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본거 같습니다

보통 오늘날 고려는 진보쪽에서 중요시하고 보수는 조선시대와 성향이 비슷한거 같습니다

고려를 쓰다보니 저역시 우리 나라 중심 이런게 있는거 같습니다

실제로도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북방정책이나 개방적인 나라였고

이는 한국 진보적인 성향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물론 너무 개방을 중요시해서인지

근친혼이나 문란한면이 역사에 많이 있는거 같습니다,,이후 조선시대에는

이런 병폐를 막으려 이번에는 너무 보수화되어서 역시 너무 고리타분해지고

망국의 길로 간거 같고요,,


고려의 유명 학자인 이제현은 문종을

현명한 인재등용,사적으로 친하다거나 자격없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지않고

반드시 공로와 재능이 있는자 위주로 인재등용을 한거같고

이에 관료 숫자도 적었던거 같습니다,,사실 고려는

조선 관료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공무원 숫자보다 관료 숫자가 매우적었고

문종 스스로는 이런 매우적은 관료국에서 더 엄격하게 인재등용을 한거 같습니다,,

또 왕권강화로 호족들을 견제하려 한거같고요

그래도 이제현의 평에는 문종은 백성을 사랑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관료들도 사람이니 백성이라 할수있겠는데요,,문종이나 세종대왕 같은경우는

백성들에게는 관대히,관료들에게 엄격한 왕이었던거 같습니다,,

세종대왕님 스스로도 관료가 힘들어야 백성이 편하다 하셨고요,,

이제현의 평 마지막은 나라가 부유해지고 창고에 곡식이 쌓이고

백성들 모두 풍요를 누려 당대에 태평성대라 했다 합니다


이외에 역시 고려는 불교국가였으나 유교도 존중했고

무신,무인들도 대우했다고 합니다

이슬람 상인들도 많이 고려를 왔다고 합니다


문종은 고려 태평성대를 이끈 왕이었고

왕권강화로 호족들을 견제했다는데요

그러나 문벌귀족들이 등장했고 최충의 9재학당이라고 사립학교등으로

학벌이 나타납니다,,고려 관료,지배층이 되려면 이런 학교에 들어가야했고

시험관들도 이런 학교출신에 후배들을 끌어주고 능력보다는 인맥위주로

이렇게 가는 폐단이 나타나게 되는거 같습니다


<최충 영정 이당시 그림,사진중 남아있는게 최충 영정 그림이 있습니다

9재 학당이라고 사립학교를 만드신분인데요

저는 교육이라는거를 진지하게 보시는 분도 본거같습니다

학벌과 폐단이 있게되었으나 교육 자체는 중요한거 같습니다

해동공자라 불렸다 합니다 저의 블로그 방문지역 1위가 강남구입니다,,

3위가 미국이고요,,뭔가 잘사는 동네에서 저의 블로그 방문자가 압도적으로??

많은게 묘한 그런게 있는거 같은데요 강남,대치동 사람들 교육열은

유명한거 같습니다 이런 교육들이 나하나 잘먹자고나 주입식 이런게아닌

타인을 위한 방향으로 쓰여져야 될거 같습니다,,그래도 또 즐거운 일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축구에서 히딩크 감독 이야기가 나오는거도

히딩크 감독은 인맥축구 이런거를 경계하셔서 같습니다,,

뭐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하지 이런말도 있겠으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떠날수가 없는 구조이고 이런 학벌,인맥,지연,혈연 위주의

정치는 계속해서 경계되었으나 역사적으로 정치가 잘될때는 사라지고 안될때는

다시 생겨나고 이랬던거 같습니다 어느 분야던간에 이런 폐단이 사라지고

평화롭고 즐거운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11대 문종 이후에도 아직 고려의 황금시대,태평성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16대 예종까지 고려 8대 현종부터 100여년동안의 태평성대는 계속되었다 합니다


라봉봉 고려역사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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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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