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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2대왕은 순종입니다 재위기간이 3개월로 매우 짧은데요

문종의 첫째아들로 태자시절부터 몸이 약했고

문종 병상에 슬퍼하다 3개월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고려 13대왕은 선종입니다 베풀선자로 뭔가 비범한

이름같은데요 문종의 둘째아들로 문종의 태평성대를 이어갑니다

선종은 아버지 문종이 만든 정치에서 무난하게 큰일을 벌리거나 그런거 없이

태평성대를 이어가는 왕같습니다 선종때 이야기는 의천 스님이야기가

빠질수 없는거 같습니다,,


<의천 스님 이야기>


현종의 세아들 덕종,정종,문종이 왕이됬듯이 문종의 세아들도 순종,선종,숙종으로 왕이 되는데요

문종은 명군,성군이어서인지 자식들도 지혜롭거나 어진 사람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문종의 넷째아들은 승려가 되는데요 의천 스님입니다

보통 나중에 나오시는,,지눌 스님과 고려 불교 사상적 중요 스님으로

유명하신분 같습니다

고려는 불교국가답게 유명한 스님들이 많습니다 의천,지눌 스님 말고도

삼국유사를 쓰신 일연 스님이나 공민왕의 개혁때 정치를 하신 신돈도 유명합니다,,

신돈은,,공민왕에게 전권을 받아서 개혁을 하고 버려진 스님같고요,,

이단아 이미지가 있는 스님같습니다,,

사실상 종교적 역활을 하신 스님은 의천,지눌 스님같은데요 일연스님이나 신돈같은

역사,정치 분야로 가신 스님들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고려시대는 불교국가여서

불교에 여러 면세나 혜택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이는 신라때도 그랬을것이고요

일반 농사짓는 평민들은 농사가 잘 안되거나 혼란기에 도적이 되는자도 있었고

이렇게 그래도 사람대우를 해주는 승려가 되려 한사람들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오늘날 절을가보면 산에있기도하고 평화롭고 한옥의 멋,고요한 그런거를 느낄수 있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당시에는 여러 혜택이 있었고 스님들이 정부,정치 비호에서

여러 여인을 임신시키거나 고리대금업들의

부패가 있었던 시기같습니다 불교 국가 고려의 스님이야기는 여러 분이 나오실거 같습니다


보통 고려 종교는 중앙 교종 지방 선종으로 나뉘었는데요

교종은 경전,문자를 아는 즉 지배계층에서

선종은 경전보다는 실천,피지배 계층,백성들에게 유행했던 사상같습니다,,

의천 스님은 천태종이라고 두 종교를 통합하는 시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천태종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의천 스님으로 한국 천태종,해동 천태종이

시작됬다고 합니다


의천스님은 왕자신분이라 외국에 나가 불교를 배우려했으나 갈수없어

몰래 밀항하셔서,,송나라로 갑니다 이당시 송나라에는 유명시인

소동파가 있었는데요 사실 고려는 요와 송나라를 상국으로 하기는 했으나

특히 송나라는 오히려 고려사신들이 가서 여러 물품들을 달라고 하고

송은 고려의 요 견제때문에 고려사신들의 눈치를 보며 계속 퍼주는 형태였습니다,,

고려 사신들이 오히려 고자세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에 당대 송나라 유명 시인이던

소동파는 고려를 천한나라,그러나 금강산을 가보면 소원이 없겠다,, 이런

입장이었다는데요,, 이당시 소동파는 항주 지사로 부임했었는데요

의천의 밀항으로 송나라에오자 송나라 정부에서는 고려가

요나라를 3번이나 물리친 군사강국,,이었던것을 알고있었고

오히려 이당시 송나라보다 고려가 군사력이 더 강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 경제력과 인구는 스케일이 다르다 할수있겠는데요,,

문제는??,, 이당시 송나라는 경제와 문화에서 매우 번영했으나

북방 민족,요나라에게 견제받고 주변국들에게 계속 돈을 뜯기는 그런국가였습니다,,

송나라는 요나라나 고려에게 상국 노릇을 했으나 돈을 퍼줘야했던 그런 나라였던거 같습니다,,

이당시 송은 고려의 중요성때문에 왕의 아들이었던 의천을 극진히 접대했고

소동파는 의천을 도와야 됬던거 같습니다,, 의천 스님은 송에 머물며 선진 문물들과

불교를 배우시고 항주에서 절을 세우시기도 합니다


의천은 고려에 돌아와서 고려 불교계를 개혁하시는거 같고요

이외에도 송나라 유학후 송나라에서 행해지는 화폐의 중요성을 보시고

고려에 숙종때 형인 숙종에게,,돈의 중요성을 말하십니다

주전건의(동전 전자로 병자호란때 싸우자는 거와 다릅니다,,)입니다


<의천 스님의 주전건의>

돈은 몸은 하나이지만 역할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생김새를 보면 몸은 둥글고 구멍은 네모납니다.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네모난 것은 땅의 모양

입니다. 이는 하늘이 온갖 것을 완전하게 덮고 땅이 완전하게 받쳐주는 것을 나타냅니다.

둘째, 돈은 샘물처럼 끝없이 흘러나와 마르지 않습니다. 쓰면 없어지는 곡식과 다릅니다.

셋째, 돈을 백성에게 퍼뜨리면 위아래 어디고 돌아다녀 길이길이 막힘이 없습니다.

넷째, 돈은 이익을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줍니다. 그 날카로움이 칼과 같으나 늘 써도 무디어지지 않습니다.


당시 송나라에서는 시장이 크게 열리는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의천 스님은

이런 것을 보시며 고려인들에게도 화폐를 도입할것을 생각하셨을것입니다

비록 오늘날 저가보기에는 돈을 너무 이롭게만 보시고 샘물처럼 끝없이 흘러나온다는

말은 오늘날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다할수 있겠으나,,돈은 이로운 인류의 발명이고

돈의 가치를 아신분 같습니다,,

의천 스님의 건의로 주전관,주전도감이 설치되 해동통보,삼한통보,삼한중보라는 화폐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한 거로는??,, 삼한 이라는 말은 셋 3 삼자이고 한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한자 한국한 자인데요 이당시에도 고려를 삼한의 통합국으로

인식했고 우리나라를 한민족이라 생각했던거 같습니다 나중에 조선후기

고종의 대한제국때 이런 삼한을 큰 한이라 해서 대한이 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된것입니다

의천스님은 승려 최고직 승통이 되고 대각국사 칭호를 받으십니다

의천스님은 왕자신분이었으나 오늘날 정치인이나 부유한 집 자녀들의

문제가 있는것을 보면 단순히 신분,재산을 떠나서 한국 불교계,

사회에 영향을 끼치신 분이라 할수 있는거 같습니다,,


<삼한중보 사진>


<의천 대사 영정>


<다시 선종 이야기,,>

사실 13대 고려왕 선종 이야기였는데요 선종때는 문종과 비슷하고 선종 스스로도

크게 일을 벌리거나 그런거 없이 무난히 정치를 운영한 왕같습니다,,

선종은 불교에 심취했고 불교 이외에도 유교도 장려하며 균형있는 발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선종은 여러 시를 남긴거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2년전에

병이들었는데 시를 지었다는데요,,


<고려 13대 왕 선종>

약효가 있고 없음이야 무엇을 염려하랴. 덧없는 인생 시작이 있었으니 어찌 끝이 없으리. 오직 원하는 것은 여러가지 선행을 닦아 청청한 곳에 올라 부처에게 예를 드림이네

라는 구절이 있어 백성들이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문종의 아들로 동생 의천스님도 유능한 스님이었고

선종도 고려의 태평성대의 왕이었습니다 이당시 고려는

요,송,일본,여진과 교역하며 국가 재정이 튼실해지고 동북아에서

주도적인 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종의 시인데요 신라 헌강왕때 태평성대가 생각나는거 같기도하고

시가 너무 멋있는거 같아서 올려보겠습니다

요나라 사신을 초대해 베푼 잔치자리에서

하성조사(賀聖朝詞) 라는 시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선종의 하성조사(賀聖朝詞)>

“찬이슬에 가을 바람 불어오니 (露冷風高秋)

이 맑은 밤 달은 밝구나. (夜淸月華明)

피향전(披香殿)은 이제 삼경이 되려는데 (披香殿裏欲三更)

노래 소리 아직도 요란하구나. (沸歌聲擾擾)

인생은 모두가 허깨비 같으니 (人生都似幻)

부귀영화 탐내지 마라. (莫貪榮)

좋은 술 금잔에 가득 부어 (好將美醁滿金觥)

기쁨을 나누는 게 좋으리.” (暢懽情)


벌써 가을이 되었습니다 날씨도 선선해 진거 같고요

명시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몸이 약하셨던 왕이었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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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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