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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왕 3년

11월

당왕(이세민)이

낙양에 이르렀습니다


전 의주 자사 정천숙은

이미 관직을 물러나있었습니다


당왕은 그가 이전에

수 양왕(수 양제)를 따라 고구려

정벌을 참여한 적이 있다해서

불러서 상황을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정천숙>요동은 길이 멀어서

군량의 수숭에 문제가 많으며


동이 사람들은

성을 잘 수비하기 때문에


조기에 항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세민이 말했습니다


<이세민>지금은 수나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대는 나의 의견을 따르라


이세민은 형부상서 장량을

평양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강,회,영,협의 군사 4만명과

장안,낙양에서 모집한 군사 3천명,

전함 5백척을 거느리고


내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평양으로 진군하도록 계획했습니다


또한 태자첨사좌위솔 이세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보병과 기병 6만명과

난주,하주의 항복한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가도록 계획했습니다


두 부대는 합세해서

유주에 대대적으로 집합했습니다


이세민은 행군총관 강행본과

소감 구행엄으로 하여금

우선 여러 군사들을 감독하여

안라산에서 운제(사다리차)와

충거(성문을 부수는 전차)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이때 원근의 용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모였으며

성곽 공격용 기자재를 바치는 자들도

셀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세민이 전투 기자재들을 직접 살피고

그중 편리한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발표했습니다


<이세민>고구려 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학대하니


인정상 이를 어찌 참을 수 있으랴 ?


이제 유주,계주 등지를 순행하며

요동과 갈석에서 죄를 물으려 하나니


행군 도중의 군영이나 숙소에서는

백성들에게 수고를 끼치거나

백성의 재물을 낭비하지 말라


조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세민>이전에 수 양왕(수 양제)은

부하들에게 잔인하고

포악했으며

고구려왕(고구려 26대왕 영양왕)은

백성들을 사랑하였다


이는 반란을 도모하는

군대를 거느려

평화로운 무리를 공격한 격이므로

수 양왕이 성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필승의 조건이 다섯가지가 있다


첫째는 큰 것으로 작은 것을 치는 것이며

둘째는 순리로 반역을 토벌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돈된 나라로

어지러운 틈을 이용하는 것이며

넷째는 편안한 군사로 피로한 군사를

대적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기쁨에 충만한 군사들로

원한에 쌓인 군사와 맞서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찌 승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


백성들에게 포고하노니

의심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 !


이에 모든 숙소,

공급과 설비에 따르는

도구를 절반이나 삭감했고

모든 군단과 신라,백제,해(몽골의 원류 ?? ),거란

등에게 명해서

길을 나누어 고구려를 치게했습니다


<이세민>

짐의 위엄에

사방 오랑캐들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데

고구려인들은 도대체

왜 굽히지 않는것인가 ?


<당나라 신하>

천년 가까운 오랜 역사가

있어서 입니다 폐하

그들은 한나라,수나라 대군을

물리쳤고 중국 왕조들이

계속 생겨나고 사라지는 와중에도

굳건히 나라를 유지했으며

문명 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합니다


<이세민>

짐은 연전연승으로 승리한 인생만을

살아왔다 고구려도 곧 짐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


<라봉봉>당 태종 이세민은

한국 사극 드라마에서도 특히 본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거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걸출했던 능력 이외에도

한국사에서는 고구려를 공격했던

야심가였기에 그런거 같고


저 역시 황제,당태종보다는

이세민으로 쓰는게

당시 고구려인,그의 성격,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더 알맞은 번역같기에 그렇게 옮겼습니다,,


실제로 이세민의 성격은

적국의 왕이나 호탕했던 구석이있고

이에 고구려에서도 그의 원정이

고구려 안시성 양만춘 장군에게 막혀

실패로 끝나고 돌아갈때

안시성주 양만춘 장군도

적국의 왕이었지만

돌아가는 그에게 예를 갖추어

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을때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같은 태종의 호가 됬고,,


한국사의 조선 태종 이방원도

같은 호이고 이세민 같이

아버지를 도와 나라를 건국했고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왕자의 난으로

즉위한 점, 성향,스타일등이

당태종 이세민에게 영향을 받은거로 보입니다,,

또 당태종 이세민같이

조선 태종도 이방원이라는 본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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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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