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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8대왕 원성왕 김경신

재위기간 14년 785~799년


원성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손입니다


(이전왕 선덕왕 김양상은

내물왕의 10대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입니다


왕비는 김씨이며

김신술 각간(=이벌찬, 신라 1등벼슬 혹은

귀족을 뜻하는 말) 의 딸입니다


처음 혜공왕 말년에

신하들이 반역해서 발호(일어남) 했는데

선덕왕 김양상이 이당시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이 되어

임금 측근의 악당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 서서 주장했습니다


김경신이 이에 동조해서

반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자

선덕왕 김양상이 왕위에 오르면서

바로 김경신을 상대등으로 임명했습니다


선덕왕이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후

선덕왕의 족질(조카뻘) 인

김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김주원은 무열왕계였기에

원래 왕위 계승에 더 근접했다고 합니다)


그 때 김주원은 서울(=수도, 서라벌) 북쪽

20리 (삼국시대 1리는 372.67m 정도였다 하고

즉 7.4534 km 로 7.5 km 정도 되겠습니다)

되는 곳에 살았는데


(선덕왕이 사망할 당시) 때마침 큰 비가 내려서

알천 閼川 의 물이 불어나서

김주원이 건너올 수 없었습니다


<김주원>아놔 왕되러 가야 되는데 우짜노,,


누군가가


<누군가>임금이라는 큰 지위는

실로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 폭우가 내리니

하늘이 혹시 주원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지금 상대등 김경신은

전 임금(선덕왕)의 아우로서


(실제 친동생은 아니지만

혜공왕 말년 권력찬탈 과정에서 함께한

정치적 동지였고 선덕왕이 왕이 되고 곧바로

신라 최고 직책중 하나인 상대등이 된 인물이기에

왕과 형동생 할 정도로 지냈을 거라 생각됩니다)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통을 가졌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해서

김주원은 김경신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했습니다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라봉봉>당시 기록들은 삼국유사랑 좀 다르기도 하고

석연찮은 느낌들이 있습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서는

김양상이 혜공왕을 살해했다고 나오지만

김부식님의 삼국사기에서는

김양상이 임금 주변의 악당을 제거하자며

반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했고

제 생각에는 나름 온건한 성향의 인물이었던 선덕왕은

혼란을 틈타 반정을 일으키면서도

혼란을 틈타 잘 드러나지 않게 혜공왕을 죽이고

쉬쉬 하며 덮고 넘어가려 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민간에서는 이미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

이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다음으로,, 이번 이야기 주제인 김주원 일화는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계로 혈통적인 면에서는

왕위 계승권자로 유력한 인물이었으나

대신 원성왕이 되는 상대등 김경신 같이

실제 선덕왕의 반정당시

참여하거나 하는 실질적 공이나 지위는 없었던 인물로 보여지고

즉 왕위 계승권에서는 귀족들의 추대 등 왕위계승 서열 1위의

인물이었으나 왕위계승 서열 2위였던 김경신은

전왕이었던 선덕왕 김양상과 함께

칼을 들고 일어나서 실권을 꽉 잡고 있었던 상태였고

결국 고귀한 혈통이던 신분이던 간에

일단 무력 앞에서는 답이 없어서

김주원이 한 발 뺀거 같습니다

(원성왕 김경신에게는 나름 조선 태종 이방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홍수로 불어난 알천을 몇일동안 건너지 못해

결국 하늘의 뜻아닌가 ? 하면서

왕위를 양보했다는데 상당히 조작스러운 기록이고

실제 삼국유사에서는

원성왕(김경신)이 먼저 왕궁에 들어가 즉위하니

상제(김주원)를 지지하던 무리들이 모두 원성왕에 붙었다고 하고

원성왕은 선덕왕 사후 비상상황에서 빠르게 군사를 일으켜

왕궁을 점거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 인물 같고


대신 김주원 역시 본능적으로 잘못 처세했다가는

선덕왕과 형동생하며 지내며 권력을 잡고있었던 김경신에게

칼맞아 죽을 수도 있었고

나름 '하하호호(억지웃음)' 하면서 좋게좋게 양보한 모습을

보이게 된 거 같고 이에 원성왕 김경신도 왕이 되고 나서

자신에게 왕위를 양보한 김주원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왕위에서 밀린 김주원은

원성왕의 큰 지원아래 명주,

오늘날 강원도 강릉쪽으로 대이주를 하고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됩니다

김주원은 나름 왕위를 양보하고 큰 대우를 받은 인물로

혈통적으로나 신라 내에서도 최고위 귀족중 한명이었음에도

그 나름대로 올바른 처신을 했던 거로 보이고

대신 그의 둘째 아들 김헌창이 훗날 아버지가 왕이 못됬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옛 백제지역 대부분 지역에서 장안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 유명한 '김헌창의 난' 입니다

하여튼 왕위 계승다툼이 치열했던 신라 말기의 상황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고

일단 이 기록에서 김주원의 홍수로 인해 왕위를 양보한 사건은

김경신과의 왕위 다툼에서 패배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신라르 바치고 안락한 삶을 보장받았던 것과 비슷하게

김주원과 원성왕 김경신 모두 나름 서로 윈윈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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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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