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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7대왕 선덕왕 宣德王 (선덕여왕과 다른 한자입니다) 김양상

재위기간 5년 780~785년


선덕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양상이고

내물왕의 10대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해찬 海湌 (=파진찬, 신라 4등벼슬)

김효방입니다

어머니는 김씨 사조부인이며

성덕왕의 딸입니다


(즉 선덕왕은 아버지는 내물왕계,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계로

이에 혜공왕 말고도 무열왕계 마지막

직계 왕이라고도 합니다

선덕왕 포지션이 애매한 허수아비왕 느낌도 있는데

혜공왕 말년에 선덕왕 김양상과 같이 일어났던

김경신이 훗날 원성왕이 되는데

원성왕부터 본격적인 내물왕계 왕통이 시작되기에

일종의 명분쌓기용 왕,

과도기적 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선덕왕의 왕비는 구족부인이며

각간(=이벌찬, 신라 1등벼슬) 양품의 딸입니다


<김부식>아찬(신라 6등벼슬)

의공 義恭 의 딸이라고도 한다


(선덕왕 1년)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습니다


선덕왕은 그의 아버지를 개성대왕 開聖大王 으로 추봉하고

어머니 김씨를 정의태후로 추존했으며

아내를 왕비로 삼았습니다


(혜공왕 말년에 같이 일어났던) 이찬(신라 2등벼슬) 김경신을

상대등(신라 귀족 수장직) 으로 임명하고

아찬(신라 6등벼슬) 의공을 시중으로 임명했습니다


어룡성 御龍省 (국왕 비서업무를 맡은 관청) 의

봉어 奉御 (어룡성 차관직)를 경으로 고쳤다가

경을 다시 감으로 고쳤습니다


선덕왕 2년

2월 봄

선덕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7월 가을

선덕왕이 사신(신하)을 보내서

패강 浿江 (대동강 지역)

남쪽의 주와 군을 분리했습니다


선덕왕 3년

정월(1월) 봄 윤(윤달)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2월

선덕왕이 한산주를 순행하고

주민들을 패강진 浿江鎭 (황해도 지역 군진으로

신라 최북단영토였기에

군사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으로 옮겼습니다


7월 가을

시림 벌 始林之原 (시림=계림=서라벌=신라 수도 로

수도 벌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했습니다


선덕왕 4년

정월(1월) 봄

아찬(신라 6등벼슬) 체신을

대곡진 大谷鎭 (패강진쪽) 군주 軍主 로 임명했습니다


2월

서울에 눈이 석 자 (73.5cm 정도로

그동안 1 자를 23cm로 써왔는데

23cm 는 한나라대 기준이고 신라시기였던

당나라 시대는 24.5cm 이라고 합니다) 나 내렸습니다


선덕왕 5년

4월 여름

선덕왕이 왕위에서 물러나려 했습니다


<선덕왕>에혀 몸도 안좋고

권력이 너무 무섭구나

왕위는 이만 어진이에게,,


<신라 신하들>아니되옵니다 폐하 ~~


여러 신하들이 세 번이나 표 表 (글) 를 올려 간하자

이를 중지했습니다


<선덕왕>ㅠ(진짜 아픈뎅,,)


선덕왕 6년

정월(1월) 봄

당덕종이 호부낭중 개훈을 지절사로 보내서

선덕왕을

'검교대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신라왕'

으로 책봉했습니다


이 달에

선덕왕이 병으로 누웠고

병이 점점 위독해지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습니다


<선덕왕>과인은 본래 재능이 없고 덕이 적어

왕위에 오를 마음이 없었으나

추대 推戴 (다른 사람들이 높은 직위로 모시는 것) 를

피할 수 없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이래

해마다 하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백성들의 일상 생활이 곤궁하여졌으니

이는 모두 과인의 덕성이 백성들의 소망에 부합되지 아니하고

정치가 하늘의 뜻에 합치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인은 항상 왕위에서 물러나

궁궐 밖에 살고자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이 그 때마다 지성(지극정성)으로 말렸기 때문에

매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까지 주저하고 있었다


이제 갑자기 병이 나서

다시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달렸으니

다시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과인이 죽은 후에는 불교의 법식대로 화장할 것이며

유골을 동해에 뿌리도록 하라


(문무왕이 스타트를 끊은 화장, 동해에 유골 뿌리는 법식은

임펙트가 워낙 컸는지 효성왕, 선덕왕도 따라하게 됬고

후대 왕들에게도 이어지는 모습이 있습니다)


1월 13일

선덕왕이 붕어(사망) 했습니다


시호를 선덕 宣德 (베풀 선, 덕 덕) 이라 했습니다


<라봉봉>선덕왕 김양상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혜공왕을 죽인 인물이라 하고

점차 혼란스러워 지는 신라의 내부적 상황에

왕위에 있으면서도 자신도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강했던거 같고

이에 윙위를 내놓겠다는 발언 등을 하며

귀족들에 대한 온건한 자세를 유지한 인물 같습니다


비록 반정세력에 의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을 지라도

일단 혜공왕같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인물은 아니라

나름 혼란기에 왕이 됬음에도

선대로부터 이어진 북방영토 개척등을 하며

온건한 자세를 유지한 인물 같고


온건한 성향의 그는

보수성이 강했던 신라사회에서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 되었다는 자책감에

(+무열왕계를 끝내고

신라 혼란기 왕위찬탈 첫 스타트를 끊엇다는 불안감)

스트레스로 왕위에 있으면서도 물러날 생각을 하다

병에 걸리게 된거 같습니다


왕위를 찬탈한 혹은 불안한 신라 내부의 상황속에서

왕이 된 그는 나름 정책은 안정적으로 이끈 인물 같고

마지막 유언이나 화장해서 동해에 뿌린 점 등이

문무왕과 비슷한 모습이어서

문무왕을 롤모델로 삼은 인물 같고

문무왕같은 온건한 성향의 인물에

혜공왕때 상대등으로 귀족수장직을 했던 경험 +

태종 무열왕계를 끝낸 인물이지만

본인은 어머니가 태종 무열왕 후손이라

내물왕계 반 태종 무열왕계 반의 핏줄이라는 점

등이 찬탈을 했다 하더라도

온건,중간,안정 이런 모습에 부합했던 인물 같고

이에 선덕 宣德 베풀 선, 덕 덕 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 거 같고

내물왕계의 과도기적 임금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유언에서 추대되서 왕위에 올랐다는 점은

자신은 야망은 없었고 어쩔수 없이 왕위에 올랐다

이런 느낌이지만 그가 혜공왕을 시해했다면

허례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일단 불안정한 내부사정, 불안정한 방법으로

어찌어찌 왕위에 오른 인물이라

속병까지 걸릴 정도로

재위 내내 속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인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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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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