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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시기 취약계층들>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과 몽키하우스]

[혁명재판으로 사라진 깡패들]

[생겨나는 사회 복지제도]

[형제 복지원 사건]

[전태일 분신사건]

[광주 대단지 사건과 난쏘공]

<라봉봉>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과 몽키하우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나 설국열차 같은 영화가

세계적으로도 큰 히트를 했지만 영화속 사람들 소득수준을 상 , 중 , 하로 일정하게 나누는

모습에는 영화적 사회현실 풍자 , 표현도 있지만 약간 인위적이고 불편하다고도 생각됬고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사람을 사실 소득수준에 따라 분류할 수도 없지만

일단 저 역시 다양한 이야기를 쓰다보니 박정희 정부 시기 사람들의 생활사를

그런 식으로 나누게 되었고

이번에는 박정희 정부 시기 취약계층등의 이야기입니다

 

광부나 간호사들이 독일에 파견되 어려운 일들을 도맡아 했지만

일단 당시에도 광부나 간호사도 당시 아무나 되지는 않아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쳤기에

취약계층이라고만 볼 수는 없고

그보다 더 밑바닥의(이런 말 쓰기도 뭐하지만) 이야기입니다

 

당시 가난한 나라답게 많은 국민들이 사실상 오늘날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취약계층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기준으로 큰 사회적 문제가

한국전쟁 이후부터 이어진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입니다

 

당시 미군 기지촌 모습과 기지촌 여성들

 

이승만 정부시기 양공주라고도 불린 미군 대상 성매매 여성들은

박정희 정부시기에도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했고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있던 마을을 '기지촌' 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매매 여성들을 담은 이야기로는 소설 '몽실언니' 등이 있고

일단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군 대상으로 한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는데

상당수는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미성년자였다고 하고 이들은

이전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치욕적인 이름인

'위안부' 라 지칭됬습니다

 

가난했던 박정희 정부에서는 오히려 이런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을 용인하거나

권장했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라는 식으로 정신교육을 시켰다는 한국 정부의

어두운 흑역사가 있습니다

또 성병 걸린 여성들은 수용소에 가둬 강제로 치료했고

포주에 잡혀 팔려온 피해자가 기지촌을 탈출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음에도

요청받은 경찰이 탈출한 여성을 직접 포주에게 데려간 경우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현재까지 '가난한 사람들' 은 취약계층으로 소외되왔다지만

오늘날까지

 

'그렇다면 이들을 누가 지켜야 하는가 ?'

 

라는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돈에 미친) 정부는 오히려 기지촌 여성들을 방관 , 협력하고 있었고

물론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 반미감정이 확산되며 주요 이슈로 떠오르게 됬지만

한국은 미국을 일본과 동일시해서도 안되며

하여튼 이러한 시대상속에 한국인 미군대상 위안부들은

법의 보호를 받기는 커녕 (매춘 옹호가 아닌 인간적 기본권)

차별받고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었고

이러한 시대상속에 미군들은 한국 여성들은 단순한 성노리개 ,

스트레스 푸는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았고

병사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도 여럿 있었습니다

 

미국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한국전쟁때 목숨을 걸고

피흘려 한국을 보호해주기도 했지만

이 역시 주한미군의 어두운 역사의 일부분이라 저는 감히 빼놓을 수가 없고

이러한 모습들로 반미감정 , 미국=악 이런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 역시 경계해야하지만

당시 한국정부도 외면하는 자국민 소외계층 여성들이었는데

당연 외국인인 미군이 좋은 대우를 해주기도 어려운 시대였고

오늘날보다 인권 인식도 더 약했습니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지만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수지구를 여럿 설치했고

상당수가 미군기지 인근 , 기지촌이었습니다

 

1960년대 기지촌 성매매 수입은

한국 국민 총생산 25%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고

이는 결코 보통 수준이 아니었으나 잊혀지고 묻혀지는

한국 경제발전기의 어두운 일면입니다

 

1972년 주한미군 1천명당 성병 발생 건수는 692건이었고

성병이 크게 유행하자 박정희 정부는 기지촌 정화대책 일환으로

성병 걸린 여성들을 집단 수용했고

이 과정에서 미군이 성병을 걸렸다고 지명하기만 했던 여성도

성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강제 입소되 치료를 진행했고

입소자들은 페니실린을 맞았는데 이는 통증 및 쇼크가 심해

사망하는 사람도 있어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페니실린 쇼크)

 

수용된 여성들은 쇠창살 있는 방에 갇혔고

감금 여성들은 쇠창살에 매달린 원숭이 같다하여

이 수용소를 '몽키하우스' 라 부릅니다

 

(이러한 쇠창살에 매달린 여성들의 악몽은

사회 문제들을 다루는 대한민국 영화에도 주요 문제로 등장하기도 하고

대한민국 사회의 내면속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오늘날 폐허가 된 몽키하우스 , 무서워 보이지만 엄연한 당시 사회의 '현실' 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했던 나라 , 전쟁 후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성매매로 몰리는 일은 안타깝게도 역사에서 흔하기도 하고

오늘날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동남아에도 이런 여성 , 심지어

미성년자 성매매도 많다 하고 우리나라도 겪었지만 ,,

그럼에도 당대 정부가 권장한 모습은 옳은 모습이라 할 수 없으며

설사 눈감아줬다 할 지언정 경찰들 역시 포주의 편이었다 하니

정말 '사회적 약자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 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혁명재판으로 사라진 깡패들]

여자는 창녀 하면 남자는 보통 건달 , 깡패가 떠오르고

실제 성매매는 창녀와 포주인 깡패들이 엮여있는데

온갖 매체에서는 창녀나 건달들의 화려한 세계 , 삶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 창녀나 건달은

마약 , 범죄 , 밀매 , 유흥업소 등과 엮여있으며

그들이 번 돈은 모두 양지로도 나오기도 어려우며

 

(오늘날에도 창녀들은 무조건 비싼 월세살고 현금만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게 갑자기 억대 단위 돈을 예금하면 조사가 들어오기에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실상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이며

잔인한 말이라기보다 사실상 그런 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이라면

애초에 창녀나 건달을 하지를 않습니다

 

창녀나 건달 모두 좋은 일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

나쁜 일이지만 당연 부잣집 출신 깡패는 거의 없다 할 수 있고

창녀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 출신 ,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와 연루되는 것도 있기에

 

(사실 더 씁쓸하고 깊게보면 부유한 집들은

물리적 폭력범죄가 아닌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되어 뇌물 , 세금빼돌리기 등 다른 모습을 보이는

깡패가 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그러한 모습들로 일단 저는 역시 약자 이야기 속에 넣었고

(미화 , 비호하려는게 절대 아님)

당시 건달 , 깡패들은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부의 엄격한 통제 , 단속에

척결대상 1호가 되어 군인들에게 소탕되다싶이했고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 직후

'혁명재판' 을 열어

이정재 등 깡패들을 잡아 죽였고

당시 이승만의 비호로 정치깡패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커있던 상황이라

깡패들이 사라져가자 많은 국민들이 환호하고 박정희의 인기가 치솟았다고도 합니다

 

깡패들은 군경의 엄호아래 시내를 행진하며 조리돌림을 당하며

플랜카드에

 

'나는 깡패입니다 .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 ,

'깡패생활 청산하고 바른 생활을 하겠습니다' ,

'우리는 젊은 몸과 마음을 국가에 헌신하겠습니다'

 

라는 플랜카드들을 들고 돌아다녔고

이정재 같은 거물깡패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했고

 

플랜카드를 들고 조리돌림되는 정치깡패 이정재

 

이외에도 개선 모습이 있는 깡패들은 탄광이나 도로 노역장으로 보내져

근로정신을 터득시킨다는 명목으로 일을 하게 됬고

엄청나게 위험한 도로공사들에 투입됬다고 합니다

당연 언제 죽어도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도 모를 사람들이었고

저도 이런 이들을 비호할 수는 없지만

이전 친척형과 대화하며 왜 저런 범죄를 저지르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형이 '그런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살면 그런 환경에 노출된다'

라는 식으로 그 사람들이 왜 그럴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해주었고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러 정치인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고

무조건적인 비호를 하며 표심을 챙기려는 모습도 불편하게 여겨졌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표면적인 모습만 아닌

약자와 사회 , 진실을 보는 따뜻하고 깊은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겨나는 사회 복지제도]

박정희 정부 시기는 베이비붐과 맞물려

엄청난 인구들이 출생하는 시기였고

여러 사회복지정책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 산업재해보함 , 의료보험 법 등이 제정되었고

특히 의료보험으로 많은 이들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되어

많은 이들이 박정희 정부의 또다른 업적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보통 정치계에서도 사회복지 우선은 진보계쪽이 강하고

기업 , 산업 우선등은 보수계쪽이 강하지만

보수계 대통령인 박정희는 일단 유능한 인물이기는 했어서

오늘날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으로

의료보험을 최대 업적으로 꼽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 오늘날에는 의료보험이 올라가 부담을 호소하기도 하고

(알바 하면서 들기에는 참 어려움)

의료계에서는 의료보험으로 지급받는 금액이 너무 낮아 힘들다는 말도 나오고

또 외국인들이 저렴한 한국의 의료보험을 이용해 비싼 의료서비스를 받고

자국으로 가는 편법행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보험증

 

[형제 복지원 사건]

그러나 그럼에도 사회적 취약계층의 현실들은 어려웠던 시기이고

당시 가난한 소년들이 몰려다니며 '양아치(동냥아치)' 라 불린 거지들은

박정희 정부의 단속에 의해 사회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당시 장애인들은 장애인 수용시설로 옮겨지게 되었으나

복지법인은 제도화되어 정치권력과 점차 유착하게 되었고

퇴직 공무원들이 복지시설의 임원으로 넘어가 거대해진 사회복지시설을 사유화시켰고

그것 중 대표적인게 장애인 수용시설입니다

장애인 및 사회적 약자들은 집단시설에 옮겨져 여러 인권들이 유린되었고

보호 시설이 아니라

사실상 유대인 수용 및 살해시설이라 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가 재현되기도 했는데

대표적 사건으로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박정희 , 전두환 군부정권때 형제복지원은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는데

정부의 부랑자 단속에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이런 시설로 옮겨졌고

이런곳에서 학대 , 살해등이 자행됩니다

 

형제 복지원에서 살해 또는 고문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원생수만 513명이고

시체는 암매장 혹은 근처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팔아넘겨 정확히 알려진 수도 모른다 합니다

 

당시 신문기사 , 아 이것이 인간으로서 정녕 할 짓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원장은 정권의 비호로 범죄행각이 드러남에도 2년만에 석방됬고

2016년 사망할때까지 1000억원 자산가로 호의호식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거나

'원래 양아치(나쁜놈) 들이 잘먹고 잘산다'

라는 이야기가 속설로 퍼지는 것을 보면

과연 정의란것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 역시 생기기도 하나

저는 그럼에도 정의는 반드시 구현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역사에서는 시간이 지난 이후일 지언정 

정의는 반드시 구현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글로 써서 알리고

또한 읽고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한국 현대사 이야기를 하며

요즘 점차 진지해지고

어떠한 사명감이 생겨난 느낌이기도 합니다

 

[전태일 분신사건]

박정희 정부는 권위주의 정부이며 친기업 , 친자본가 성향이 강했고

노동법이 존재함에도 대다수 업장에서 지켜지지 않았고

많은 어린 , 젊은 여공 , 공장 근로자들이 장시간 고노동에 시달렸고

하루 15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는데

근로기준법이 존재했음에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정부 관리들 역시 법을 무시하고 기업들을 보호해주기 바빴으며

이에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분신함으로서

열악한 한국 노동환경을 알렸습니다

 

<당시 전태일 열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한 2만 여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 할 수 없읍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써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

 

아들 전태일의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이소선 여사

 

[광주 대단지 사건과 난쏘공]

또 서울에는 강남개발 및 여러 도시화가 진행되자

많은 사람들 , 빈민 , 쪽방 거주민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광주 대단지사건(광주폭동이라고도 부름)' 이 있습니다

 

문제적 사이트인 일베저장소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며

광주폭동이라 부르지만 실제 1971년 광주폭동이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과 지역이 다름)

 

사회적 약자들이 내몰리는 현실에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오늘날은 광주폭동이라는 폄훼적 표현보다는

'광주 대단지 사건'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971년 서울 무허가 빈민촌들이 정리되자

박정희 정부는 경기도 광주군일대에

빈민층 사람들이 살 집을 준다고 해

빈민층들을 이주시켰고

그 말을 믿은 10만명이 넘는 빈민층들은

살 집을 준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열심히 이주합니다

(아 이런거 [정부의 말을 무조건 믿다 당하는거] 보면 슬픕니다)

 

당시 정부는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 살던 빈민들에게

 

'다시는 서울로 이사오지 않겠다'

 

라는 서약을 받고 이주시켰는데

주민들이 경기도 광주에 도착하니 그냥 허허벌판의 땅만 마련되있었고

천막 하나만 제공됬고 땅은 줬으니 집은 알아서 지으라는 심보였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도 광주의 모습

 

생활이 불가능해진 빈민들은

생계수단이 전혀 없는 현실에 내몰렸고

애초에 정부가 빈민 주거지 마련이 아닌

서울에 사는 빈민들을 쫓아내려 했던 것임을 알았고

이러한 현실속에 경기도청은 주민들에 토지대금을 납부하라 고지서를 발표했고

처음 약속한 가격의 4~8대였다 합니다

 

결국 분노하고 폭발한 광주 주민들은 관리사무소 , 파출소 등지에 불을 지르고

광주대단지 전역을 초토화시켰고

전경과 주민들이 대치할때 참외트럭이 지나가자 굶주린 주민들은 참외트럭에 달려들어

참외 한트럭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고

아수라장 및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돌입하게 됩니다

 

결국 정부는 주민대표들에게 정식사과하고 광주 대단지를 성남시로 승격하고

주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것으로 약속함으로서 사건은 끝나게 됬고

박정희 정부시기 도시개발에 밀려

열악한 현실로 내몰린 빈민들의 대표적인 사건이라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 분노한 빈민들

 

이러한 빈민들의 현실에 분노한 지식인 조세희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라는 한국의 전설적인 소설을 집필했고

도시빈민 , 빈부격차 문제가 드러난 소설로 한국에서 엄청나게 읽혀지게 됬고

저는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난쏘공'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세희 작가의 회고>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번 피 마르게 아파서 소리 지르는 때가 있는데 ,

내가 너무 아파서 지른 간절하고 피맺힌 절규가 '난쏘공' 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1976) , 조세희 지음

 

<라봉봉>오늘날에도 쪽방촌 , 고시원 , 오피스텔에 밀집해 사는 사람들이 되게 많고

잠시 배달일을 한 적이 있는 저는 이런것을 목격하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극빈층은 아니지만

가끔은 나도 극빈층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게 아닐까하는 위기감도 있고

오늘날에도 이런 현실은 평범한 , 돈있는 사람들에게도 사실 남일이 아닌게

미국같은 경우는 한번 병들면 가족 전부가 파산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언제 병이 들거나 암에걸리거나 , 다치거나 , 가족이 죽거나 하면

누구나 충분히 빈민층으로 몰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빈민층들을 남의 문제나 이야기로 여기지 말고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박정희 정부시기 이런 문제들이 커지며

사람들은 점차 민주화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진보계에서는 더 깊게 범죄자들 수용시설에 대한 실태조사까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사실 깡패 , 창녀 , 범죄자 이런 사람들이 결코 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맹모삼천지교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 , 근묵자흑이라는 말들처럼

사람은 사회적 , 적응의 동물이기도 해서 매우 좋지 않은 환경에 살면

또 이런것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높고

이런거는 그럼에도 개인의 잘못이라 쳐도

진짜 당시 군사독재시기 억울하게 감옥에 가거나 창녀로 끌려가거나 하는 경우들이

분명 있었기에 또 문제가 되는 것이고

범죄자들을 계도하고 다시는 그런 일들을 못하게 하되

또 지나친 온정주의(봐주기만 하는) 로 빠지는 것은 경계하되

사회에서 온정 ,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게 분명 필요킨 하다 생각합니다

 

당시보다 더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인권수준이 나아진

오늘날에도 사회적 약자들은 계속해서 존재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이자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부는 여러 향수와 추억 , 미담 , 성공적 경제발전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렇게 매우 어두운 모습을 남기기도 했고

사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극우나 극좌에서 그러는 것 처럼

함부로 당시 지도자들을 미화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참으로

 

'누가 이들을 지켜야 하는가 ?'

 

라는 말이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물론 말은 쉽습니다

약자를 도와야 한다 , 착한일을 해야한다 , 바르게 살아야한다

말도 쉽지만 어쩌면 행동도 쉬우니 우리 모두가

무리해서 까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하고

(갑자기 공익 캠페인 느낌 ;;)

 

저 역시 어렸을때 지켜준다는 말이 무슨 지키긴 뭘지켜 하는

우스운 말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며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이웃이기에

무한경쟁 , 이기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조금 더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고 ,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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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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