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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프랑크 왕국>

[게르만족 , 그들은 누구인가 ?]

[로마의 장벽 리메스]

[게르만족의 대이동]

[기독교 세계를 수호한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대제]

[프랑크 왕국의 분열]

<라봉봉>

 

[게르만족 , 그들은 누구인가 ?]

로마는 지중해 유역을 전부 장악해

지중해유역을 로마의 호수로 만들어버렸는데

풍요로운 지중해 유역을 제외하고는 그 너머는

미지의땅이거나 게르만족 , 바바리안(야만인 , 오랑캐) 들이 사는

척박한 땅이었기에 그 너머는 별다른 문명이나 국가도 없었기에

그 이후부터는 더이상 팽창하지 않습니다

 

유럽인 이미지하면 키큰 백인 , 컬러색깔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백인을 생각하지만

그건 엄연히 말하면 게르만족의 이미지이고

오늘날 유럽에는 3대민족이 있는데

 

라틴족(지중해쪽) , 게르만족(발트해와 북해쪽 , 북 , 서유럽) , 슬라브족(러시아)

 

입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 , 라틴족 (+켈트족) 의 이미지

 

일단 게르만족들은 로마 주류민족인 라틴족 , 그리스계 민족과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표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라틴족(로마) 게르만족
신체 키가 작아 깃털투구를 씀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함
신체 색 검은 곱슬머리 , 까무잡잡 피부 갈색이나 금발 , 흰 피부 , 푸른 눈
대표나라 이탈리아 , 스페인 영국 , 독일 , 스웨덴

 

게르만족들은 로마인 , 라틴족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양상을 가지고 살았고

따뜻한 지중해 기후에서 풍요로운 농업 (올리브와 포도와 밀) 과

해상 무역 등으로 먹고살던 로마인들과 달리

거칠고 추운 북방에서 사냥과 소나 양을 키우는 목축을 하며 살았고

이로 인해 육식을 많이해서 성향도 거칠고 키나 체격도 컸습니다

 

게르만족

 

분명한 것은 후진적인 문명의 게르만족은 로마인들보다

인프라 , 사회제도도 발달하지 못했고 무장과 장비면에서도 열악했지만

로마군은 중장비를 장착하고 여러 행정으로 인해 기동이 느렸고

반면 가죽옷 등을 입고 경무장한 게르만족들은 소규모로 자유롭게 움직였습니다

 

(마치 농경민족 중국과 북방 유목민족인 몽골이나 여진족과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오히려 초기 로마인들도 이런 게르만족들의 헝그리 정신의 모습이었는데

갈수록 문물이 발달하고 중무장 , 거대해진 제국에

지도층과 국민들은 사치를 즐기며 타락해가며 배가 나오고 있었고

가난하지만 헝그리 정신의 게르만족들에게 따이게 됩니다

 

(이는 로마 뿐만 아닌 중국이나 세계사의 여러 나라들의

흥망사 패턴과도 비슷합니다)

 

한때 귀족과 시민들이 합심해 외세와 맞서던 로마인들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점차 향락에 빠지며 나약해지고 있었고

 

타키투스라는 인물은 향락에 빠진 로마인들을 각성시키려

주적인 게르만족의 명예존중 , 용맹 , 충성심등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고 (로마도 초기엔 이랬습니다)

 

게르만족 전사들

 

게르만족들은 자유인 , 평등의식이 강했고

생활풍습이 비교적 건전해 (단 게르만족도 야만풍습이 있긴 했음)

이혼 , 근친 , 불륜 일상화에 틈만나면 여자노예들을 강간하던 로마인들과 달리

혼전순결 , 일부일처제를 철저히 지키고 향락적 문화를 배척했습니다

 

[로마의 장벽 리메스]

로마가 팽창이 끝난 시기부터는

게르만족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국경에 요새 , 장벽을 짓는데

이는 진나라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북방의 흉노족을 막기위해 만리장성을 쌓은것과 동일했고

로마가 북부지역에 쌓은 이 거대한 장벽을

 

'리메스' 혹은 '리메스 게르마니쿠스' 라고 부릅니다

 

국경 곳곳에 건설된 로마 장성 , 요새인 리메스

 

그렇다고 로마와 게르만족이 대치 , 싸움만 한것은 아니고

로마는 일부 게르만족과는 대립하는 한편

다른 일부 게르만족과는 동맹을 하는 식으로 게르만족들을 회유하거나 다루려 했고

 

게르만족들 중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등의 유력자들의 자녀들은

로마에 볼모로가서 로마 수도에서 유학을 했는데

나름 로마식 교육을 받고 관직에서 일하다

자국으로 돌아갔고

로마에 볼모로 가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졌고

게르만족들도 로마의 용병이 되거나

로마와 교류하며 로마를 동경하거나 했고

이는 게르만족 뿐만 아닌 유대인 , 켈트족 , 아랍인 등

여러 비 라틴 , 비 그리스계 민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이는 로마가 개방적인 나라이자 당대 서양세계의 중심국가여서 그렇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일단 라인강 방면 , 장벽에서 로마제국군과 게르만족은 대치하고 있었는데

게르만 민족들은 인구의 증가 , 농경지 부족 , 동방의 훈족(흉노족) 의 압박에 밀려

로마로 대이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 4세기 후반 동방에서 나타난 훈족의 영향이 가장 커서

흉노계 유목민족이라 이야기 되는

훈족은 잔혹하게 게르만 양놈들을 싸그리 쓸어버렸고

 

동방 흉노족이 기원으로 초원길로 서방으로 이주했다는 훈족

 

위협을 느낀 게르만족들은 이탈리아 , 프랑스 , 에스파냐(스페인) ,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으로 민족대이동을 시행했고

이전부터 내부 분쟁 및 화폐의 문란 , 지도층의 사치와 부패와 타락으로

썩어가고 있던 거대한 무패의 제국 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도미노처럼 허무하게 뚫리게 됬고

이로인해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에게 476년 멸망하고

동방의 그리스 지역에 자리잡은 동로마 제국은 이후에도

1000년을 갑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게르만족들은 여러 부족이 있었는데

반달족 , 고트족 , 부르군트족 , 프랑크족 , 앵글로색슨족 등

여러 부족이 있었고

이중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 지역을 ,

앵글로 색슨족은 영국 지역을 정복해

각각 나라 국민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세계를 수호한 프랑크 왕국]

서로마 제국 멸망 후

특히 프랑크왕국은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 중 가장 두각을 나타냈는데

프랑크 왕국은 기존 로마 제국의 전통을 존중했고

지속적으로 로마의 전통체제를 국가 전체에 퍼트리려 노력합니다

 

프랑크 왕국

 

481년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을 건국한 클로비스는

게르만족의 전통을 유지하되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해

486년 교황에게 세례와 왕관을 받았고

 

세례받는 클로비스

 

카롤루스 마르텔 대에는

이슬람 국가 우마이야 왕조가 스페인 지역을 모두 따먹고

피리네 산맥을 넘어 서유럽지역(프랑크 왕국) 으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오고 있었는데

카롤루스 마르텔과 프랑크 왕국군은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우마이아 왕조(옴미아드 왕조)군을 격파해

서양에서는 그가 서유럽 세계가 이슬람화 되는 것을 막고

기독교 세계를 수호했다는 공로로 크게 평가되게 되었습니다

 

투르와 푸아티에 위치

 

투르-푸아티에 전투

 

카롤루스 마르텔은 이 전투의 승리로

명예와 인기 , 실리를 차지했고

이 기반들을 바탕으로 그의 아들 피핀은

프랑크왕국 카롤루스 왕조를 엽니다

 

[카롤루스 대제]

특히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 대제 시기에는 프랑크 왕국의 전성기가 시작되는데

 

카롤루스 대제(대왕 같은 개념)

 

그는 옛 서로마 제국 영토를 회복해

800년 서로마 제국 황제로 대관했고

로마 귀족 전원이 그를

 

'아우구스투스' 라 부르며 환호했고

그는 신성 로마 황제로 추대됩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대관식=왕관을 쓰며 왕이 됬다고 공식으로 알리는 행사)

 

카롤루스 대제는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했음에도

여전히 게르만 황제여서 새로운 권위가 필요했는데

 

카롤루스 대제는 강력한 무력으로

허울뿐이었던 로마 교회 , 교황을 보호해 주었고

 

로마 교황 역시 동로마 , 비잔티움 황제의 간섭과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고

새로운 보호자가 절실했는데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 황제에 임명하며

황제를 임명하는 권한이 생기게 되는

엄청난 권리가 생겼고

 

교황과 황제는

이러한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공생관계가 시작되는데

 

동양의 절대군주 체제에 영향을 받아

황제가 곧 교황이 되어 종교와 정치를 다했던(제정일치) 동로마와 달리

옛 서로마 지역은 이렇게 왕과 교황의 권리가 분리됩니다 (제정분리)

 

이외에도 카롤루스 대제는 글자를 몰라

열십자 긋는 걸 서명으로 대신하는 문맹자였는데

 

<카롤루스 대제의 전기작가 아인하르트의 기록>

그는 글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

침대의 배개 밑에 언제나 서판을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글자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일찍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너무 늦게 시작했기에 ,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가 무식한 인물은 아니었고

학문에도 관심을 보여 궁정학교 설립 , 라틴 문화를 장려해

각지에 학교가 생겨나고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가능한 학자들이 생겨나서

각지의 수도원에서 로마와 그리스 고전들의 필사본들이 대량 제작됬고

게르만족이 야만 , 무식한 놈 이미지에서 탈피하게 됬고

서로마 멸망 후 파괴되며 사라져가던 그리스 로마문명의 빛이 다시금

살아났습니다

 

서유럽 문화권 형성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의 문화진흥책은 상당한 성과를 올려

사람들은 이를 '카롤루스 르네상스' 라 부릅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서방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로 인식되며

이 시기부터 동로마와 구분되는

게르만 , 서유럽 문화권이 형성됩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런 것들로 인해

'유럽의 아버지' 라고도 불리고 있고

그는 오늘날 유럽연합(EU) 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념되며

오늘날에도 유럽 통합에 기여한 인물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딴 '카롤루스 대제상' 이 수여되고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 상

 

[프랑크 왕국의 분열]

그러나 이후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843)·메르센(870) 조약으로

서쪽 , 중앙 , 동쪽의 세 지역으로 분할됬고

서프랑크 왕국은 프랑스 ,

중프랑크 왕국은 이탈리아 ,

동프랑크 왕국은 독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분열

 

분열된 프랑크 왕국은 이후

12세기 프랑스 왕국(프랑스) 과 신성로마제국(독일) 로 통일됩니다

 

프랑크왕국은 서로마제국 멸망후에도 살아남아

로마 정통후예를 자처한 동로마 제국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고

동로마 입장에서는 바바리안 야만 게르만놈들이 서로마땅에 들어와

왕국을 세운거라 옛 게르만 신하나 부하가 로마 황제 노릇을 한다는 것 등에

띠껍게 느껴졌지만 현실적인 상황등에

나름 투닥거리며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후 프랑크 왕국은 서유럽세계 , 동로마 제국은 동유럽세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라봉봉>유럽 역사는 제가 나라들 하나하나 역사를 읽긴 읽었는데도

얘네들이 동양 국가들의 역사보다 더 복잡한게

다른나라임에도 같은 핏줄이기도 하고 하나였다가 또 분열하고

이런게 반복되고 유럽 국가들끼리 핏줄이 섞여있기도 해서

하여튼 상당히 쓰기 복잡해

평범한 세계사 도서의 유럽사나 세계사 전집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게르만족들은 하여튼 미개했음에도 자유로운 분위기등에 번성하며

문명화됬음에도 부패하고 타락한 노예사회였던 로마제국을 손쉽게 멸망시켰다 보여지고

로마 멸망이후에도 게르만 국가 프랑크 왕국은

로마의 유산을 파괴하지 않고 계승하는 모습을 보여

고대 유럽시대를 끝내고 중세 유럽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동로마와의 관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있고

진짜 우리가 아는 이미지의 서양이 프랑크 왕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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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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