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중세 유럽 사회의 발전>

[중세 유럽을 바꾼 '말']

[도시의 성장]

[길드의 형성]

[교역권의 형성]

[흑사병]

[유대인 학살]

[농민들의 지위 향상]

<라봉봉>

 

[중세 유럽을 바꾼 '말']

중세유럽과 고대 로마제국의 농업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로마제국은 지중해 국가로서 이탈리아와 그리스 ,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등 따뜻한 온대 기후로 땅도 부드러워 대충 갈아서

대충 씨만 뿌려놔도

엄청난 농업 생산량이 있었고

또 대규모 노예노동을 통한 농업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중세유럽은 시대적으로 로마 이후니

더 풍요로워보이지만 농사가 지중해지역보다

잘 안되는 북방지역에 자리잡았기에

끝없는 나무의 바다(산림)를 농지로 일구어내는 개척을 해야했고

땅도 거칠었기에

개간 , 수로건설 , 휴경농법 , 농사에 말을 사용 ,

풍차와 쟁기 등 농업기계 사용 여러 방식으로

땅과 사투를 벌이며 농사를 지으며 발전했습니다

 

중세유럽을 변화시킨 풍차와 수차

 

중세 유럽시기부터 농사에 말을 쓰면서

유럽 사회는 큰 혁신이 일어났고

 

(물론 풀만 먹으며 거대한 소가 농사에 더 효율적인 것은

동양에서는 어린아이도 알법한 상식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이민족 침입 , 말 사료를 만드는 삼포제 농업 ,

변덕스러운 기후 , 운송수단으로서 중요성 등으로

농사에 말을 주로 사용했고

오늘날에서도 동양에서는 농사에 소를 ,

서양은 농사에 말을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말을 이용해 씨뿌리는 중세 유럽 농부

 

운송수단으로서도 말이 중요시됬고

군사적으로도 보병 중심의 로마사회는

기병 , 기사 중심의 중세 유럽사회로 변화합니다

 

이에 중세 유럽사회는 기병을 양성하기 위한 장원이 발달했고

기사와 영주의 계약관계인 봉건제도가 유행하는

사회 , 제도적 변화가 일어났고

하여튼 유럽의 고대와 중세는 질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도시의 성장]

중세 사회대부터 이러한 말의 사용은

물류 이송수단의 큰 혁신을 가져왔고

미련하게 땅개짓(보병 ㅠㅠ) 하면서 먼거리를 운반하면

물자 가격이 폭등하던 고대 로마와 달리

말을 타고다니는 농부와 상인들이 늘어나며

작은 마을들이 주변 도시로 흡수됬고

운송비가 절반으로 줍니다

 

이에 작은 마을들도 도시로 흡수되어

대도시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회변화로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이 발달합니다

 

중세 유럽 도시 , 한국인들에게 유럽 도시는 디즈니 애니나 서구 동화에 익숙해 낭만적 마을 이미지인데 서양인들에게는 우리네 초가집 , 기왓집 같은 실제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중세 유럽 장원에서 영주의 통제를 받았던 농노들은

자유를 찾아 도시로 도망쳤고

1년 1일동안 도시에 살면 자유인으로 인정됬기에

 

'1년하고 하루를 지내면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독일어 : Stadtluft macht frei nach Jahr und Tag)'

 

줄여서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가져 온다'

 

라는 말이 중세 유럽에서는 유행했습니다

 

[길드의 형성]

중세 유럽 도시가 발달하자

도시의 시민들은 도시민의 공동 이익과 안전을 위해

조합단체인 '길드' 를 조직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농민 협동조합인 '농협'이나

수산업 협동조합인 '수협'같은 개념입니다

 

보통 게임에서 친목단체로서 같이 파티사냥도 하거나

연합전투도 하는 '길드' 가 떠올려지는데

그 길드의 실제 원형 , 찐길드로서

 

10세기~11세기 사이부터 돈있는 도시의 상인들이나

기술을 지닌 장인들은 상인 길드 , 수공업 길드를 조직해

이익을 보호했고

설립 목적은 기독교 우애정신에 입각한 상부상조였지만

실제로는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교역과 생산을 독점했고 그만큼 폐쇄성도 강해서

비조합원들에 대해 심하게 배타적이었고

조합원이 아닌자가 조합의 이익을 방해하면

은밀하게 제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특허장을 받는 중세 플랑드르의 도시 시민들

 

중세 프랑스의 상점

 

중세 신발길드 (수공업자)

 

길드의 영향력은 점차 커져

봉건 영주의 권력에도 맞서가기 시작했고

시의회를 구성해 도시법 제정 , 재판 , 징세 , 예산권 등에 관여하며

이에 시민사회를 장악하며 도시의 경제적 발전 , 자치권 획득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해

도시와 시민의 힘이 강해지자

끝내 유럽에는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과 귀족이 아닌 시민 , 자유민들의 세상이 오게 됩니다

 

(억눌린 사람들이 점차 법과 지식과 기술과 돈으로 무장하고

왕과 귀족세력을 밀어낸다는게 참 서양 역사나 역사라는게

바닥에서 뿜어져나오는 분수같고 대단합니다)

 

[교역권의 형성]

길드원(레알 찐 길드원)들은 여러 유럽 지역에서 활동했는데

지중해에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이탈리아 상인 중심으로

'지중해 교역권' 을 형성했고

 

발트해와 북해 연안의 북유럽에서는

'한자 동맹 (한자 Hansa 는 독일어로 조합을 뜻합니다)'이 결성되는 '북유럽 교역권' 이 형성됩니다

 

한편 바다가 아닌 땅에서도

'내륙 교역권' 이 형성되 북유럽과 지중해 교역이 연결되고

유럽이 하나로 묶여갑니다

 

중세 유럽의 도시들과 교역권들

 

한편 길드가 발달하며

상업 및 화폐 경제가 발달하자

세금이 화폐로 내어지는

'지대의 금납화' 가 확산되고

영주의 화폐 수요는 증가했고

 

영주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려

새롭게 성장한 상인 , 시민계층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흑사병]

이러한 시대변화속에

유럽을 대강타한 '흑사병' 이 전 유럽으로 퍼졌는데

 

흑사병은 페스트라고도 불리며

인류 역사상 천연두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인 질병으로서

페스트균은 숙주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무시무시한 병이었습니다

 

유럽을 공포에 떨게한 '흑사병'

 

걸리는 순간 발열 , 통증 , 무력감 증상이 나타나며

기침 , 호흡곤란 등이 오다 죽어버렸고

병이 진행되며 신체부위에 검은색의 괴사를 일으켜

살이 검은빛으로 썩기에 '흑사병' 이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질병입니다

 

흑사병 사진

 

흑사병은 페스트라 불리는데

페스트의 어원은 라틴어 Pestis 로서

특정 질병이 아닌 전염병 , 돌림병을 의미하는데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의 영향력이 워낙 강렬해

흑사병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병은 1346년 유럽 동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

1353년까지 유럽 전역에 급격히 확산되어

유럽을 쓸어버렸고

이를 대역병 , 그레이트 플레이그(Great Plague) 라고 합니다

 

14세기 중반 유럽 흑사병의 대유행

 

13세기 유럽 인구는 최대 4억 5천만명이었는데

대역병 이후 15세기에는 3억 5천만으로 줄어

1억명의 인구가 사망해버렸고

극심한 지역은 지역의 80~90% 사람이 죽는 등 지역 전체가

초토화 됬고

짧은 기간동안 유럽 인구가 급격히 줄어버렸습니다

 

중세 유럽의 대재앙 '흑사병'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은 의학지식도 부족하고

위생개념이 없다싶이 했고

사체와 분변을 거름으로 사용하고 흙으로 몸을 닭고

벼룩이나 쥐 등 유해생물에대한 방제도 제대로 없었고

손씻기 개념도 없었고 위생행정체계도 전무했던

정말 더러웠던 시기입니다

 

흑사병 시기 이미지로 유명한 '역병 의사 혹은 흑사병 의사' , 실제 당시 흑사병 의사들은 이런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당시 어두운 시대상과 비과학적이고 기괴한 시대로서 흑사병 시기는 이런 이미지가 생겨납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흑사병 전파가 공기나 더러운 냄새에서

일어난다 믿었기에 거리에 불을 피워 공기를 태우거나

기독교 신앙의 힘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단지 유일하게 그들이 맞췄던 것은

흑사병이 감염자와 접촉이 주된 경로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염지로부터 도망한 이주자에 대해 40일간 구금을 해서

잠복기를 넘기는 방법등으로 전염을 방지하려 했다 합니다

 

[유대인 학살]

단지 흑사병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생존률을 보인 민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유대인(유다인 , 유태인)' 으로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은 신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신앙생활 습관으로서

평소 목욕을 하고 식사전후 손씻기를 하고

겨드랑이 , 음부 등을 물로 깨끗히 닦는 생활습관이 있었고

불결히 생활했던 유럽인들에 비해 높은 생존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유대인들

 

이에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옮긴다는 편견이 생겨

흑사병이 퍼진 기간동안

유대인들은 편견을 뒤집어쓰고 유럽인들의 희생양이 되어 학살당합니다

 

잠시 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유대인 학살 , 유대인 이야기는 이후 나치 독일 이야기때도 할 것입니다 ..

 

일단 중세 유럽 당시 유대인들 이야기를 하면

유대인들의 나라는 로마제국에 멸망했고

로마제국의 식민지 시기

유대인 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라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죄 , 악과 맞서셨고

사랑이라는 가치를 주고 가신 분으로서

여러 종교 , 사회활동을 하시다가

 

예수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로마 제국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사형당하셨는데

 

그의 뛰어나고 훌륭한 사상들은 그의 제자들에게 남아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로마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끝내 로마는 예수님과 기독교를 위대한 성인 , 사상으로 인정하고

기독교는 서구 사회에 중심 사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한편 평소 중동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한 유대인들도

점차 유럽 사회로 퍼져 생활하게 됬는데

그들은 유럽인들과 융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생활을 하며 독자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사형시켰지만 뒤늦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위대함을 깨달은 로마 , 유럽인들은

예수님 사망 당시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예수님의 죽음에 관여한 것이 있기에

비난의 화살을 유대인에게 돌렸고

 

유럽 사회에서는

유대인들의 이미지를 '예수님을 죽인 민족' , '예수님을 판 자' 등의

이미지로 여기며 차별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게 대체로 차별을 받았고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고 알리는 뾰족한 모자를 징표로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도 구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이에

금융업 더 정확히 말해서는 '고리대금업(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일 , 대부업)' 을

주로 하게 됬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유럽 기독교 사회였기에

유럽인들도 어쩔수 없이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높은 이자로 돈을 긁어모으는

유대인들을 더욱 차별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중세 유럽시기 돈갚으라 하는 유대인(뾰족 모자) 과 짜증내는 유럽 기사

 

근데 당시 유럽의 유대인들은 땅을 소유할 수도 없어 농사도 못지었고

조합에 가입하지 못해 상업이나 수공업도 못했기에

할 수 있는게 고리대금업밖에 없었고

이런 일들을 하며 자식들에게도 이런 기술들을 공유해주며

유럽 사회에서 살아남던 유대인들은

평소에도 계산과 눈치가 엄청빨랐고

 

이에 20세기에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이전부터

실제로 중세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을 그냥 쳐죽이거나 약탈하는 등

멸시하고 증오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에서도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중세 유럽시기 차별과 멸시 , 학살을 당하면서도

겨우겨우 살아남다가 이후 18~19세기부터

금융 , 여러 전문직에 종사하며

유럽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됬고 또 다시금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나치 독일의 학살을 겪다 미국으로 이주하거나

옛 자신들의 조상의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해 살며 세계 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

 

이들은 평소에도 독실한 신앙생활 및 근면성 등으로

여러 기술들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며

오늘날 세계 사회의 경제계나 주요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하고

한국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고도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 이런 말들은

민족주의 성향 고취 등으로

어느 나라들이나 다 자기 민족이 우수하거나 똑똑하다 이야기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농민들의 지위 향상]

하여튼 유럽 인구가 이 흑사병으로 대규모로 죽자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곡물가격이 상승해

농민들의 지위가 향상됩니다

 

이에 농민봉기들이 일어나는데

1358년 프랑스에서는 '자크리의 난' 이

1381년 잉글랜드(영국) 에서는 '와트 타일러의 난' 이 일어납니다

 

자크리의 난 , 기사를 두두려 패는 아니 찍어내는 농민들 ...

 

와트 타일러의 난

 

농민들은 전염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리게 됬고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역과 세금등에서 벗어나고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민란을 일으키며

영주 , 왕들에게 맞서게 됬고

 

점차 이 시기 이후로 장원이 해체되고 왕과 귀족들의 권위는 약화되고

도시의 시민 , 상인 그리고 농촌의 농민들의 지위가 향상되가고 있었습니다

 

<라봉봉>동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폭포 ,

서양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분수와 같다는 표현이

철학이나 자연과학에서는 주로 이야기 되는데

 

참으로 서양인들은 근본부터 민주정으로 시작해

다른 사람의 독재 , 지배를 받지 않으려 했으며

이런 성향들은 중세 유럽에도 계승되

당시 동양보다 여러 면에서 열악하고 후진적이었을 지언정

합리적 사상과 법의 힘을 이용해

그저 신분만 믿고 위에서 놀려는 귀족과 왕 , 성직자들을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좀 짜릿한 면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시기부터 점차 시민들은 힘을 길러가며

다음 시대인 시민의 시대 , 근대시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서양이야기를 써보니

옛날에 읽고 공부한 것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즐겁고

오늘날 비이성 , 비합리주의가 강한 동양이나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들도 있어

짜릿하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도 들어 (참고로 저가 그렇다고 자국까는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에도 비과학성 , 후진적 정치문화 , 수직적 서열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서양사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라 생각되는데

 

서양인들의 근본적 의식이나 선진적 문명과 역사에는 무지한 채

값비싼 서양 명품 구매나 서양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저 화려한 서양의 이미지 , 외형에만 집중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결코 좋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