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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체제와 러시아 혁명>

[민족자결주의]

[베르사유 체제]

[국제 연맹]

[1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한 세계]

[러시아 혁명]

[피의 일요일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

[러시아 내전]

[신경제 정책과 소련 탄생]

[스탈린의 5개년 계획]

<라봉봉>

 

[민족자결주의]

1차대전이 동맹국(독일과 아이들) 의 패배로 끝나자

승전국인 연합국들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를 열어

독일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했고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14개조 원칙을 기본으로

베르사유 조약은 체결됩니다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미국 윌슨 대통령

 

14개조 원칙 중

'민족 자결의 원칙(민족자결주의)' 은

고통받던 전세계 식민지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세지처럼 들리게 되는데

민족자결주의는

 

'각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그 귀속과 정치 조직 ,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집단적 권리'

 

를 뜻하는데

이에 많은 식민지 민중들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으로 인해

독립을 꿈꾸게 됬고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일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독립운동을 벌여

세계 사회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계 식민지인들에게 큰 희망을 준 '3.1운동'

 

그러나 민족자결주의는 패전한 동맹국의 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독립시킨 식민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였고

동맹국보다 더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연합국(대표적으로 영국) 은

알짜배기 꿀식민지를 독립시킬 생각이 없었기에

많은 식민지인들이 순진하게 민족자결주의에 낚여버립니다

 

[베르사유 체제]

일단 베르사유 조약으로

가장 강력한 동맹세력이었던 독일은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됬는데

강성하게 일어나 세계에 충격을 준 독일을

굴복시키려 한 연합국은 독일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높은 배상금을 요구해 독일인들은 경제혼란 , 위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 서명의 순간(1919년)

 

독일인들 입장에서는 전쟁 일으키고 패전 책임상

딱히 할말은 없었음에도

그럼에도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고

당시 독일은 패전했음에도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진보하던 과학전성시대라

엄청나게 강했던 시기인데

 

공기에서 질소를 추출해내 질소비료를 만들어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한 독일 천재과학자 '하버(왼쪽)' 와 설명이 필요없이 유명한 독일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

 

마치 연합국은 독일이라는

거대한 사자(맹수)를 가벼운 목줄로 묶어두고

밥을 굶기며 학대한 격이었고

결국 연합국은 독일 통제에 실패하고

한번 더 독일의 습격(2차 세계대전)을 받게 됩니다..

 

일단 베르사유 조약 체결로 인해

독일 조지기 , 연합국 위주의 전후 세계가 재편되게 되어

'베르사유 체제' 가 시작됬습니다

 

베르사유 체제

 

[국제 연맹]

일단 당시 세계사회는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전쟁을 겪어

느낀 바가 커서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20년 '국제 연맹' 을 창설하게 되지만

미국의 불참 , 독일과 소련 배제 , 무력 제재 수단 결여 등으로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고

 

미국의 국제연맹 불참을 풍자하는 만평 , 미국은 일단 아메리카 대륙 이외에는 간섭하지 말자는 주의가 강해서 유럽과 구분하며 따로 놀려했던 쿨가이였습니다

 

대신 이후 창설되는 국제 연합 , UN 의 모태가 되었고

나름 세계사회 구성원들이 모여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의의가 있어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기쁨 ,

전쟁특수로 돈을 번 나라들(미국과 일본)은 풍요와 낭만주의에 젖어들었고

민주주의와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자들은 무기개발이 아닌

다시 본업에 충실해 과학연구에 매진해

뛰어난 업적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927년 과학자 끝판왕들이 모인 노벨 과학수상자 회원들의 정모장소였던 '솔베이 회의' , 퀴리 누나 아인슈타인 형 등 과학 책에 나오는 천재들이 많습니다 , 아인슈타인 형이 센터에 선 이유는 당시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계승자로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큰 존경을 받는 위대한 과학자였고 뉴턴의 근대 과학시대에서 '현대 과학시대' 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한 세계]

베르사유 체제 시기 전후복구 노력 및

다시 경제가 번영하며 민주주의가 발달해

독일 , 오스만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세계의 제국들이 무너졌고

자국에 남성들이 사라지자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있는 동안

농사와 군수공장(폭탄 제조)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일했기에

 

1918년 군수공장에서 비행기 엔진 부품을 만드는 영국 여성들 , 가사노동만 하던 여성들도 사회 , 공장노동을 시작하자 여성들은 풍성한 긴 치마에서 탈피하고 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게 됩니다

 

여성의 참정권이 확대되어

고리타분한 전통적 여성관에 맞선

'신여성' 들이 등장하고

점차 남녀평등사회가 시작됩니다

 

(이때 여자들의 분노는 ㄹㅇ 인정하는데

21세기들어서는 여성우월사회로 변화한듯 합니다)

 

모자 장식을 제거하고 코르셋을 없애고 치마길이를 줄이며 여성을 옥죄던 불편한 옷들을 개량한 패션 혁명가 '가브리엘 샤넬(코코 샤넬)' , 1920년대부터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시작하자 '샤넬룩' 은 엄청나게 히트칩니다

 

1920년 때 단발머리를 한 ㄹㅇ 인간 샤넬 누나 (눈빛 지림)

 

노동자 인권도 향상됬고

사람들은 잠시동안 1차대전의 악몽을 잊고

평화와 행복에 젖게 되고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비인간성에 느낀바가 컸던 열강들은

식민지에 대한 유화적인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러시아 혁명]

일단 러시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러시아 제국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프랑스 팀으로 연합국의 편에 섰지만

1917년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1차 대전에서 빠지게 되었고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무너지고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소련)' 이 탄생했고

노동자 , 농민 ,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차르(황제) 를 무너트린 이 사건은

전 세계의 충격을 주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지도자이자 소련의 국부 '레닌'

 

러시아는 19세기 중엽부터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했고

거대한 영토 , 자원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서유럽에 삐까뜰 정도의 수준까지 등장하고

도시 노동자수도 급격히 불어납니다

 

그러나 러시아 노동자들의 대우는 형편없어

비인간적 노예적 대우가 계속되었고

 

러시아에 들어온 공산주의는

자본가 타도 , 공공재산 분배 등을 외쳤기에

이러한 비참한 노동자들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피의 일요일]

1905년 굶주린 노동자들은 공산주의 이념과 결합해

강력한 반정부세력으로 진화했는데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 평소같으면 성당에 갈 시간이었지만

굶주림에 지친 노동자들은 러시아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급료를 올려달라 청원 할 목적으로

차르의 만수무강과 로마노프 왕조(러시아 제국) 의 번영을 기원하는 성가를 부르며

황제의 겨울 궁전으로 향합니다

 

청원서를 가지고 행진하는 대열은 계속 불어나

30만을 넘어섰고

그들은 겨울궁전 앞 광장에 집결했는데

하필 당시 황제는 휴가중이라 황궁에 없었고

그들을 막아선 황제의 군대는 노동자 대열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해

1천명의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이에 이 날은

 

'피의 일요일'

 

이라 불렸고

 

피의 일요일 사건

 

러시아 민중들은 황제의 배신에 크게 분노하고

점차 러시아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

이후 혁명가 레닌은 러시아에서 총파업을 주장하다

진압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했고

그는 저술활동에 힘쓰며 동료들을 조금씩 모으고 있었습니다

 

소련 1대 지도자 '레닌'

 

이러한 시대속에

1914년 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러시아 제국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서둘러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러시아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어려운 내수상황속에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니

러시아 내부에서는 식량가격과 물가가 폭등해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식료품 가게를 습격하는 일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계속됩니다

 

결국

1917년 3월 러시아에서는 '3월 혁명' 이 터지는데

분노한 러시아민중들은 황궁으로 몰려갔고

진압군을 싣고 올 기차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발이 묶였고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혁명세력의 편에 서서 결국

니콜라이 2세는 쫓겨나고

부르주아들이 정권을 잡고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여기까진 서유럽 시민혁명과 비슷한 패턴)

 

러시아 혁명을 옹호하는 신문 만평 , '세계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레닌 동지'

 

3월혁명 직후 레닌은

러시아로 귀국해 자신이 이끄는 공산주의 혁명세력 '볼셰비키' 와 함께

대중을 선동하고 7월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임시정부는 레닌을 체포하라 명령해

이에 레닌은 다시 망명을 떠납니다

 

일단 레닌이 망명한 동안

러시아는 큰 혼란에 빠져들었고

이러한 와중에

1917년 11월 레닌은 정부가 힘을 상실해 있음을 느끼고

러시아로 돌아와 다시금 즉각적인 혁명의 개시를 촉구했고

볼셰비키는 '빵 , 평화 , 토지' 라는 간단한 표어를 내걸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임시정부를 전복시키는데 성공하는데

이로 인해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어

이후 공산주의 국가 '소련' 이 등장하고

 

이것이 바로

'11월 혁명' 입니다

 

<레닌>소비에트 권력이란 무엇인가 ?

국민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 새로운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

점점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 권력의 본질은

부자들과 자본가들이 독점하던 국가 경영이

이제는 처음으로 억압받고 박해당하던 계급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연설하는 레닌

 

1917년 러시아 혁명은

2월혁명과 10월 혁명으로 이야기되는데

당시 러시아 달력이 오늘날과 달라

앙력기준으로

3월 혁명과 11월 혁명이라 불리고도 있고

 

[러시아 내전]

레닌과 소비에트 정부앞에는

혁명보다 더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귀족 , 자본가들이 반혁명군을 만들어 격렬한 저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러시아 전역에서 반볼셰비키 세력들이 있어

러시아 내전이 터져

볼셰비키 적군 VS 반볼셰비키 백군이 싸우나

백군은 토지소유권을 원상회복시키려 하다 농민의 반발을 받아

결국 1921년 러시아 내전은 적군의 승리로 끝나고

볼셰비키 독재체제가 시작됩니다

 

하여튼 러시아 공산혁명이 시작되자

자본주의 , 자유주의를 택하고 있었던

서구 열강의 지배에 신음하던 식민지 민중등은

공산주의를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했고

반제국주의 , 민족주의와 맞물려 전 세계에 공산주의가 퍼져나갔고

소련은 여러 방법으로 공산주의운동을 지원합니다

 

전세계로 퍼진 러시아 혁명 , 공산주의 이념들

 

[신경제 정책과 소련 탄생]

신생 노동자 국가 소련은

내전에서는 승리했지만 경제가 크게 침체됬고

중공업의 꽃인 철강생산량이 내전 이전에 비해 1/5이하로 격감할 정도로

큰 경제위기를 맞자

레닌은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1921년 신경제정책(NEP) 를 도입하는데

시장경제의 부분적 재도입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경제정책 홍보 포스터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노동자 독재)' 체제를 확립해

자본주의를 타도하며 사회주의 ,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했고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정부는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해

공산주의 대장국가 '소련' 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1917년 소비에트 정부 - 1922년 소비에트 연방[소련])

 

소련 국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소련 영토

 

[스탈린의 5개년 계획]

하여튼 레닌이 혼란속에 다시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시작하자

소련 경제는 다시 1차 세계대전 이전수준으로 회복했고

레닌은 새롭게 일어나는 스탈린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사망했지만

스탈린은 레닌의 유언을 숨기고 정적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레닌을 신격화시키며 새로운 소련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숙청 독재자로 유명한 '스탈린'

 

스탈린은 1928년부터

농업과 공업의 사회주의화 , 집단화를 추구하는

공산주의식 경제계획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을 수립해

정부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산업화를 밀어붙였고

특히 전쟁 , 군수와 밀접한 중화학 공업분야를 성장시키는데

거대한 영토 , 자원을 가진 나라답게

스케일이나 범위 , 강도가 독일이나 일본을 훨씬 능가할 수준이었고

스탈린은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과학자들 대우도 높여줍니다

 

1930년대 소련 트랙터 공장

 

이에 1930년대 소련은 매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대공황으로 전세계 경제가 하락할때 홀로 경제가 역주행하듯이

성장하던 소련이었고

프랑스 , 영국 , 독일을 제치고

소련은 1938년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어

사람들은 공산주의 세계에 대한 동경 ,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갈아 넣다 싶이한 인민들의 희생이 있었고

공업에만 치중하고 농업에는 소홀해

망할때까지 소련은 만성적 식량난이 시작됬고

또 스탈린 사후부터는 소련은 새로운 혁신을 요구받고

비효율적 집단 노동 , 복지제도는 점차 소련에 부담으로 작용했고

점차 소련은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라봉봉>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 세계사회에는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왔는데

근데 독일인들은 이 시기부터 지옥의 시간이 펼쳐지게 되어

불만들이 쌓여가고 있었고

하여튼 다시금 서양은 여러 발전 , 낭만이 있었던 시기가 전개됩니다

 

러시아 혁명의 경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알아야하는데

일반 서유럽 사회보다 땅도 , 영토도 , 인구도 미친듯이 많았던 러시아였기에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성장 , 대중주의가 러시아에서 먹혀들어가서

공산주의가 되었다고 생각되고

특히 레닌의 경우 과격할때는 과격했지만

포용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고

항상 근엄하고 냉철했던 스탈린에 비해서

이러한 모습들로 소련 등 공산권에서 존경받게 된 인물 , 혁명가라 생각됩니다

 

단지 점차 공산주의가 배척받은 이유가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폭력성 , 과격함에 관대한 모습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고

일단 당시 자유주의 진영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도 폭력성이 많아

공산주의는 식민지배에 신음하던 식민지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저는 공산주의 추종자나 빨갱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국보수 그런부류도 아닌거 같고

소속 정당을 떠나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분야등에서는

극좌적 , 극우적 측면도 있다고도 생각되기도 하고

(단지 폭력이나 잘못된 의사표출등이 문제일 뿐 ..)

그냥 여러 분야나 사상 ,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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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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