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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과 2차 세계대전>

[대공황]

[세계 각국의 대공황 대응]

[파시즘]

[히틀러와 나치스의 등장]

[맥주홀 폭동]

[수권법 통과 , 히틀러의 일당독재 시작]

[화가 지망생 히틀러]

[극적으로 살아난 독일 경제]

[베를린 올림픽]

[야욕을 보이는 나치독일]

[구걸해서 얻은 평화 '뮌헨 협정']

[독일의 폴란드 침공 ,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 함락]

[삼국동맹과 추축국]

[독소전쟁]

[미국의 참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몰락 , 독일의 항복]

[연합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

<라봉봉>

 

[대공황]

이전 이야기에서 쓴

1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베르사유 체제는

세계 대공황이 오고 나치스(나치 정당 , 파시즘 정당)가 일어나며 붕괴했는데

 

먼저 세계 대공황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유럽에 여러 군수물자 , 물자들을 판매하며

대호황을 맞았고 매일같이 주식은 고공행진했습니다

 

금융시장에 돈이 급속도록 풀리며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려

엄청난 버블(거품) 이 꼈고

매일같이 주식을 사면 오르고 사면 오르고 했는데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갑자기 20% 이상이 하락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검은 목요일(혹은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 이라 합니다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 이후 월가에 모인 군중들

 

이로 인해

투기가들은 자살하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은 주식의 돈을 빼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망해버리자 기업 , 농장 등도 도산했고

미국 경제는 급격한 하락세를 타게 되고

미국을 시작으로 193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대규모 세계 경제위기

'대공황' 이 시작됩니다

 

대공황 당시 실직자가 되어 일을 구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미국인들

 

[세계 각국의 대공황 대응]

1차세계대전 이후 호황과 낭만을 누리던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세계 경제는 침체기가 시작됬고

각각의 나라들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게 되는데

 

먼저 미국은 원래 국가가 경제에 간섭을 하지 않는

고전경제학(보이지 않는 손)에서

수정자본주의(보이는 손)로 전환해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살리려 했고

대표적 정부개입이 '뉴딜 정책' 인데

미국 정부는 후버댐 건설같은 대규모 인력동원 사업을 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반시설도 깔고 일석이조 효과를 누리려 했고

거대한 국토와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미국이었기에

나름 잘 버텨가게 됩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초기 제국주의 국가로서

광할한 식민지 , 해외영토를 바탕으로 대공황에서 나오려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들을 본국 경제와 하나로 묶는

파운드 블록(영국) , 프랑 블록(프랑스) 이라는

블록경제를 형성해 대공황에 대응했습니다

 

블록경제 형성

 

일단 소련은 서구권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걸은 것도 있고

자국의 풍부한 자원과 거대한 영토 , 공산주의 실험으로 대공황 바람이 불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이 휘청이는 틈에

사회주의식 경제 , 중화학 공업 육성으로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1932년 완공된 소련 경제의 상징 '드네프르 수력 발전소'

 

[파시즘]

한편 이런 1군 국가들과 달리

제국주의 후발주자였던 2군국가들은

미국같은 거대한 영토도 , 영·프 같은 거대한 식민지도 없었고

독일 , 이탈리아 , 일본 같은 제국주의 후발주자 국가들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군대를 더 늘리고 주변국가를 침략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전체주의(=파시즘 , 국가나 집단의 전체를 개인보다도 우위에 두고 ,

개인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 국가가 됩니다

 

SS대원들을 사열하는 히틀러 , 파시즘의 모습

 

이탈리아는 무솔리니라는 독재자가 등장해

파시즘(국수주의 , 전체주의) 을 내세우며 일당독재 체제를 강화해나갔고

 

나치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왼쪽)

 

독일은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등장해

히틀러의 나치당의 독재가 시작되 나치독일 시대가 시작되어

나치즘(파시즘의 한 분파) 을 내세우며 역시 일당독재 체제로 가게 됩니다

 

일본은 천황 히로히토와 일본제국군인 ,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국가가 점차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고

적극적으로 아시아 세계를 침략해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려 했습니다

 

이 세나라는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삼국동맹을 맺고

추축국이 되어 연합국(미 , 영 , 프 , 소) 세력에 대항하려 했고

 

1군 연합국 국가들에 비해

2군 동맹국 국가들은 그저 독재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해

더 최악의 상황으로 나돌았는데

 

일단 지금은 유럽사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히틀러와 나치독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틀러와 나치스의 등장]

일본제국 이야기는 이전에 썼고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독재가 시작됬지만

원래부터 유럽의 약한 나라였기에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고

가장 위험한 나라는 독일이었고

독일은 2군 출신이지만 이전부터 이어진

국가적인 과학자 육성정책을 통해

나라가 독재+군국주의인것과 별개로 수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출몰하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에서도 이런 배경으로

홀로 선방하며

연합국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나라가 독일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국에게 지나친 응징을 당해

수많은 이권을 바치며 물가가 살인적으로 폭등했고

 

1923년 가치가 무의미해진 지폐다발을 가지고 노는 독일 어린이들

 

내부 불안속에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물은 나치당(나치스)을 만들고

광기에 사로잡힌 선동 능력으로

분노와 절망에 빠져있던 독일 민중들을 선동하며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세력을 키우게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

 

광기의 선동으로 유명한 히틀러

 

[맥주홀 폭동]

이후 히틀러는 1923년 맥주집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뮌헨 폭동 , 맥주홀 폭동)

잡혀서 반란죄로 5년형을 받았지만

당시 재판관들은

무능한 의회통치에 대한 국민적 방어권 행사라 주장하는

히틀러의 장광한 연설을 들으며

히틀러를 애국자라 생각하고 법정에서 그를 대놓고 봐줬는데

이는 당시 독일이 살인적 인플레이션 및 극좌와 극우세력이 날뛰던

혼란의 시기였기에 정부 인사들도 새로운 인물의 출현을 희망하고

새로운 변화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인해 출신도 미약하고 듣보잡 인물이었던 히틀러는

단숨에 정계의 스타가 되었고 감옥에서도

VIP 죄수로 선생 대우를 받으며 지내며

감옥안에서 '나의 투쟁' 이라는 자서전을 썼고

몇달만에 가석방됩니다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 , 많은 나라들에 금서로 지정된 책이고 학술 , 비판적 목적 혹은 천하의 유명한 악인이 쓴 책이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 등으로 읽히는 책입니다

 

[수권법 통과 , 히틀러의 일당독재 시작]

이후 독일에도 대공황이 오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건국을 주도한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세력들은

위기에 몰리며 독일 국민들은 점차 극좌나 극우세력에 가까히 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히틀러의 나치당(극우) 는 극좌파인 공산당에 대항하는

대표 정당으로 자리매김해

점치 득표율이 높아졌고

히틀러는 범우파계열을 선동 , 포섭해

1933년 마음대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수권법' 을 통과시켜

권력을 장악하고 이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독재자 , 독재국가가 독일에서 탄생하는데

히틀러와 나치독일(제 3제국) 으로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악의 탄생' 이라 비유합니다

 

히틀러가 독재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드라마 '히틀러: 악의 탄생'

 

당시 독일 우파세력은 히틀러의 웅변력과 선동력 , 공격력등을 보고

잘 포섭해 길들이면 좋은 간판 스타 정치인으로

우파세력의 얼굴마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일단 극우나 우나 같은 우는 우니깐 가재는 게편이겠지 하는 생각)

 

히틀러를 만만히 여겼는데

히틀러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고

결국 나치스는 정권을 잡고

매우 빠르게 행동하며

모든 야당 , 좌파들을 없애버렸고

반대세력은 죽거나 도망치고

독일은 재무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화가 지망생 히틀러]

오늘날까지 대중매체 등에서

히틀러의 만행 , 악행이 아주 많이 이야기 됬고

히틀러는 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됬는데

그런 히틀러가 어떻게 정권을 잡고 선동했는지

그의 인생에 대해 읽어본적이 있었는데

일단 그가 밑바닥에서 독일 독재자가 된 자였던 만큼

착한 인물도 아니었지만

결코 무능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화가의 꿈을 가진 평범한 화가지망생이었지만

미술학교 시험에 연이어 낙방한 뒤 점차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연이은 낙방에 유대인이었던 미술학교 교장에 항의하다가

결국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고

삶의 희망을 잃은 히틀러는

점차 극단적인 사상들에 빠져드는데

이는 히틀러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나치당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 역시

비슷하게 나타나는 패턴이었습니다

 

히틀러가 그린 그림 , '악마가 그린 그림' 이라 이야기되고 있고 미술적 재능은 있었던 인물이라 유독 미적 집착이 강해 나치독일이 극단적으로 화려한 면이 강합니다 , 히틀러는 청년들이 군대를 동경하라고 독일 군복도 실용성을 포기하고 멋지게 만들라 했다하고 이에 오늘날에도 나치 제복 , 나치 시대 풍경에 홀리는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단 비참했던 젊은시절을 보냈다는 이미지와 다르게

히틀러는 미술학도 꿈이 좌절된 이후에도

물려받은 풍족한 유산 , 부업으로 하던

그림 엽서 판매 수익으로 꽤 잘살았다 하고

단지 경제관념 없던 히틀러는 씀씀이가 커서

친척이나 가족에게 손벌리기가 일쑤였다 합니다

 

[극적으로 살아난 독일 경제]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미국 경제를 살린 인물이자

미국 위인인 자동차왕 '헨리 포드' 를 존경해

정권을 잡고난 뒤에

헨리 포드가 미국에 했던 일들을 독일에 흉내내는 방법으로

독일 경제를 진짜 살리긴 했는데

헨리포드가 유대인 싫어하는 것 역시 따라해서

단순히 돈놀이 하는 유대인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했던 , 비난정도에 그쳤던

포드와 달리 아예 이후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독일에 아우토반 고속도로 건설을 해서

미국의 뉴딜정책과 비슷한 공공사업을 통한 실업률을 잡겠다는 논리였고

또 포르쉐를 만든 포르쉐박사를 데려와

독일인들을 위한 국민차를 만들게 했고

이에 가성비 좋은 차인 '폭스바겐' 자동차를 만듭니다

(오늘날 대중적 차로 유명한

폭스바겐 회사와 폭스바겐 비틀은 히틀러의 구상작품이었습니다 ;;)

 

포르쉐 박사의 브리핑을 듣는 히틀러

 

또 히틀러는 경제에 무능한터라

경제를 경제 전문가들에게 다 맡기고

그들 말대로만 했는데 다행히

나치정권에서 새로뽑은 경제 장관 , 인사들이 매우 유능해서

독일의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대공황의 위기는 극복되고

독일 경제가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코카콜라' 회사의 흑역사 , 당시 나치독일은 경제가 부흥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의 코카콜라 소비국이 됬고 원래는 기업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술을 제공해주다가 점차 산업이 고도화되고 알콜로 인한 사고가 나자 탄산음료 코카콜라를 제공해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합니다

 

[베를린 올림픽]

의외로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그를 불안불안하게 보는 세계사회와 독일인들의 의심속에

독일 경제를 살린  영웅 , 애국자 이미지가 강했고 (ㄹㅇ임)

그 정점은 1936년 나치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이 절정이었는데

이 대회는 철저히 히틀러가 나치정권 홍보를 위해 기획한 올림픽이었고

과학대국 독일답게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 생중계가 실시되고

이후에도 티비나 라디오는 나치정권의 대중선동도구로 이용됩니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 선수단에게 나치식 경례(원래는 로마식 경례였음) 를 하는 관중들

 

당시까지만 해도 관중들은 멋모르고 나치당기 아래 나치식 경례를 하며

독일이 다시 일어났구나 쯤으로 여기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고

독일인들은 열광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하게 됩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히틀러와 나치독일은 전성기를 끝내게 됩니다

 

나치 독일 국기 '하켄크로이츠 , 일본 욱일기와 더불어 전범기이며 특히나 유럽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거나 이 문양을 보이면 처벌됩니다

 

히틀러에 열광한 독일 국민들

 

[구걸해서 얻은 평화 '뮌헨 협정']

계속해서 도박같은 모험에 성공하며

성공에 도취된 히틀러는 차츰 여력이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일들이 하나 둘 쌓이고 있었고

그러한 상황을 유지하려 계속해서 재무장 , 군비확장이라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합니다

 

당시 나치당 내부에서도 히틀러의 막가라식 폭주를 멈추면

정권이 뒤집힌다는 위기의식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1938년 3월 우리(게르만족)는 같은 민족이라는 논리로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투표로 오스트리아를 합병했고

게르만 민족주의가 강하게 대두해

폴란드 , 리투아니아 , 체코슬로바키아 , 이탈리아 , 스위스 등에 나눠진 게르만인들은

강력한 하나된 독일이라는 히틀러의 구호에 열광하며

독일로의 합류를 강력히 희망했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히틀러는 이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거주자 다수지역인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하자

군사적 긴장이 생겨나게 됬고

이러한 문제들은

전 유럽의 주목을 받는 문제로 커지게 됩니다

 

히틀러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긴

영국 , 프랑스 등은 당시까지도 대공황의 타격을 전부 회복하지 못했는데

나치독일은 체계적으로 자리잡은 중공업과 군수산업을 접목시켜

빠른 속도로 경제회복을 이뤄냈기에

영-프는 독일 성장세에 공포감을 느꼈는데

이미 1차세계대전으로 큰 피해를 봐서

더이상 전쟁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를 달래기 위해

뮌헨 회담을 열어 히틀러의 요구대로

독일이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도록 승인합니다

 

독일 히틀러와 영국 체임벌린 수상이 만나서 회담을 했는데

히틀러는 위장평화쇼를 하며 체임벌린 수상 앞에서 평화를 외쳤고

체임벌린 내각이 취한 정책은 일단 미친개에게 요구사항을 들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체임벌린 총리와 나치독일 히틀러

 

멘헨 회담에서 히틀러의 요구 대부분을 들어주며

일단의 평화 약속받고 귀국한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서명한 평화선언문을 들어보이며

 

'여기 우리시대의 평화가 있다'

 

고 외쳤고

그때 정치가 처칠은 히틀러의 계략을 눈치채고

 

'총리의 협상 결과는 전면적 절대적 패배입니다'

 

라고 홀로 부르짖었지만 다수 의원들의 심한 야유를 받아야 했습니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 , 2차 세계대전 발발]

오스트리아에 이어 체코의 주요 영토까지 따먹은 히틀러는

원래 가진것 없이 허세로 도박판에서 돈을 따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판으로 넘어가듯이

끝없는 야욕을 보였고

1939년 체코를 병합하고 슬로바키아를 보호국으로 만들자

설마하던 영국과 프랑스도 결국 독일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군비를 비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코 다음은 폴란드였고

히틀러는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비밀리에 동유럽 전체 분할을 약속합니다

 

당시 인도의 평화주의자 ,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는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진정한 친구라 부르며

당신은 인류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인류를 위해 전쟁을 하지 마라 충고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러나 결국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이 시작됩니다

 

독일-폴란드 국경에서 차단기를 들고있는 독일군

 

2차 세계대전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할때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하지 않겠다 믿고있었는데

폴란드와 상호 방위조약을 맺은 영국 , 프랑스가 연쇄적으로

나치독일에 선전포고하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됬고

 

1차세계대전의 악몽(프랑스-참호전 , 영국-무제한 잠수한 작전) 속에

반전여론도 강하고

전쟁이 일어나기를 가장 싫어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폴란드의 원군요청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이다

초반에 크게 독일에 털리게 됩니다

 

[프랑스 함락]

그리고 나치독일은 프랑스를 공격하는데

이전 프랑스는 1차세계대전 , 참호전의 악몽때문에

프랑스-독일 국경에

독일에 대한 '마지노선' 이라는 거대한 난공불락의 대형요새를 건설해놨는데

반대로 독일은 참호전의 악몽을 통해

새로운 독-프전쟁 구상안 , 프랑스 공략법을 연구해냈고

결국 마지노선을 우회해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공격해버려

프랑스는 제대로된 반격도 해보지 못한 채 독일에 항복을 하고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은 영국으로 진격을 시작합니다

 

독일의 프랑스 함락 , 에펠탑 앞의 히틀러

 

[삼국동맹과 추축국]

독일이 2차세계대전 초기 승승장구하자

이에 독일에 자극받은 일본도 참전해

프랑스령 인도네시아를 침공하고

동시에

독일 , 일본 , 이탈리아 삼국은

'삼국동맹조약(추축국 세력)'을 체결합니다

 

일제에서 제작한 삼국동맹조약 선전엽서

 

[독소전쟁]

그러나 독일은 영국상륙작전에 실패했고

히틀러는 전쟁 주도권을 잡은 1941년전까지만 해도

전 유럽을 점령해나가던 상황이었는데

영국과의 전쟁이 있었던 와중에

갑자기 강대국인 소련을 공격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고

1941년에는 독일 군부의 우려에도 결국

소련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독일군은 영국과 소련을 상대로 군대를 나누는

'양면전쟁' 을 하게 되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지도

 

당시 히틀러가 소련을 점령하기로 작정한 이유는

그가 꿈꿔온 거대한 독일 게르만 제국의 망상에는

소련지역에서 나오는 풍족한 곡창과 석유자원이 절대적 필요조건이었고

또 소련이라는 독일 바로 옆 가장 무서운 상대를 제거하지 않으면

프랑스 점령만으로는 언제든 반격을 당할 지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독일군 참모들은 1차세계대전의 악몽때문에 히틀러에게

양면전쟁은 피해야 한다 했지만

당시 히틀러는 암살위협 , 불면증 등에 몸과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고

결국 소련을 침공합니다..

 

나치독일 몰락의 시작 '소련 침공'

 

결국 1941년 6월 독일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소련을 침공해 모스크바 앞까지 진군했지만

역시 중화학 공업 , 군사력으로 무장한 소련군은

처절하게 방어해냈고

 

또 처음엔 독일군에 점령된 소련 지역들도

스탈린 독재로 인해 애국심없는 군인 , 민간인이 많았기에

독일군의 점령을 환형하거나 크게 저항하지 않고 투항하는 병력도 많았는데

갈 길이 바쁜 독일군은 소련군 포로들을 대부분 총살시켰고

인종차별주의가 강한 독일군은 점령지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자행하자

소련군의 거센항전으로 이어집니다

 

(독재자[스탈린] 피하려했더니 또 독재자[히틀러]가 나타난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었고

히틀러가 타민족에게 관대한 면이 있었으면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참전]

한편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며

'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 이 터져 전쟁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게 되버려

연합국(미국 , 영국 , 소련 , 중국) VS 추축국(독일 , 일본 , 이탈리아)

의 대결이 시작됬고

 

압도적 자원의 미국은 연합군에게 무기대여 , 물자 대량지원으로

연합국의 승리가 확실시 됩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군 물량

 

무제한 급으로 공급되며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미국군의 상징 식량이었던 '스팸' 을 든 병사들

 

[스탈린그라드 전투]

설상가상으로 유럽 동부전선에서

1943년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에서 독일군을 제압하는데

이전 1941년 독일군은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하고

소련군과 대치하게 됬는데

이후 독일군은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도시이자

유전지대의 산업도시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려 했는데

 

나치독일 히틀러와 소련 스탈린이라는 두 독재자의 야욕 VS 오기의 싸움으로

계속해서 양군은 치열한 격전을 벌였고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상식적인 일반적인 모습의 전쟁이 아닌

광기로 점철된 역사상 최악의 전투중 하나였습니다

 

(근데 죽는것은 병사들이고

지도자는 항상 책상에서 병사들에게 명령만 내린다는 것..)

 

스탈린그라드 전투 풍자화

 

패전과 후퇴를 거듭하던 소련군은 점차 독일군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게 됬고

독일군은 전차 , 기갑부대가 강한 것을 알고

일부로 평원이 아닌 좁은 골목이 많은 도심 , 스탈린그라드로 독일군을 끌여들였고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하자

계속해서 튀어나오던 소련군에 독일군은 사상자가 계속 늘어났고

보병 소모전으로 전투가 계속됬는데

소련군은 '유럽의 짱깨' , '얼음짱깨' 라는 별명이 있듯이 ...

엄청난 인해전술로 죽어도 죽어도 계속해서 튀어나와 독일군을 괴롭혔고

 

당시 소련 상부는 소련군에게 독일군에게 맞서거나 공격해 죽기만을 강요했기에

탈주병들은 바로 사살시켰고

독일군 역시 비좁은 골목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엉망진창의 전투가 벌어지자

공포감을 느꼈으며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지옥도가 펼쳐지며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시내 건물 하나하나 뒤지며 소련군들을 잡느라

'생쥐 전쟁' 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양쪽다 엄청난 피해를 입어 지쳐있던 상황에서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시내 90%를 점령하고

전쟁에 승리하나 싶었는데

독일군이 병력증강보다는 시가전에 정신이 팔린 사이

물량의 소련군은 다시 병력을 모아 대규모 반격 , 포위작전을 시행했고

결국 소련군은 거대한 포위망으로 스탈린그라드를 에워싸고

포위된 독일군은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속에서 고립되 굶주리며

영양실조와 동상에 걸리다가 소련군에 항복하게 됩니다

 

항복후 포로로 끌려가는 독일군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독일은 76만명의 사상자를 ,

소련은 110만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독일군이 포위-섬멸 당한 최초의 전투로

일방적으로 유리했던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고

이 전투 이후 자신감을 얻은 소련군은 독일군에 맞서 적극적 공세를 피게 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4년 6월 6일에는

연합군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나치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총 15만 6000명의 대병력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시행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연합군은 프랑스 해안에 수송할 발판을 만들고

마련된 교두보를 통해서

프랑스 해방 , 독일 본토 진격이 가능해졌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및 2차세계대전 유럽전선 미군 이야기를 다룬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 Saving Private Ryan'

 

[몰락 , 독일의 항복]

서쪽에서는 연합군이 ,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밀고들어오자

나치 독일은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히틀러는 전쟁 말기 자신의 몰락을 알고

정신병 기질이 더 강해지게 됬고

결국 독일 수도 베를린이 초토화되자

히틀러는 총통벙커에서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열고

1945년 4월 30일

권총자살했고 에바 브라운은 독약을 마셔 동반 자살하고

그들의 시체는 휘발유로 화장처리됩니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영화 다운폴(한국명 '몰락' 으로 유명한 영화입니다)

 

[연합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

결국 1945년 5월 9일 나치독일은 연합국이 항복했고

일본제국은 끝까지 미국에 개기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을 2번 맞고 더이상 항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1945년 8월 15일 항복하게 됬고

 

존재감 없던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1945년 4월 27일 연합군이 밀라노를 포위하자

체포됬고 다음날 즉각 총살로 처형당해

광장 근처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졌고

그의 시체에는 원한품은 시민들의 침과 욕설세례가 이어집니다

 

거꾸로 매달린 무솔리니 시체(왼쪽에서 두번째)

 

(이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무솔리니꼴날까봐 두려워

자신의 시체를 태워달라했음)

 

하여튼 세계사를 혼란과 충격에 빠트린

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끝나게 됬고

1차 세계대전과 다르게 민간인 학살 , 대량학살이 이뤄지고

온갖 인종차별 , 혐오가 많아 5~7000만명이 죽거나 다칩니다

인류사 최악의 전쟁이었고

 

핵무기가 사용되며

더이상 재래식 전쟁이 무의미한 시대가 도래해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교훈을 남긴 전쟁이기도 합니다

 

2차세계대전 피해와 영향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때 하겠고

하여튼 끔찍하고 잔인한 세계사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라봉봉>프로이센 시대대부터 이어진 군국주의 독일식 교육은

히틀러와 나치독일이라는 괴물을 낳게 되었고

이에 패전후 독일인들은 전쟁에 대해 극도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나치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교육을 중시하고 군국주의 교육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과 정반대로 모범을 보인 모습이었고

 

하여튼 당시 독일은 미쳐도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었기에

온갖 전쟁범죄 , 만행을 저지르는데

이러한 모습을 모르고 청년들이

네오나치즘이니 뭐니 하며 오늘날 청년들이 히틀러 찬양을 한다거나

나치 시대를 동경하는 것을 보면

딱 그시대 살았으면 바로 총알받이되고 학살될법할 사이즈가 나오는데 ..

 

(음침하고 음울한 자들이 나치즘 찬양하는거 같고

진짜 잘나가는 자들은 나치 찬양 하지도 않을 뿐더러

만약 그시대에 살았어도 바로 망명갑니다)

 

참 역사에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생각됩니다

 

요즘들어서 유럽에 난민문제나 여러 갈등문제등으로

다시금 극우당이 득세하고 나치즘에 대한 호감을 갖는 독일인들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역시 역사라는게 한두번 교육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주기적으로 교육을 해서 전쟁범죄 , 학살 , 당시의 폭력 등을 알리고

교육해서 다시금 반복하지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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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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