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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의 사회·문화>

[세기말 분위기]

[신세대와 X세대]

[오렌지족]

[폭주족]

[서태지와 아이들]

[한국 아이돌]

<라봉봉>

 

[세기말 분위기]

3저호황으로 문화황금기라 불린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도 IMF 전까지는 호황이 계속되며

한국에는 나름 풍족한 사회상과 문화발달이 있었는데

 

90년대는 80년대봐 달리

세기말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1990년대 사람들은

1000년대가 아닌 2000년대 , 새로운 세기가 도래되는 시기를 앞두고 있었고

이에 2000년이 딱 되면 지구가 종말한다거나

무슨 큰 일이 터질거라는 괴담도 퍼지던 시기였고

1980년대 나온 일본만화들도 2000년대 이후 미래부터

로봇시대 , 우주시대가 전개될 것을 상상했기에

 

(일본 간판 로봇만화 우주소년 아톰이 작중 2003년 출생으로

2000년대 미래상을 상상한 공상 과학만화였는데

2020년인 지금도 아톰같은 마음이 따뜻한 로봇같은 그런거는 아직 없습니다)

 

90년대 사람들은 다가오는 새천년에 대한 기대감 , 디스토피아적(절망세계)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고

80년대와는 다른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는 기괴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사실 이런 느낌은 굳이 90년대에서 찾을 것도 없이

20살이 되어 민증이 뚫리는 것을 기대하는

19살 청소년들의 심리와도 비슷한데

사실 19살때 12월 31일에서 하루 지났다고

무슨 대마법진이 형성되거나 능력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것은 아니고

그냥 하루 지난것 뿐이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별거도 아닌데

하여튼 90년대 사람들 심리가 딱 이랬습니다

 

90년대 사람들은 첨단의 미래사회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어떤 가치보다도 미래인 , 미래스러운 것을 중요시 여겼고

이에 우주복 , 외계인 , 괴팍한 헤어스타일 , 디지털 , 여전사 이런게 대유행하고

밀레니엄 , 새천년 , 사이버 이런 말들이 엄청나게 유행했습니다

 

농심의 김치 '사이버' 라면 (오글오글ㅋㅋ)

 

여전사 컨셉의 '핑클빵' , 지금하면 흑역사지만 당시 세계적 국룰(불문율)이기도 했고 당시 사람들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련된 느낌이 나는 거고 90년대의 분위기는 딱히 위화감은 없습니다

 

막상 2000년이 넘어가자 역시 우려와달리 별다른 일은 없었고

막 몇시간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마냥

긴장해있던 1990년대 사람들은 2000년대에 들어

억압되있던 심리에 대한 반발감이 생겨나

90년대 이런 우주복 입고 다녔던 것을 되게 촌스럽고 수치스럽게 여겼고

긴장이 쫙풀려서 사람들은 가볍고 , 말초적인 것에 빠졌으며

당시 보급되던 인터넷은 '엽기' 코드 , 귀여운 초성 말투(원조 급식체)가 유행했고

혼란스러운 세기말을 거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똥오줌을 보고 웃어댔고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세기말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9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부끄러웠고 수치스럽고 귀여웠던 시기로

온갖 흑역사를 남긴 시대인데

이 역시 한국인들의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신세대와 X세대]

1980년대는 호황과 문화황금기였음에도

전두환 , 노태우 군사정권시기라는 양면성도 있어

한국사회에서는 군사적 긴장감 , 권위주의가 강해

정부 관활의 통제적 문화발달이 강했고

90년대 김영삼 정부부터는 이런게 풀려서

대통령을 풍자하는 유머집이 나온다거나

억압적인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문화들이 나타났고

이 청년층 젊은 세대들을 '신세대' 라 불렀습니다

 

(반대로 노인 , 기성세대들을 '쉰세대' 라 부른게

당시 유우머 코드~)

 

90년대 신세대의 길거리 패션 , 기성세대들에게 충격을 준 '배꼽티'

 

90년대 신세대들이 즐기던 염색머리 + 선글라스

 

신세대는 원래 이전 기성세대와 대비되는 말로서

90년대 청년들에게만 쓰이는 말은 아니었지만

특히 90년대 이 신세대라는 말이 유행했고

이에 90년대 청년들은 '신세대' 혹은 'X세대(1970~78년생)' 라 불렸습니다

 

이 X 세대들은

바지도 엄청 통이 넓은 것 힙한 바지들을 입고다니고

여자들이 군화를 신고다닌거나

남들과 다르려고 애를 쓰며 괴상한 패션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으며

이세상 패션이 아니다 ,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

ㄹㅇ이세상 느낌 안나는 세대기도 했습니다

 

X세대 여성들

 

자유로웠던 X세대의 패션

 

이들은 급속도의 경제발전시기 태어난 세대로

구세대들과 달리 청소년 시절 풍요로움을 누린 첫 세대였고

경제는 급격히 성장하나 사회인프라는 갖춰지지 못한 부실한 환경에서 성장합니다

 

이들은 운동권세대인 386세대(1960년대생)보다는 이후에 태어났기에

민주화 운동에 주도적이지는 않았고

대신 민주화운동 끝물세대였다 하고

 

X세대들은 386세대나 기성세대와 달리

탈권위의식을 강하게 보이며

X세대는 기성세대들로부터

 

'싸가지 없는 놈들' , '버릇없는 놈들'

 

이라 불렸습니다

 

X세대들은 고도 경제성장기 성장한 젊은이들이었기에

개성 , 탈권위 의식을 중요시여겼는데

한편으로는 당시 꼰머 어른들 말대로

싸가지가 없고 철부지 성향도 강했고

 

나름 풍요로운 시대상에서 성장한 X세대들이었지만

이들은 20대 , 취업준비 시기 IMF 외환위기를 겪었으며

한국 고도성장이 종료된 IMF 외환위기의 첫 피해세대였습니다

 

[오렌지족]

특히 이 X세대들을 대표하는 말로는

'오렌지족' 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에 바나나가 귀했고

90년대는 오렌지가 귀하고 비싼과일이었는데

오렌지 농장으로 유명한 미국 LA에 유학한 젊은이들이어서

오렌지족으로 불린다거나

이성을 꼬시려 품속에서

스윽 오렌지를 건네며 그것을 받으면

남녀간에 '원 나이트(하룻밤)' 가 합의되는 것에서 유래됬다는 말도 있고

이런 전설들이 있어

오렌지족이라 불렸고

 

오렌지

 

강남구의 부유층 자녀들은 압구정동 등시에 서식하며

기존 세대들과 달리

엄청난 사치와 호기를 부리며 (다 부모님 등골) 사회에 충격을 주었는데

이들은 경제호황시기 미국등으로 유학을 가게 되며

미국에서 공부가 아닌 막장놀이 , 방탕 , 성추행 , 마약 등으로 말썽을 일으켰고

한국에 귀국해서도 외국에서의 추태를 그대로 이어가며

오렌지족들은 90년대 사회문제로 일어납니다

 

X세대 , 오렌지족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개인시간없이 자녀들을 위해 오로지 일만 했던 사람들이라

자식이 편하게 성장하고 더 잘되길 바라며 애지중지하며 키우게 됬는데

이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한국전통을 무시하고 옛날것은 그저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경제호황기를 이용해 철부지 행동을 계속해댔고

오렌지족들은 사회의 악 취급을 받습니다

 

오렌지족 출입을 금지했던 서울랜드 푯말

 

오렌지족들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차안에서

 

'야 ! 타 !'

 

하고 호기롭기 외쳐

야타족이라는 말도 유행했고

 

오렌지족들은 부모의 피땀어린 돈으로

이러한 퇴폐적 향락문화에 집중했기에

언론 , 사회 , 부모들은 이들을 공공의 적이라 여기며

이들을 지탄하고 속이 썩어나갔지만

 

얘네들이 돈은 오지게 많이 써대서

하루에 100만원씩 쓰는 것은 우스웠고 (지금도 100만원이 큰데

이당시 물가로는 엄청 컸습니다)

 

이들의 구매력 , 소비력이 어마무시해서

어딜가든 이들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 합니다

 

이들을 잡기 위해

성업중인 강남 클럽에는 경찰과 국세청 직원들이 일제 단속을 벌여

전원 마약검사를 벌이기도 했고

물론 다들 부유층 자녀들이라 어찌저찌 흐지부지 됩니다

 

오렌지족 단속 뉴스 , 출처 : KBS 뉴스

 

실제로는 오렌지족들은 이런 사치등을 하며 청춘을 보냈음에도

이후에도 부모빽과 IMF 때 부동산으로 더욱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잘나가고 강남상류층으로 지내고 있다는 말도 있다하나

이런 사례는 항상 소수나 극소수라 

원래 '나쁜놈들이 잘나간다' 이런 환상을 가져도 안되고

역사적으로도 옛날부터 한량들의 미래는 다 좆망이었고 뻔했습니다

 

한편 돈도 없으면서 오렌지족을 흉내내는 아류집단인

낑깡족도 있었고 온갖 짝퉁명품으로 몸을 도배하고

고급차를 몰긴하나 자차가 아닌 렌트카를 몰고다녀

번호판이 '허' 로 시작했기에 압구적동 등지에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오렌지족은 X세대를 대표하는 사례도 아니고

X세대에서도 부유층 자녀를 일컷는 말이었고

대다수 X세대 청년들은 리바이스 청바지 하나 사면서 벌벌 떨었고

알바나 용돈저금으로 문화생활을 향유했다 합니다

 

물론 오렌지족은 부모 돈많은 양아치 그 이상도 아니지만

오히려 IMF 이후부터는 한국에서 중산층 붕괴 , 평균사회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며

무한경쟁 사회로 돌입했고

이후부터는 스포츠카 , 오렌지족들이 있건 말건 그냥 그러려니 여기게 된듯하나

당시까지만 해도 다들 고만고만하거나 가난하게 살았는데

호화롭게 지내던 오렌지족들은 눈에 엄청나게 띄어서

모난 돌같이 여겨져 사회의 지탄을 받은 감도 있습니다

 

[폭주족]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는 폭주족들이 생겨났는데

각종 일본의 레이싱 , 폭주족과 관련된

만화 , 애니메이션 , 일본 폭주족 문화가 한국에도 상륙했던 시기이고

 

일본 버블경제를 대표하는 초호화 셀애니메이션 '아키라 (1988) AKIRA'

 

이들은 헬멧도 안쓰고 2명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차선도 안지키고 몰려다니며 온갖 기행을 벌였고

길거리를 무법자처럼 다니며 차와 경찰들을 조롱했습니다

 

90년대 폭주족 , 저렇게 오토바이위에서 한쪽 다리를 올리는게 '전갈' 이라 불렸습니다

 

당시 일진의 상징 폭주족들 , 다들 헬멧이 없습니다 , 출처 : MBC 뉴스

 

폭주족들은 10대 청소년들로 구성되 있었고

어린나이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거나 하는 것은 같은 또래들이게는

반항과 젊음 , 멋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실제 90년대와 2000년대 청소년들에게 오토바이는 곧 멋있는 일진 ,

잘나가는 반항아 청소년 상징이미지가 있기도 했는데

이런 실제 폭주족들의 현실은 사회적 망신이자 길거리의 폭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밤새 시끄러운 소리를 울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괴성을 지르던 이놈들은 온갖 사고 , 사망자를 낳았고

이놈들로 인해 한국사회에서는 오토바이 , 바이크에 대한 나쁜 인식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도 한국은 오토바이는 그저 악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광복절마다 출몰한 태극기 폭주족들 (헬멧도 안쓰고 애국자 코스프레 하지 말라 이거야..)

 

음 사실 저도 바이커로서

사실 저도 오토바이가 있기에 이바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줄 알고

저는 거의 타기전에 부모님한테 말하고 타고

고가 풀세팅으로 타고다니고 마트가거나 필요할때 이외에는 거의 안타지만

이게 참 위험한 것이라 저도 차없는 곳에서 회전하다 넘어져서 피멍이 든적도 있고

저같이 방어운전 , 풀세팅 장비로 해도 위험한게 이바닥인데

하여튼 이놈들은 바이크 선배라 하기도 뭐하고

욕을 먹고 좀 때려야 될정도 싶은 잠재적 살인자이자 미친놈들이었습니다

 

실제 바이크 정상적으로 타는 자들 보면

그냥 유쾌하고 정신상태가 좀 순수하고 그런 경우가 많은데

(또 괜히 서로 언제 뒤질지 몰라 의리나 동병상련 분위기도 ㄹㅇ 있습니다)

 

요즘도 헬멧없이 2인승타다가 쌍으로 죽는 청소년들 기사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이들은 동정은 커녕 그냥 죽어도 욕을 먹고 있고

제발 좀 안전 잘 지키고 오토바이 인식 나빠지는 물좀 안흐렸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이 오토바이가 인식과 다르게 사실 참 간편하고 유용한 수단이기도해서

저는 오히려 한국인들이 옛날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잊지 않도록

승마같이 청년들도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타는 법을

교양으로 알아도 된다 생각하고 있고

 

당시에도 이런 모습때문에 청소년 , 청년들에게는

온갖 스릴 , 해방감을 느끼게해주는 탈선의 상징이기도 했고

당시에도 ㄹㅇ 바이크를 취미로 즐기는 자들도 있었고

이 90년대 오토바이 폭주족들중 오렌지족같은 부유층 자녀들은 완전체로 진화해서

이후 의사나 법조인이 되어 바이크가 아닌

외제차를 몰고 새벽에 도로에서 레이싱 폭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합니다

 

광란의 질주하다 압수된 스포츠카들

 

단지 한국사회에서 청소년 , 청년층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인프라 ,

레이싱 공간 등이 없어서 이런 도로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도 있고

한국 청소년 , 청년들은 야외활동할만한 거리가 별로 없다하고

대부분 컴퓨터 게임 , PC 방같은 e스포츠 위주를 한다 하며

실제로 한국은 이런 환경때문에 e스포츠 , 온라인 게임에서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미국 , 서양같이 레이싱 선수 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인간의 본능과 자유감도 좋지만 제발 안전 잘 지키고

전용 경기장에서 놀던가

남들에게 피해안주는 선에서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원래 도로는 온정주의 , 연령제가 아닌

법과 실력중심 , 본능으로 움직이기에

그냥 심신이 미약하다 싶으면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타셨으면 좋겠고

이 도로안전에 대한 철저한 교육도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980년대는 댄스가수들은 있었지만

성인 가요풍 리듬이나 고전적인 댄스가수들이었고

또 1980년대는 군사정권 , 권위적 한국사회였기에

음악에도 기성세대 풍이 강했고

 

한편 세계 음악계에서는

1980년대부터 마이클 잭슨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한다거나

영미의 팝음악 및 다양한 장르가 탄생하자

한국에도 1990년대부터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러한 한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가수가 등장했는데

1991년에 결성된 3인조 음악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 왼쪽부터 양현석 , 서태지 , 이주노

 

이들은 보컬 , 작사작곡 , 프로듀서를 책임 진 서태지를 리더로 두고

이주노 , 양현석(현 YG 사장) 이 함께한 그룹으로

데뷔 시작부터 탄탄한 실력으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며 한국 음악계에 거대한 태풍을 일고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자

한국 대중가요계는 성인가요 , 발라드에서

10대취향의 댄스음악 , 힙합으로 바뀌게 됬고

서태지는 힙합 ,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적으로 내고 성공시키며

10대 및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장 80년대는 맨날 트로트나 발라드 등 성인용 음악만 나오던 시기라

10대 , 청년층들이 들을 노래가 없었고 (10~20대 취향 컨텐츠 부족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런 기성세대와 다른 신선한 모습 , 세계적인 트랜드와 맞물려

한국 10~20대들의 억눌려있던 수요를 한꺼번에 폭발시키고

1992년 전국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장기자랑은 너도나도

'난 알아요' 를 불렀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새로운 한국 문화계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니다

 

기획사 사장 , PD가 절대적으로 군림하던 시기

싱어송라이터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소속사도 자신들이 만들고

자신들의 힘으로 음악과 춤을 만들어 유행시켰으며

무소불위의 방송 , 기득권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은

반항하는 청년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상징같은 역활도 해냈고

서태지는 이후에도

10대 , 20대 가수들 , 싱어송라이터들의 길을 터주고

오늘날 세계로 퍼지는 '한류' 의 대표문화인

K-POP 음악의 시초로 알려진 가수입니다

 

단지 오늘날 K-POP 음악이 대부분 기획사 , 시스템의 힘으로

세계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비해

직접 관행이나 시스템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이뤄낸

서태지와 아이들은 ㄹㅇ 오늘날 가수들보다

더 낫다는 평도 있고

 

하여튼 당시까지만 해도 가수들도 노동자처럼 굴려지던 시기라

조금만 활동을 안하면 잊혀진다거나 PD의 명을 거역한다는 공포가 많았지만

서태지는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야 했기에

활동후 잠적 , 공백기를 가진후 다시 컴백하게 됬고

이런 오늘날 한국 음악계 컴백 관행도 서태지가 시초였습니다

 

ㄹㅇ 저는 서태지 세대가 아니라

'난 알아요~' 랑 몇몇 노래밖에 모르고

실제로 10대때 주변에서 서태지 노래듣는애가 락커한다는 친구밖에 없었지만

하여튼 '한국 음악사' 에서는 당시 청년층을 대표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부터 한국대중가요계는 발라드 , 성인가요 위주에서

10~20대 취향의 댄스음악위주로 재편됬고

이러한 것들로 기성세대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서태지는 점차 단순 음악적 시도를 뛰어들어

사회문제에 대한 곡을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ㄹㅇ 지금 K-POP 음악인들도 배워야 한다 생각합니다

걍 듣기좋은 후크송만 하면 딴따라나 광대로 비하될 뿐

역사에 이름남기기는 어렵겠지요)

 

이러한 여러 실험적 시도 , 사회문제를 담은 곡들로 인해 그는

'문화 대통령' 으로 불리게 됬고

 

문화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만남

 

통일을 노래한 '발해는 꿈꾸며' 와

대한민국 교육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는 '교실 이데아' ,

가출 , 비행청소년들을 집에 돌아오게 한 노래 '컴백홈' 등

90년대 한국사회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가수였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린 분단된 현실과 남북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 '발해를 꿈꾸며'

 

[한국 아이돌]

한국사회에서 아이돌 가수라는 개념도

90년대부터 등장했는데

일본에서 유행했던 것이었지만

점차 한국에도 시작됬고

90년대 후반만해도 이 '아이돌' 이란 개념에 대해서 혼란스러움이 강했고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이돌들은 솔로가수가 아닌

기획사에서 기획된 그룹 가수로서

싱어송라이터와는 대척점에 있는 이미지도 있고

한국사회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부터 그룹문화가 형성되다가

결국 1996년 9월 'H.O.T' 가 데뷔하며 10대들의 전폭적 사랑을 받으며

아이돌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후 1997년 4월 데뷔한 '젝스키스' 와 H.O.T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1세대 보이그룹 , 아이돌의 양대산맥을 이룹니다

 

H.O.T (왼쪽) 와 잭스키스

 

수많은 청소년(여중생 , 여고생) 들이 이 오빠들을 보러

방송국에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여졌고

이런 팬덤문화도 형성됩니다

각기 팬덤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H.O.T 는 하얀풍선이고 젝스키스는 노란풍선이었기에

10대들은 서로 단체로 풍선 깔맞춤을 하고

이들의 콘서트를 보러 몰려들었고

 

양측 팬들의 응원

 

엄청난 수의 팬들이 몰렸는데

특히 90년대 후반은 H.O.T 의 시대였기에

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H.O.T 의 하얀 풍선들이 채웠고

1999년 드림콘서트에는 무려 12만명의 팬들이 몰렸고

이때 지방팬들이 직접보러 올라온 버스가 300대가 넘었다 합니다

 

소녀팬들은 H.O.T 를 보다 실신한다거나 공연중 몰리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고 (원조아이돌이라고도 불리는

옛날 비틀즈도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여튼 당시 영세기획사였던 SM엔터테이먼트는

H.O.T 성공으로 한국 최고 기획사로 일어나게 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주목받던 10대 팬덤을 타겟으로 한

기획형 아이돌이 시작되고

이시기부터 대형기획사가 철저하게 시장 , 사전분석한 아이돌 , 댄스뮤직등은

대중문화를 석권하게 됬고 한류 , K-POP 의 시초가 됩니다

 

단지 아이돌 문화는 이시기부터 오늘날까지 한국 음악계를 장악해오고

또 K-POP , 한류의 상징으로 유명해졌지만

음악성보다는 시장성 , 대중성 위주라는 한계점도 있고

 

이 시기부터 팬덤문화에 밀려

싱어송라이터 , 발라드 , 솔로가수들의 참여가 크게 줄어들었고

대중성 , 상품성에만 집중한 악영향들도 나타났다 생각하고

또 현재는 SM , YG , JYP 등 대형 기획사 , 아이돌 소속사들이

한국 음반 시장을 독식한 형태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 3대 소속사 YG , SM , JYP , 요즘은 BTS 가 세계적 인기를 얻어서 빅히트 엔터테이먼트도 4강구도로 들어왔다 합니다

 

대형 소속사들 음악도 좋은 음악 ,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많으나

(상식적으로 일단 대기업급으로 컸다는 것부터

실력이 없으면 그렇게 크지를 못합니다)

 

일반적인 솔로 가수들은 대형 소속사들의 거대한 팬덤문화를 이길 수 없기에

음악 차트에서도 상위권으로 오르기 어려워

음반을 내도 대기업 소속사 출신 아이돌들이 나오면 금방 묻히게 됬고

이에 실력있고 재능있는 가수 , 유망주들도

현실적 이유로 아이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되고

(실제로 요즘은 상향평준화가 되서 한국 아이돌에도

재능있는 실력파 가수들도 많긴 합니다)

 

단지 그럼에도 낭중지추라고

평소 꾸준히 음악공부를 하고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환경 , 자본력 , 시스템이 열악해도

대기업 소속사던 독점이던 다 뚫고 나올 수 있다 생각하기에

수많은 가수를 꿈꾸는 음악인 , 청소년들이

일단 열심히 자기 분야를 잘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한국 아이돌 문화가 참

저도 어렸을때 아이돌 노래를 많이 듣기도 했지만

참 빡센 분야라서

한국 아이돌은

대게 음지에 있는 , 아마추어 성향이 강한 일본 아이돌보다

더 철저하고 빡세게 돌아가기로 유명하고

대게 음지에서 활동하는 일본 아이돌(지하 아이돌이라 불립니다)과 달리

더 높은 대우를 받고 있는 한국 아이돌이고

철저한 기획+관리 등으로 진화해오다가

이러한 모습들로 한국뿐만 아닌 세계에서 입소문을 타게 됬고

요즘은 점차 3세대 , 4세대 아이돌로 진화를 하며

아이돌들도 작사나 작곡에 참여하거나 하며

점차 하나의 아티스트로 대우받는 풍조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아이돌 음악은 옛날부터 잘 들으면서도 기피했던

이중적인 그런게 있는데

이게 옛날 기성세대들이 아이돌들 보는 시선들도 그랬고

참 아이돌을 상징하는 표현 같기도 하고

(춤출땐 뱃걸 속으론 굿걸)

 

음악에서 산업화식으로 돌아가는 아이돌판이

이젠 한국 시장을 대표하는 게 되어

현재는 거의 한국 음악계 국룰화 됬고

실력있는 아이돌들도 있고

이에 유명 실력파 작곡가들도 아예 아이돌을 키우는 경우도 있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한국 음악계에 여러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으면 바람이 있고

그렇다고 듣보 싱어송라이터들도

아이돌음악보다 수준 미달인 경우도 많아

출신이니 성별 , 편견보다는 진실된 음악을 하는 용기있는 참음악인들이

한국 사회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래도 남이 만들어준 노래보다는

자신의 상황 , 감정을 담은 솔직한 노래가

결국 오래 남고 사랑받는 것이니까요

 

또 현재 한류 등으로 아시아와 세계 시장을 주도해가고 있는

한국 문화계도 일본이나 홍콩꼴 나고 싶지 않으면

조폭들과 엮이거나 검은 돈을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항상 음악계에서 여러 실험 , 자정작용을 계속 해야한다 생각하고 있고

이미 한국은 문화강국이지만

좋은 용기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라봉봉>90년대는 세기말 분위기도 강했지만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시대' 라는 별칭도 있는 시대라

청년들이 지금보다 인상이 상당히 쎄고 노안입니다

 

지금보다 영양상태나 주거환경도 나빴던 시기라

청년들이 더 늙어보이고 또 성인으로서

요구받는 나이도 지금보다 더 빨랐던 시기입니다

 

당시 인싸들의 꾸밈등은 오늘날 보기에 상당히 촌스럽기도 하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나름 고리타분한 양복쟁이로 넘치던

80년대 이전 세대들에 대한 반항과 개성의 표시이기도 했고

요즘 이런 90년대 복고풍이 다시 유행한다는 말도 있고

그럼에도 일단 솔직히 촌스럽긴 합니다

 

대중음악계도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확실히 80년대와 90년대는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보수 , 권위적이었던 음악계가 점차 개성적 모습 ,

저연령층에게까지 확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이때 처음으로 시작된 시도 , 축적된 기술 , 문화적 자산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류문화와 K-POP 열풍들이 이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음악은 국뽕 거르고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 생각되는데

단 이시기부터 언어 인재들이 전부 음악계로 몰려서

한국 문학계는 20세기에 여러 스타 시인 , 작가들의 고뇌가 많았던 것에 비해

21세기 들어 상당히 조용해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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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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