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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초기 반정부 감정들>

[숭례문 방화사건]

[4대강 사업]

[광우병 촛불집회]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서거]

<라봉봉>

 

[숭례문 방화사건]

2008년 2월 10일 , 노무현 정부 말기때

국보 1호인 숭례문 , 남대문이 화재로 소실됩니다

 

불타기 하루 전 숭례문

 

불타는 숭례문

 

채종기라는 노인이 택지개발에 따른 자신의 토지 보상액에 불만을 품고서는

숭례문에 불을 지른 것으로서

이 노인은 이전에도 같은이유로 2006년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집행유예 2년 ,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이후에도 불을 지르려다 경비가 허술한 숭례문으로 표적을 삼아

숭례문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현장검증자리에서

 

'노무현의 잘못이 99.9%, 내 잘못은 0.1%' ,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잖아.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

 

라는 망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

이후 문화재를 훼손해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합니다

결국 그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됬고

사람들은 숭례문에 불을 지른 사람이 70에 가까운 노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노인=전통을 아끼는 이미지인데 정반대였음)

 

숭례문 소실은 당시 노무현 정권 말기 있었던 일이지만

이전부터 접근이 어려웠던 숭례문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비용을 이유로 경비인원을 배치하지 않고 무인경비시스템만 가동한 것은

서울시장 이명박이었고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런일 수습이 있어야 했기에

이명박을 싫어하는 국민들은 숭례문 방화와 이명박을 깊게 엮어

숭례문 방화사건은 나라가 망할징조라 여기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안일한 문화재 의식을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었고 숭례문은 5년뒤인 2013년 복구됩니다

 

[4대강 사업]

현대건설 사장출신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시에도 청계천 복원공사 , 버스 환승제도 도입으로

큰 인기를 얻은 인물이고

이러한 CEO 정치인적 모습은 대통령때에도 남아있어

그는 대선후보시절에도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이전 시기 한반도대운하를 설명하는 이명박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는 시민단체 , 진보진영 야당에서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타당성이 없고 환경만 망칠거라는

강력한 비판을 하게 됬고 많은 여론의 반대로

결국 이명박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4대강 사업은 한강(서울) , 낙동강(경상도) , 금강(충청도) , 영산강(전라도)

을 정비하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가장 중심적으로 추진한 주요 국정사업이자

대규모 토건사업이었습니다

 

강 위에서 이명박 대통령 , 박정희 대통령이 선글라스 끼거나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모습이 강한 대통령 인상을 남겨서 그런지 이후에도 보수계에서는 이런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의 연출을 자주 써먹는듯 합니다

 

4대강 사업의 목적은 수해예방 , 수자원확보 , 수질개선 , 지역발전 등이었고

한국은 여름의 장마기간에 강수가 집중되기에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홍수나 가뭄에 취약하기에

이전 정부부터 수자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계속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시기부터 22조원을 들인 대규모 사업인

4대강 공사가 시작되자

환경단체+야당과 이명박 정부가 격렬하게 대립했고

 

오늘날에도 4대강 사업은 여러 갑론을박 , 병림픽이 벌어지는 논쟁으로서

4대강 사업때문에 녹조라떼가 생기고 수질이 나빠졌다는 주장은 큰 화제가 되었는데

실제 4대강 지역 주민들은 4대강 이후 홍수피해가 사라지고

강주변 산책로를 잘 꾸며놓아 4대강 사업을 환영했고

 

낙동강에서 발생한 녹조

 

4대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자전거 동호회원들

 

당시 외국에서도 한국과 기후가 유사한 나라에서는 4대강에 대한

찬사를 보냈고 선진국들은 4대강에 비판적 모습을 취했는데

이에 4대강 반대자들은 선진국들도 비판하는데 왜 이런걸 하냐라는 불만을 토했지만

선진국들의 4대강 저평가는 한반도 기후사정에 무지한 탓으로도 볼 수 있다하며

 

4대강 사업은 꾸준히 논란이 있다가

이후 대법원에서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적법했다 판결합니다

 

<대법원>공고와 주민설명회 등 절차를 거쳤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이 제시됐다.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게 작성됐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당시나 오늘날까지도 실효성등을 두고

논란이 매우 많았고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합니다

 

[광우병 촛불집회]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보다는 온건한 성향의 보수계 인사였지만

그럼에도 이전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부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노무현 정부 당시 보수층에서 큰 반대를 했듯이

정권 시작부터 진보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여론이 폭발한 사건이

2008년 촛불집회 , 광우병 촛불집회 사건으로

당시 한미 FTA 를 통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해

대한민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시위였습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2008년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

 

2008년 6월 10일 서울 시청앞 촛불집회 모습들

 

시위는 과격시위로 번지기도 했고

경찰과 시위대의 진압과 대치로 큰 논란이 있었던

대규모 반정부(반 이명박) 시위의 성향도 띄고 있었습니다

 

당시 등장한 경찰의 물대포

 

명박산성 , 컨테이너로 광화문을 막은 이명박 대통령

 

시위대에게 집단구타당하는 전경

 

시위대에게 훼손된 조선일보(보수적+당시 이명박정부와 같은 성향 언론) 사옥

 

노무현 , 참여 정부시기부터 추진된 한미 FTA ,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정성 의혹이 제기됬는데

당시 세계사회에서는 광우병 소고기 공포가 있었고

 

광우병이란 소에서 발병한 병으로

말그대로 '미친 소 병' 인데

뇌에 구멍이 생기게 되어 스폰지같이 변해

사망하는 질병이고 치료방법이 전혀 없는 공포의 질병인데

 

1980년대부터 영국 축산업계는 우유 생산량 증대를 위해

육골분 사료를 사용했고

초식동물인 소가 육류를 먹어도 문제가 생기진 않지만

이 과정에서 동족인 소의 육골분이 사료제조에 쓰였다는 강한 의혹이 있었고

이 육골분 사료는 영국 말고도 해외로 수출되었고

이러한 지속적인 체내 프리온 축적으로 소에게 이상증상을 발생시켰다는

가설은 상당히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은 사람도

광우병에 걸려 사망한다는 공포가 확산됬고

 

이런 광우병 공포는 2008년 한국뿐만 아닌

2000년대 초기 세계사회를 휩쓴 공포였는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2008년 광우병 괴담과 공포는 더 부풀어져 엄청나게 확산되었습니다

 

영국 농림수산부 장관 역시 광우병 사태 당시 영국소는 안전하다며 사진을 찍었으나 소고기 패티가 아래로 밀려있어 논란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퍼지던 광우병 공포 , 괴담

 

일단 육골분 사료는 논란이 커져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됬고

 

(초식동물에게 빠른 우유생산을 위해 육골분 사료를 먹인다거나

동족을 먹인다거나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진짜 못할짓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지금은 광우병 공포 ,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엄청난 논란 , 공포 이슈였던 것은 맞고

 

2008년 당시 한국에서는

컴퓨터가 막도입될때라 한국 국민들의 정보화 , 평균지적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는데 (ㄹㅇ임)

컴퓨터가 막 도입될때는

무슨 플로피 디스크에 쿠킹호일을 씌워야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안퍼진다는

속설등이 유행하는 등

지금보다 더 선동도 쉬웠던 시기이고

사람들은 인터넷 자료를 진위여부 파악없이 , 필터링 없이 쑥쑥 받아들이던

순진무구하던 시기였고 (세계적 현상이었던거 같고 과연 한국만 그랬을까도 싶습니다)

 

지금도 노인들은 이런 인터넷 선동에 취약한 편으로 보이나

현재는 인터넷을 잘 아는 20대 , 30대등 젊은층에서

곧바로 노인들에게 제지를 해줄 수 있지만

당시는 20대 30대도 어리고 모든 세대가 다 컴퓨터를 처음 접하던 시기라

누구도 여러 선동을 해도 의심을 가지기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광우병 사건 당시 이명박을 싫어하는 언론 , 야당까지 가세해

정치 , 언론까지 광우병 논란에 합세해 이명박정부를 공격한 것도 있습니다

 

이에 광우병은 광우뻥 , 한국의 선동 흑역사라 이야기되기도 하나

그러나 당시 육골분 사료는 실제로 있었기에

일단 광우병 발생지인 영국은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 통계를 상세히 공개하고

2008년부터 육골분사료를 무조건 금지한 뒤로

발병률이 확연히 줄었고

 

미국 축산업계도 전통적으로 사료로 콩이나 옥수수를 사용했기에

실제로는 안전하다고 하나

이는 당시 한국만 미개해서가 아니라

육골분 사료 등 분명 원인과 문제가 있는 병이어서

여러 선진국에서도 예민하게 받아들인

세계 사회를 공포에 떨게했던 병이었기도 합니다

 

단지 유독 한국에서는 광우병 논란 이전에도

반 이명박 정부 , 반 보수정권 감정이 강했기에

광우병 사건과 맞물려 더 많은 루머 , 선동이 확산됬고

반정부 시위와 맞물려

결국 2008년 촛불집회 , 광우병 촛불집회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생각됩니다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서거]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후 그의 고향 김해시 봉하마을에 가서

사저를 짓고 귀향 , 귀농했고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귀농후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 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후 사람사는세상 사이트를 운영하며

민중들과 교류를 하고 봉하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 건설을 하는 등 은퇴후 노년을 즐기고 있었고

 

봉하마을에 방문한 자원봉사자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 , 출처 : 사람사는세상

 

이는 외국에서도 신기한 모습으로 여겨졌고

정치인 시기 정적은 많았지만

실제로 국민적 인기 , 사랑이 엄청났던 노무현 대통령이었는데

이런 퇴임한 대통령을 보기 위해

하루에 3000명 , 주말에는 1만명이 김해 봉하마을에 관광오는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대규모로 관광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고

대부분 관광객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이고 신선한 모습에 호감을 느껴 찾아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기위해 몰려든 시민들

 

나름 농사짓고 모범적 말년을 보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으나

이명박 정부시기인 2009년부터 '박연차 게이트' 가 터졌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수수를 했고

친노 , 노무현계 인사들이 대거 적발되 구속됬고

이후 국세청과 검찰의 끈질긴 수사가 시작되

노무현 대통령 일가와 노무현 대통령까지 소환되 검찰조사를 받자

노무현 대통령은 헌정사상 세번째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이 됬고

(노태우 , 전두환 , 노무현)

 

검찰에 출석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측은 본인의 결백함을 주장했지만

검찰은 박연차의 진술 및 여러 증거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수사등에 여러 논란이 있었고

결국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에서 투신자살을 하게 됩니다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일에

여론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그에 대한 수사는 종결됬고

핵심 비리인사 30여명이 구속기소되는 것을 끝으로 수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됬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이전부터 격렬히 있었던 반 이명박 감정과 맞물려

극심한 반정부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2009년 5월 23일 후임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도 큰 충격을 받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됬고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웃음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 헌화하는 이명박 대통령 , 정적을 죽여놓고 헌화하는 그런 이미지때문에 무슨 느와르나 영화의 한장면 같은거로 화제가 된 사진입니다

 

헌화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 !' 라고 외치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는 백원우 민주당 의원

 

국민장으로 거행된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뒤덮인 서울광장 추모인파

 

노무현 대통령 사후 3개월도 채 안되

김대중 대통령도 폐렴으로 입원했고

결국 2009년 8월 18일에 병세가 악화되 서거하십니다

 

2009년 민주당은 순식간에 모든 대통령을 잃게 됬고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사회 , 진보계에서는 반정부 , 반보수계 감정이

거의 악의 축 수준으로 격렬히 일어났다 생각됩니다

 

이명박 정부도 급작스러운 두 대통령의 서거에 당황했고

이전보다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게 됩니다

 

<라봉봉>이명박 정부(보수계)는 기존 민주당 10년 정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초기부터 여러 난항을 겪었고

제 생각에 한국 보수계는 경제적 행보는 유능하지만

인권성 , 개인의 행복에는 무덤덤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생각하고 있고

 

저도 한때는 행복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 ,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 '행복추구권' 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으로서

결코 무시못할 권리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는 말이 나와있는데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 , 복되고 좋은 운수를 뜻하는 말로서

인간이 추구해야할 소중한 가치이자

경제적 , 실리적 모습과 대비되는 진보적 가치라고도 생각됩니다

 

사실 김대중 , 노무현 정부도 여러 비리와 문제점이 있었고

이로 인해 말년에 레임덕(임기말 정치인의 힘이 빠지는 것) , 정권약화 현상을 겪기도 했고

사실 한국 정치계는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더러운 것으로 유명하고

여러 이익 , 집단들이 얽히고 섥혀있기에

온갖 권모술수 , 더러움이 공존하기도 하며

비단 한국정치계 뿐만 아닌 세계정치계도 이런 모습이 되게 많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명박 정부도 여러 비리등이 엮여있어

참 혼란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도 정권 말기 레임덕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한국 대통령들은 거의 대부분 정권말 레임덕 현상 및

퇴임후 불명예 , 구속사건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유명해서

참 옛날 백제시대 못지않은 정치혼란이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일단 지금은 이명박 정부 이야기기에 ..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에 여러 국민적 거센 반발을 받은 이유는

국정을 급격히 경제위주 정책으로 바꿔버렸고

그는 집권내 단기간에 선진화 , 경제성장을 주 정책으로 잡고

무감정적으로 많은 국민들의 행복권 , 기본권을 침해하며

국민들의 대규모 반발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많은 오늘날 선진국들도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 자본주의(보수 , 우파)를 주된 사상으로 택했기에

이 '행복' 이라는 가치에 대해 무감각하고

특히나 이는 한국보수정당의 큰 취약점이며

이명박 정부 당시부터 천민자본주의의 유행 ,

막가파식 경제 , 개발논리의 유행도 시작됬다 생각되고

행복이란게 결코 진보적 가치라보기도 어렵고 저는 참 좋은 가치라 생각됩니다

 

옛날 유행한 '백만송이 장미' 라는 노래는

원래 소련 치하의 라트비아에서 나온 노래로서

소련치하의 라트비아의 역사적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인데

원곡 , 전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지모신이자 운명의 여신 마라가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고 정성껏 보살폈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렸기 때문에

성장한 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라는 끔찍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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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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