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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천왕 , 산상왕 , 동천왕>

[힘이 강했던 고국천왕]

[명재상 을파소]

[산상왕과 형사취수제]

[왕후가 될 운명의 후녀]

[어진 성품의 동천왕]

[꿈에서 나온 고국천왕]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

<라봉봉>

 

[힘이 강했던 고국천왕]

신대왕이 사망하자

백성들은 신대왕의 맏아들 고발기가 어질지 못하다 생각해

신대왕의 둘째아들 고남무를 추대해서

왕위에 앉히니

이 인물이 고구려 9대왕 고국천왕입니다

 

고국천왕

 

고국천왕은 키가 매우 컸고

풍채가 크고 힘이 셌습니다

 

이에 발기는 자신이 형인데도 왕이 못된것을 원망해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강에게 가서 항복하고

요동태수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나

고국천왕이 직접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와 싸워 패배시키고 한나라 군사들의 머리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고구려 벽화속 고구려 기병

 

[명재상 을파소]

어느날 고국천왕은

백성들을 위한 현명한 자들을 천거(벼슬에 추천) 하라는 명을 내렸고

안류라는 인물이 추천되어 고국천왕에 왔습니다

안류는

 

<안류>저는 어리석은 자로

중대한 국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서쪽 압록곡 좌물촌에 사는 을파소라는 사람이

성질이 강직하고 지혜로운 인물입니다

 

그러나 등용되지 못하고

농사로 생계를 삼고 있기에

대왕께서 나라를 잘 다스리려 하시면

이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에 고국천왕은 사람을 보내

겸손한 말과 후한 예로서 을파소를 모셔왔습니다

 

고구려 명재상 을파소

 

<고국천왕>내가 운좋게 왕업을 이었으나

덕과 재주가 없어 정치를 잘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재능을 감추고

초야에 오래 계셨으나

이제 이곳에 오셨으니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하니

힘을 다해주십시오

 

이에 을파소는

나라에 공헌하고 싶음에도

일을 하기엔 직위가 작다 생각해

대답했습니다

 

<을파소>우둔한 저는

감히 왕의 엄명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저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선택해

높은 관직을 주어 대업을 이루게 하소서

 

이에 을파소의 뜻을 알아챈 고국천왕은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고

나랏일을 하게 했습니다

 

고구려 신하들은

농사지으며 흙내나던 을파소가

갑자기 재상이 되어버리자 놀라며

을파소를 미워했습니다

 

이에 고국천왕은 교서를 내려서

 

<고국천왕>만약 국상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친척들까지 징벌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을파소는

 

<을파소>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도리이다

 

이제 왕께서 나를 좋게 대하시니

어찌 이전 숨어살던때를 생각하겠는가 ?

 

하고는

전력을 다해 나라에 봉사하고

상벌을 신중하게 처리하니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나라 안팎이 무사해졌습니다

 

 

또한 을파소는 백성들에게 춘궁기나 흉년기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철에 돌려받는 복지제도인

'진대법' 을 실시했고

이에 고구려 백성들에게 큰 환대를 받았습니다

 

[산상왕과 형사취수제]

고국천왕이 사망하자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었기에

고국천왕의 동생 고연우가 뒤를 이어 즉위했고

이 인물이 고구려 10대왕 산상왕입니다

 

처음 고국천왕이 사망했을때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는

왕이 죽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고국천왕의 동생 고발기(맏형 고발기와 한자가 다름) 의 집에 가서

말했습니다

 

두번 왕후가 된 야망의 여인이었던 우씨왕후 , 오른쪽은 산상왕비 , 우씨왕후로 추정되는 고구려 벽화 '부인상' 입니다

 

<왕후 우씨>왕이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왕의 뒤를 이어야겠습니다

 

이에 발기는 의심하며 대답합니다

 

<고발기>그런 것은 경솔히 논의할 수 없소 ,

더구나 부인으로서 밤에 출입하는 것이

어찌 예절에 맞겠습니까 ?

 

이에 부끄러워진 왕후 우씨는

고국천왕의 다른 동생 고연우의 집에 갔는데

연우는 일어나서 옷을 깨끗히 갈아입고

문에 나와서 왕후 우씨를 맞아들여 자리에 앉히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고구려 벽화속 접대받는 고구려 지배층 , 지배층의 몸은 크고 시종의 몸은 작게 그려져있어 고구려가 철저한 신분사회임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도 합니다

 

왕후가 이에 연우에게

 

고국천왕이 죽었다는 사실과

맏아우인 발기가 뒤를 이어야겠다 생각해 찾아갔더니

딴 마음이 있는지 알고 예절없이 대했다는 말을 했고

 

연우는 이에 예절을 더 극진히해서

우씨 왕후를 정성껏 모시며

직접 칼을 들고 왕후에게 고기를 썰어주다가

손가락이 베였습니다

 

<연우>아얏 !

 

이에 우씨왕후는 허리띠를 풀어서

연우의 손가락을 매어주었고

 

왕후는 환궁하면서

밤이 깊어 위험하니 연우에게 대궐까지 데려다 달라했고

연우가 알겠다하자

왕후는 연우의 손을 잡고 대궐로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왕후는 고국천왕의 유언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연우를 왕으로 삼게했고

 

이에 분노한 발기는 군사로 왕궁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연우는 왕궁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고

백성들 역시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결국 발기는 요동으로 도망칩니다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간 발기는

한나라 군사를 빌려서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연우가 동생 계수에게 군사를 주어

요동에서 오는 군사를 막자 한나라의 군사가 크게 패했습니다

 

잡힌 발기는 계수에게 말했습니다

 

<발기>네가 오늘 감히 늙은 형을 죽일것이냐 ?

 

이에 계수는 형제간의 의리를 버릴 수 없어

감히 형 발기를 죽이지 못했고

이렇게 말햇습니다

 

<계수>연우형님이 왕위를 사양하지 않은 것은

올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형님께서 분한 생각을 못이기시어

한나라 군사를 끌고옴은 무슨 뜻이며

무슨 낯짝으로 선조들을 뵐것입니까 ?

 

이에 부끄러워진 발기는

도망치다가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습니다

 

연우 , 산상왕은 형 발기의 시체를 모셔

왕례로서 장사지냈습니다

 

이후 산상왕은 다시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왕후에게 장가들어

우씨를 왕후로 삼았고

 

(형사취수제 ,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의 아내 , 형수와 결혼하는 풍습으로

잧은 전쟁과 사망률이 높았던 고구려나 유목민족들에게 발견되는 풍속)

 

다시 장가들지 않았습니다

 

고구려의 형사취수제

 

[왕후가 될 운명의 후녀]

그러나 산상왕은 우씨 왕후와 사이에서 아들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어느날은

제사에 잡을 돼지가 달아나 관리가 쫓았고

돼지는 주통촌이라는 마을까지 이르렀는데

돼지가 이리저리 날뛰어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20세정도의 앳되고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와 돼지를 잡아주었고

 

아름다운 고구려 여인 , 출처 : KBS 2TV 수목 드라마 칼과 꽃 (2013) Sword And Flower

 

 

산상왕은 이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관리>아니 돼지를 잡아준 주통촌 여인이 되게 예뻤다니까요 ?

 

<산상왕>오오미

 

궁금해진 산상왕은

주통촌의 그 여인을 보고싶어

일반 사람 복장으로 갈아입고 시종과 함께

밤에 그 여자의 집에 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왕이 온 것을 알고

감히 거절하지 못했고

산상왕이 주통촌 여인과 같이 동침하려 하자

 

주통촌 여인이 말했습니다

 

<주통촌 여인>대왕의 명령을 감히 피할 수는 없지만

만약 아이가 생기면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이에 산상왕은 승낙하고

같이 밤을 보내다 산상왕은 환궁했습니다

 

이후 산상왕이 주통촌 여인에게 간 사실을 안

왕후 우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습니다

 

<왕후 우씨>빼애애액 !!

니놈이 누구덕분에 왕이 됬는데

감히 다른 여인을 품으냔 말이냐 !!

 

한남에게 불륜 당해서 분노한 우씨왕후

 

결국 왕후 우씨는 주통촌 여인에게 군사를 보내서 죽이려했고

군사가 추격해오자 주통촌 여인은 남장을 하고 도망치다

결국 군사들에게 잡혔습니다

 

이에 주통촌 여인이 호통치며 말했습니다

 

<주통촌 여인>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이려하니

이것이 왕의 명령이냐 왕후의 명령이냐 !

 

이제 나의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이 아이는 왕의 혈육이다

 

나를 죽이는 것은 좋으나

왕자도 죽일 셈이냐 !

 

고구려 벽화속 양볼에 연지곤지를 한 고구려 미인

 

이에

병사들은 그 여인을 감히 죽이지 못하고

돌아와서 왕후 우씨에게 보고했습니다

 

분노한 왕후 우씨는 반드시 주동촌 여인을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 사실을 안 산상왕은 다시 주통촌 여인의 집에 가서 묻기를

 

<산상왕>네가 지금 임신한 것이 누구의 아이냐 ?

 

라고 했고

주통촌 여인은

 

<주통촌 여인>제가 평생 자매와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성이 다른 남자와 가까이 했겠습니까 ?

 

지금 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진실로 대왕의 혈육입니다

 

라고 말했고

결국 산상왕은 주통촌 여인을 위로하고 상을 주었고

왕후에게 사실을 말하니 결국 왕후도 끝내 주통촌 여인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통촌 여인은 아들을 낳았고

산상왕은 하늘이 주신 후계자라며 기뻐하며

주통촌 여인을 소후로 삼았습니다

 

옛날 소후의 어머니가 그녀를 임신했을때 무당이

 

<무당>반드시 왕후를 낳으리라

 

했기에

주통춘 여인의 이름을 후녀 后女 (왕후 여자)라 지었다고 합니다

 

[어진 성품의 동천왕]

산상왕이 사망하자

주통촌 여인 , 후녀의 아들 고우위거가 왕위를 이었고

이 인물이 고구려 11대왕 동천왕입니다

 

동천왕은 성품이 너그럽고 착했지만

이전부터 동천왕의 어머니 , 후녀를 죽이려 했던

의붓어머니 우씨태후(우씨왕후)는 동천왕이 왕이 된 후에도

사사건건 동천왕을 괴롭혔고

 

일부로 동천왕이 아끼던 말의 갈기를 잘랐습니다

 

그러나 동천왕은 화내지 않고서는

 

<동천왕>말의 갈기가 없으니 불쌍하구나

 

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우씨 태후는

시종을 시켜 일부로 동천왕 옷에 국을 엎지르게 했는데

동천왕은 역시 화내지 않았습니다

 

[꿈에서 나온 고국천왕]

이후 우씨 태후가 죽었습니다

 

우씨 태후는 죽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유언했습니다

 

<우씨 태후>내가 행실이 좋지 않았으니

무슨 면목으로 고국천왕을 보겠는가

 

만약 신하들이 내 시신을 계곡이나 구덩이에 버리지 못하겠거든

나를 산상왕릉 옆에 묻어달라

 

이에 태후의 유언대로 장사지냈는데

이후 무당이 동천왕에게 말했습니다

 

<무당>고국천왕께서 나에게 내려오셔서

 

'어제 우씨가 산상왕에게 가는 것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우씨와 다투었다

내가 돌아와 생각해보니 백성들 보기가 부끄럽구나

네가 조정에 알려

내 무덤을 가려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동천왕은 고국천왕의 능 앞에

일곱겹으로 소나무를 심어 무덤을 가려주었습니다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

한편 당시 중국에서는

중화 거대 통일제국 한나라가 멸망하고

위나라 , 촉나라 , 오나라가 분열해 맞서며

삼국지를 찍고 있었는데

중국 삼국중 가장 강성한 위나라와 고구려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에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당시 동아시아 판도

 

이후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이

1만명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했고

동천왕은 보병과 기병 2만을 거느리고

비류수에서 전투를 벌여 그들을 쳐부수고

3천여명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관구검의 침입로

 

위나라 명장 관구검 (?~255)

 

또 양맥 골짜기에서 전투를 벌여

3천여명을 죽이거나 생포했는데

이에 동천왕은 위나라군과 위나라 장수 관구검을 얕보게 되어

곧 철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진격했습니다

 

고구려 벽화속 철기병 '개마기병'

 

고구려군의 '탱크' 였던 철갑기병인 '개마기병' , 고구려인들은 만주의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강력한 철제무기와 개마기병을 운용했습니다

 

이에 관구검이 방진을 펼치고 필사적으로 싸우자

고구려군이 대패해서 사망자가 1만 8천명이었고

동천왕은 기병 1천을 거느리고 도망쳤습니다

 

이후 관구검은 고구려 수도 환도성(국내성의 전시수도)을 공격해서 함락시키고

백성들을 살육했고

동천왕은 도망쳤는데

군사들은 흩어져 거의 모두 없어졌고

 

밀우가 혼자 왕에 옆에 있다 말했습니다

 

<밀우>제가 결사적으로 적군을 막으면

왕께서는 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밀우는 결사대와 함께

위나라군에 적력을 다해 싸웠고

이후 동천왕은 군사들에게 밀우를 구출해오라 합니다

 

밀우는 전장에서 땅에 기절해있었고

동천왕은 자신의 다리에 밀우를 눕혔는데

이후 밀우가 깨어났습니다

 

밀우를 눕힌 동천왕

 

동천왕은 다시 도망치며 남옥저로 갔는데

위나라 군사는 추격을 멈추지 않았고

위태로운 형세가 되자

유유라는 인물이 동천왕에게 말했습니다

 

<유유>저에게 어리석은 계책이 있습니다

제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위나라 군사들을 위로하다가

기회를 보아 적장을 찔러 죽이겠습니다

 

이에 유유는 음식바구니 속에 검을 숨기고 위나라 장수에게

항복을 가장하고 갔고

위나라 장수가 항복을 받으려 하자

유유는 곧 숨겨둔 칼을 뽑아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찌르고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위나라 군사들이 장수를 잃고 혼란에 빠지자

곧 고구려군은 위나라군사를 급습했고

위나라군은 고구려에서 퇴각했습니다

 

<라봉봉>태조왕대부터 국력을 키운 고구려는

슬슬 중화제국과 정면 대결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시기에도 어려운 시기에 담력을 발휘하는

고구려인들의 의기와 패기가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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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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