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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왕 , 서천왕 , 봉상왕 , 미천왕>

[중천왕과 관나부인]

[서천왕과 안국군 달가]

[폭군 봉상왕]

[연나라의 침략]

[궁궐공사를 하는 봉상왕]

[왕손 을불]

[창조리의 반정]

[미천왕의 한사군 축출]

<라봉봉>

 

[중천왕과 관나부인]

고구려 동천왕 다음왕은

고구려 12대왕 중천왕 고연불로서

동천왕의 아들이며

외모가 준수한 인물입니다

 

중천왕은 이미 왕후(왕비) 연씨가 있었는데

관나부인의 얼굴이 아름답고 머리카락이 매우 길었기에

중천왕은 관나부인을 소후 , 두번째 왕비로 삼으려 했습니다

 

고구려의 라푼젤 '관나부인'

 

그러나 왕후 연씨는 관나부인을 견제해서

중천왕에게 말했습니다

 

<왕후 연씨>제가 듣건대

중국에서는 긴 머리털을 천금을 주고 산다합니다

 

중국의 침략이 두려우니

왕께서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긴 머리털 미인을 진상하면

그들이 다시는 침범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에 중천왕은 왕후 연씨가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짐작하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관나부인은 이 말을 듣고

왕후 연씨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오히려 중천왕에게 왕후 연씨를 모함했습니다

 

<관나부인>왕후가 항상 나를 욕하며

 

'시골 계집이 어찌 여기있느냐

스스로 돌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라 말씀하셨고

왕후는 나를 해칠거 같사옵니다 ㅠㅠ

 

이후 중천왕은 사냥을 하고 돌아왔는데

관나부인은 가죽 주머니를 들고나와 울며 중천왕에게 말했습니다

 

<관나부인>왕후가 나를 여기에 담아

바다에 버리려 하니

대왕께서는 미천한 저를 집에 보내주시옵소서

 

중천왕은 관나부인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고

분노해서 관나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중천왕>네가 정녕 바다에 들어 가기를 원하느냐 !

 

이에 관나부인은 그대로 그녀가 가져온 가죽주머니에 넣어져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고구려 벽화속 귀부인들

 

[서천왕과 안국군 달가]

중천왕이 사망하자

중청놩의 둘째아들 고약로가 왕위를 이어

고구려 13대왕 서천왕이 되었고

 

서천왕은 총명하고 어질었기에

백성들이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숙신(말갈 , 여진) 이 침입해

고구려 변방 백성들을 죽이자

서천왕은 용감한 장수를 천거(추천) 하게 했고

이에 서천왕의 동생 고달가가 추천되어 대장이 되어

숙신을 쳐서 숙신 부락(마을)들을 함락시키고

고구려 식민지로 만듭니다

 

말갈-만주족의 조상이 된 숙신족

 

이에 기뻐한 서천왕은

달가를 안국군으로 삼고 나라의 군사일을 맡겼습니다

 

고구려 벽화속 고구려 무사

 

이후 서천왕의 다른 동생 고일우 , 고소발이

모반을 계획하고 패거리들과 온천에 가서 불온한 말을 하고다녔고

이에 서천왕은 이들에게 국상 , 재상직을 내리겠다 거짓말을 해서

두 동생을 부릅니다

 

두 동생이 도착하자

서천왕은 힘센 사람을 보내 두 동생을 죽였습니다

 

[폭군 봉상왕]

서천왕이 사망하자

서천왕의 태자 고상부가 왕위를 이어

고구려 14대왕 봉상왕이 됩니다

 

봉상왕은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방탕한 인물이었습니다

 

봉상왕은 숙신을 물리치고 고구려인들의 존경을 받던

안국군 달가를 의심해서 죽여버렸습니다

 

이에 고구려 백성들은

 

<고구려 백성들>안국군이 아니었다면

백성들이 숙신의 침략을 받고 살았을 것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우리는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

 

고구려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봉상왕은 이후에도 그의 동생 고돌고가

모반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해서

자결하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돌고의 죄가 없다 생각해

역시 애통하게 생각했고

돌고의 아들 고을불은 허겁지겁 시골로 도망쳤습니다

 

[연나라의 침략]

봉상왕의 폭정으로 고구려는 매우 약해졌는데

이후 연나라 모용외가 고구려를 침략해

군사들로 하여금 서천왕의 무덤을 뒤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파던 도중

무덤파던 군사들이 갑자기 죽고

또 무덤 구덩이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자

모용외는 귀신이 있다 생각하고 겁을 먹고 도망칩니다

 

[궁궐공사를 하는 봉상왕]

이런 외적이 침략하던 위기의 상황임에도

봉상왕은 폭정을 멈추지 않았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음에도

봉상왕은 궁궐을 넓히는 공사를 했습니다

 

고구려 양식 궁궐

 

많은 신하들이 공사 중단을 간청했지만

봉상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봉상왕은 사람을 시켜

도주한 을불을 잡아 죽이려 했으나

잡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궁궐공사가 계속됬고

고구려에는 큰 흉년이 들어 서로 잡아먹고

식량이 부족해 사방으로 유랑했습니다

 

이에 국상 창조리가 간절하게 충언했습니다

 

창조리의 충언

 

<창조리>흉년이 계속 발생하고

백성들은 살 곳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진실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걱정하고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대왕께서는 이런 사정을 한번도 생각치 않으시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몰아가다 궁궐 공사로 괴롭히고 계십니다

 

이는 왕은 백성의 부모라는 뜻에 어긋나는 일이며

주위에는 강한 적들이 있는데

이틈을 타 우리를 침범해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대왕께서는 부디 깊이 생각하소서

 

이에 봉상왕은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봉상왕>임금이란 백성들이 받드는 자리인데

궁궐이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내보일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국상은 나를 비방하며

백성들의 칭송을 듣으려 하는것 같구려 ?

 

국상은 백성을 위하려 죽으려는 게 아니라면

이후로는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창조리는 봉상왕이 잘못을 고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창조리는 물러나와서 신하들과 의논해서

봉상왕을 폐위시키고

숨어살던 을불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봉상왕은 화를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목매서 자살했습니다

 

[왕손 을불]

창조리가 왕위에 옹립한 을불 !

 

을불은 봉상왕의 동생 , 돌고의 아들이었고

봉상왕은 돌고가 모반할 생각을 가졌다 의심해

이전 그를 죽였고

두려운 돌고의 아들 을불은 시골로 도망쳐 살았습니다

 

처음 을불은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에서 머슴생활을 했고

음모는 을불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는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음모는 밤에는 집옆 연못에서 개구리 소리때매 잠들지 못한다며

을불에게 밤마다 연못에 돌을 던지게 했고

낮이면 나무를 해오라 독촉해서

을불은 잠시도 쉬지 못했습니다

 

밤새 개구리를 쫓던 을불

 

결국 을불은 고생을 이기지못하고

일년만에 음모의 집을 떠났습니다

 

이후 을볼은 재모라는 사람과 함께 소금장사를 했고

압록강에 가서 소금을 가져와

강의 동쪽 노파(나이든 할머니) 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쌀이나 소금을 담던 '가마니'

 

그 집의 노파는 을불 일행에게 숙박비로 소금을 요구했고

을불은 한말 가량 주었습니다

 

그러나 노파는 소금을 더 달라 요청했고

을불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을불을 미워해서

몰래 자기 신발을 을불의 소금 가마니 속에 묻어놨고

그 사실을 모르는 을불은 다음날 소금을 지고 산길을 떠났습니다

 

이에 노파는 압록 성주에게 을불이 신발을 훔쳤다고

거짓으로 고발했고

잡힌 을불의 소금속에 신발이 나오자

압록 성주는 신발값으로 소금을 빼앗아 노파에게 주고

을불에게 매를 때린 후 석방했습니다

 

이로인해

을불은 얼굴도 여위고

옷도 낡고 해져서

사람들은 그를 보아도 도저히 왕손임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리의 반정]

이 시기

한창 고구려 조정에서는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봉상왕을 폐하고자 결심하고

관리를 시켜 먼저 온 나라를 뒤져 을불을 찾게했습니다

 

을불을 찾는 관리들이

비류하 물가에 도착했을 때

한 사나이가 배에 있었는데

옷도 낡고 얼굴은 비록 초췌했지만

행동거지가 보통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관리들은 이 사람이 을불이 아닐까 싶어

이 사나이 앞에서 나아가 절을 하고 말했습니다

 

<관리들>지금 국왕이 무도하므로

국상이 군신들과 함께 왕을 폐하려 합니다

 

왕손께서는 행동이 검소하고 인자하며

사람을 사랑하므로

조상의 뜻을 이을 수 있다 생각하여

저희들을 보내 모셔오게 하였습니다

 

이에 을불은 의심하며 말했습니다

 

<을불>나는 평민이오

왕손이 아닙니다 ,

다시 알아 보시오

 

이에 관리들은

 

<관리들>지금 왕이 인심을 잃은지 오래여서

여러 신하들은 왕손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컨대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들은 을불을 모시고 돌아왔고

창조리는 기뻐하며 을불을 남쪽 집에 숨겨 모셔두고서는

봉상왕을 폐하기로 결정합니다

 

봉상왕이 사냥하고 있을때

국상 창조리는 사냥에 따라갔고

창조리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창조리>나와 마음이 같은자는

내가 하는 대로 하라

 

창조리는 곧 모자에 갈대잎을 꽂았습니다

 

고구려인들의 머리장식

 

이에 여러 사람들이 모두 창조리를 따라

갈대잎을 꽂았습니다

 

창조리는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같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함께 봉상왕을 폐해서 별실에 가두었고

곧 을불 왕손을 맞아

옥새를 올리고 왕위에 옹립합니다

 

이 인물이 고구려 15대왕 미천왕 고을불입니다

 

미천왕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벽화

 

[미천왕의 한사군 축출]

왕이 되기전까지 온갖 고생을 한 미천왕은

왕이 되고나서 곧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공격해서 8천명을 사로잡아왔고

 

이후에는 장수를 보내서

요동 서안평을 공격합니다

 

곧이어 미천왕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켜서

중국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땅에 세운 식민기관이었던

한사군을 한국땅에서 완전히 축출해냅니다

 

안악 3호분 벽화 , 행군하는 고구려군사들

 

미천왕은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해

400년동안 중국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던 것을

완전히 청산합니다

 

<고구려인들>드디어 조선땅을 되찾았도다 !

고구려 만세 !

태왕폐하 만세 !

 

<미천왕>이로서 앞으로 고구려는 아주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미천왕이었고

이후 미천왕은 요동을 수복하기 위해

선비족과 연합해서 연나라의 모용외를 공격했지만

모용외는 성문을 굳게 닫고

선비족과 고구려를 이간질시켜 무찔렀고

 

결국 고구려의 요동수복은 이후 광개토대왕때 이루어 집니다

 

<라봉봉>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미천왕으로서

그는 비운의 유소년기를 보내며 소금장수도 하고

온갖 고생을 한 인물이었지만

폭군 봉상왕이 쫓겨나고 왕으로 옹립 된 이후

중국이 한국에 400년동안 식민지배한

중국판 '조선총독부' 였던 한사군을 축출해내고

고조선 고토를 수복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삼국지 시대가

위나라 사마의 집안에서 세운

진나라에 의해 통일됬지만

급속히 무너져버려 다시 분열해 있던 상황이라

한국 식민기관에 힘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고

 

이 기회를 틈탄 미천왕은 적극적으로 중국에 빼앗긴

고토를 수복해냈습니다

 

또 미천왕은 고구려의 중시조(쇠퇴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 로서

이후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까지 모두 미천왕의 후손이고

미천왕은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팽창시킬 수 있는

고구려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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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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