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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역사>

[셀주크 투르크]

[훌라구의 원정과 아바스왕조의 멸망]

[일 칸국]

[티무르 제국]

[오스만 VS 티무르 제국]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오스만 투르크 제국]

<라봉봉>

 

[셀주크 투르크]

아바스왕조는 여러 번영과 쇠퇴를 하다가

동방에서 투르크인들이 세운 셀주크 투르크(셀주크 튀르크 , 셀주크 제국)왕조가 물밀듯이 쳐들와

11세기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중동 전체를 석권했고

 

셀주크 투르크 제국

 

22대 칼리프 알무스탁피때부터는 칼리프는

정치에 힘을 못쓰고 종교적 권위만 겨우 유지하며

점차 정교분리가 시작됩니다

 

셀주크 왕조의 지배자는 술탄(황제) 의 칭호를 받고

칼리프와 술탄의 지위를 분리하고

소아시아~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하며 영토를 넓혔는데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도 정복하고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를 박해했고

이에 분노한 유럽인들은 연합해서 십자군을 결성해

십자군 전쟁으로 셀주크 튀르크와 싸우며

유럽과 중동 서로 모두 힘이 빠지게 됩니다

 

유럽의 십자군 원정 당시 기독교 군대를 물리치고 이슬람세계의 보호자로 활동한 살라딘

 

[훌라구의 원정과 아바스왕조의 멸망]

결국 셀주크 왕조는 100년도 못가서

분열됬고

1157년 호라즘왕조에게 멸망하고

칼리프는 겨우 힘을 되찾습니다

 

몽골침공 직전 호라즘 왕조 영역

 

그러나 곧

동방에서 온 무시무시한 몽골제국의 몽골기병에게

이슬람 제국은 멸망하면서

아바스 왕조가 끝나게 됩니다

 

멸망이라기보다 사실상 강간당했다 표현하는게

적절할듯한데

 

당시 몽골인들은 경무장한 몽골궁기병을 바탕으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쓸어버리고 있었고

다른 민족들이 갑옷을 입던 무장을 하던간에

몽골기병들은 빠른 기동성과 강력한 궁으로 세계의 군대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던 시기입니다

 

몽골기병 , 고구려 벽화에서도 나오는 말을 탄채로 등을 돌려 화살을 쏘는 유목민족 전투방법인 '파르티안 샷' 은 도망치면서 상대방을 살상할 수 있었기에 농경민족 , 일반 병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정복을 시작한 몽골군이 중동까지 도달했고

몽골군 지휘관 훌라구는 바그다드를 공격하며

아바스 왕조 마지막 칼리프 알 무스타심에게

항복을 요구했지만

 

몽골 훌라구

 

알 무스타심은

 

'모든 무슬림들이 날 구하러 올 것이다'

 

며 버텼지만

무슬림들은 도와줄 생각을 안했고

(중동인들을 보면 웃으면 안되는데 유쾌한 그런게 있습니다)

 

결국 알 무스타심은 무슬림들이 안오자

훌라구에게 직접 찾아가 부하와 주민들은 살려달라 간청합니다

 

바그다드 공방전

 

바그다드는 그렇게 항복했지만

몽골군에게는

 

'처음부터 항복하지 않으면 대량학살한다'

 

라는 원칙이 있었고

 

(유일하게 예외였던게 한국 고려였음)

 

결국 처음 몽골군에게 버텼던 바그다드는

함락후 대량학살 , 파괴되는데

몽골군이 바그다드에 입성한 1주일동안

대대적 학살 , 약탈 , 강간 , 파괴가 있었습니다

 

<압둘라 와사프>그들은 비둘기 무리를 공격하는 매서운 매들처럼 ,

혹은 양 떼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포효하는 늑대들처럼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학살했고 온 도시는 공포로 뒤덮였다.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쿠션과 이불은 날카로운 칼로 조각 조각 찟겨졌고

베일 속에 얼굴을 가린 하렘의 여자들은 길거리로 끌려나와 수치를 당했다..

침략자들은 거침 없이 학살을 자행했다

 

최소 9만에서 몇십만의 바그다드 시민이 죽었고

수세대동안 공들여 건설된 장엄한 모스크와 칼리프의 궁전 ,

도서관과 병원이 파괴되며

이슬람 문명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황금빛 문명이

몽골인들에게 개박살나고

아바스 왕조는 멸망하고

오랫동안 오리엔트 , 동방과 세계 문명의 중심소리를 듣던

중동지역은 몽골에 몰락 , 철저히 파괴되어

이성과 과학 , 합리성이 파괴됬고

오늘날까지 세계의 변방으로 추락합니다

 

(몽골인들이 세계의 민폐소리 듣는 이유중 하나)

 

[일 칸국]

동양과 서양을 정복한

몽골제국은 동아시아부터 중동 ,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얻게 되었고

너무 영토가 커서 관리하기 어려웠기에

4개의 칸국(한국) 으로 분열됩니다

 

4칸국과 원나라(몽골제국) 본토

 

훌라구의 정복지인 중동지역은

'일 칸국' 이 들어섰으며

1256년~1335년간 지속됩니다

 

워낙 개성이 강한 페르시아 , 중동 , 이슬람 문명권이었고

먼 몽골 본토에서 관리하기도 어려운 동네였기에

몽골인들은 그냥 페르시아인들을 대부분 관료로 등용했고

결국 그냥 페르시아화 됩니다

 

1335년 일 칸국(일 한국) 지배자 아부 사이드 칸이 자식없이 죽자

통치자가 사라진 일 칸국 정부의 통치력이 상실되

일 칸국은 붕괴됬고

이후 티무르라는 인물이 나타나

칭기즈 칸의 후손을 꼭두각시 칸으로 내세워 집권할때까지

수십년간 혼란상태가 계속됩니다

 

광활한 몽골제국 역시 지배층은 소수였기에

지배받는 민족들의 반발로 빠르게 무너졌고

결국 중국 , 명나라인들에게 쫓겨 1368년 대도(베이징) 를 버리고

북방 초원으로 돌아가며 원나라 , 몽골제국은 멸망합니다

 

[티무르 제국]

이후 중동과 중앙아시아에는

티무르라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다시 혼란의 중앙아시아를 통합하는데

 

티무르

 

티무르는 몽골 차가타이 칸국 출신이며

아버지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이었고

어머니가 칭기즈 칸 후예였고 (백인+황인)

몽골제국+이슬람제국의 동시 재건을 내걸고

티무르 제국을 건국했는데

 

티무르 제국

 

티무르 제국은 몽골+투르크+이슬람+페르시아 등

온갖 민족들을 짬뽕해놓은 것이었고

아까 저도 짬뽕먹었는데

이 '짬뽕' 이라는 말처럼 중동을 잘 설명하는 단어가 또 없습니다

 

(중동은 동서 교역의 중심지여서

중동인들은 의외로 유쾌하며 잘 섞이고 잘 받아들임)

 

티무르는 마치 칭기즈 칸의 환생을 보는 것처럼

젊을적부터 군사능력이 타고났고

25세때 60명의 기병으로 1천 적을 패퇴시키는 등

칭기즈칸 시즌 2를 찍으며

점차 자리를 잡으며 몽골과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아가며

거대제국을 건설합니다

 

티무르 제국은 수도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중계무역으로 발달했고

 

군사적 능력이 뛰어났던 티무르는

화약무기 , 코끼리 , 기병 할 것없이

온갖 최신무기부터 풍토에 맞는 전술까지 흡수하는

티무르의 군사능력에 중동지역은 모두 티무르 제국 아래로 들어갔고

티무르는 말년에는 동방의 중국 명나라를 치려 원정을 준비하다

한겨울에 얼음물을 마셔 열병으로 행군 도중에 사망하게 됩니다

 

역덕들의 만약에 떡밥중 하나 , '만약 티무르 제국 티무르랑 명나라 영락제가 맞다이 뜨면 누가 이겼을까 ?'

 

티무르 없는 티무르 제국은

칭기즈칸없는 몽골제국처럼 곧 혼란에 빠져드나

바로 멸망하지는 않고 좋은 후손들이 나와서 백년 이상을 갑니다

 

[오스만 VS 티무르 제국]

티무르제국이 중동지역에서 강성할때

소아시아 , 터키지역에서 조금씩 커가던

오스만 베이국(오스만 제국의 원형) 은

점차 튀르크계 소국들을 복속시키며 영토를 넓히고

비실거리던 동로마제국을 속국으로 삼아가고 있었는데

 

유럽도 먹어가며 좀 잘나갈까 싶었는데

갑자기 더 동쪽에서 티무르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오스만 베이국은 당황하게 되었고

 

결국 오스만 vs 티무르제국이 싸웠는데

티무르의 군사능력치가 너무 쎘기에

앙카라 전투에서 패배하고

오스만 술탄은 티무르에게 잡혔는데

그는 굴욕을 이기지못해 자살합니다

 

앙카라 전투 , 이때 털린 오스만제국은 이후 재기

 

티무르(지팡이 쥔 인물)에게 잡혀 감금된 바예지드 1세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오스만은 이후 암울한 시대를 지니며 혼란에 빠졌는데

티무르 제국 역시 티무르 사후부터는 옛날만큼이 아니었기에

오스만은 점차 회복하며 다시 중동지역의 패권을 잡아갔고

 

1451년 술탄 자리에 오른 메흐메트 2세 (메메트 2세) 는

1453년 비잔티움 제국 , 동로마를 정복하는데

오랜 수도이자 그리스·로마 및 서양 문명의 자부심이자

유럽 왕중의 왕이었던 로마(동로마) 황제는 이때를 이후로

1000년 왕국을 끝내며 사라지게 됬고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됩니다

 

오스만-로마 전쟁의 끝

 

이 동로마 멸망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특히

세계역사에서 중요한데

중세 유럽의 종말을 상징하는 최신무기인 '화포' 가 등장해

성벽이 무력화됬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 오스만군의 거대화포

 

정치 , 경제적 중심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던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지중해 상인들의 최대 지역이기도 했고

 

3면이 바다에 싸여있는 방어에 최적화된

천혜의 요충지기도 했는데

그나마 서쪽은 열려있지만

기존의 공성법으로는 도저히 함락이 불가능했고

콘스탄티노플은 크고 높은 재래식 성곽요새의 극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재래식 성곽 끝판왕 테오도시우스 성벽

 

일단 술탄의 오스만군은 15만군으로 해협을 넘어

콘스탄티노플을 조지려 했고

특히 여기에는

오스만 최고의 정예보병인 예니체리가 1만명이나 있었고

오스만은 동로마를 멸망시키려 전력을 다 쥐어짠 것이었습니다

 

해협을 넘어 침공을 시작하는 술탄과 오스만군

 

메흐메트 2세는 도착하자마자

바다쪽에서 공격을 위해 함대를 건설했고

2~300척 가량의 대함대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에비해

방어군 병력이 7000명에 불과했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로마 제국 마지막 자존심이자 천혜의 요새답게

난공불락의 성벽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술탄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가

통나무들을 놓아 배들을 언덕너머로 옮겨 금각만에 진입했고

거대한 오스만 함대들이 언덕을 넘는 진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세계사 명장면중 하나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위해 산을 넘는 오스만 제국의 배

 

결국 계속되는 오스만군의 전력공세속에

5월 29일

1000년동안 로마제국을 지켜주던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 무너졌고

성벽안으로 진입한 예니체리 군단은 성벽을 함락시키고

도시로 진입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킵니다

 

술탄은 이 도시를 오스만의 새 수도로 삼기로 결정해

약탈을 막을 했지만

이미 도시에는 살육이 펼쳐져 술탄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메흐메트 2세가 허락한 3일동안 오스만 군대는

살육과 약탈 , 강간을 했으며

4만 도시민중 4천명이 살해당하고

3만명이 노예로 팔려나가거나 도시를 탈출합니다

이때 수많은 동로마 문화유산들이 파괴됩니다

 

약탈당하는 콘스탄티노플

 

파괴된 콘스탄티노플을 본 메흐메트 2세는

눈물흘리며 말했습니다

 

<메흐메트 2세>이게 무슨 꼴인가. 

우리가 이 모든 파괴를 저질렀단 말인가 !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난공불락일줄 알았던 콘스탄티노플은 그렇게 함락되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근본의 나라였던 로마는 오스만인들에게 멸망했고

오스만인들에게는 유럽인들이 중동을 칠때 전진기지로 사용했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안보적 유리함을 얻게되고

또 천혜의 무역항을 얻게 되 지중해 해상권을 독점했고

로마를 정복한 오스만 술탄의 권위가 엄청나게 상승합니다

 

이로인해 오스만국은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고

오스만 제국은 나아가 아프리카 , 중동지역까지 석권해

중동의 새로운 대제국이 탄생하고

오스만 술탄들은 칼리프 지위까지 겸하게 되며 (16세기 초)

이슬람 제국의 종주국이 되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오스만 제국(오스만 투르크 ,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술레이만 1세때

헝가리를 정복하고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했으며

에스파냐와 로마 교황연합군을 격파해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했고

최전성기를 이룩합니다

 

술레이만 1세

 

오스만 제국

 

군사제도로는

'티마르 제도' 라고

군복무에 따라 토지를 봉분받는 지도가 있었고

티마르는 티마르제도하에서 배분되는 영지의 최소단위를 뜻하며

오스만 군인들은 정부에게 토지를 받고

토지세를 받는 대신 전시마다 일정수의 기병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 술탄의 친위부대이자 오스만 제국 최정예 병사인

예니체리가 있었는데

 

예니체리는 기독교도 소년들을 징집해 터키식(터키=투르크) 교육을 시켜

군대에 배치했고

이들은 특권적 지위를 보장받고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예니체리의 소년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차르트 터키행진곡에 영향을 준 예니체리들의 행진

 

오스만제국 최정예 귀족군단 예니체리 , 훗날 세금먹는 하마로 변질

 

오스만 제국은 역시 중동지역의 이미지와 다르게

광대한 다민족국가였기에 타민족에대해 관용정책을 펼쳤고

기독교 , 유대교인들도

인두세(사람 머릿수에 맞춰 걷는 세금 , 인간세)를 납부하면 이슬람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

다양한 종교를 보호했으며

동서 문화를 융합하며

비잔티움(동로마)+튀르크+페르시아+이슬람 문화들이 융합했고

궁정문화와 실용문화가 발달해 주변 지역으로 전파됩니다

 

특히 비잔티움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슐레이만 사원이 유명하고

이슬람 양식의 모스크와 장식미술이 발달합니다

 

이스탄불의 슐레이만 사원

 

콘스탄티노플 함락후 모스크로 개조된 소피아 대성당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게 동로마가 멸망하고

지중해 무역권을 빼앗긴 유럽인들은 분노하며

번성하던 오스만 제국을 동경하면서도

한편 온갖 더럽고 나쁘고 그저 관능적이고 음란한 이미지들을

중동 , 오스만인들에게 뒤집어 씌었고

 

17~18세기 유럽 귀족에게 유행한 터키의 한류격인 '튀르크리' , 모차르트도 터키 문화 애호가였어서 터키행진곡을 남깁니다

 

술탄의 여인들이 모여있는 하렘 , 실제 난교를 한 술탄도 있었는데 서양인들은 오스만제국 , 터키를 까면서도 온갖 환상을 품었고 서양인들이 만든 질투와 선망이 담긴 술탄의 하렘은 과장된 경우가 많다 하고 보통 남녀 격리공간이었다고도 합니다

 

오스만인들이 아시아와의 지중해 무역을 떡하니 가로막고 높은 이익을 취해버리자

유럽인들은 중동에서 받아들인 신기술 , 지구구형설등에 힘입어

지구는 둥그니 반대방향으로 아시아를 갈 수 있다 생각하며

신항로를 개척하게 되었고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 아프리카 개척 ,

아프리카 희망봉을 통한 인도와의 직접교역등으로

결국 오스만 제국은 점차 쇠퇴합니다

 

중간에서 길을 막던 오스만 제국을 우회한 신항로 개척 , 유럽사의 큰 혁명

 

<라봉봉>오스만 제국이 남긴 유산은

튤립 , 커피 등 유럽으로 퍼졌고

풍만한 서양의 공주드레스 역시 오스만제국에서 나왔다 할정도니

당시까지 문화 , 경제 , 사회적으로 압도당하고

중동인들에게 무시당하던 유럽인들의 열등감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참 중동문화가 온갖 동서양 , 남북 문화가 다 섞이는 동네라

되게 독특하고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고

오스만 제국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세계인들의 일상 곳곳에 퍼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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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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