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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멸망과 중동의 민족주의 운동>

[신항로 개척과 오스만 제국의 쇠퇴]

[탄지마트]

[청년 튀르크당]

[오스만 제국의 멸망]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와하브 운동]

[이집트의 독립]

[수에즈 운하]

[아라비아의 로렌스]

<라봉봉>

 

[신항로 개척과 오스만 제국의 쇠퇴]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이스탄불로 바꾸고

유럽지역까지 진출해버려 지중해 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는데

동서양 중간에서 하도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고 갑질을 해대자

분노한 백형들은 다른 길로 무역로를 개척하려 합니다

 

서양인들은 최신 이론이었던 지구 구형설 , 지구는 둥글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구 반대방향으로 돌거나 우회해서 인도로 가려했고

콜럼버스 등 탐험가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신항로가 개척됩니다

 

신항로 개척과 대항해시대의 시작

 

좀 길어지긴 하지만

서양인들은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와 직접교역도 가능해졌고

광활한 아메리카 식민지도 얻었기에

굳이 오스만 제국을 거칠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오스만제국은 동서무역에서 힘을 잃어버렸고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동방무역에서 서양인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후추'

 

서양인들은 이어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동양을 압도하는 공업생산력 및 무기 체계를 가지게 되었고

점차 세계의 중심은 중국도 , 오스만 제국도 아닌 서양 , 영국이 됩니다

 

대영제국(영국) 영토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경제적으로 쇠퇴하던 오스만 제국은 점차

내부 분열 및 관로 · 군인들이 부패해지고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엘리트 군사조직이었던

'예니체리' 는 서양의 압도적 과학기술의 총포 앞에서

구식 군인화되어 이전같은 강성함을 잃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점차 부패한 군벌조직이 되어

세금을 축내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예니체리

 

이에 페르시아 , 동유럽 , 아프리카 등 오스만의 지배지에서는

점차 서양의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오스만 제국에 대한 독립 및 민족운동을 활발히 벌여가기 시작했고

오스만 제국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탄지마트]

이러한 위기의 오스만 제국을 개혁하기 위해

술탄은

1839년 은혜개혁이라 번역되는 '탄지마트' 개혁을 시행하는데

이는 번성하던 서구식 제도를 받아들여

의회 권환 강화 , 백성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제정 , 군 징집방식 변화 등이었습니다

 

탄지마트 ,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 부국강병 노력

 

그러나 탄지마트는

위에서부터의 개혁 및 술탄의 시혜적(은혜를 베품) ,

온정주의적 성격의 개혁이었기에

대한제국 고종(광무황제) 의 광무개혁처럼

군주의 입맛에 거슬리면 바로 나가리 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는 군주권 강화목적이었지

정말 백성들에게 권력을 양도할 생각이 없었다는 한계가 있는

'시혜적 개혁' 이었습니다

 

결국 헌법으로 인해 술탄의 권위가 축소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술탄은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구실로 헌법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고

전제정치를 부활시키며 개혁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한국 고종 역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지원하다가

진짜 민주화될 기세가 보이니 황국협회로 두드려패서 독립협회 탄압)

 

이외에도 서양인들은 강성한 오스만 제국 및 동양세력들이

민주화되고 부국강병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고

제국주의 논리로 후진적인 동양을 정복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구 열강의 간섭등으로도 탄지마트는 견제받아 실패한 것도 있었습니다

 

[청년 튀르크당]

하지만 술탄이 헌법 정지 및 전제정치를 부활시키자

다시 '청년 튀르크 당' 이라는 젊은 학생들이 만든 비밀단체가 점차 커지면서

젊은 지식인 , 육군 장교 , 공무원 등을 빨아들이고 있었고

 

청년 튀르크당

 

결국 청년 튀르크당은

1908년 혁명을 일으켜

헌법의 부활을 요구하며 술탄을 퇴위시켰고

 

1908년 청년 튀르크당의 혁명성공 기념 그림 , 청년 튀르크당이 자유라는 여인을 해방시키고 있습니다

 

입헌 정치 부활 , 서구화 및 여성 지위향상을 노력한

근대식 개혁을 추진했지만

극단적인 튀르크 민족주의와 이민족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며

대내외적인 반발을 샀습니다

 

청년 튀르크당은 술탄을 폐위시킨후

정식 정당으로 승격해

1918년까지 정권을 잡았는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오스만 제국은

가까운 독일 편 , 동맹국에 붙어버립니다

 

동맹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 힘이 약하면 줄이라도 잘서야하는데 그것마저 실패 (ㅠㅠ)

 

청년 튀르크당은 튀르크 민족주의 , 국뽕이 점차 커졌는데

오스만 제국내 타민족들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오스만 정부는 이를 막으려 튀르크 민족주의에 대드는 타민족은

모두 제거한다는 식으로 나와

무슬림 및 아랍인 및 그리스인들 할 것없이

수십만을 학살했으며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려는 이민족을 탄압 , 학살했고

백만명이 넘는(100~150만) 아르메니아인들을 대학살합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는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의 학살지

 

이로인해 현재까지 같은 중동인인 아랍인들도

터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터키를 좋아하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

결국 1차세계대전까지 독일편에 붙었다 패배한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고

오늘날 터키지역으로 쪼그라 들었고

썩을대로 썩은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최대영역과 영토 상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 독립전쟁을 펼친 끝에

술탄을 폐위시켜 1922년 왕정과 오스만 제국을 무너트린 후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며 멸망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멸망으로 그나마 중동권이라며 뭉쳐있던

헬레니즘+이슬람 세계는 드래곤볼이나 사혼의 구슬조각 마냥 완전히 흩어져버렸고

오스만 제국이 말기에 민족 탄압 , 학살때문에

뭉치더라도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서로 같은 이슬람 국가여도 협조도 않고

제대로 뭉치지도 않게 됬고

이후 중동에서 석유까지 콸콸 터져버리자

안락해진 중동은 과거 오스만에 지배받은 역사를 싫어하고

터키에 대해 이를 갈게 됩니다

 

그러나 점차 오늘날 이슬람권 , 중동지역은

서양에 대한 완전히 열세 및 격차가 심해지고 있기에

터키인들은 과거 유럽이 두려워했던

오스만 제국에 대한 과거 뽕에 취하게 되어

'대체역사소설' 도 크게 유행했는데 (현대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꾸거나

역사가 다르게 흘러가거나 하는 역사판타지 소설)

 

그렇다고 중동인들이 오스만제국을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중동지역 , 이슬람 세력들은 현재까지도 잘 뭉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하여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멸망시키고

터키공화국(터키=투르크)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은

초대 대통령이 되어 구시대적인 악습과 왕정정치를 없애려 노력했고

1300여년간 지속된 칼리프 제도를 없애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켰고(정교분리)

 

무스타파 케말

 

여성 교육 , 근대교육 정착에 힘썼으며

구시대의 상징인 히잡 착용 금지 , 복잡한 아랍문자 대신 알파벳 사용

근대 개혁으로 일부다처제 금지 ,

서구식 정부제도 도입 등 여러 개혁에 노력합니다

 

<무스타파 케말의 명언>주권은 제한없이 조건없이 국민의 것이다

 

이로인해 터키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서구적이며 개방적인 나라로 변화했고

무스타파 케말은 지식인적 성향이 강했으며

국제정세에도 밝아 외교도 잘해냈기에

터키의 초석을 잘 다져놨고

터키는 오늘날까지 중동에서 잘사는 나라이기도 해서

터키인들은 무스타파 케말을 아타튀르크 , 튀르크인의 아버지라 부르며

국부라 여기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터키 지폐속 무스타파 케말 , 터키인들이 사랑하는 인물

 

[와하브 운동]

여기까지는 오스만 제국 , 터키의 이야기였고

한편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 , 이슬람 국가들 역시

오스만 제국이 말기 힘이 약해지자 하나 둘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오스만 제국이 퇴물이 되가자

아랍 세계에서는 압둘 와하브가 '와하브 운동' 을 벌여

이슬람교 운동을 벌였고

와하브는

 

'쿠란의 본위로 , 무함마드가 있었던 그 시대로 돌아가자'

 

라 외치며

이슬람교 정화운동을 시작합니다

 

와하브 운동으로 세워진 와하브 왕국

 

또 아랍 문화 부흥운동이 펼쳐져

아랍 문화 고전연구 및 성서가 아랍어로 번역되는 등

아랍인들은 차차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집트의 독립]

이집트가 가장 대표적으로 오스만 제국에 일어난 나라였는데

이집트는 무함마드 알리(전설적 미국 흑인복서와 이름이 같음) 라는

오스만 제국 이집트 총독이

처음엔 알리가 그리스 독립 및 러시아와의 전쟁에 오스만제국에 지원군을 보내주는 대가로

총독직을 세습하려 바꿔보려다 술탄이 거부하자

알리는 반란을 일으켰고

 

무함마드 알리(이집트)

 

알리는 오스만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이 있었지만

영국이 함대를 파견해 위협하자

다시 형식적으로 오스만 속국으로 들어가나

자신의 계획대로 이집트 마지막 왕조를 세우는데 성공했고

1956년까지 무함마드 알리왕조가 존속됩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1922년 영국의 보호국이 됬으며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어도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중동은 동서양의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있어 역사가 복잡합니다)

 

[수에즈 운하]

영국이 이집트를 계속 간섭한 이유는

바로 수에즈 운하 때문인데

이집트인과 서양인들 자본으로 건설된 수에즈 운하는

영국 ,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은 인도나 동남아에서 생산된 수많은 원료들을

본국으로 실어 날라야했고

천혜의 운하인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해야만

멀리 아프리카 남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기에

이집트는 특히나 잘 조져놔야 했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떨구려 합니다

 

수에즈 운하 개통 전후 항로 변화

 

오늘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공모함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건설로 막대한 외채에 허덕이다

영국의 보호국화됩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영국 런던과 인도 뭄바이까지의 거리가 41%가 단축됬고

오늘날까지 수에즈 운하는 아메리카의 파나마 운하와 더불어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교통 요지입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미국이 나서기 전까지

세계 질서를 주도하던 초강대국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 대영제국은

세계에서 영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 The Great Game' 을 을 계속하고 있었고

 

원조 냉전이었던 영국(사자) 과 러시아(곰) 의 그레이트게임 , 가운데는 중앙아시아인으로 그레이트게임은 세계질서를 두고 하는 패권경쟁을 의미하게 됩니다

 

특히나 동양식민지와의 교통 요지였던 오스만 제국 , 중동지역을

잘 조져놔야 했기에

겉으로는 신사답게 행동하면서도

뒤에서는 오스만 제국을 계속해서 지팡이로 뚜까 팹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 동맹국에 가담한 오스만제국의 후방을 조지기 위해

아랍의 현지 토착부족들을에게 민족주의를 불어넣고

계속 선동시켜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영국인들 무셥 ㅠ)

 

이 계획의 일환으로

영국군 중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아라비아에 파견됩니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이 사람은 여러 분야의 학문에 능통했으며

도덕적으로도 완벽했다는 초인 , 천재적 인물로 이야기 되고 있고

평생을 아랍민족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쳐 사막에서 때리고 뒹굴며

온갖 고생을 한 인물입니다

 

1915년 아랍 민족주의 열풍이 불며

아랍 반란의 기미가 보이자

메소포타미아 , 중동 지역은

영국에 새로운 아랍국가에 대한 독립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애초에 중동을 독립시키려는게 아닌

식민지로 만들려했던 영국이 무덤덤하게 있자

오스만 제국에 붙어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았고

그제서야 영국은 신 아랍국가의 독립을 보장해준다 뻥카를 쳐놓습니다

 

1차 세계대전 시기 영국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인 사이크스-피코 협정 , 사이좋게 중동을 따먹는 영국과 프랑스

 

이에따라 카이로에 있는 아랍부서국 정보장교 로렌스는

1916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파견되어

아랍 반란을 지원하려 나섰고

 

당시 영국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적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을 약화시키기 및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아랍을 이용하고

아랍인들 역시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려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았기에

영국과 아랍인들은 새로운 친구가 됩니다

 

파견된 로렌스는 아랍반란군과 함께

오스만 군을 공략해나갔고

온갖 무용담 , 이야기를 남기며

서양과 아랍인들의 전설이 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중동지역 , 아랍은 독립했음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 및

아랍인과 쿠르드인 등 소수민족간의 갈등 ,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여러개로 분열되며 산산이 찢어져버렸고

 

이로인해 아랍을 사랑한 로렌스는 유명세를 이용해

국회의원이나 영화배우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조국 영국에 돌아가 신분과 이름을 숨기고 은거해버렸고

회고록을 썼고

제대한 후

1935년 자신이 애용하던 오토바이를 타다 47세를 일기로 사고로 사망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아라비아의 로렌스'

 

라는 낭만적 이름으로 부르고 있고

그의 일대기는 영화화 되었습니다

 

로렌스의 일대기를 담은 대작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

 

<라봉봉>이 시기부터는 동양은 서양에 완전히 패권을 넘겨주고

무기력하게 이권등을 넘겨주던 시대였으며

서구 열강들의 땅따먹기 시대 , '제국주의 시대' 가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각기의 민족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강대국들에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편 영국인들은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키고

중동지역의 이권을 얻기 위해

중동지역을 산산히 분해시키거나 장난질을 많이 해놨기에

오늘날까지 중동지역은 반서구감정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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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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