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집트 문명>

[나일강의 범람]

[이집트 문명]

[태양신 '라'와 오시리스]

[오시리스의 심판]

[사자의 서]

[미라]

[피라미드]

[이집트 문화]

<라봉봉>

 

[나일강의 범람]

오리엔트 세계의 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연관이 깊고

뚜렷히 대비되기도 하기에 보통 같이 이야기하나

중동사 역시 뚜렷한 색이 있기에 따로썼고

이집트는 아프리카사와 함께 쓰려 합니다

 

먼저 이집트 문명은

세계 4대문명중 하나로서

나일강유역을 끼고 발전합니다

 

이집트 문명과 나일강

 

나일강 유역은 정기적으로 범람했는데

강이 범람하면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 부식토가 하류로 가득 옮겨져

지력(땅의 힘) 을 매우 높여주었기에

이로인해 땅이 비옥하고 기름져서 대규모 관개농업이 발달했고

다른 지역들보다 농사가 훨씬 쉬워

적은 노력으로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으며

풍요로운 나일강 삼각주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중 하나이자

 

나일강 삼각주

 

오늘날 이집트 인구 8천만인구 대부분이 모여사는 비옥한 지역이고

이집트는 이후에도 이로인해 지중해 및 헬레니즘 세계의 곡식창고가 됩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비옥한 나일강

 

일단 나일강이 범람하고 나면

강가에 매우 비옥한 퇴적토가 쌓였고

이집트 농부들은 슬렁슬렁 씨앗들을 대충 뿌린다음에

소와 돼지를 풀어서 소와 돼지들이 이리저리 신나게 날뛰고 나면

씨가 밟혀 들어가 심어졌고

이렇게 대충 심어도 엄청난 양의 농작물이 수확됩니다

 

밀농사짓는 이집트인들

 

[이집트 문명]

이로인해 비옥한 나일강 유역에서

대규모 공동체가 발달하며 이집트 문명이 생겨납니다

 

이집트왕 '파라오' 와 이집트 문명

 

이집트는 가히 천혜의 축복받은 땅이었는데

농사가 매우쉽고 사방이 바다 , 사막으로 둘러쌓여있어

외적의 침입도 없다싶이해

경제적 , 시간적 여유가 많은 이집트인들은

현세보다는 내세적 문화에 빠져들었고

 

역시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사이에서 농사가 잘됬지만

개방적인 평야지역으로 인해 전쟁 , 정복이 활발해

현세적인 문화가 발전한 메소포타미아문명과는 뚜렷히 대비됩니다

 

오리엔트 문명 혹은 헬레니즘 세계라 묶여불리기도 하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 문명

 

여유가 넘친 이집트인들은

그저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면 됬기에

그 시간동안 각종 건축 , 예술 , 학문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로인해 각종 대규모 토목사업을 하고

왕의 무덤 피라미드 등의 엄청난 규모의 유적을 남기게 되었고

서양인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동방세계 및

신문물을 가져다오는 세계로 여기며

해가뜨는 곳 , 오리엔트라 부르며

동경 , 존경했습니다

 

<로마속담>

'빛은 동방으로부터

Lux ex Orient ,

Light from the east'

 

이집트는 외세의 침입이 적어

오랫동안 통일왕국을 유지할 수 있었고

국왕 파라오(태양신 '라' 의 아들) 의 신권정치가 행해졌으며

영혼 불멸사상 및 사후세계를 믿는 내세적 종교관이 발달합니다

 

[태양신 '라'와 오시리스]

이집트 신화는 참 독특하며

내세관 , 영생 등으로

여러 종교에 영향을 주었는데

 

먼저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신이며 최초의 신왕은 새의 얼굴을 가진 신

태양신 '라' 였고

 

새의 얼굴을 한 태양신 라

 

신들과 인간들이 지상에서 함께 살았던

라의 시대의 이집트는 지상의 천국이었는데

라는 인간을 말살하려다 하늘로 돌아갔고

 

이후 라의 손자 오시리스가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오시리스는 '착한존재' 라는 뜻의 우시르에서 나온 말로서

이집트를 훌륭하게 다스렸고

 

오시리스

 

오시리스(선 , 질서를 상징)는 인간에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빵과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 착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위를 탐낸 동생 세트(악 , 무질서를 상징) 는 음모를 꾸며

오시리스를 살해하고 시체를 나일강에 버렸는데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가 유해를 겨우 찾아 이집트로 가져왔는데

 

악의 신 세트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 , 무척 아름다운 여신이자 부창부수답게 현명한 신이었습니다

 

이에 세트는 다시 오시리스의 시신을 빼앗아

14토막을 내서 전국 곳곳에 버립니다

 

이에 이시스는 다시 시체조각을 모았는데

13조각을 모았지만 마지막 조각인 오시리스의 생식기는

나일강의 물고기가 먹어버린 바람에

찾지 못했고

 

(이로인해 이집트인들은 물고기를 부정적이게 여기며 잘 먹지 않음)

 

이시스는 결국 없어진 생식기는 진흙으로 빚어 대체합니다

 

참고로 나일강은 남편잃은 이시스의 눈물로서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의 범람과 풍요는

신의 형벌이면서 신의 은총이었습니다

 

이시스의 눈물 나일강

 

하여튼 이시스는 아누비스 신의 도움을 받아

오시리스의 유해를 미라로 만들고

주술로 미라가 된 오시리스를 부활시킵니다

 

이때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져

나일강 습지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고

호루스는 아버지의 원수 세트와 싸워이겨

지상의 왕이 됩니다

 

호루스(라와 비슷)

 

한편 세트는 오시리스가 성기없이 부활했기에

신들의 회의에서 호루스가 왕이 될 수 없다했지만

신들은 직접 성행위가 없어도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결론내렸고 (이게 무슨소리야 ..)

 

하여튼 이로인해

호루스는 지상의 왕이 되고

지하세계로 내려간

호루스의 아버지 오시리스는 명계 , 저승의 왕이 됩니다

 

로마는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

이집트 종교를 탄압하고 끊임없이 기독교 부흥에 심혈을 쏟았지만

이집트인들은 로마의 끈질긴 탄압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는 오시리스를 믿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세트에 살해당한 오시리스(선)가 부활하고

세트(악)를 물리친 것은

악을 물리친후 선에 대한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했습니다

 

(기독교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비슷)

 

저승의 왕 오시리스는 저승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판단하는 일을 했고

삶과 죽음 , 부활을 관장하는 창조신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은

해가 지고 뜨는것과 나일강이 범람하고 풍년이 드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집트 생존의 토대가 된

해와 나일강이었기에 이집트인들은 풍요로운 농사를

오시리스의 덕으로 돌리며 오시리스를 찬양하면

나일강가에서 영원한 번영을 보장받을 것이라 믿었고

이에 오시리스의 이름을 부르며

다양한 의식들을 행하게 됩니다

 

오시리스의 상징은 나팔과 양치기의 지팡이였기에

나팔과 지팡이는 파라오들의 상징이 됬고

오시리스는 이집트 통치자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든 오시리스

 

[오시리스의 심판]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이란

 

'부활을 위해 불가피하게 통과해야 할 단계'

 

였는데

 

죽음은 영생의 과정중 하나일 뿐이었고

죽은 자는 저승세계에서 심판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되어있고

이 과정을 거치고 영생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여겼습니다

 

이 심판을

'오시리스의 심판' 이라 했는데

 

이집트인들은 죽으면

오시리스가 있는 지하세계로 가서

심장 무게달기 의식을 치르는데

 

평형저울 한쪽에

깃털을 올리고 다른 한쪽에는 죽은자의 심장을 올려 무게를 재는데

악한 행동을 많이하면 심장이 무거워지기에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그 자리에서

괴물 암무트(악어머리 , 사자의 앞발 , 하마의 뒷발) 가

먹어치워서 영혼이 소멸하고

반대로 저울이 균형을 이루면

오시리스 왕국에서 영원의 삶을 얻게 됩니다

 

오시리스의 저울

 

저승신 오시리스는

이러한 망자의 심판을 판결내렸고

심장 무게달기 의식은 현대의 사법제도와도 많은 유사성을 가집니다

 

오시리스의 심판

 

이 재판에서 죽음과 부활신 오시리스는 판결 ,

지식과 달의신 토트는 서기 ,

죽음의 신 아누비스는 안내자 ,

괴물 암무트는 집행관 ,

파라오와 왕권을 상징하는 호루스는 죽은자의 고백을 유도하는

검사 역활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저울 이야기를 참 인상깊게 봤는데

'죄의 무게에서 우리는 당당할 수 있는가 ?'

나 인간의 죄악의 무게는 매우 가벼운 깃털만큼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고대인들의 깊은 뜻이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자의 서]

이집트인들은 죽은자를 미라로 만든 후

이집트 종이인 파피루스나 가죽등에

교훈이나 주문등을 상형문자로 기록한 '사자의 서' 를

관속에 같이 넣어 매장했고

사자의 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을 변론하는 방법 ,

기도 , 주문등의 내용이 있었고

죽은자의 영혼이 이 책의 안내를 받아

지하세계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자의 서에 언급된 이집트인들이 지상에서 하지말아야 할 행위들>

강도질 , 거짓말 , 살해 , 신에 대한 저주 , 간음 , 사악한 말 , 인신공격 ,

남을 속임 , 남의 이야기 엿듣기 , 이유 없이 화내기 , 법을 어기는 행위 ,

폭력 , 경솔함 , 부덕한 행위 등

 

사자의 서

 

[미라]

이집인들은 일단 풍요롭고 시간이 넉넉해서

죽은자들에 대한 제사와 의식에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사후사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로 돌아와 되살아난다 믿었기에

그동안 육신이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 믿어서

시체를 온갖 약학지식을 동원해 방부처리해서 미라로 만듭니다

(아오 무셔)

 

이집트 미라

 

이집트인들은 시체에서 심장을 제외한 내장을 빼내서

다른 물질로 채웠고

상류층들은 송진과 향료를 ,

하류층들은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었습니다

(ㄹㅇ 무셥 ,,)

 

이후 몸을 붕대로 감아

관에 넣으면 끝나게 되었습니다

 

미라에서

심장은 빼지 않았는데

이집트인들은 생각은 뇌가 아닌 심장으로 한다 생각했고

지하세계에서 오시리스가 저울에 심장을 저울에 달아

선악을 판별해 저승행 혹은 천국행으로 하는 척도로 삼는 중요한 장기라 생각했기에

심장만은 꺼낸 다음 따로 붕대로 쌓아 다시넣거나 했다하고

심장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양심과 같은 개념이었기에

중요시 여겨졌습니다

 

사자의서 속에서 심장의 저울질

 

한편 이집트인들은 뇌는 중요한 기관인지 몰랐기에

미라 제작시 뇌를 제거했고

콧구멍에 갈고리랑 주걱을 쑤셔넣어 코와 머리가 연결된 곳의 뼈를 부순다음

뇌를 뽑아내거나

머리 뒤에 구멍을 내어 그 구멍으로 뇌를 꺼냈다 하고

뇌를 꺼낸 자리는 송진(상류층) , 톱밥과 돌 (하류층) 등으로 채웠습니다

 

간 , 폐 , 위 등의 나머지 장기는 따로 방부처리해서

용기에 담았다고도 하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만들기를 많이해서

개나 고양이같은 친숙한 동물이나 왠만한 동물들까지

미라로 만들어 묘지에 안치시킵니다

 

고양이 미라

 

이렇게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집트에서는 의학과 외과의학이 발달하기도 했고

(;; , 의외로 연금술처럼 뻘짓에 열중하다 과학이 발전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피라미드]

또 이런 시체들을 묻는 무덤들을 만들며 건축 , 측량술 , 수학 , 기하학이 발달합니다

대표적 무덤은

이집트왕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인데

피라미드는 고인돌처럼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한 거석 무덤이기에

클수록 왕의 권위를 상징했고

그냥 엄청나게 컸습니다

 

가장 큰 피라미드 쿠푸왕의 피라미드

 

나일강이 범람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동안

할짓없는 이집트인들은 미라맨들기 , 피라미드 맨들기에 열중했고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피라미드 건설에

20만명의 노예들이 동원되었다하나

오늘날 학자들은

나일강이 범람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기간동안

이집트 정부에서는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농부들에게 피라미드 건설을 시켰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피라미드는

그냥 무식하게 큰 돌을 균형있게 쌓아서 산처럼 쌓은 것인데

엄청나게 컸고 산에서 돌을 채취해서 강에 띄워 옮긴 후

나무위에 올려 굴려서 하나하나 쌓는 생노가다였습니다

 

피라미드 건설과정

 

이집트가 풍요로울 시기에는

나름 노예 , 자유민들이 이런저런 꾀병도 대며 건설에서 째기도 하고

여유있게 쌓기도 했지만

점차 이집트 고왕국이 쇠락하고

귀족과 노예들의 신분이 뒤바뀌는 사회변동이 일어나고

역병과 가뭄이 닥치는 등 사회혼란이 일어나자

피라미드같은 복잡하고 거대한 건축물은 점차 축조가 어려워졌고

 

중왕국시대부터는 대충 흙무더기수준으로 무덤을 만들다가

이집트가 국력을 다시 회복한 신왕국시대부터는

피라미드 건축법도 까먹고 피라미드 건축할 이유도 점차 사라져가서

왕의 시신은 피라미드가 아닌 왕가의 계곡에 매장했고

왕가의 계곡은 오랫동안 비밀이었지만

도굴꾼들에게 대부분 털렸고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이 온전하게 발견되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이집트 문화]

이집트인들은 자신의 글자를

상형문자(그림문자) 로 기록했고

나일강가에서 자라는 갈대 식물 파피루스 줄기로

종이 비슷한 것을 만들어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를 기록합니다

 

이집트 상형문자

 

파피루스 식물

 

파피루스 종이에 기록된 상형문자

 

달의 신 난나와 달을 숭배한 메소포타미아인들과 달리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 및 태양을 숭배했고

 

태음력과 60진법을 사용한 메소포타미아인들과 달리

이집트인들은 태양력과 10진법을 사용합니다

(1 , 10 , 100 , 1000)

 

이집트 십진법

 

<라봉봉>이집트 문명쓰다보니

계속 어릴때했던 유희왕 카드게임이 생각나는데

제가 또 초등학교 유희왕 1위 및 유희왕 카드 대회 3등출신이라

이런걸 잘 압니다

 

실제 유희왕 만화와 카드게임의 배경이 고대이집트 및 파라오 설화이고

태양신 라 , 오시리스 , 호루스 등 여러 이집트 신화속 신들이 등장해

참 친숙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단지 로마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집트 신앙을 탄압한 것 때문에

이집트 신앙과 문화들은 미개하고 관능적이고 잔인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뒤집어 씌어졌는데

의외로 서양인들이 동양에 이런 미개한 이미지를 많이 뒤집어 씌운 감이 있고

이는 옛날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을 그저 미개하고 잔인한 오랑캐녀석들이라 여긴 것과 비슷한 것으로서

 

실제로는 다들 사람사는 곳이고 문명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성과 문화를 중요시한다는 것이기에

알면 알수록 참 선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오시리스나 이시스 역시 현명하고 착한 이집트의 신이었고

이집트인들의 문화와 종교등은 세계 곳곳에 여러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