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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최고명군 영조>

[조선후기 최고명군 영조]

[영조의 혈통 콤플렉스]

[공부만이 살길]

[오늘의 공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탕평정치]

[균역법]

[백성을 위한 영조]

[속대전]

<라봉봉>

 

[조선후기 최고명군 영조]

숙종과 천민 어머니 숙빈최씨(최무수리)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었지만

총명하고 냉철한 모습으로

피비린내나는 정쟁속에서 살아남아 조선 21대왕이 된 영조는

조선 후기 최고의 명군답게

개혁군주의 모습을 보이며 후기 조선을 번영시킵니다

 

조선 21대왕 영조

 

[영조의 혈통 콤플렉스]

비록 조선 14대왕 선조가 방계출신 임금이어서 평생 출신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선조의 어머니는 엄연히 세종대 신하 정인지 가문의 후손인 정씨부인으로서 양갓집 규수였고

 

영조는 정말 어머니가

궁중에서 궁녀들을 보조하며 물뜨기나 불지피기처럼

고된 노동 , 허드렛일 하는

천민출신 무수리였기에

출생도 듣보잡이었고

 

그냥 숙종이 인현왕후 VS 장희빈이 한창 맞다이를 뜨고 있던 시기

우연히 인현왕후의 시녀였던 최씨 무수리를 건들여서 임신시킨 케이스라

 

적어도 부잣집(역관 , 중인계급) 딸이었던 장희빈이 낳은 경종보다 

더 ㅎㅌㅊ 신분의 어머니를 둔 영조였고

 

영조는 어머니의 불확실하고 천한신분때문에

왕이 되고나서도 

유래가 없는 천민의 피가 섞인 조선 임금이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옛날 조선 건국세력들이 

공민왕+신돈 시녀 반야 출생이 우왕이었기에

우왕이 공민왕 아들이 아니고 신돈이 낳은 아들이라고 음해했듯이

 

영조 반대세력들도

영조의 어머니가 불확실한 신분이었기에

사실 영조는 아버지가 다른 형이 있다거나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닌 최무수리의 전남편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돈다거나 하는

찌라시를 퍼트리며

영조를 음해했고

 

이에 영조는 평생동안 부들부들 떨게 되었고

단지 어머니가 최씨라는 것 이외엔 불분명해

해주최씨 족보에도 실리지 못하고 이름만 전해지던

듣보잡 가문이었던 최씨집안을 찾아내

이미 죽은 숙빈최씨의 할아버지 , 아버지 등에게

이조판서 , 영의정 등 고위 재상직을 마구 추증해줍니다

 

영조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유래가 없이

천민의 아들이 왕이 된 케이스인데

그렇지만 당시 숙종의 아들이 영조뿐이고

 

나름 숙빈최씨 역시 출생은 미약해도

지모가 뛰어나 숙종비 인현왕후와 숙종이 인정한 인물이었고

그렇다고 신하들이 역적이 된 장희빈쪽을 지지할 수도 없었기에

 

(영조네 집안 혈통도 ㅎㅌㅊ인데

다른 혈통 좋은애들이

ㅆㅎㅌㅊ 짓으로 자폭 , 강등되어버려

ㅎㅌㅊ 혈통이 왕이 된 케이스)

 

신하들도 어찌 할 수 없어

영조의 역린(콤플렉스) 였던 어머니 혈통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쫌생이 기질이 오졌던 영조 역시 이런 말만 나오면 발작스위치 눌리듯이

ㅈㄴ게 듣기 싫어했기에

신하들은 영조가 무서워서 그냥 영조 앞에서는 서얼이니 출신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영조의 발작스위치였던 혈통

 

하여튼 신하들도 일단 강성한 여당이었던 노론이 영조의 절대적 우군이 되어주기도 했고

신하들도 영조의 뛰어남과 성질머리를 잘 알았기에

ㅈㄴ게 사렸고

 

영조는 기대에 부합하듯

명군의 자질을 보입니다

 

[공부만이 살길]

혈연적 콤플렉스가 오지고 지렸던 영조는

자신의 부족함을 능력으로 채우려 했고

 

유래없이 천민 피가 섞인 임금으로 즉위한 영조는

즉위후 왕의 시험대에 올라

부족함을 공부로 채웁니다

 

호학(학문을 좋아함) 의 군주였던 영조 , 사도 (2015) 思悼, The Throne

 

영조는 왕자 연잉군 시절

10년동안 숙종의 병을 간호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딱히 없었고

 

또 굳이 왕실 종친(왕족)이 똑똑하면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옛날부터 세자가 아닌 왕족들은 공부가 장려되지 않았고

종친들은 대충 세금 타먹으면서 편안히 살며

혹시 모를 이씨 왕실의 비상상황에 대비해

씨나 뿌리다 죽으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한창 숙종~경종시절 계속되는 환국(숙청) 속에

영조 역시 몸을 오지게 사리고 있었던 시기라

잘난모습 보이거나 총명하면 좆되는 상황이었고

 

이에 영조는 자질이 똑똑했음에도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았고

독서도 늦어서

연잉군 영조는 경종때 28세에 왕세제(경종은 아들 , 세자가 없어서 동생이었던 영조가 세제가 됨)

가 되었을때도

연잉군은 워낙 읽은 책이 적어서

왕세제 서연(왕세제 국왕교육) 때에 첫교재로

소학을 선택하는데

 

소학은 8세 어린이들에게 유교를 가르치는 유교 입문서로서

28세의 나이든 차기 왕위 계승권자에게 신하들이

즐거운 생활 , 바른생활 , 말하기·듣기·쓰기 같은

씹초딩책을 가르치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됩니다

 

 

어린이 서적부터 공부한 나이든 왕세제 연잉군

 

사실 저는 공부는 99프로가 후천적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생각되는데

천성적으론 영민한 영조였지만

공부할 여건 , 상황이 안되서 후천적으론 빡대가리였던 영조는

 

세제가 되어서 일단 자신이 차기 왕이 될거 같은 느낌이 오긴 오는데

어머니가 혈통도 ㅎㅌㅊ라 밀어줄 외가세력이나 뒷배도 없었고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던 신하들도

무식한 영조를 데리고 놀며 국정을 장악할 가능성도 충분했기에

 

세제가 된 후부터는 공부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공부 , 공부 , 공부에 매진합니다

 

누군가는 공부가 출세를 위한다거나 부모가 시켜서 억지로 하기도 한다만

가장 좋은 공부는 살기위한 , 필요를 느껴서 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영조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것이었고

 

오히려 영조가 더 멍청하거나 악했더라면

주변인들의 바람에 휩쓸려 무능한 왕족으로 세월을 보낸다거나

괜히 어린나이에 어중간하게 공부를 하며 이도저도 아닐 수도 있었고

 

오히려 배운것은 없어도 선한 마음으로 아버지 병수발을 든다거나

글공부에 적극적이지 않는 올바른 종친의 모습으로

적대세력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거나 하는 등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잘 적응했던 영조였기에

 

글공부는 늦었지만

오히려 몸으로 진짜 사회공부를 하고 있었던 영조였고

 

결국 아버지 간호 등 고된 잡일들을 하며

사회공부는 마스터한 연잉군은

차기 국왕자리라는 세제에 책봉되어

뒤늦게서라도 글공부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 영조에게 갖춰졌다 생각됩니다

 

 

[오늘의 공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천민 어머니의 피를 받아 태어난 영조에게 독서 , 글공부는

콧대높은 명문가문 출신 엘리트 신하들 , 반대세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고

 

사실 학벌이니 하는 것들과 지능은 정비례하는 것만이 아니기에

멍청한 인물들은 아무리 집안이 좋던 학벌 , 직업이 좋던

어떻게던 꼬투리가 잡혀서 까이게 되있고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

다 명문가 , 과거합격자 , 서울대 , 판검사 출신인데 왜 욕먹을까요 ?)

 

반대로 어느 나라 , 집단을 막론하건

왕이던 사장이 똑똑하면 원래 

천민 출신이던 , 초졸이던 간에 신하나 직원들은 함부로 못개깁니다

 

<영조 어록>오늘의 공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미 왕자시절부터 정쟁속에서 살아남으며

사회생활 만렙찍은 영조는

점차 왕세제 , 국왕이 되며

글공부도 만렙을 찍어가기 시작했고

모처럼만에 조선에 문무겸비의 씹사기 캐릭 인물이 나오게 됩니다

 

결국 스텟을 독서에 몰빵 하며 지능 어빌리티가 급격히 상승한 영조는

온갖 책을 보며 정치력 레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에 신하들은 점차 영조의 정치력에 압도되기 시작했고

영조의 지력에 크게 쫄며

점차 여우화 되는 영조의 농간에 따먹히기 시작합니다

 

영조는 어머니 숙빈 최씨(최무수리)가 천민출신에 배운게 없음에도

총명하고 냉철한 모습을 보이며 숙종의 총애와 서인들의 권력 버프를 받아낸 것처럼

 

냉철하고 총명한 성격의 어머니를 그대로 닮았는데

가끔 애비(숙종)처럼 불같이 욱하는 기질이 있었던 인물이었고

 

하여튼 그럼에도 신하들을 분열 , 이간시키면서 권력을 강화시킨

아버지 숙종과 달리

세종대왕처럼 부지런한 자기계발 , 독서을 통해

자신의 순수 능력치를 높여버리며 권력을 강화시킨

총명한 명군 영조는

 

지도자의 올바른 권력강화의 모범을 보인 인물입니다

 

[탕평정치]

유달리 빼어나게 총명했던 영조는

어린시절부터 선대왕 숙종 , 

이복형님 경종의 사랑을 받으며

신하들 사이에서도 차기 조선의 미래로 낙점된 인물이었고

 

영조는 왕이 되고나서는

반대파였던 이복형 경종이 자신을 살려둔 은혜에 감동해

형님의 뜻을 받들어 

이전처럼 신하들이 세력으로 정쟁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화합의 정치를 추구해

탕평정치를 시행합니다

 

탕평은

 

'치우침이 없으면 왕도가 탕탕하고 평평하다'

 

라는 

서경 구절에서 나온 말로서

 

극심하게 분열 , 서로 살육하고 있었던 영조 이전 왕들의 신하들이었기에

이런 정쟁속에서 겨우 살아남으며

정쟁의 위험함을 직접 몸으로 느낀

영조는 더이상 이러면 안됨을 알고

탕평책이라 이름붙인 화합 , 통합의 정치를 추구합니다

 

탕평정치

 

영조는 붕당 , 당파의 존재를 경계하며

당파를 가리지 않고 온건하고 유연한 인물들을 등용하려 노력했고

노론과 소론 뿐만아닌

남인과 북인까지 끌여들이며 연립정권을 형성합니다

 

[균역법]

그렇게 신하들의 분열을 통합한 영조는

백성들의 삶 변화 , 민생안정에도 주력했고

 

본인 스스로와 자기 자식과 신하들에겐 냉정 , 엄격했지만

백성들에겐 한없이 호구+착한 왕이었던 영조는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야했던 군포 ,

군인들이 입는 옷감을

원래 2필내야하는 것을 50% 할인해주어 1필로 바꾸는

'균역법' 을 실시해 반값세금으로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균역법

 

영조는 또한 태종대 시작된 신문고 제도를 부활시켜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쳐서 왕에게 알리게 했습니다

 

억울한 백성은 북을 두드리시오 ! , 신문고

 

[백성을 위한 영조]

또한 똑똑한 영조는

죄수인권까지 관심을 가지며

잔혹한 중세식 형벌제도를 폐지했는데

 

불에 담근 쇠로 몸을 지지는 고문 ,

사극 추노에 나온것처럼 얼굴에 죄인이라 먹물 문신을 시키는

가혹한 형벌들을 없앴고

 

죄인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악형 '자자형' , KBS 특별기획드라마 : 추노

 

또한 사형수 삼심제를 엄격히 시행했고

 

당대에도

 

'죄인들은 사람취급하면 안되제 ~'

 

하는 부류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지만

 

이런 것들이 지금 보기에 너무 야만적이고 미개한 형벌이기도 하기에

이런 죄인의 영역 , 어두운 부분까지 손을 댄 영조가 그만큼

깨어있고 머리가 엄청나게 총명했던 조선 지식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사치를 싫어한 영조는 금주령을 실시하는데

원래 술을 빚으면 곡식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고

술을 마시면 노동 , 생산력이 떨어지기에

금주령은 역사적으로 예로부터 오늘날 사회 곳곳까지 꾸준히 있어왔는데

 

월하취생도 , 단원 김홍도

 

영조는 유독 술에는 매우 엄격해서

술을 몰래라도 마시면 사형을 때리거나 하는 등

수십년간 금주령을 내려서

쫌생이 , 독재자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속대전]

이외에도 영조는

조선 후기의 학문 , 문학왕답게

법에도 손을 대서

속대전이라는 경국대전(조선 법전) 의 추가 패치본을 내놓았고

 

속대전

 

성종시대에 만들어진 경국대전은

시대가 많이 지나며 속대전이 만들어지는 260년이라는 쿨타임동안

새로운 현상들도 나타나고

새로운 법들도 야매로 만들어지기도 했기에

 

성종이 만든 경국대전이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날이라면

영조가 만든 속대전은 메딕과 럴커가 추가된 스타크래프트 부르드워라고 보면 됩니다

 

또한 경국대전이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법전답게

중세 야만의 흔적+관료 중심의 서민들에게 엄격한 꼰대성향이 강한 법이었다면

 

속대전은 조선 후기 , 애민군주 영조가 만든 법전답게

서민들에 대한 신중과 관용이 들어있고

권력자에 의해 남용되던 가혹한 형벌 , 악형을 폐지하는데 주력됩니다

 

하여튼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경국대전의 한계를 느낀 영조가

조선후기를 통치하기 위해

경국대전 편찬 260년만에 만든 것이 속대전이었고

속대전에는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영조의 애민정신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영조의 속대전 편찬 명령>형법이 밝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데가 없다

 

또한 영조는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거나

서울 청계천을 준설해 하수도 문제를 해결하는 등

 

수문 위에서 공사현장을 감독하는 영조 , 수문상친림관역도

 

뛰어난 문치주의+명군의 모습을 보입니다

 

영조대에는 국제적으로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번영하고

평화롭게 번영하던 좋은 시기이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급변한 조선 후기에 번영의 기반을 다진 

조선 후기 최고의 명군이었습니다

 

(조선 전기 최고는 말할것도 없이 세종대왕)

 

<라봉봉>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죽여버린 잔혹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

조선후기 최고 명군 이미지가 정조보다 덜한데

 

실제론 아버지로선 ㅆㅎㅌㅊ였지만

정치인 , 왕으로선 ㅆㅅㅌㅊ 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치 , 기대치를 따라오지 못한

못난 아들 사도세자을 죽이고나서야

아차했던 영조지만

아들은 이미 죽어버린 후였고

그렇게 영조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쓰게 됩니다

 

영조는 일단 유능했는데

공부도 되게 많이한 지식인 성향의 임금이었고

국제 정세도 평화기였기에

조선은 영조대부터 태평성대가 시작됩니다

 

숙종대부터 번영한 경제는

영조대부터 문화를 활짝 꽃피우게 했으며

그렇게 조선 후기 문화는 영조대 활짝 꽃을 피워냈고

이에 영조는 냉철한 이미지와 달리

시호에 꽃 영자가 붙어 

꽃임금 , 영조가 됩니다

 

자 우린 영조에게 이런것을 배워야 합니다

흙수저가 성공하려면 공부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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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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