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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와 제6공화국>

[제6공화국]

[최저 득표율]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노태우 VS 전두환]

[물태우]

[임금인상]

[산업화와 민주화가 만나다]

[범죄와의 전쟁]

[선진교통국가]

[북방외교]

[서울올림픽]

[노태우 비자금 사건]

[부동산 폭등]

[대학증설]

[출산문제와 도농격차]

[보통사람의 한계]

<라봉봉>

 

[제6공화국]

그렇게 노태우는

1987년 6.10항쟁으로 제5공화국이 폐지되고

처음 시작되는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VS 김대중 구도로 표가 갈리는 틈에

신군부출신임에도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제6공화국의

첫번째 대통령이자 서울올림픽을 겪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세하는 노태우 후보

 

대한민국 제6공화국 첫번째 대통령 노태우의 선서

 

[최저 득표율]

노태우는 이전부터 인간관계를 예술의 경지라 생각했다거나

남의 말을 경청 , 인내하는 습관 등이 있었기에

전두환이 군부뿐만 아닌 정치계에서도 2인자로서 발탁할 수 밖에 없었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2인자로 유명한 김종필과 노태우

 

내무부 장관 시절에도

무사명 , 무책임 , 무소견 , 무기력을 추방하자는 구호를 내걸며

4무장관이라도 불렸으며

 

가오잡는 노태우 장관

 

계속 승승장구하며 민주정의당 당권을 장악하고

전두환의 적극 지원사격으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전두환은 원래 7년 하고 7년 더해서

대통령 7년씩 두번하려는 생각이었지만 (끔찍ㅋㅋ)

1987년 6월항쟁으로

강력하게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항복해서 직선제를 인정하고

울며겨자먹기로 노태우를 후계자로 앉힌 후 대선에 내보낸 것이었고

 

대선출마전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워낙 민심이 안좋았기에

전두환 역시 노태우 당선에 회의적이었고 패배를 예상했지만

민주화운동가 거물인 김영삼이랑 김대중이 각기 단독출마해버렸기에

표가 거대하게 갈려

노태우는 ㅆㅎㅌㅊ 득표율로 당선 되었고

노태우의 36.6이라는 ㅆㅎㅌㅊ 득표율은 

오늘날 2020년에도 깨지지 않았고

탄핵정국 19대대선에

5자구도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41.1% 보다

ㅎㅌㅊ당선으로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아이조아

 

당시 흥분하며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들은

또다시 신군부 출신 노태우가 당선되버리자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노태우는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 라는 슬로건을 걸고 당선되었고

 

보통왕 노보통

 

그럼에도 민주화르 열망하던 민심은 노태우를 인정하지 않고 매우 싫어했기에

노태우 역시 대통령이 되고서도

최대한 사리며

이전 강력철권통치를 했던 두 군사독재자 선배

박정희 , 전두환에 비해

보통사람을 내세우며 군부 색을 빼고

평범한 민간인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려 노력했습니다

 

 

노태우는 선한얼굴의 온건 대통령이었지만

그러나 ,

그렇다고

이미 12.12 쿠데타 1등공신 , 광주학살범 , 5공화국 핵심정치인이라는

캐쓰래기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국민들 역시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당선시키지 못한것에

엄청난 아쉬움이 많았기에

곧바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태우의 당 ,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과반수 의석확보에 실패해

여소야대 국회가 시작되었고

 

13대 국회 , 좆되버린 민정당(파란색)

 

옛날로 치면 왕(대통령) 에게

반대하는 신하들(국회의원) 이

쫙깔린 상황이었기에

왕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화 되는 것이고

 

노태우 역시 마찬가지로

대통령임에도 일을 추진할

힘이 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노태우의 성향은

온건 , 온화한 편이라

정부내 여야갈등이나 별다른 일은 없었는데

 

재임시기 노태우 대통령

 

노태우는 나름 자신은 민간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임을 강조하며

자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이자

자신때문에 군정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시작됬다는

근거없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은 체육관 대통령인 전두환과는 다르다 했지만

국민들은 아무도 그렇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노태우 VS 전두환]

그럼에도 노태우는

계속해서 전두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쿠데타 주도자 하나회 출신임에도

5공청산론을 받아들이며

전두환 정권 핵심인사들을 숙청 ,

전두환-이순자 부부를 백담사로 유배보내고

친인척들을 비리혐의로 구속시켰고

군출신 인물들을 민간인으로 대체하려 노력했습니다

 

즉 노태우는 군부정권과 문민정권 사이의 과도기적 대통령이었고

나름 최후의 발악(?) 을 한다거나

지저분하게 하지 않고

중간다리 역활을 잘 해주어서

좋은 이미지도 없지만

전두환에 비해 나쁜 이미지가 덜한 편이고

이로 인해 국민들에겐 '물태우' 라 불리게 됩니다

 

근데 전두환은 노태우 정권 당시 캐 빡돌았는데

전두환도 이미 대세가 민주화였기에

시대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막을 수 없었지만

나름 믿고 있었던 수십년지기 친구 노태우를 당선시키며

총력을 다했던 것이고

 

조선 태종(전두환)-세종(노태우)

의 관계마냥

전두환은 상왕이 되어서 계속해서 흑막에서 군림하고 싶어했는데

 

노태우 역시 막상 대통령이 되자

평생 전두환 시다바리짓만 하며 울분을 참아오다

전두환과 뒤바뀐 관계에 희열을 느껴버렸고

 

노태우는 유년시절부터 삼국지 영웅 유비를 흠모했기에

이때부터 노태우에겐 전두환이 태종은 커녕

그냥 삼국지의 유비의 무식한 의형제 '장비' 에 불과했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위해 이용해먹은 친구에 불과했습니다 (ㅋㅋㅋ)

 

찐따에서 강해진 노태우의 복수 시작 ?!

 

근데 전두환도 본인이 대통령인 시절에

2인자였던 노태우를 계속해서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고 

의리테스트 , 갈군게 심했고

이때는 찐따 노태우도 일진 전두환에게 고분고분 조용히 참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나니 참아왔던게 올라오며 기분이 좆같아져서

전두환에게 복수를 시작한 것이었고

 

결국 이빨빠진 사자가 된 전두환은

노태우 정권의 견제에

세간의 눈을 피해

마누라 이순자 여사의 손을 잡고 쓸쓸하게 백담사에 가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사실상 조선시대로 치면 유배나 다름없었습니다

 

백담사 유배가던날 우는 이순자와 바라보는 전두환

 

백담사에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는 전두환-이순자 부부

 

사실 당시 노태우 역시 국민과 야당들에게 심판될 위기감이 강했기에

반강제적으로라도 군부를 멀리하고

전두환과 멀리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럼에도 전두환 역시 노태우를 오랫동안

도와주었는데 노태우가 너무 섭섭하게 나오자

분노한 전두환은 

 

<전두환>내가 없어지면 다음은 노태우가 목표다.

노태우가 나한테 한마디 없이 그런 식으로 하면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

대통령 이전에 친구요 사람이다.

사이가 원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 씨발 많이컸다 ? , 메렁메렁 때려보던가 ㅋㅋㅋ

 

전두환 부인 이순자 역시

 

<이순자>6·29 선언을 자기( 대통령) 했다고 하고 ,

우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아닌가 해서 ,

우리 부부는 빨리 백담사로 겁니다.

정치라는 참으로 무서운 거예요.

전에는 

' 대통령이 지켜줄 텐데 자꾸 이렇게 몰려가나'

하고 있었는데 ,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백담사로 겁니다.

분노했다기보다 무서웠어요.

 

그땐 정말 패고 싶었지..

 

하여튼 ,

노태우는 5공청산 , 전두환과 거리를 두며

전두환 2인자 그늘에서 나오려 발버둥을 쳤고

 

아무리 독재정권 , 군사정권이라지만

사람은 누구나 기존의 것을 유지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향 ,

보수적 성향이 존재하기도 하고

 

김영삼과 김대중 역시 민주화 운동의 거목일 뿐이지

경제적으로 유능하다거나

완전 무결한 성인군자나 절대선인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일반인이나 군부 역시 김대중 , 김영삼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많았고

 

1987년 민주화 직후

국정경험이 없던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갑자기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에는

동남아 국가들처럼 기껏 겨우 민주화를 이룬 나라에서

다시 군부쿠데타 등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아무리 썩은 물이라도

물고기가 갑자기 새 물 100%로 들어가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죽어버리듯이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노태우가 물태우니 여소야대니 해도

썩어버릴대로 썩어버린 신군부 서열 최상위 출신이었기에

노태우는 민간대통령임에도

썩어버린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존재했고

노태우는 이런 군부와 문민정부의 과도기적 대통령으로서

찌질이처럼 굴지는 않고

중간다리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던 인물입니다

 

<노태우>정직하고 강한 정부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노태우로 인해

민주화가 역행하는 위기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사나웠던 군부 역시 점차 민주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태우]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전두환 시대까지는 거의

조선국왕처럼 군림하며

각하니 지랄이니 하며

권위주위에 찌들어있었는데

 

노태우는 정치인과 자신에 대해

풍자 , 농담거리로 삼아도 좋다 했고

물론 국민들은 오랫동안 왕처럼 모시던 대통령이 무섭기도 하고

온화했던 노태우보단 아무래도 전두환 놀리기가 더 재밌었기에

별다른 풍자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 김영삼때부터서야 본격적으로 대통령 놀리기가 시작되었고

물태우 , 땡삼이 , 슨상님 , 노짱 , 쥐박이 , 닭근혜 , 문재앙 등

화려한 대통령 별명의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고

점차 정치인 유머집이 나온다거나 개그코미디프로그램에서도

정치인들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내는 개그맨들이 나오기 시작하게 됩니다

 

<노태우>사람들이 나를 물태우라 부르고 있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매우 좋은 별명이며 ,

나는 물 같은 지도자로 보이는 게 좋다. ,

물과 같은 사람이 지도자로서 가장 바람직하다

 

[임금인상]

또한 ,

노태우는 가난한 성장기도 있었고

온건파 인물답게

진보적 성향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노태우>진보세력을 여야가 흡수하거나

그들에게도 제도권내에 존립할 여지를 주어야 한다

 

산업화에 따라

1980년대는 정치민주화 뿐만 아닌

근로자문제와 과격한 문제들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노태우 정부부터는 노조와 운동권의 시위가 봇물 터지듯이

극심하게 이어졌고

분신자살 시위 , 쇠파이프 시위도 잇달아 일어났는데

노태우는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고

(노태우 생각에서는) 소극적이고 온건한 대처를 하며

노동운동요구를 일정부분 수용 ,

노동임금을 대폭 인상해나가도록 했습니다

 

특히 노가다 , 공사판이 영향이 컸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주택정책 200만호 건설을 시작하자

그전까지 1만 2천원하던 노가다 일당은

갑자기 5만원으로 껑충뛰었고

당시 중소기업 기술자들이

월25일 일하며 월급 40~60만원 받던 시절이었고

2010년대까지만해도 하루일당 7~8만원이 주류였기에

노태우 정부부터 20년동안 거의 변함이 없던 것이고

 

노태우때까지는 IMF 도 오기 전이었고

양극화나 가계부채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전두환-노태우는 군부독재정권임에도

서민물가를 철저하게 관리통제했으며

서민들의 황금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노태우>골고루 잘 사는 방법을 서로 의논하는게 민주주의가 아니냐 ,

정치인은 분배를 어떻게 골고루 잘해 

소외된 계층을 어루만지느냐는 책무를 가졌다

 

노태우 정부는 연평균 8.5% 라는 고속성장을 하고

경제호황 , 노조설립 , 최저임금제 신설 등

여러 좌우가 혼합된 정책이 발달했으며

중산층들의 자동차 보유가 일반화 되며

자동차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단군이래 최고의 호황'

 

이라 불립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만나다]

노태우는 군부인물이었음에도

역사와 민주화의 흐름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 , 타협했던 인물이었고

문민시대로 가려는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갔습니다

 

노태우는 국정감사제도를 부활시켜

무소불위였던 국가기관에 대한 감사와 감찰을 진행시켰고

 

박정희 정부때 시행되 근로자에게만 적용됬던 의료보험제도를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시켰고

 

또한 범죄외의 전쟁을 시행하며

마역사범 , 조폭들의 수가 줄어들고

범죄와 연루가 많았던 항만도시들의 치안도 개선됩니다

 

[범죄와의 전쟁]

노태우는 조폭과 인신매매 조직은 확실하게 때려잡았고

대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노태우 업적하면

 

'범죄와의 전쟁'

 

이라는 기억이 있고

 

<노태우>첫째는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할 것입니다.

셋째는 과소비와 투기 퇴폐와 향락을 바로 잡아 일하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노태우

 

지금 우리 한국인들은 밤에 길을 다니고

이런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1980년대까지는 한국은 인신매매 , 납치 ,

여자들이 섬에 팔려가는 일이 흔한 상황이었고

 

세계최선진국 미국만 봐도 지금도 밤에 길거리나가면

갱들한테 돈뜯낀다거나 총맞는다는 인식이 있고

한국은 외국처럼 갱 , 야쿠자 , 마피아 , 카르텔 같은게 없고

있더라도 노태우정부부터는 음지에서 나오지 못하게 됬기에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은 전세계 치안 1위를 자랑하게 됩니다

 

[선진교통국가]

또 노태우는 1992년부터

인천공항과 경부고속철도(KTX) 건설을 시작하며

이 둘을 2대 국책사업으로 지정하고 추진해

선진교통국가로 가는 기틀을 놓았고

 

인천공항 기공식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

 

KTX

 

(의외로 노태우가 건설왕임)

 

[북방외교]

노태우는 또한 대표적 업적중 하나인

'북방외교' 를 시작하며

냉전에서 화해 무드로 가던 국제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공산국가인 중국과 소련과 수교를 맺게 됩니다

 

한-소 정상회담 노태우와 고르바초프

 

보수층 내에서도 공산국가였던 중국과 소련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지만

나름 삼국지와 톨스토이를 읽고 성장한 노태우였기에

좀 열린 편이었고

 

노태우는 북방외교를 시행하며

중국 , 소련뿐만 아닌

몽골 , 베트남 , 동유럽 , 아프리카 국가들과도

국교관계를 수립하며

폐쇄적 북한에 비해 열린 남한 자유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며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를 내었고

 

북한 역시 이런 노태우 정부의 행보에

엄청난 불안감 , 고립감 , 위기의식을 느끼고 궁지에 몰려

결국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유엔 동시가입 등

노태우는 국제 , 북한문제에서도 여러 치적을 거두게 됩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는 노태우 대통령

 

[서울올림픽]

그리고 노태우 정부시기

대한민국 역사 최정점을 장식하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는데

1988년 대한민국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서울올림픽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장의 노태우 대통령 , 동아일보

 

서울올림픽은 인류가 화합하는 전세계인들의 축전이자

가난한 빈곤국가 대한민국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외교력이 커지고 세계 선진국가에 도약했기에

대한민국사를 설명하는 가장 중대사건이기도 했으며

 

가난한 자유국가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세계와 공산권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승리했다는 인식을 주었고

공산국가들은 번영하는 서울을 보고 회의감을 느끼게 되며

점차 세계공산국가들이 무너지는 시발점이 됩니다

 

이에 노태우가 성군이라는 말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당시까지 한국인들은 무한경쟁사회에 진입하기 전

평균사회이자

고속성장과 경제호황의 단물을 누리던 시기였으며

서울올림픽 개최도 성공적으로 이뤄졌기에

국가 성장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넘치던 시기였고

 

오늘날 후발주자들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과 달리

당시는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건재했던 시기였으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첫번째 실험장이자

미국도 당시 신경을 많이 쓰던 상황이었기에

전세계의 충격을 주던 상황이었고

국민들의 자신감도 컸던 시기라

가히 노태우의 슬로건처럼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이기도 했고

 

노태우가 역사에서는 이미지는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 김대중 , 노무현 등의 압도적 이미지에 비해서는

크게 떨어지고 거의 윤보선이나 최규하 급의 듣보이미지이지만

실제 국정운영이나 정무는 진짜 잘한 인물이 맞고

과거가 문제가 많지만 직무수행력에서는

보수+진보적 정책이 혼합되며

가장 잘한 편인 인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

그러나 ,

그렇게 잘한 업적이 많고 대단한 인물임에도

존재감이 윤보선이나 최규하급의 ㅆㅎㅌㅊ 인 이유가 다 있는 법이며

노태우 역시 문민대통령 된 후에도 과거 도둑질 , 쿠데타하던 버릇 못고치고

전두환 못지 않는 독재자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 노태우 까는 모드로 스위치를 바꾸어보면

먼저 아무리 노태우가 잘해도 

노태우가 12.12 군사반란 1등공신이자 광주학살자임은

지워지지 않는 원죄이고

 

1995년에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 터지게 됬는데

검찰은 노태우가 4천 5백억 가량의 비자금을 꽁쳐두었다 발표했고

씨발 지금봐도 어마어마한 액수인데

당시 4천 5백억은 지금 기준으로 조단위가 넘어가는 것이고

국가 대통령의 돈과 국민에 대한 인식이

왕정시대 왕의 곳간과 백성을 보는 봉건 , 후진적 모습이고

 

당시 기자회견하는 노태우

 

ㅠㅠ

 

노태우는 40여개 대기업에 50~350억씩 수금을 했고

결국 꼬리가 밟혀 퇴임후 구속수감되어 감옥에 가게 됩니다

 

좆됨

 

[부동산 폭등]

또 노태우정부시기부터

결국 호황에 따라 유동자금이 크게 증가하며

돈은 부동산으로 쏠리게 되었고

서울과 서울 인근 , 신도시 건설에 따라

투기자금이 몰려들며 부동산가격이 폭등했고

200만호 주택건설이 시작되며 인력난과 자재난도 겹치며

주택가격도 폭등 ,

이전까지는 대충 몇년 일해서 집사던 시대였지만

노태우정부 시기부터

서민들도 평생을 벌어야 20평짜리 아파트 하나 장말할까말까하는

시대가 시작되게 됩니다

 

압도적인 노태우 정부의 부동산 상승률 , 중앙일보

 

이로인해 전월세가격도 덩달아 폭등하며

민생고로 일가족이 집세를 못견디다 동반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고

투기꾼들이 설치고 졸부들이 양산되며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게 됩니다

 

물론 시대적으로 점차 경제성장이 됬기에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으로서

사람이 사는 주거지에 대한

기본적 상등은 못막더라도 폭등은 막아야만 했고

그걸 못잡은게 노태우였고 오늘날까지 부동산 문제는

큰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또 전두환시대부터 미국의 수입개방요구는 심해졌고

노태우 역시 저항없이 무조건 개방을 하며

국내 농민들이 위기로 몰리기 시작했고

지적소유권 , 통신 , 금융시장도 개방화되며

외국의 영향과 의존도도 커지기 시작합니다

 

[대학증설]

제 생각에 노태우 대통령의 최대 악행으로는

교육정책 실패 , 대학 증설인데

노태우는 대학증설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걸 지켜버렸는데

노태우대부터 대학 섭립문턱이 크게 낮아져

대학교가 마구잡이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정부의 호혜성 교육정책에 힘잆어

신규대학이 지방에 무더기로 설립되고

기존 대학도 정원을 늘리며 몸집을 불렸고

 

1970년대 26.9% 였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은 33.2% ,

2005년에는 82.1% 로 급격하게 상승했고

 

90년대부터 폭발한 대학진학률

 

육체노동과 제조업 기반 국가인 대한민국은

노동자 국가임에도

노동의 기본인 3D 업종을 너도나도 기피 , 천시하게 된다거나

대학만능주의라는 불건전한 사상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한국사회의 부담과 암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또 교사들이 철밥통이 된 것도

노태우때부터입니다

 

[출산문제와 도농격차]

또한 한국은

그전까지 고성장시기동안은 고출산도 있었지만

점차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며

저출산정책을 시행했는데

노태우는 저출산 문제를 조정하지 않고 방조했고

1983년부터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인 2.1 수준으로 떨어진 이상

산아정책을 즉각 폐기하지 않은

노태우의 책임이라고  밖에 없습니다

 

떨어져가는 대한민국 출산율 , 현재는 0명대

 

또한 , 수도권 인구 과밀화를 지방에 분산시키는 것이아니라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하며 해결하려 했고

결국 노태우 정부부터는

서울과 비서울 ,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극심해집니다

 

[보통사람의 한계]

즉 노태우는 온건보수성향으로서

그전 고성장의 과실들을 잘 보존 , 관리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거나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기에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속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관과 다르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고

 

지도자와 일반인의 수준이 같다면

그렇다면 그 지도자의 존재 목적은 사라지는 것이고

노태우 역시 그랬기에 역사에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한국인들은

노태우의 평범한 사고관과 닮아있고

무조건 서울에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 

무조건 대학을 가야한다 ,

아이는 한둘

등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살며

평범함속에 묻혀 투기에 참여하며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평범하다는것은 옳거나 선하다는 것이 아니고

노태우는 결국 지나치게 평범함을 거부하며

캐지랄하다 폭발했던 다른 대통령보다는 정상 , 온건하기만 할 뿐

'보통사람' 이라는 한계를 보인 인물이었고

 

길고 , 멀리 , 장기적으로 봐야할 국가지도자가

겨우 평범한 사람들처럼 단기적 이익에만 급급하고

후세와 미래 세대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대통령이었고

진정 위대한 시대를 열지는 못했습니다

 

<라봉봉>노태우로 시작한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 최안정 체제이며

우리에겐 너무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상과 나라이지만

대한민국 제6공화국은

한국 5천년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공화국이기도 합니다

 

또한 ,

제6공화국대부터 시작된 사회적 문제나

국제관계 등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해결되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고

우리 한국인들 , 세계인들 역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점차 세계화를 맞이했기에

제6공화국의 문제는 미국의 문제와 유럽 , 중국의 문제 , 세계인들의 문제와도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평범했던 것이 위대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역사에서는 점차 평범 이상의 것을 요구해오며

특이점에 의해 평균은 무너졌고

또다시 특이점은 평균이 되고 반복되어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나 평균 역시

미래인들에겐 야만과 폭력으로 비춰질 수 있고

온건함 , 평범함이 주는 고정관념에 얽매여서도 안된다 생각합니다

 

노태우 정부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너무도 닮아있고 같은문제가 존재하고 있고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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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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