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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나이팅게일>


1820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영국의 부유한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부유한 부모님으로인해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자랐습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부잣집 막내딸로 귀하게 아가씨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항상 곱고 착한 마음씨를 가져서 사랑받는 어린이였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어머니>우리딸 나이팅게일은 정말 착해요 ^^


<나이팅게일의 아버지>그럼 ~ 훌륭한 남편을 만나서

좋은 아내와 좋은 어머니가 될 아이야 ~


나이팅게일의 아버지는 비록 그녀가 이후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을 반대한 사람이었지만

상당히 진보적이었던 인물이라

옛날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좁고 여성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던 그시절에도

나이팅게일에게 가정교사를 데려와 여러 선진학문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아버지>우리 딸이 정말 착하고 똑똑한데,,

아무리 여성의 삶이 제한되 있지만

그래도 사람답게 살려면

교육의 힘은 정말 중요하지

아는것이 힘 !!!


나이팅게일은 언니와 같이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언니는 공부에 실증이 날때면 몰래 밖에서 뛰어나가 놀기도 했고

나이팅게일은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때의 공부와 공부로 쌓은 교양들은

이후 그녀가 간호사로 활약할 때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왠만한 영국의 어린이들은

가정교사는 꿈에도 꿀 수 없었고

공장이나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야 됬고

출생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팅게일같이 부유한 출생으로 태어나서 열심히 산 위인도 있고

가난하게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하며 고생을 하다 이후

뛰어난 업적을 남기게 된 위인도 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어린시절부터 병치료하는 것을 좋아해서

언니가 망가뜨린 인형들을 붕대로 감아주거나

고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어머니>우리딸의 마음씨는 정말 곱구나 ~


<나이팅게일>ㅎㅎ


그녀는 착한 마음씨를 지녀서

다친 개에게 붕대를 감아주기도 했고

어느날은 어린 나이팅게일은

허름한 옷을 입은 배고픈 여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는데

부유하게 자라서 가난을 몰랐던

그녀는 그여인을 보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버지에게 왜 저 여인은 저렇게 지내냐고 물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아버지>그 여인은 가난해서 그런 것이란다


그때부터 나이팅게일은 세상에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세상 사람들을 돕고자 결심했고

그녀의 마음에서는 그때부터 평생을 간직하고 결코 꺼지지 않았던

어떤 뜨거운 마음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 이었습니다


17살이 된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일기>하느님이 나에게

'큰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17살의 나이팅게일은 슬슬 당시 기준으로는

결혼을 해야할 시기가 되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상류층의 모임인

사교계에 보냈습니다


영국의 사교계는 부유한 집안 자녀들끼리

파티나 무도회 같은 것을 하며

춤을 추던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맞으면

혼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수많은 또래의 남녀들이

이야기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으나

그런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교계 남녀들>나이팅게일은 참 독특해


나이팅게일은 사교장에서 나와서

하느님이 말씀하신 '큰 일' 이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부모님과 함께 약 2년간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해외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습니다


착한 마음씨의 그녀는 어느지역 , 어느도시를 가던지

상류층 인사들에게 항상 좋은 평판을 들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런 딸이 좋은 곳에 시집가서

행복한 여인이 될것이라 생각하며 내심 흐믓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한편으로 마음속으로 그 어떤 괴로움이 있었고

어린시절 보았던 어려운 사람 등이

바로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후 나이팅게일은 이웃 할머니가 병이 들어서

할머니의 병을 정성스럽게 돌보게 됬고

할머니는 그런 나이팅게일에 고마워 했으나

어느날 숨을 거두었고

그럼에도 할머니를 정성스럽게 돌본 그녀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좀더 좋은 간호를 하려면

더 많이 의학이나 치료법을 공부해야 함을 깨닫고

근처의 병원에서 공부를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팅게일>어머니 ! 아버지 !

저는 사람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일을 하고싶어요

간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이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간호사일은 매우 불결하고 천박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아직 세균 전염에 대한 개념도 없었던 시기라

병원은 매우 불결했고

간호사라는 직업도 직업으로 여겨졌다기보다는

잡일하는 청소부로 여겨진다거나

글자도 모르던가 가난하거나 나이 많은 여인들이

대부분 이었고 여인들은 간혹 술에 취해있기도 했다하고,,

의사들 역시 손도 씻지 않은채 더러운 옷과 손으로

수술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 의사의 더러운 손에 있었던 병균이

곧 환자들에게 옮겨졌고

그렇게 수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위생개념이 별로 없었던 시기라

수술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러운 손으로 수술을 해서

세균으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았던 그시절이라 하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제멜바이스의 수술전 '손씻기' 정책이 시행됬고

그이후 프랑스 파스퇴르의 세균 전염 개념이 발견됬고

손씻기가 생존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됬으나

당시에는 아직 그게 나오기 전이라

병원은 매우 불결하고 무서운 공간이어서

이로 인해 환자들은 병원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시기입니다


<나이팅 게일의 어머니>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고작 간호사따위나 하라고 너에게 교육을 시키고

여행을 보냈는지 아니 ???


<나이팅 게일의 아버지>집안 망신은 너가 다시키는구나 !!!


이해심 많고 나이팅게일을 사랑했던 아버지도

착하지만 고집강했던 나이팅게일의 발언에

무척 화가 나서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착했으나 고집세고 자기주장 강했던 나이팅게일도 결국

집안의 반대에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그럼에도 하나님과 어려운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몰래 방에서 병원시설이나

간호법에 대한 공부를 하던가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반대에 항상 밝고 착했던 나이팅게일의

건강이 나빠지고 얼굴에 그늘이 지자

어머니와 언니도 그녀를 걱정하게 됬고

결국 그녀를 또다시 해외로 보내 해외여행을 시키게 됬고

나이팅게일은 해외에도 또다시 많은 것을 보고 느꼈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더욱 그녀의 신앙심과 간호에 대한 생각은 강해졌기에

건강히 돌아온 딸을 보고도 크게 걱정을 합니다


<나이팅 게일의 어머니>다른집 아이들은 벌써 다들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그녀는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녀의 부모님도 어찌할 수 없던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1854년 나이팅게일이 34세 되는 해

따듯한 곳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와

터키가 맞붙었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견제하려

터키와 연합해 참전했고

그렇게 나이팅게일의 조국이었던 영국은

프랑스와 터키와 연합해 크림반도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게 됬는데

이 전쟁이 바로 '크림 전쟁' 입니다


당시 나이팅게일의 조국이었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곳곳에 영토를 넓히며 식민지를 건설한 강대국이었지만

크림 반도에서의 전쟁은 참혹했고

수많은 병사들이 이곳에서 죽거나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쟁 소식은 신문으로 영국에 계속 전해지게 됬고

수많은 부상입은 영국군인들이 비위생 등에 죽어갔다는 소식이

신문에 알려지자

이에 영국인들은 정부에 분통을 터트립니다


당시 영국의 국방 장관이었던 시드니 허버트는

신문에 크림반도의 부상당한 영국군인들을 간호하기 위한

영국 여성을 모집한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허버트는 이전에 해외에서

해외여행을 하던 나이팅게일과 교류한 적이 있었던

인물이이어서 갑자기 나이팅게일이 생각나서

그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실 신문 기사를 읽었던 나이팅게일 역시

허버트에게 편지를 썼다 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았다고 할 수 있고

결국 그녀는 허버트 경을 만나 상의를 하며

그녀가 간호단을 꾸려 크림 반도로 갈 일이 빠르게 진행됬습니다


결국 영국 육군에서는 나이팅게일을

영국군 야전 병원 간호원장에 임명한다는 발표를 했고

그녀의 부모님도 깜짝 놀랐으나

국가적 큰 일이기도 했고

오랫동안의 그녀의 뜻에 이번만큼은 그녀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도대체 나이팅게일이 누구야 ?


나이팅게일은 하루라도 빨리 크림반도의 환자들을 돌봐야 했으므로

간호인단을 꾸려서 급하게 터키로 향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본 터키의 영국군 야전 병원의

영국군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열악하고 더럽고 불결한 환경속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이에 그녀는 자신의 많은 재산과 받은 후원금으로 여러 도구들과

음식을 잔뜩 삽니다


<나이팅게일>의학적 치료 말고도 환자를 잘 먹이는게 중요해 !


나이팅게일과 나이팅게일 간호단의 환경도 열악했지만

부상을 입은 병사들의 처우는 그보다 훨씬 열악했고

이에 나이팅게일은 자신보다도 더 처참한 환자들의 상태가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영국군 야전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환자의 사망률은 43퍼센트(당시 병원에서 환자가 100명이 오면

그중 43명이 사망했습니다,, )에 달했고

이에 나이팅게일은 분노합니다


<나이팅게일>환자가 이렇게 죽어가는 것은

분명 지저분하고 더러운 환경에 기인한다

병실을 청소하고 세탁실을 만들어야겠어


나이팅게일은 병원 환경을 개선시키고

그들을 정성껏 보살피고 간호했습니다

환자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옷을 입히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려 노력했고


이곳에서 그녀의 가장 큰 업적

'위생 간호'가 시작됬습니다


<나이팅게일>더러운 침대시트에 환자를 눕히면 안되고

더러운 붕대를 다시 사용해서는 안된다 !


오늘날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에는

이런것조차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위생의 중요성을 알고 실행했던 나이팅게일로 인해

40퍼센트대에 달했던 사망율은 2퍼센트로 뚝 떨어집니다

(나이팅게일이 오기전에는 병원에서

100명중 4~50명이 죽었는데 나이팅게일이 온 후 100명중 2명만이

죽고 98명이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환자들>그녀는 천사야 !!


<나이팅게일이 근무했던 병원>


또 이전에 공부를 하며 통계의 중요성을 안

나이팅게일은 세계최초로

'의무기록표'를 만들어서 환자들의 상태, 질병 ,

사망원인 , 사망자 수 등을 체계적으로 기록했고

이는 환자들의 상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확히 기록으로 남겼기에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외에도 수많은 병원내 시설이나 물자, 배급등까지

하나하나 기록해서 보고했다 하고 보고서를 다쓰고 밤이 되면

혼자서 등불을 들고 어둠속에서 병실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돌아다녔고

입원해있던 부상당한 병사들은 그녀를 천사처럼 여겼습니다


그녀는 항상 정성을 다해 부상병들을 간호했고

어느새 환자들은 병원에 더 많아졌고

그녀는 오랜 고생과 과로 등으로 크림 열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부상당한 병사들은 자신들의 몸보다 그녀를 더욱 걱정했고

결국 쇠약해진 그녀는 잠시 요양을 하게 됬는데

다시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다시금 하던일을 계속하려 했고

의사들은 무리라면서 영국에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고집강했던 그녀는 다시금 터키의 영국군 야전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성심 聖心 (거룩한 마음)을 다해 봉사를 했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었고

결국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던 크림전쟁은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나

전쟁은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낳았고

그나마 나이팅게일이 있어서 수많은 희생을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크림전쟁이 끝나고 난이팅게일은 다시 영국에 돌아오게 됬고

크림전쟁 당시 터키에서의 활약이 영국에 알려진 나이팅게일이었는데

고국에 돌아오자 그는 당시 영국여왕 빅토리아 여왕이나

수많은 사람으로 부터 환대를 받았으나

그녀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크림반도에 남아있을

환자들을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수많은 봉사를 하다가

1910년 8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90세에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살아생전 화려한 것이나 칭찬받는 것에 대해

유달리 좋아하지 않았던 인물이었고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묘비에는 '1820년에서 1910년까지 생존' 이라는

글귀만 적혔습니다


그녀의 활약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이후 그녀의 영향을 받은 스위스인이자

세계 위인 앙리 뒤낭은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적십자 조직을 만들었고

앙리 뒤낭은 그 업적으로

세계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받게 됬습니다


<라봉봉>오늘날 나이팅게일은 의학계의 성인인 히포크라테스 처럼

간호학계의 성인이 된 인물이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각각 의사와 간호사가 되기 전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기도 하고


그녀는 간호사로서만이 아닌

과학, 위생적이고 체계적인 행정개혁이나 통계학등을 간호에 도입하는 등

사회개혁적인 모습을 보였고

항상 착한 성심으로 환자들을 정성껏 간호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던 인물입니다


이로 인해 좋지 않았던 간호사 일의 인식이 좋아졌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렵던 시대에 나이팅게일로 인해

여성들이 사회적 진출의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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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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