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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은 고려의 관료,장군으로 최영 장군이 계셨던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의 수탈,홍건적,왜구의 침입,국제 관계적으로는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는 원명 교체기였던 때입니다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이자 왕다운 왕이었던 공민왕때는

여러 개혁이 있었습니다 공민왕 이후부터는 왕들은 어리거나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사람들이 앉힌 꼭두각시,허수아비 왕이었습니다

 

이당시 원나라가 약해지자 원나라가 뻇은 고려의 땅을 다시 찾기도 했고

당시에 왜구라고 일본 해적들이 고려 곳곳의 해안가를 약탈해서

이당시 무인들이 일어나던 시대라 할수있겠습니다


최영 장군도 공민왕때 나라를 지키는 장군으로 이성계 장군과 이름을 떨친

명장이었습니다 이후 홍건적의 침입때 공민왕을 지키고

장군으로서 여러 공을 세우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실 전쟁이라는게 서로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그러다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많았고 저가 옛날에는,,이렇게 말할수 있게

앞으로는 전쟁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게 고려의 충신이자 장군이었던 최영장군때에는

외적의 침입이 많았습니다 외적이라는 말은 외국을 낮춰 부르는

말이라 할수있겠는데요,,사실상 이당시 한중일 모두 혼란의 시기였고

혼란의 시기에는 신라 후기때 그랬던거 같이 도적들이 일어나고

이당시 중국에서 붉은 천을 두른 도적 홍건적과

일본 도적,해적 왜구들이 일어나서 고려를 공격했던 시기입니다,,

이에 최영장군의 홍산대첩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 박위의 대마도 정벌,,

고려 최초로 신기술 화포(대포)를 사용한 최무선 장군의 진포대첩등으로

외적을 물리쳤으나 백성들의 삶은 전쟁과 내부 혼란으로 피폐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당시 나라에서는 원나라와 친한 권문세족이라는

귀족들은 백성들의 농지를 강탈하고 노예로 만들어서

넓은 강과 산,농작지를 소유하였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이렇게 장군들,신흥 무인이

나타나던 시기였고 내부,정치적으로는 권문세족에 반발한

또 권문세족들도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는것을 느꼈을 것이고요

신흥 사대부들이 일어납니다

이에 신흥무인,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과

신진 사대부,대표적 인물로는 조선의 재상 정도전이 있습니다

사실 무인세력에서도 최영장군이나

신진 사대부 내에서도 정몽주 같은 고려를 유지하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온건파라 불립니다 이성계,정도전같은 급진파 신진 사대부들에게

죽게되나,,이후 조선이 건국되자 이번에는 정권의 정당성과

스스로 왕이되었기에 자신같이 왕권을 뒤집자 이런 세력들을 못나오게

해야되지 않겠습니까,,그래서 최영장군이나 정몽주 같은 사람들은

고려의 충신으로 밀어주게 된거 같습니다,,즉 이런 사람들같이

조선에 충성해라 이런 의미 같고요,,관련된 말로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유행한 용어인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줄여서 내로남불 이런거 같습니다,,

어린이들은 불륜하면 안됩니다!!(어른들도요)


다시 최영장군때 이야기를 하면요,,

홍산대첩때 왜구에 침입에 선두로 나서서 지휘한 최영장군은

화살을 입술에 맞자 화살을 뽑아서 다시 왜구에게 쐈고,,

이에 사기가 진작된 고려군들은 왜구를 물리쳤고

이당시 왜구들은 이성계 장군과 최영장군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성계 장군 역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기는 하나

활을 매우 잘쏘는 명장이었고 이당시 왜구를 물리치며 고려인들의

민심을 얻게된거 같습니다,,


내부 정치에서는 공민왕 사후 최영장군은 재상이되고

공민왕의 아들이었던 우왕은 최영장군의 딸과 결혼해서

사돈관계가 됩니다

이후 우왕과 최영장군은 그당시 중국은 홍건적,주원장의

명나라가 일어나고 원나라가 북방으로 쫒겨가는 원명교체기였고

이에 만주쪽땅은 빈땅이 되게되었습니다 이에

고려 초기부터 북방정책이라고 옛 고구려의 영토(만주)를 되찾자는

정책이 있었는데요,,이에 공민왕때부터 압록강을 넘어서 만주쪽을

공격하기도 했고 우왕때는 요동정벌을 하려합니다

요동은 만주에서 주요 지역이라 보시면 될거 같고

보통 요하라는 강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고 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젊은 장군 이성계 장군은 이를 반대합니다

작은 고려가 큰 중국을 공격할수 없는 네가지 이유 사(4)불가론을 내세우는데요


<이성계 장군의 사불가론>

1.작은나라가 큰나라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2.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해서는 안된다

3.온나라의 군사가 원정을가면 왜구가 침략해올것이다

4.장마철이라 활을 붙이느 아교가 녹고 대군은 전염병에 걸릴것이다


뭔가 고려는 진보정치권에서 의의있다 여기는 나라같습니다

이렇게 북방정책이나 외국과 개방적으로 무역하며 자주적이었던

나라같고요 이에 공산,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또 고려의 수도 개경이나 수도급이었던 평양 같은 곳도 북한땅,,이어서

고려를 밀어주고 은근 이런게 통일을 연방제로 하자는 고려연방제 이런거도 나온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내부의 격렬한??,,반대가 있었는데도 우왕과 최영장군은 계속

이성계 장군을 만주로 보내려했고 이에 병사를 이끌고 가기는 갑니다,,

그러다 압록강에 위화도라는 한강 밤섬같이 섬이 있는데요

그러다 그곳에서 다시 군대를 고려 개경으로 돌립니다

왕명을 거부하고 군대를 국경으로 보내는것은 쿠데타,

반정인데요,, 이에 최영장군은 적은 군사로 수만의 이성계 장군의

군대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하고,,이성계 장군은 고려의 실권자가 됩니다

이후 최영장군은 고봉현(고양시)로 유배되나 곧 개경으로 압송되서

처형 당하셨다고 합니다,,70대의 늙은 노장이었던 최영 장군도

고려인들의 존경을 받는 장군이었고 평소 이성계 장군도 최영 장군과

같이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나중에는 고려인들이

이성계의 이런거를 싫어하며 몰래 최영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며

돼지고기를 이성계 팔다리 고기라면서 성계육,성계탕이라 이름붙여

돼지고기 요리를 만들어 먹고 했습니다,,8자 모양의 조랭이 떡국도 사실

이성계의 목을 비틀어 끊어 먹는거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최영 장군은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내가 평생 살아있는동안 사사로운 욕심을 가졌다면

내 무덤에서 풀이 자랄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것이다


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영장군 묘에서는 풀이 나지않고 붉은 흙들만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붉은 적,없을 적자로 적 무덤 분 자로 적분 赤墳 이라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풀이 있다고 합니다 무덤공법이 풀이 잘 안나게 하는

공법이어서라는 말도 있고요


최영 장군이 사망하신날 고려인들은 크게 슬퍼하며

개경상인들은 그날 가게 문을 닫아 이성계 장군에 무언의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성계와 급진파 신진 사대부들의 고려 정권에

나타납니다,,


최영 장군의 아버지의 유언은 제목같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였다고 합니다

이는 최영 장군의 말로도 유명하나 아버지 유언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사신분 같습니다 사실 황금은 과학적으로 희소하고 귀하고

산업에도 쓰이는 귀한 광물인데요,,진짜 돌같이 보면 안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황금이란 욕심을 의미하는 것 일것입니다



현대에는 물질 만능주의 이를 다른말로 황금 만능주의라는 말도 있습니다

돈이면 다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것은 역사적인 수많은 사례에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그렇다고 돈을 경시하라는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지 말것이고 대신에 욕심이나

그런거를 경계하는 어린이가 되세요 ^6^,,

또 황금의 반짝임에 집중하다가는 별이 아름다운것,별빛을 잊어버린다는

말을 본거 같습니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도 있듯이

항상 돈보다는 사람을 생각하는 어린이,사람이 됩시다 ^6^,,


<최영 장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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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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