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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초기 인물들>

[백제의 두가지 건국설화]

[주몽의 아들 온조]

[우태의 아들 온조]

[비류]

[여러 백제 건국 기록]

[을음]

[백제 국모 소서노]

[온조왕의 마한 병합]

[마한 장수 주근]

[부여출신 재상 해루]

[백제 시조 온조왕]

[다루왕]

[흘우와 곤우의 말갈과의 투쟁]

[기루왕]

[개루왕]

<라봉봉>

 

[백제의 두가지 건국설화]

자 장엄했던 고구려 인물들 이야기가 끝나고

이젠 백제로 왔는데

이번 이야기 역시 백제 왕 보다는 백제인물들 이야기 위주이고

한국사의 자랑스러운 해양 , 문화강국이었던

백제는 역시 씹덕들의 정신적 고향 일본의 아버지이자

원조 한류 , 원조씹덕의 나라답게

건국신화가 고구려 , 신라처럼 한개가 아니라

일본 애니마냥 여러 루트 , 엔딩이 존재하고 있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고구려루 루트고

두번째로 알려진 것은 부여루 루트이무니다

 

하나만 선택해야지만 백제사 연구자들 입장에선 난감한 백제건국설화에서 부여 루트와 고구려 루트의 존재 ,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

 

역사에서는 보통 온조왕 아버지가 부여왕가거나 고구려왕가로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두개로 나뉜 이유는

부여 시조가 동명왕인데

고구려가 부여계에서 나온 국가였기에

부여 건국신화를 그대로 카피해오고 고구려 시조 이름을 동명왕이라

그대로 카피해버렸고

이에 온조왕 조상도 부여 동명왕의 계통이나

고구려 동명왕 고주몽의 아들이라는 등 여러 설화로 갈라졌고

이게 현대에 알려진 학설이 아니라

거의 1000년전 고려시대에 쓰인 삼국사기에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도 이렇게 두가지 루트를 썼고

김부식이 백제시조 온조왕은 기본적으로 고구려 동명왕 아들인데

주석에 혹은 부여계라고 썼기에

대체적으로는 그냥 고구려 동명왕 아들로 보고 있으나

부여계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고있고

고구려와 백제는 건국신화가 부여와 굉장히 근접한

부여계통 국가였던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

 

그리고 일단 오늘날은 심증으로는 부여계같은데

백제건국왕 온조를

김부식 삼국사기 루트를 따라 기본적으로는 고구려 동명왕 주몽 아들로 보고있고

대부분 어린이용 역사서적에는 시간관계상

이런거를 꿍시렁꿍시렁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그래서 그냥 고주몽 아들이라 쓰는 형편이고

그래서 일단 먼저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루트인

고주몽 루트로 가보겠습니다

 

고주몽 루트

 

[주몽의 아들 온조]

우리가 잘 알고있는 한민족 근본국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 동명성왕(동명왕) 은

하늘신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강의 신 하백의 딸 유화의 아들이었고

해모수가 유화를 임신시키고 하늘로 떠났고

버려진 임산부 유화는 부여 금와왕에게 구해져 부여 궁궐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놀랍게도 아기가 아니라 알을 낳아버렸고

알에서 태어난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 주몽은 그렇게 출생부터 비범해서

활을 매우 잘 쏘아 이름이 부여어로 활 잘쏘는 사람을 뜻하는 주몽이 되었고

주몽은 부여궁궐에서 자라났지만 부여왕자들보다 재능이 훨씬 뛰어나

부여왕자들의 질투를 받았고

금와왕의 아들인 부여 대소왕자의 질투를 피해서

친구 오이 , 마리 , 협보와 함께 부여를 탈출해 남하해

졸본 유역에 고구려를 세웠다는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구려 건국신화입니다

 

부여 고구려의 동명왕 신화 ,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 건국자 주몽은 신궁이라 불릴 정도로

활쏘기에 어마어마한 재능충이었지만

역시 부여에서 부하들 세명만 데리고

임신한 마누라도 부여에 (일단) 버리고 홀홀단신으로 남하한것이라

당연 가난했을테고

 

그럼에도 활쏘기를 매우 잘한 주몽이 남하하자

기존 부하인 오이 , 마리 , 협보 외에도

졸본에서 재사 , 무골 , 묵거라는 부하까지 얻어

완전히 군세를 확장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주몽이 졸본으로 남하할때 새로 얻은 부하들

 

사실상 힘만 센 깡패집단이었던 고주몽은

군사집단의 리더답게 당연 정력왕이기도 해서

부여 여성들의 여심을 흔들어 놓았고

 

어쩌면 부여에 불었을지도 모른 주몽사마 열풍

 

이때 여러 명성과 실력으로

주몽은 아들은 없고 세 딸만 있던 졸본부여왕의

둘째딸이었던 소서노라는 순진무구한 부여공주에게 접근해

일단 자신은 (윗동네 부여에 본처가 있지만)

불행히도 현재 같이 살 여자가 없는 상황이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친 , 외할아버지는 하느님과 물의 신이라며 대충 가스라이팅을 해서

임신시켜버렸고

 

 

철없는 재벌2세녀 소서노는

임신해버린 상황에서도 주몽의 거대한 정력과 남자다움에 더이상 돌이킬 수 없게되어

아빠돈으로 주몽에게 별풍선 , 슈퍼챗도 오지게 쏴주며

점차 주몽의 계획대로 일이 이뤄지게 되었고

 

거의 서울지검 부장검사급 논리력인 라봉봉의 당시 정세추리력 , 영화 추격자

 

주몽의 군사집단은 그렇게 주몽의 화려한 언변과 강한 정력에 매료되어

거대 호갱녀였던 소서노의 스폰까지 합세해

거의 종교집단급으로 세력이 확장되어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고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임금과 소서노 왕비 , 드라마 주몽

 

그렇게 졸본부여왕이 아들없이 죽자

부마(왕의 사위) 였던 고주몽이 소서노 공주의 남편 자격으로 왕위를 이어서

고구려를 건국했고

소서노는 그렇게 주몽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을 비류 ,

둘째아들을 온조라고 했습니다

 

<김부식>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서

월군녀를 아내로 얻어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사실 씹덕 하렘물답게 루트가 두개가 아니라 더있음ㅋㅋ(월군녀 루트도 있다 ! 정도로 알아두면 될듯)

 

그렇게 주몽과 소서노와 비류와 온조 네가족은

여러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오손도손 햄볶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백제 온조 특별우표 동명왕과 소서노와 비류와 온조 네가족

 

갑자기 부여에서 주몽의 본처 예씨부인의 아들이라며

주몽에게 아들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를 가지고 왔고

 

아빠.. 저왔어요 아버지가 반으로 쪼개주신 증표를 가지고 , 포켓몬 로사와 해피너스의 우정 장면

 

통수왕 주몽은 숨겨진 본처의 아들 유리가 고구려로 오자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소서노를 무시하고 유리를 태자로 삼아버렸고

 

비류와 온조는 그들이 태자로 용납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서

드디어 어머니 소서노를 모시고

오건 , 마려 등 10명의 신하와 남쪽으로 떠나니

백성들 중 이들을 따라나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고구려 , 백제를 동시에 건국한 한국사 여걸로 손뽑히는 소서노의 남하

 

나라세우러 가즈아 !

 

그들은 드디어 한산(북한산 ?)에 올라

부아옥(삼각산 ? , 둘다 대충 북한산으로 추정)에 올라

가히 살 수 있는 땅을 바라보았는데

 

온조의 친형님이었던 비류는 바닷가로 가서 살고싶어했고

 

(현실파악 안하고) 바다에서만 살고싶었던 비류선배 , 꽃보다남자 하얀천 씬

 

십신 , 열명의 신하들이 간하기를

 

<십신>생각컨대 이 하남의 땅은

북으로 한수(한강) 을 끼고 ,

동으로는 고악에 의거하고

남으로는 옥택을 바라보고

서쪽은 대해로 가로막혔으니

그 천험의 지리를 이루어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여기에 도읍을 이룩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사의 소름돋는 구절로 실제 이들이 명당이라 일컬은 이곳이

바로 조선 500년 수도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한강)' 임 ,

서울 부동산 폭등을 예고한 2000년전 예언수준 ;;)

 

비류는 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인천 , 오늘날 마계인천이라 불리며 이미지 안좋은 도시 ㅠㅠ) 로

가서 살았고

 

투자왕 엄마 말 잘 들은 온조와 안들은 비류녀석

 

현명했던 온조는 영리했던 신하들의 조언을 따라

하남위례성(오늘날 땅값비싼 서울 송파구 ㄷㄷ ;;) 에 도읍을 전하고

십신 , 열명의 신하들을 조언자소 삼고 국호를 십제라고 했는데

이는 열개의 건넘 , 도움이라는 뜻으로

열명의 신하들이 강을 건너거나 도움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뜻이었습니다

 

오지게 말 안듣던 비류는 바닷가의 하얀 돛의 낭만을 찾아 인천으로 갔지만

억센 항구도시였던 인천 대장 , 인천 중고차 판매원들의 허세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여기 인천인데 니 자신있나 ?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다는 핑계로

편히 살 수가 없다는 핑계로

항복하고 동생 온조가 서울 강남 황금땅에 자리잡은 위례로 와서

동생 온조에게 도게자를 박고 온조의 부하로 들어가

강남 한강뷰 뽕을 맞으며 행복하게 살게 되었고

 

온조쿤 형이 미안하다 !!!

 

비류가 뒤늦게 정신차리고 온조의 부하로 들어가

백성들이 하남위례성에 모여 살게되자

인민들이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비류는 드디어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죽었습니다

 

백제 첫수도 위례성 , 한강 남부

 

비류의 신민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모였고

그 뒤로부터 날로 백성들이 즐겁게 따르므로

국호를 10에서 100으로 늘려서 백제로 바꾸었고

 

한국 문화+해양대국 백제

 

온조왕은 고구려와 한 뿌리로 부여에서 나온 까닭으로

부여를 성씨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온조왕과 백제 백성들은 오손도손하게 햄볶하게 살았습니다

 

행복한 백제인 가정

 

고주몽 루트 해피엔딩~ >_< , 일반적인 루트

 

자 이젠 두번째로 유명한 루트로 가서

삼국사기 집필자 김부식은 이 루트 바로 밑에 이렇게 주석을 달아놓습니다

 

[우태의 아들 온조]

먼저 백제 시조는 비류왕인데

비류왕의 아버지는 '우태' 로서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서자의 아들 혹은 아들의 서자로 방계혈통) 으로

부여왕실 성씨가 해씨라고도 하니 '해우태' 라고도 불리는 인물이고

어머니는 소서노이니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이었습니다

 

해우태 루트

 

처음에 소서노가 우태에게 시집와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는 비류 , 둘째는 온조였고

소서노는 우태가 죽은 뒤

졸본에서 혼자 살았고

그 후 주몽이 부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도착해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으며

소서노에 장가들어 그녀를 왕비로 삼았습니다

 

(고주몽 루트는 소서노가 일방적으로 설거지한 케이스인데

해우태 루트는 나름 주몽도

애둘딸린 이혼맘에게 장가들어 나름 서로 퐁퐁한 케이스

from 원조 퐁퐁시티 졸본)

 

일론 머스크도 인정한 좀 굉장히 복잡한 관계

 

주몽이 나라의 기초를 개척하고 왕업을 창시함에 있어

소서노의 내조가 매우 컸으므로

주몽은 소서노를 극진히 사랑했고

비류와 온조를 자기 친아들처럼 대우했습니다

 

실제 애니 줄거리를 안다면 굉장히 혼란스러운 설정

 

그러나 이후 주몽이 부여에서 낳았던

본처 예씨부인과의 아들 유리가 오자

그를 태자로 삼았고

그후 그가 주몽의 뒤를 잇게 했습니다

 

(그러나 양 루트 다 주몽의 통수엔딩은 같음ㅋㅋ)

 

[비류]

이때 비류가 아우 온조에게 말하기를

 

<비류>처음 대왕께서 부여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우리 어머니가 가산을 내주어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위업을 도와 주었으니

어머니의 조력과 공로가 많았다

 

그러나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나라가 유리에게 돌아갔다

 

우리가 공연히 여기에 있으면서

쓸모없는 사람같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머님을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살 곳을 선택하여

별도로 도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

 

하고는

마침내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인천) 에 와서 살았습니다

 

이 두번째루트는 고주몽 직계가 아니라

고주몽이 의붓아버지로 나오는 루트로서

나름 신빙성 있다고 여겨지는 루트고

특히 백제 왕실이 왕가 성씨를 고주몽을 따라 '고' 씨로 정하지 않고

부여계임을 표방한 '부여' 씨로 성을 정한 것을 보면

두번째 외전 루트임에도 굉장히 가능성이 높다 여겨지는 루트입니다

 

결국 제목답게 흘러가 독자와 세계문학계에 충격을 준 내여귀

 

[여러 백제 건국 기록]

이번엔 또다른 세번째루트로서

중국에 기록된 루트인데

중국기록 '북사' 와 '수서' 에는

 

동명의 후손 중에 구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고

그가 처음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다가 자기 딸을 구태에게 시집보냈고

그들은 마침내 동이의 강국이 되었으며

 

당초에 백개의 가문(일백 백)이 건너왔다(건널 제) 해서

나라이름을 백제라 했고

동쪽으로는 신라에 닿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에 접하며

서남쪽으로는 모두 대해와 경계지어져있고

소해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동서의 거리는 450리이며

남북의 거리는 900여리라고 기록되있습니다

 

뛰어난 막장성에 사실 독자들도 뭐가 뭔지 모르겠음

 

<김부식>(백제 건국루트는 이렇듯 여러개인데)

어느 주장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씹덕 녀석들 ㅉㅉ)

 

하여튼 그렇게 온조왕은 백제 건국시조가 되었고

온조왕은 백제왕가의 성을 부여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부여씨로 정했고

백제를 건국하자마자 여름 5월에

동명왕의 사당을 세워서 자신들이 부여에서 왔음을 공고히 했습니다

 

[을음]

백제는 건국초부터 북부국경의 말갈(대충 한반도 내에 존재했던 세력으로 봄)

과 투쟁하며 성장하였고

온조왕은 그의 재종숙부 을음이 지혜와 담력이 있다해서

우보(재상) 에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관계의 임무를 맡겼습니다

 

온조왕은 북방의 말갈과 낙랑(중국이 한국에 설치한 조선총독부 개념)과는

싸움 , 비우호책을 폈고

백제 건국을 도와준 마한(오늘날 한국의 원류국가)과는 우호책을 펴며

조금씩 나라의 기틀을 잡고 확장정책을 실시해갔습니다

 

마한의 지원으로 건국된 백제

 

[백제 국모 소서노]

온조왕 13년 2월 봄

서울에서 늙은 할머니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는데

온조왕의 어머니 , 소서노가 61세의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소서노는 부여에 있을때는 남편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여걸이었고

주몽이 자기 본처자식을 태자로 임명하자

그대로 남편의 뜻을 순종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기 식솔들과 친척 ,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남하해서

직접 백제를 세운 여인으로서

한국사에서 '여걸(여자 영웅호걸)' 로 불리는 얼마 안되는 인물이고

저나 대부분 사람들도

규방에서 바느질이나 하며 인생을 마감한 수많은 한국 여인들과 달리

국가를 건설한 건설적인 여인이었던

고구려 백제 소서노나 조선 원경왕후 민씨정도는 여걸로 킹정하는 부분입니다

 

소서노의 국가 창업 여정

 

삼국시대는 시조모라는게 있었는데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가 대단한 영웅들이 세운 나라지만

그 영웅들도 어머니가 분명 존재하였고

고구려는 유화부인 , 백제는 소서노 , 신라는 선도성모 , 가야는 정견모주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유화부인과 소서노는

 

고구려와 백제인들에게 국모로 여겨진 여인이었고

특히 유화부인이 강의신 하백의 딸이자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와 관계를 가져

알을 낳았고 알에서 주몽이 태어났다는 비과학적인 '신화'와는 달리

 

소서노는 실제 역사에서 졸본 유지 딸 , 졸본 왕의 공주 등으로

상당한 재력과 부하들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어

굉장히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역사' 이고

기본적으로 부여가 만주벌판에서 성장한 나라답게

말과 소 같은 들짐승 키우기를 중시하였고 상단과 상업이 크게 발전한 나라였을테고

만주 중북부의 부여와 남쪽 한반도의 사이에 위치한 졸본에서 성장한 소서노는

상업 등을 통해 양 세력을 이으며 만주와 한반도의

여러 정보를 알고 있었던 여인일 확률이 높고

 

한반도가 굉장한 풍요로움에 비해 무주공산 영역임을 알고있었던 소서노는 

호걸이었던 아들들을 배다른 태자의 왕자로 썩게 하지 않고

박해를 피하고 자유를 찾아 남하하여

서울특별시 강남 황금싸라기 땅이 재개발 될 것을 미리 예측하고

강남토지가 짜장면보다 싼 가격일 시절에

알토란 강남 땅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 남들이 정보를 미처 알기도 전에

먼저 꿀꺽 꿀꺽 하며 아들들에게

강남 건물주 명함도 만들어주고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준

엄청나게 위대한 어머니였을 가능성이 높고

 

개발전후 강남의 모습

 

유화부인이 신화이고 유화부인은 남편한테 싸튀당해서 버려지다

부여왕실에서 거둬진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소서노는 엄연히 역사이자 토지나 삼국지마냥 인생대하서사도 찍으며

자기 손으로 두 나라와 두 왕을 만든

능동 , 진취적 여성으로 묘사되는 인물이고

대단한 한국사 여걸이었다 보면 됩니다

 

온조왕은 어머니 소서노가 세상을 떠나시자

불안함을 느끼고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을 옮겼고

소서노 사당을 세워서 소서노에게 제사지냈습니다

 

[온조왕의 마한 병합]

온조왕 24년 7월 가을

온조왕이 웅천 목책을 세웠는데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서 책망했습니다

 

<마한왕>왕이 애초에 강을 건너와

발 붙일 곳이 없을 때

나는 동북방의 100리 땅(서울특별시)을 주어 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왕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마땅히 이에 보답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모여들어

대적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여

성과 영토를 크게 만들고

우리의 강토를 침범하니

이것이 어찌 의리라고 할 수 있는가 ?

 

이에 온조왕이 부끄러워하며 목책을 허물었습니다

온조왕은 북방의 낙랑 , 말갈과는 대적하며 목책을 세워 방어태새를 철저히했고

목책을 허물라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교류가 끊어짐에도 신경쓰지 않았고

 

백제인들이 주로 사용한 방어시설 '목책' , 몽촌토성 목책

 

이전 백제를 건국할 수 있게 한수(한강) 땅을 줬던

마한왕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강해서 마한왕의 뜻을 일딴 따랐습니다

 

온조왕 26년 7월 가을

온조왕은 마한이 점차 약해지는데

백제와 마한은 원래부터 근본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만약 다른 나라(신라나 가야) 가 이들을 합병해 버리면

더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판단해 남들이 마한을 먹기전에

차라리 백제가 먼저 빼앗아 후환을 없애는게 낫다 생각하였고

그헤 10월 겨울 온조왕은 사냥을 간다하면서 군사들을 출동시켜

마한을 기습하여 마한을 합병했습니다

 

원래 마한의 영역은 오늘날 경기도 , 충청도 , 전라도에 이르는

거대한 영역으로서 원래 마한은 남부 한반도의 맹주 역할이었으며

온조왕의 백제건국으로 백제가 마한의 영역을 그대로 계승하여

시간이 지나며 점차 백제는

남부 한반도의 맹주가 되었고

이후 점차 북부 한반도 , 만주는 고구려가 맹주가 되어

북 고구려 , 남 백제 투탑체제가 형성되가고 있었고

동남부에 위치한 신라는 건국초부터 빈약한 자원과

동남부 구석에 위치해 중국과 교류가 어려움 , 오른쪽에선 계속되는 왜구의 침입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맨날 얻어터지며 간신히 국가를 유지하는 상황이었고

고구려와 백제는 만주 평야 , 한강평야 , 호남평야라는

막대한 자원의 꿀땅을 초기부터 선점할 수 있어

초기 삼국시대의 맹주로 빠르게 발돋움하게 됩니다

 

[마한 장수 주근]

그러나 아무리 온조왕이 영민했어도

백제는 이제 막 일어난 신생국가였고

마한은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지닌 한반도 남부의 맹주국가였고

결국 마한 지역에서 반란이 터졌고

 

온조왕 34년 10월 겨울

마한의 옛 장수 주근이 우곡성(전라남도 곡성 ?)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온조왕이 직접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공격해

주근은 목매어 자결했고

그 시체의 허리를 자르고 처자들도 죽였습니다

 

온조왕은 그렇게 건국초부터 백제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백성들을 편안히 한 백제 초기 명군이었으며

온조왕 38년 3월에는

온조왕이 사람을 보내서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고

급하지 않은 일로 백성을 괴롭히는 부역을 모두 없앴습니다

 

[부여출신 재상 해루]

온조왕 41년 1월 봄

우보 을음이 사망하자

북부의 해루를 우보로 임명했고

해루는 원래 부여 사람이었는데

도량이 넓고 식견이 깊어서

70세가 넘었음에도 체력이 강해서 등용한 것이었습니다

 

[백제 시조 온조왕]

온조왕은 온조왕 46년 2월

46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사망하였고

백제가 700년이나 갈 수 있는 기틀을 다진

온화하고 강단있었던 백제 명군중의 명군이었습니다

 

온조왕은 여걸 소서노의 아들로서 그어머니의 그아들로서

역시 장부였던 인물이고

온조왕은 초기부터 알짜배기 평야를 선점해

백성들을 풍요롭고 안정되게 하였으며 외적들을 방어하고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부역을 없앤

백제의 시조이자 백제 명군중의 명군이었으며

온조왕이 지은 백제왕궁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한자로 '검이불루 화이불치' 라고 기록되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명대사로 유명한 말이고

백제인 , 일본인들의 정신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생각되고

백성들을 풍요롭고 편안히 하고 ,

아름다운 문화력을 갖추면서도 검소한 기풍을 유지한 온조왕의 정신은

백제인들이 건국부터 멸망때까지 끝까지 지킨

백제인들의 국풍이었다 생각되고

온조왕은 가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문화국가

백제인들의 국가이념을 만든 왕다운 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백제 미륵사지 석탑

 

상상력을 발휘해본다면 제 느낌에 온조왕은

뛰어는 무력이나 성스러움이 강조되는 고구려 , 신라 시조와 달리

딱히 뭐 특이한 출생의 비밀도 없고

그냥 주몽이나 부여계 아버지와 여걸 소서노의 아들이라는

지극한 평범한 (인간적) 출생에 어머니가 엄청 대단한 인물이라는 설정이고

 

요즘식으로 보면 뭔가 온조왕은

유능한 전국 1등출신 서울대 의대 출신 어머니(소서노)에게

강남 건물을 물려받은 평생 강남에서 산 부잣집 도련님+강남성골 토박이인데

두번 이혼한 어머니처럼 억척스럽고 극성맞지는 않고

그저 애니메이션과 콘솔게임이 취미라

주기적으로 서울코믹콘 모임에 출석해서

오타쿠 모임에서 조용히 애니메이션 동호회 전원의 밥값 카드 긁어주는

온화하고 수줍고 부유한 강남 도련님 씹덕 청년이 아니었을까 싶고

비록 애니메이션에 많은 돈을 탕진했지만

나름 어머니 못지 않게 유능해서 어머니가 물려준 강남 빌딩에서

흔한 강남건물주로 매일 골프나 치다 인생을 마감하는 테크를 밟지는 않고

 

엄마가 준 빌딩에 백제치킨집을 차려서 적당히 달큰한 맛으로 초대박을 터트려서

프랜차이즈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시킨 후 곧이어 빠른속도로

충청도 , 전라도로 사세를 확장하며 훗날 후손들이

요서 , 중국 , 왜 , 일본에까지 백제치킨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 백제치킨 1대 창업주라 보면 될듯 합니다

 

온조왕

 

고구려 , 신라는 계속해서 시조 , 창업주의 신묘한 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면이 있는데

백제는 의외로 제일 씹덕들의 망상이 범벅될 것 같다는 느낌과 달리

가장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고

 

강력한 파괴력으로 초년 구질구질 고생하다 홈런 빵 쳐주는 고구려 고주몽이나

비범한 출생으로 어린시절부터 성인으로 묘사되며

백성들을 교화시켰다는 신라 박혁거세와 달리

 

온조왕은 딱히 특출난 출생이나 능력이 안보이는데 구멍이 없는 느낌이랄까 ?

그냥 온화하게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가 물려주신거 하나도 말아먹지도 않고 오히려 어머니 재산을 더 불렸고

그냥 조금씩 온건하게 사세 확장시키며 적당히 덕질도 하고

은근 할거 다한 인물이고 백성들 세금도 줄여주고 굉장히 착하고

특출나진 않아도 뭘해도 평타 이상은 잘 쳐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주몽의 압도적인 무술실력과 선동력 ,

박혁거세의 신성력(?) 같은 이미지가 없어서

한국사 시조중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인물이지만

온화하고 도량이 크고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고 단지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뿐인

씹덕들의 성골코스를 탄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현실은 시궁창이기도 했지만) 국가이념상 평화를 사랑하고 특히 강조하는

일본인들의 국가이념 정신과 온조왕의 건국정신이 매우 비슷하단 생각이고

건국역사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는 점이

굉장한 문화+예체능의 피가 흐르던 인물이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성공한 덕후 , 온조왕과 백제인들의 꿈

 

[다루왕]

온조왕 부여온조가 사망하고

온조왕의 맏아들 태자 부여다루가 왕위를 이어

백제 2대왕 다루왕이 됬고

다루왕은 아버지를 닮아 도량이 넓고 명망이 높았습니다

 

[흘우와 곤우의 말갈과의 투쟁]

다루왕 3년 10월 겨울

동부의 홀우가 마수산 서쪽에서 말갈과 싸워 승리했고

이 전투에서 죽이거나 생포한 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다루왕이 기뻐하여

흘우에게 말 열 필과 벼 5백 석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다루왕 4년 8월 가을에는

고목성 곤우가 말갈과 싸워 크게 이겼고

2백여 명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다루왕 7년 2월 봄

우보 해루가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동부 흘우를 우보로 삼았습니다

 

다루왕 10년 10월 겨울

우보 흘우를 좌보로 삼고

북부 진희를 우보로 삼았습니다

 

(초기 백제는 좌우보 재상제가 있었음)

 

이외에도 다루왕은 

곡식이 잘 익지 않을때 백성들이 사사로이 술빚는 것을 금지하고

동서 양부를 순회해 백성들을 위무하고

가난하여 자력으로 살 수 없는 자들에게는

일인당 곡식 두 섬을 준 어진 왕이었고

북부의 말갈과는 투쟁을 계속하며 방비를 했던 임금이었습니다

 

[기루왕]

다루왕이 재위 50년만에 사망하자

다루왕의 맏아들 태자 부여기루가 왕위를 이어

백제 3대왕 기루왕이 되었고

그는 뜻과 식견이 넓고 원대해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기루왕 재위 52년동안은 말갈과 투쟁하고 백성들을 위무한 기록정도고

 

[개루왕]

기루왕이 죽자

기루왕의 아들 부여개루가 왕위를 이어

백제 4대왕 개루왕이 됬고

그는 성격이 공손하고 품행이 방정했던 임금이었습니다

 

개루왕때부터 점차 신라와 갈등이 빚어지는데

개루왕 28년 10월 겨울

신라 아찬 길선이 반역을 도모하다 발각되자

백제로 도망해왔고

신라왕이 글을 보내서 소환을 요청했으나

개루왕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신라왕이 노해서 군사를 출동시켜 공격해왔으나

모든 성이 굳게 방어하고 나아가 싸우지 않았고

신라 군사들은 군량이 떨어져 돌아갔습니다

 

이때부터 백제와 신라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백제는 말갈에 이어 멸망때까지 함께한 신라라는

평생의 애증의 원수와 충돌하게 됩니다

 

 

한성백제 첫 수도였던 풍납토성(위쪽 , 왕성 , 평시수도)과 몽촌토성(아랫쪽 , 방어성 , 전시수도)

 

<라봉봉>보통 한국사 공부하면 고구려뽕부터 빨게 되는데

백제뽕도 충분히 맞을 가치가 있고

백제는 단순한 한국 국가라기보다 워낙 해외에도 진출을 많이해서

최근까지 G2(세계 2짱)였으며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인 일본을 건국한 세력이 백제고

백제인들의 정신이 오늘날 일본에서 그대로 꿈틀대고 있고 일본인들의 조상국가기에

충분히 백제뽕을 맞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백제는 막장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나라였고

문화대국이자 우리에겐 한류의 원조국가로서

오늘날 한국 문화 , K-POP 이 세계로 뻗어가는 시점에서

백제사 연구도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라는 생각입니다

 

백제는 의외로 그림 , 벽화는 별로 없는데

나오는 유물이 하나하나마다 걸작 수준이라 고구려 , 신라가 비할 바가 아닐 수준으로

정밀하고 실용적이고 심미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고

 

한국인들이라면 어릴때 장난으로 괜히 갸루상이나

이무니다 하면서 일본인 흉내 내고 논 기억이 다들 있을텐데

일본 정서 , 말투가 참 독특한게 많은데

실제 백제인들 정서가 일본인들의 평화사상 , 비장함 , 기괴한 모습과 비슷하기에

백제는 기록이 오늘날 신라식으로 굳어진 한국인의 정서에 비해

상당히 일본틱하고 특이한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

 

고구려를 중국사라 우긴다면 그건 굉장히 잘못된 것인데

백제는 실제로 일본을 건국한 주축이기에 

실제로 오늘날 일제강점기 식민지 문제로 반일감정이 극도로 높아져

갈등으로 얼룩진 한일관계에 해답이 될 수 있다 생각되고

백제가 일본이고 일본이 백제라는 유물들이 나올 정도로 (예식진 묘지명)

굉장히 연관이 있는 나라였고 한국과 중국이 유전자가 다른것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유전자 , 어순 , 어족이 같은 상황이라 백제 , 일본 연구는

한국사 연구에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생각됩니다

 

의외로 온조왕이 별다른 특색은 없는 왕이나

단점도 없는 왕이고 백제는 삼국시대 국가들처럼

명군들이 연이어 나오며

700년이라는 길고 안정적인 치세를 이룩했고

 

결국 요즘 배우는 역사관은 대부분 신라식 역사관이라

고구려 , 백제식 역사관이 함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고구려는 유목민족 느낌의 한국이라 색다르고

백제는 일본삘 , 옛날식 표현으로 왜풍(왜색)이 강한나라가 한반도내에 있었다는게

 

(물론 일본이 영향준게 아니라 백제가 원조 일본임)

 

참 특이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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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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