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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3대 왕은 삼근왕입니다

문주왕의 첫째아들로 문주왕이 해구에게 살해,,당한뒤 13살에 왕이되었다합니다,,

이상한 기록은 아버지가 해구에게 살해당했는데 즉위하고

해구에게 국정을 맡긴것같습니다,,

해구는 강력한 권력을가진신하 권신이었을까요,,

그러다 해구는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합니다,,

그러다 해구의 반란을 진압,,하고 몇년후 삼근왕도 죽는거같은데요

삼근왕도 어찌보면 이다음왕 동성왕에게 살해당했다는말도 있는거같고요,,

너무 옛날이고 기록이적어 정확한 사실은 알수없다해도 이당시 백제는 혼란스러웠을거 같습니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삼근왕때에

아버지를 시해한 신하를 죽이지않고,,국정을 맡기니 삼근 어린아이가 뭘하겠나

이런식으로 쓴것같습니다,,

또 백제를 백제라안하고 바다구석 모퉁이의 삼근 어린아이 이런식으로 말하는거같은데요

삼국은 신라가 통일했기에 신라기록이 많은거같고 고구려는 김부식이 이당시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관리라 고구려의 의의 등 긍정적이게 쓰지않았을까요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 왕도죽였고,,또 신라를 여러번 공격한나라라

백제를 부정적으로 쓰지않았나싶습니다,,


24대 백제왕은 동성왕입니다

삼근왕이 왕이되고 3년만에죽고 왕이되는데요,,

이때부터 그래도 백제가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것같습니다

중흥이라하는데요 개로왕때 나라가 멸망할 위기까지가다가

문주왕때 수도를 옮기고 삼근왕때까지 혼란스럽다가

다시 이때부터 어느정도 안정적으 가는거같습니다

문주왕 동생 곤지의 아들이라합니다

곤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시 문주왕이 왕이되자

백제로 돌아오는거같은데요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진씨세력에의해 왕이되었다합니다,,

동성왕때 신라와 혼인관계로 동맹을 맺었다합니다,,

동성왕은 초기에는 진씨세력의 영향에서 조용히있다가

나중에는 진씨세력에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금강유역의 새로운 세력들을

등용하고 대신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과도한 궁궐공사등을 했던거같은데요

그러다 사냥중에 살해당합니다,,

이당시에도 많은 천재지변이나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쳤다 이런기록들이

있는거같은데요,,특이한 기록으로는 서울에서 노파가 여우로 둔갑해서 사라졌다고합니다,,

뭔가 일본설화에 나올법한 이야기같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왕들이 귀족들을 견제하고 왕권강화를 하려한 시도가

여러번 있었던거같습니다 그러나 이런다고 권력이 강화되는게아니라

착한 정치를하고 백성을 위하면 자연히 권력이 강화되지않을까요,,

동성왕은 백제왕에서는 기록이 많은왕같습니다 그래도 재위기간도 23년으로

그전왕들에비해 오랬동안 왕을 했고 이당시부터 백제가 다시 안정을 찾았던거같습니다


25대 백제왕은 무령왕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무령왕릉이 무령왕의 무덤입니다

박정희정부때 배수관공사중에 발견됬는데요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 할수있는거같은데요 그러나 이당시 우리의 고고학 발굴방식이

매우잘못됬다 할수있는거같습니다

배수관 공사중 발견되자 주민들,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유물이 파손되고 그랬다합니다

또 이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유물로 순금인가 하면서 팔찌를 접었다 폈다했다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은 소년처럼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합니다

사실 원칙적으로만은 당연히 이러면안되겠으나

트로이를 발굴한 고고학자 슐리만도 그리스에서 발굴한 금장식들을 아내에게

씌어주고 사진을찍었고 어찌보면 초기 발굴자만 할수있는 또 다시는 해서는 안될

그런 즐거움이 아닐까싶습니다,,

물론 무령왕릉의 사례는 의도적으로 발굴하려했다는거는 아닌거같고

갑자기 발견된 백제의 유산이었고 많은 잘못발굴한 대표적 사례같습니다

발굴자가 무덤에서 유적을 조사하는데 옆에서 기자와 마을주민들이 무덤에 발굴자와

같이 들어와있으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요 무덤에 함부로 들어가 사진을찍으려던

기자에의해 발굴된 숟가락이 파괴되기도했다는것같습니다,,

그러나 무령왕릉의 유물로 화려한 백제의 유산들이 공개됬고 무령왕릉은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또 충청도지역 주민들의 주요수입원중 하나일수도 있을거같습니다

가치있는 문화유산이 우리지역에있다면 유명관광지가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일본서기에서 무령왕은 곤지의 첫째아들이라합니다

곤지가 일본으로 가던중 일본 어느섬에서 태어났다하는데요

즉 일본에서 태어난 왕입니다 일본서기에서 동성왕의 이복형이라는데요

원래 일본서기도 워낙 일본중심적으로 쓰여서 그 진실성이 부정되다가

칠지도가 1873년 일본궁궐 보물창고에서 발견되서 그 진실성이 인정되는거같습니다

칠지도는 오늘날에도 한일 교류관계의 매우중요한 유산같습니다

물론 그래도 일본서기는 너무?? 일본중심적이라 너무 믿어서도 안되고요

우리도 삼국사기기록과 일본서기기록,나온유물들로 해서 이건 이랬다하면서 추측하는것이니

삼국사기는 100퍼센트 진실이다 이런것도 문제가있을것같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아들 이라는데요 무령왕릉 발굴결과

무령왕이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다고 나와서 현재는 일본서기기록으로 인정하고있다합니다


현재 일본의 정치는 입헌군주국으로 왕은 있으나 정치는 총리가하는 형태입니다

한국에도 총리가있는데요 그렇다고 같은게아니라 일본에서는 총리가 한국에서의 대통령같은것이라

할수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국왕은,,아키히토 일왕인데요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덴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오늘날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옛날같이 혈연으로 정치를 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나 오랜 백제와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수있을거같습니다


무령왕은 곤지가 일본을 가던도중 가카라시마라는 섬에서 낳았다하는데요

오늘날에도 가카라시마에는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동굴이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제사를 지내는거같고,,

사실 일본이 임진왜란,일제강점기같은것도 있으나 일본마을등에서는

아직도 백제인들을 기리는 유적들이 많이있는것같습니다

사실상 문명이 간절했던 일본인들에게 문화를 알려준 백제인들을 생각하는것이었을까요

오늘날에도 이소노카미 신궁에는 매년 1월 1일~3일 10만명의 일본인이 찾는다는데요,,

이 신궁에 칠지도가 보관되있다합니다

또 일본은 백제멸망시기에 일본인들이 사실상 모든힘을다해서,,

백제를 도와주려 군대를,, 보낸거같은데요

물론 워낙이당시 당나라가 대국이었다할수있는거같고 졌다할수있겠으나

일본에게 백제는 매우 중요한 나라라 할수있을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옛날에 잘나갔다고 현재 현실을 무시하는거는 경계해야될거같습니다,,

사실상 백제는 오늘날 서울쪽에서 시작하다 충청도쪽으로 밀려난 나라였고

전라도지역과는 가까운 나라였던거같은데요 전라도지역에는 마한세력이

있었던것 같고요

무령왕시기에 오늘날 전라남도지방까지 백제가 정복하는거같습니다,,

또 가야도 진출했다고합니다,,

일시적으로 한강유역까지 다시 진출했다는거같습니다,,

중국역사책 양서 백제전에는 무령왕때

22담로 즉 여러 지역에 왕족을 보내서 통치하게했다합니다,,

무령왕시대에 백제가 여러 안정이있었던것같습니다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고 제방을 튼튼히하고 농사를 장려했다합니다,,

물론이때도 천재지변기록은 있었는데요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없어도

사람이 할수있는것은 해야되는것같습니다,,

또 중국과 교류를하고 망해가던 백제가 무령왕시기부터 다시 안정적이게 되는것같습니다

누리떼가 곡식을 헤쳐서 백성들이 굶주렸다는데요

누리떼는 풀무치의 우리말로 메뚜기같은 곤충같습니다

그러나 메뚜기를 누리라 불렀다고도 합니다

한자로는 황충이라 한거같고요

사실상 옛날부터 메뚜기떼는 농사를 망치거나 상당히 무서웠을것같습니다,,

메뚜기 수십억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2014년에도 전남해남에서 수십억마리의 메뚜기떼가 나타났다합니다

친환경 방충작업으로 2일만에 막았다는데요,,

오늘날 한국에는 서식지파괴로 오히려 보호종까지 된거같습니다,,

메뚜기는 저가 간장과 같이 요리한 메뚜기요리를 먹어본거같은데요

매우 맛있었던것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서식지파괴로 보기가 힘들겠으나

농민들이나 그당시에는 매우공포의 곤충이었을것같습니다,,


무령왕때 백제인들은 자연재해나 혼란속에서도,, 여러안정이 있었지 않았을까요

무령왕릉의 화려한 유산들은 백제와 중국의 교류 백제의 문화를 알수있습니다

무덤에서 4600점이나 나왔다는데요 비록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화려하게

무덤을짓고 거기에 금과 여러 보물??들을 넣는것은 자연낭비같은데요

그당시 백제인들은 무령왕의 착한정치를 생각하며 정성껏 무덤을 만들었을까 싶기도

하는거같습니다,,

무령왕릉 유물은 금동신발,장식,귀걸이 등등이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족좌가 멋있는것같습니다 나무로된 배게와 발배게가 나왔는데요

족좌는 발배게입니다 배게에 육각 황금띠안에 황금꽃이 있는

화려한 백제의 유산같은데요

허세 없는 왕의 권위를 표상한다고 합니다

공예는 삼국에서 백제가 최고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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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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