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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6대왕은 성왕입니다

한자는 성인,성스러운 성자인데요 성왕은 불교의 전륜성왕에서

가져온 이름같습니다 전륜성왕은 수레바퀴를 타고다니는 성스러운왕같은데요

무력이아닌 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다는데요,,전륜성왕의 하나는 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한다는데요 무력을쓰는거를 떠나서 세계를 지배하거나 정복하는게 문제가있는것같습니다,,

이사상에 동양 여러 왕들이 빠져들었고,,스스로 전륜성왕을 자처한거같습니다

백제의 성왕,신라의 진흥왕도 이런 왕들중 한명인것같습니다


전륜성왕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부처님이 태어났을때 원래 이름은 싯다르타인데요

목적을 이루는자라는 뜻입니다 부처,붓다는 깨달음을 얻은자이고요

부처님이 태어났을때 예언가가 부처님을보고 이아이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부처가될것이다 라했는데요 부처님의 아버지는 석가족의 왕 정반왕이었습니다

즉 부처님,싯다르타는 원래 나라의 태자였습니다 정반왕은

아들 싯다르타가 전륜성왕 즉 지배자가되어 자신의 왕위를 이어서

왕이되기를 원한것같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출가해서

부처가되었는데요 사실 부처님은 출가하기전에 이미 부인도있었고 자식도있었는데요,,

조선시대초기 사대부,선비들이 불교를 탄압하면서 이런 사실을 얘기하면서

탄압하는 구실이된것같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친자식이름이 라훌라입니다,,아들인데요

라훌라의 뜻은 족쇄입니다,,


성왕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일본서기 둘다 영리하고 똑똑하다 이런말이있는것같습니다

당대에 백제인들이 성왕이라 했다고합니다

무령왕의 아들로 왕이되고 수도를 웅진 오늘날공주에서 사비,오늘날 부여로 이동합니다

천도라고하는데요 역시 왕권을 강화하려고 천도한거같은데요,,

미륵신앙으로 스스로 미륵이라했다고합니다,,나중에 후고구려의 궁예도

미륵을 자처하는데요,, 전륜성왕,미륵등등 이런사상은 불교적 사상같습니다,,

나라이름도 남부여로 바꾸고요 백제는원래 왕의성도 부여씨이고

스스로 부여에서 왔다 이런게 있었던것같습니다

성왕시기에 일본에 노리사치계를 파견해 불교를 전해주었다합니다

노리사치계라는 이름도 뭔가 일본스러운 이름같은데요 승려로

일본서기에만 등장한다고합니다

중국과 교류하고 신라와 동맹을 맺어 옛날 백제의 수도이자 영토였던

한강유역을 다시찾으려고합니다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하고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을 정복합니다,,

이때 신라는 한강북부,백제는 한강남부를 찾게되는데요

그러다가 신라가 한강남부까지 영토로 하게되었는데요,,

동맹을 없던거로하고 남부까지 공격했을수도 있고 백제가 한강쪽을 포기했다등등

여러이야기가 있는것같은데요

성왕은 진흥왕에게 딸을 시집보내서 장인이됬다고합니다,,

그러고 일부귀족들의 반대를 불구하고 신라를 공격한다는데요

그러다가 관산성전투에서 성왕이 50명정도를 데리고 관산성을가다가

미리 그 사실을 안 신라군이 매복 즉 숨어있다가 공격해서

성왕을 사로잡습니다 성왕은 고도라는 신라인에게 목을 베여,,죽습니다

죽기전에 성왕은 하늘을 보며 탄식하며 눈물을리면서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 수는 없다”

라 하고 죽었다고합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궁형이라는 성기가 잘리는 형벌,,을 받고도

끝까지 살아서 사기라는 역사책을 쓰는데요,, 사마천은

세상사람들은 내가 죽어도 절개를 위해죽는다고 생각하지않고 나쁜말하다가 죄짓고 어리석게

죽었다 여길것이라면서,,

끝까지 살아서 사기를 완성합니다

차라리 치욕스럽더라도 끝까지 살아야하지않았을까요,,

성왕까지 왕권이 어느정도 유지되다가

귀족들의 말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 패하고 사망해서,,

다시 백제는 귀족중심의 정치가 됬다고합니다,,

현존하는 가장오래된 목재 건축으로 유네스코세계 문화유산인

일본 호류사에는 구세관음상이있는데요

성왕의 아들 위덕왕이 만든

성왕의 모습을 본따서 만들어진 상이라고합니다


27대 백제의 왕은 위덕왕입니다


성왕이 무리하게 신라를 공격한이유가 아들 태자 부여 창

즉 27대왕이되는 위덕왕이 계속 신라를 공격하자한거같고

귀족들에 반대에도 성왕이이를 승인하는것같습니다,,

그러다가 관산성에서 창을 만나러가다가 성왕은죽고 창은 수만명의

백제군들이 사망하고 겨우 살아 백제의 왕이되는것같습니다,,거의 1만~3만명이죽었다고하는데요

창은 자신의 고집으로 아버지와 백성수만이 죽어 죄책감에 왕이 되지않고 출가해 승려가 되려했다가

귀족들에의해 왕이되었다고합니다 대신 백성100명을 출가시켰다고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성왕을 생각하는??자식 위덕왕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있는것같습니다

그이유는 부여읍 능란리 고분앞 절터에서 창왕명석조사리함이라는게 발견됬는데

위덕왕의 이름이 창입니다

인근지역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에는 도교,불교등 백제의 이상향,이상세계가 표현되있는것같습니다

1993년 주차장공사를 하던중 발굴단이 한번만 더 파보자 해서

파봤더니 나왔다는데요 만약 한번만더 파보지않았더라면 주차장 밑에서 계속

있었을까요,,

공사하는중이나 농사지을때 유물이 발견되는 사례는 여러번 있는것같습니다

특히 부여,공주,경주,서울 이런도시는 나라의 수도였던지역이라

앞으로도 또 특별한 유물이 나올수도 있는것같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너무나 놀랍고 멋있는 유물같습니다

저가 이거 책에서 사진으로보고 너무 놀란것같습니다


위덕왕의 아들은 아좌태자로 일본에 건너가 성덕태자 성스러운 덕 태자,,쇼토쿠태자의 스승이됬다고

일본서기기록에있는데요 현재 일본 제실박물관에는 호류사에서 전해져내려왔다는

아좌태자가 그린 쇼토쿠태자의 초상화가있다고합니다

쇼토쿠태자는 호류사를 짓고 여러 개혁을 한거같은데요

수나라에 사자를 파견해서 편지를보내 수나라황제 양제에게


[日出處天子 致書 日沒處天子 無恙]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별일 없으신가?"


라고 보내는데요,,당시 일본인들은 외적의 침입이 없다할수있는??

섬에서 백제의 문화를 배우며 중국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않고 일본이

최고다 이런생각이 있었던게 아닐까싶습니다

전쟁은 안되는데요

나중에 백제가 멸망할때도 당나라군과 싸우다 일본군은 매우 크게 지는것같습니다,,

저도 10년전정도의 스마트폰나오기전에와 현재 많은 정보격차가 있는것같은데요

옛날같이 교통도 불편하고 통신수단도 부족했던 당시에는 일본이 중국을 잘 몰라서 그런것같습니다

그러나 쇼토쿠태자가 원래 개혁적이고 그런성격은 있었지않을까싶습니다

수양제는 호통을냈는데 신하들이 말려서 참았다는 얘기도있는것같고

수나라 역사서 수서에는 문전박대당해 수양제와 만나지도못했다는 말도있는것같습니다,,

위덕왕은 태자시절에 백합야전투에서 고구려군과 일기토 즉 일대일로 싸워서,,

고구려군을 죽였다고합니다,,

또 수나라에 사신을보내 고구려를 공격을 돕겠다 한거같고,,

신라 변경을 여러번 공격한왕 같습니다,,


28대 백제의 왕은 혜왕입니다

성왕을 둘째아들,위덕왕의 동생이었는데요

위덕왕이 죽고 71세에 왕이되서 72세에 사망했다고합니다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아좌태자가 왕이 되지않고 혜왕이 됬다고하는데요

기록이 별로없는것같습니다


삼국사기에는 혜왕의 즉위하다,혜왕이 죽다 기록이 두줄밖에 없는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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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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