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백제의 30번째 왕은 무왕입니다

서동요로 유명한 왕같은데요 서동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옛날에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공주가 아름다워서

서동이라는 사람이 머리를 깎고 아이들에게 가서 마를 나눠주면서

마는 말린 고구마같이 고구마같은 간식이라 보시면 될거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마를 주고 노래를 시킵니다

그노래가 서동요인데요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맛동(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라는 노래입니다

이에 신라 신하들이 공주를 귀향보내게하는데요,,

공주의 어머니가 공주에게 금 한말을 줬다고합니다

그러다 서동이 나타나서 시위 侍衛 즉 모셔가겠다고합니다

이에 공주와 서동이 관계를 하는데요,,

그후에 서동이라는것을 알았다고합니다

그러다가 같이 백제에 오고 공주가 가져온 금으로 살림을 하려하는데

서동이 내가 어렸을때부터 마를 캐던 땅에는 이런게

흙같이 쌓여있다고합니다 이에 공주는 크게놀라서

이를 부모님에게 보내자해서 서동이 알았다해서

금을 쌓아놨는데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용화산의 지명법사라는 사람에게 묻자 법사가

신통력으로 옮긴다해서 하루만에 신라 궁궐로 옮겼다고합니다,,

이에 신라 진평왕은 존경하고 편지를 보내 문안을 물었다고합니다,,

이에 서동도 민심을 얻어 왕이 됬다는데요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많은거같은데요 또 오늘날에도 2009년에 미륵사지 석탑에서

무왕의 부인이 사택적덕의 딸 사택왕후라는 유물이나오는데요

왕비가 둘이었을 수도있다는 말도있고 무왕이 아니라 다른왕이라는 이야기도 있는거같은데요

저역시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당시 일연이라는 분이 삼국유사에 기록할 정도면

민간에서 떠도는 설화일수도 있고 서동요의 실존인물은 있지않았을까요,,

또 이야기가 단순히 지어냈다기에는 꽤 스토리가 기승전결과 즐거운 결말 이런게 있는거같습니다,,

신데렐라나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와도 비슷한 그런게 있는거같고요

물론 법사가 신통력으로 이런거는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는거같고요,,

특히 삼국유사가 이런 이야기나 단군조선의

마늘과 쑥을 먹은 호랑이,곰이야기같이 이런 이야기들도 기록됬는데요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그당시 기록이 워낙부족하고 또 어느정도 그당시

사회상을 알수있는 이야기일수도 있는거같습니다


여기까지가 무왕의 이야기였습니다

무왕은 출생이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미륵사는 위덕왕이나 법왕때 짓기 시작했다는거같은데요 미륵사를 무왕때 완성합니다

즉위기간이 긴 왕입니다 42년간 즉위했는데요

즉위기간 기록에는 신라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많은거같고

수나라,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는 기록이 많은거같습니다

또 무왕때 익산지역으로 수도를 옮기려했다는데요

수도를 옮기려한 이유는 사비세력 귀족들을 견제하거나

원래 무왕이 익산쪽에서 나온왕이어서 그랬다거나

신라와 가야를 공격하려 가까운 익산쪽으로 가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거같습니다


무왕은 서동요가 유명한거같습니다


31대 백제의 왕은 의자왕입니다 마지막왕입니다

이름은 부여의자로 어렸을때 어버이를 섬기고 형재와 우애있게 지내서 해동증자로 불렸다고합니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는데요

즉위후 신라의 40여성까지 뺏고 신라가 멸망위기까지 갔다고하는거같습니다,,

그러다 신라는 중국 당나라에 의지하게 되는거같고요

해동증가로 불리었던 의자왕은 갈수록 충신들을 멀리하고 실정을 하게되는거같습니다

백제가 멸망하기전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모든개가 짖거나 울어대다 흩어졌다하고요

귀신이 나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 외치고 땅으로 들어갔다합니다,,

왕이 이상하게여겨 땅을 파보니 거북이가 발견됬는데 거북이등에는

백제는 보름달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라는 글귀가 써져있었습니다

의자왕이 무당을 불러서 그거를 해석하게하니

보름달은 이미찼으니 기울때가 된것이고 초승달은 아직안찼으니 보름달이 될거라는 말입니다

라고했는데요 이에 다른 무당을부르니

다른 무당은 달이 찼다는것은 기운이 왕성한것으로 초승달같은 신라와 비교할수없게 강대국이된다

이런식으로 해석했다고합니다

이에 의자왕은 첫번째 무당을 죽여버리고,,두번째로 해석한 무당에게 상을 내렸다고합니다,,

해동증자라고 불렸던 의자왕,,그러다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궁녀들과 노는거같은데요

삼천궁녀라고 삼천명의 궁녀가 있었다는 말도 있는거같은데요 사실

이거는 궁녀가 많아서 삼천이라고 비유한건데 삼천궁녀로 유명해졌다는말도 있었던거같고

그당시 사비 인구가 5만정도인데 삼천궁녀는 말도안되고 그럴수도 없었던거같습니다

성충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요 의자왕에게 감옥에 갖히는데요

충신으로 의자왕이 향락에 빠지자 이를 말리다가 감옥에 간거같습니다

성충이 감옥에 간이후로 의자왕에게 충언을 하는 신하가 없어졌다고합니다,,

옥에서 야위어 죽었는데 죽으면서도 왕에게 충언을해서

외적의 침입이 있을거라고 육로는 탄현 수로는 기벌포를 방비해서

거기를 넘어오지 못하라 충언하고 죽습니다,,

의자왕도 성충의 충언을 들으려했으나 이간으로 그만두었다는 말도 있는데요

삼국사기에는 성충의 충언을 듣지않았다고나옵니다

의자왕은 성충의 충언을 듣지않고 신라,당나라군대가 이곳을 넘어오고나서야

장군 계백을 시켜서 5천결사대로 황산으로가 신라군을 막게되는데요,,

계백도 이미 나라가 망할거를 알고있었던거같습니다,,

가기전에 처자식을 전부 죽였다고합니다,,

가족들을 죽이기전에,,살아서 적의 노예가 됨은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하다 라고 말했다고합니다,,'

신라군과 싸워서 4번이기었습니다 그러나 신라군은 5만이었고 장군이 김유신 장군입니다,,

신라군은 4번지자 김유신장군의 동생의 아들인 반굴을 보냅니다 화랑인데요

홀로 들어가 싸우다 죽었다고합니다,,

또 장군 김품일은 아들 화랑 관창을 보내는데요 관창은 16살이었다고합니다,,

계백은 관창을 사로잡았다가 돌려보내는데요

관창은 다시 돌아오자 손으로 우물물을 마시고 다시 가다가 또 사로잡힙니다

계백은 관창을 죽여서 머리를 잘라서,,머리를 말 안장에다 태워서 돌려보냅니다

이에 신라군은 죽을각오로 가서 백제군을 이겼다고합니다,,

계백은 전사하고,, 백강에서도 백제군은 당나라해군에게 패배하고요,,

사비성은 포위되고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망가는데요

사비성이 항복하자 의자왕도 항복합니다,,

사실 의자왕은 신라,당나라군대가 공격하기 이전부터

귀족들과 사이가 나빴던거같고 황산벌 전투가 있기전에는

계백을 제외한 다른 지방귀족들은 군대를 보내지도 않았다는데요,,

물론 의자왕의 실정도 있겠으나 뭔가 백제인들은 어짜피 나라 망해도

일본가면된다는 마인드가 있었을까 싶기도합니다,,

이미 일본에 살던 백제인들도 많지않았을까요

그에비해 신라는 일본과 친한거도 아닌거같고 옆나라 윗나라 국경을 대고있는

백제,고구려와도 사이가 나쁜거같고 당나라에 의지해서 지면 나라 멸망이다

이런 마인드가 아니었을까요,,

백제는 멸망합니다 그러다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개루왕때 고구려군에게 수도를 뺐기고 나라가 멸망할뻔하다가

겨우 수도를 옮기고 다시 이어가다가 이번에는 부흥운동을 했으나

실패합니다 흑치상지라는 사람이 부흥운동을 하다가

당나라에 항복합니다 그리고 당나라는 흑치상지에게 군대를줘서 백제부흥군을 공격합니다

이이제이라는게 당나라의 방식같은데요 오랑캐로 오랑캐를 멸한다는 뜻입니다

흑치상지는 이후에도 당나라에가서 당나라 장군으로

토번 오늘날 티베트 지역까지가서 공격했다고합니다,,

그러다가 흑치상지는 모함받아서 감옥에서 자살해 죽습니다,,


백제는 멸망합니다 의자왕시기에 나타난 유물인데요

가죽갑옷이라고합니다 2011년에 발견됬다는데요

가죽에 옻칠이 되서 상태가 매우 ㄱㅊ은거같습니다

글자가 뚜렷하고 선명하지않나요

뭔가 일본느낌이 나는거같습니다

뭔가 백제유물은 화려하고 그런게 있는거같습니다


백제 멸망,백제 부흥운동이 끝난 이후에도

통일신라의 골품제등으로 백제지방 사람들이 차별이 있었던거같고

백제지방 사람들도 신라인이나 백제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던거같습니다

또 통일신라때 김헌창의 난이 일어나는데요 백제옛 영토지역사람들이 다 김헌창쪽으로 가는거같습니다,,

지도를보니 거의 나라 반이 반란을 일으킨 매우큰 반란같습니다,,그러다가 반란은 진압됩니다,,

그러다 200년후에 이는 후백제로 나타나는거같습니다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의 언어는 달랐으나 말은 서로 통역없이 통했던거같습니다

그러나 중국 역사책 양서에서는 중국과는 통역이 필요해서

신라사신들은 중국어를몰라서 백제사신 통역을 통해서 중국 양무제의

말을 겨우 답했다고합니다 물론 백제사신이 신라어를 알았을수도 있다는 말도있는거같은데요

방언이라는 사투리를 빼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은 무리없이 이야기되지않았을까요

반응형

'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 2.남해 차차웅 3.유리 이사금  (0) 2017.07.20
신라 1.박혁거세  (0) 2017.07.19
백제 29.법왕  (0) 2017.07.09
백제 26.성왕 27.위덕왕 28.혜왕  (0) 2017.06.25
백제 23.삼근왕 24.동성왕 25.무령왕  (0) 2017.06.24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