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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882년 임오년의 군대의 난 임오군란,흥선대원군의 짧은 정계복귀 이후 청으로 납치된 사건,,이

있고 2년뒤 1884년 갑신년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당시 조선조정은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에서

그래도 개화로 가자는 노선으로 갔던거 같은데요

그래더 개화파에서도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나뉩니다

온건개화파의 대표 인물은 김홍집,

급진개화파의 대표 인물은 김옥균 입니다


김옥균 같은 급진 개화파는 일본 메이지유신에 영향을 받았고

일본같이 개화를 하자는 친일적(매국이라기보다 일본과 친했다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성향이었고

김홍집 같은 온건 개화파는 중국의 양무운동,

동도서기론(동양의 도와 서양의 기술로 개혁하자는 입장입니다)

같은 친 중국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이당시 근대적 우체국인 우정국이 만들어지고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서

김옥균과 급진개화파는 조선 근대화를 기치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를 갑신정변이라 합니다,,

그리고 고종에게가서 고종을 모시고 정권을 잡는데요,,

그리고 정강 14조라는 거를 발표해서

개혁정책들을 말합니다

개혁내용에는

문벌폐지와 인민평등권리를 내세우는데요 이는 신분제 폐지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당시에는 중국 청나라가 마지막으로 그래도 나라 구실을 하고,,

마지막으로 강했을때입니다,,이 이후부터는 청나라는

서양열강,제국국가들의 간섭 청나라 내에서는 군벌들이 일어나고 마지막 황제 푸이황제때

청국은 멸망합니다,, 조선 서울,한양에 청나라 군대가 많이

주둔해있었는데요 3일만에 청군에 진압됩니다,,

그래서 갑신정변을 삼일천하라고도 부릅니다,,

이당시 급진 개화파는 100명의 군대와 200명의 일본군이 있었고

청나라와 조선정부군은 1500명이어서 압도적인 수적 열세로 급진개화파 요인들은

피난가는거 같습니다

김옥균은 일본공사관으로 피난갑니다


갑신정변은 신분제 폐지와 근대국가로 가는 개혁이라는 의의가 있으나

외세,일본을 끌여들이고 백성,민중의 지지를 못한 개혁이라는 말이 있는거 같습니다

급진개화파 내부에서도 김옥균의 실책을 말하는게 있었던거 같고요,,


김옥균은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는거 같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과 교류하다가 방탕한 생활도 하는거 같습니다,,

이후 김옥균은 청나라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홍종우라는 자객에게 살해당합니다,,

이당시 김옥균은 자치통감이라는 중국 역사책을 읽고 있었다는데요

자치통감은 제왕이 되려는자들이 읽는 책이라는 말이 있는거 같습니다

역모를 뒤집어 씌울때 특히 거론되는 책으로 김옥균은 제왕이 되려했던자라는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나서 저도 옛날에 인터넷에서 역사학은 제왕학이다라는 이야기를

본게 떠오른거 같습니다 또 성공을 하기위한 지침서같은 이미지도 예로부터 있었던거 같은데요

그러나 그렇게치면 컴퓨터도 칼도 자동차도 등등 여러 발명품들도 다 해당하는 말이고

지식이나 도구들은 가치있는 방향으로 쓰여야합니다


김옥균은 조선을 근대화,개혁하려 한 젊은이었으나

정작 여색에 빠지며 자기관리를 못하거나 구세력,백성,민중들의 입장을

대표하지 못하는등의 안타까움이 있는 사람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의 혁명가같은 이미지로 높게 평가하는거 같습니다

그 이유는 김옥균은 일본의 지원과 일본과 친했던 사람이었고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와 교류하기도 해서 같습니다

일본도 초기에는 이렇게 김옥균의 조선개혁(일본과 친한 조선정부)을 바랐다거나

시작부터 조선을 정복하려고 하지는 않았던거 같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너무 오랬동안

잠들어 있던??,, 나라였던거 같습니다,,

고요한 아침의나라 조선 후기,근대사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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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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