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구려 6대왕 태조왕 太祖王 의 정식명칭은 태조대왕 太祖大王 입니다

저역시 한국사의 왕을의 명칭을 낮춰부르고 싶지는 않으나

어렸을때부터 태조왕이라 보았고

동명성왕을 주몽이라 부르거나

유리명왕을 유리왕이라 부른거나

태조대왕의 대자를 빼는게 결코 낮춰부르려는 의도가 아니라

친숙하고 편해서입니다 사실 조선시대 평범한 임금들도

살아생전에는 대왕이라 불렸고 명칭보다는 살아서 무엇을 했고

남겼는가가 중요한거 같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6대왕 태조왕은

대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폭군이라 불렸던 모본왕 사후

조용하게 고구려를 안정시킨 명군입니다

그러나,, 오래사셨는데도 너무 오래사셔서,,

93년을 재위하시고 고구려 다음 후계자들이 기다리다

지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고,,

이 사실을 안 태조왕은

왕위를 양보,은퇴하시고 별궁에서 사시다 돌아가십니다,,

118세까지 사셨다하고,, 93년을 고구려 왕으로 계셨다고 합니다,,


태조왕의 이야기는 장수한 왕답게 매우 깁니다,,

그러면 고구려 6대왕 태조대왕, 태조왕의 이야기입니다,,

태조왕 이야기에는 신비한,상서로운 동물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구려 6대왕 태조왕

본명 어렸을때 이름은 어수,이후 이름은 궁

재위기간 53년~146년 93년 ,,


태조대왕 太祖大王 (태조왕의 정식명칭)은

국조왕(나라 조상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궁이었고

어렸을때의 이름은 어수라 불렸다고 합니다


태조왕은 유리왕의 아들이었던 고추가 직위의

재사라는 사람의 아들이고

어머니 태후는 부여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모본왕이 폭정을 하다 두로에게 죽고난뒤

고구려에서는 다음 왕을 찾았는데요,,

모본왕의 아들,태자 익은 못나고 어리석어,,

나라를 맡을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모본왕의 작은 아버지였던, 즉 모본왕의 아버지는 대무신왕이었고

대무신왕의 동생이었던

재사라는 사람이 다음 고구려 후계로 지목됩니다

그러나 재사는 나이가 이미 많았었고

이에 재사는 ,,


<재사>나는 이미 나이가 많소,,

그러나 내 아들 어수(태조왕의 어릴때 이름)는 아직 어린 나이나

착하며 출중한 모습이 있기에

내 7살배기 아들이 뒤를 이었으면 합니다,,


이에 백성들이 궁(태조왕의 이름)을 맞이하여

모본왕 다음 6대 고구려왕에 삼았다고 합니다,,


태조왕은 태어날때부터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출중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고구려 국왕이 됬을때는

나이가 고작 7살 어린아이라

태조왕의 어머니, 부여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게됩니다


(수렴청정 垂簾聽政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이를 도와 정사를 돌보던 일.

왕대비가 신하를 접견할 때 그 앞에 발을 늘인 데서 유래한다)


특이한 사실은 태조왕의 양친,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태조왕이 왕이 됬는데도 아버지는 고구려 정사에 관여하지않고

어머니 부여태후만이 어린 태조왕 대신 고구려 정치를 담당하게 됩니다


<부여태후>나는 당당하고 진취적인 고구려 여인이며

고구려여인을 무시하다간 큰코다친다고 ~


실제로 고구려에는 남녀가 결혼하면

신랑은 아내의 집에서 아내 부모님집,처갓집 옆에 작은 집을 짓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랄때까지 처갓집을 도우며 살던

데릴사위제, 서옥제라는 풍습이 있었고

태조대왕 이후에도 부여태후 이후에도 고구려 여인들의

당차고 진취적인 모습들이 많이 기록되있습니다,,


그렇게 태조왕의 어머니, 고구려 여인 부여태후의 섭정으로

나라가 운영되기 시작됬습니다,,


태조왕 3년 2월 봄 고구려는 요서지방에 10개의 성을 쌓아서

한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합니다


같은해 가을 8월에는 고구려 남쪽지방에

메뚜기 떼들이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고 합니다


태조왕 4년 7월 가을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만들어

국경을 개척하였으니,

고구려 영토가

동으로는 동해바다,

남으로는 살수에 이르었다고 합니다


태조왕 7년 4월 여름에는 13살의 태조왕이

고안연이라는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가

지느러미가 붉은 하얀 물고기를 낚았다고 합니다


<고구려 신하들>폐하 또다시 하얀 동물들이

고구려에 출현한것으로 보아 이는 길조(좋은 조짐)로

앞으로 고구려에 좋은 일들만 가득할거 같습니다 ~~


<태조왕>멋진 일이군요 ~!


또 같은해 7월 가을

고구려 서울,수도에는 홍수가 나서

집들이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 갔다고 합니다,,


태조왕 10년 8월 가을이었습니다


<고구려 장군들>폐하, 폐하께서도 어느새

왕위에 오르신지 10년으로

16세의 어엿한 청년이 되셨사옵니다

무예를 중요시하는 우리 고구려인들의 전통답게

사냥을 나가지 않으시겠습니까 ?


<태조왕>그리합시다


그렇게 태조왕은 고구려 장군들과

고구려 동쪽지방에서 사냥을 하는도중에


<고구려 장군>폐하 ! 하얀 사슴이 출몰하였사옵니다 !


<하얀 동물은 귀한,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태조왕은 하얀 사슴을 잡게됬고,,


<태조왕>선대 유리왕께서나 민중왕께서도

하얀 사슴을 잡은거로 기억한다


<고구려 장군>정확히는 두 선대 폐하들께서는

흰 노루를 잡으셨사옵니다

그러나 하얀 사슴 역시 상서로운 동물이옵니다

소인은 어진 마음의 폐하와

고구려에 좋은일만 가득할거라고

믿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사슴을 잡은지 얼마후 같은달 8월에는

또다시 고구려 남쪽지방에

메뚜기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고 합니다,,


<메뚜기떼는 누리,황충이라고도 불렸고

옛날부터 몰려다니며 곡식등을 해쳤습니다

세계사,한국사 책에서는 화재나 지진,재앙등과 같이 묘사됩니다>


<태조왕>흰 사슴이 상서롭다는데

불운한 일들이 일어났구려,,


<고구려 신하들>폐하 그런것을 믿으시는거 보다는

현재 백성들에대한 구휼과 대처가 먼저이옵니다


<태조왕>그렇구나,

곡식을 보내 백성들을 돕도록 하여라


반응형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