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대무신왕 15년 12월 겨울 호동왕자가 죽고 1개월 뒤

결국 첫째왕비의 소원대로

둘째부인이 낳은 호동왕자가 아닌

첫째왕비가 낳은 어린 왕자인 해우왕자가 태자가 됩니다


또 고구려에서는 중국 한나라(후한)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고

이에 한나라의 광무제는 고구려의 왕호를 회복시켜줍니다

이때가 건무 8년으로 건무는 광무제의 *연호입니다


(*연호 연호란 황제국이었던 중국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옛날에는 중국은 초강대국이었기에 한국에서는

연호를 잘안써서 보통 연호보다는 대무신왕 15년,세종 25년 이런식으로

기록하고 중국은 광무제가 건무라는 연호를 정하면

광무제 8년이 아니라 건무 8년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사 최초 연호를 사용한 왕은 고구려 19대왕

광개토 대왕으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조선 26대 왕 고종의 광무 연호도 유명합니다)


대무신왕 20년에는 대무신왕은 직접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 영토에

설치한 식민지배기관이었던 낙랑군을 습격하여 멸망시킵니다

한나라는 조선을 멸망시키고 조선영토에

4개의 식민지배기관을 세우게 됩니다

낙랑군,임둔군,진번군,현도군으로 한나라의 4개의 군이라해서

한4군,한사군이라고 불립니다

이중에 낙랑군은 한사군에서 가장 힘이 강했고 중심이되는

기관이었고 대무신왕의 낙랑군 정벌은

한국사에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중국은 초강대국,선진국이었기에

한국인들에게 낙랑군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의의가 있는 장소라 할수도 있으나 남의 영토를 정복하고

그곳에 식민지를 세웠던 것이고 우리 조상님들은 끊임없이

잃어버린 우리땅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대무신왕>드디어 중국 한나라에 뺏긴 낙랑군을 정복했다 !

이는 조선 고토를 되찾는 시작일 뿐이다 !


<고구려 장군>폐하, 낙랑땅의 조선 유민들의 협조가 컸습니다


<대무신왕>국가는 멸망해도 백성들은 남는법이다

우리는 같은 조선의 후예이다


대무신왕 24년 3월 봄

고구려 수도에는 우박이 내렸습니다


7월 가을에는 서리가 내려서 곡식들이 죽었고


8월에는 매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매화는 보통 3월에 피는꽃으로

대무신왕 24년에는 여러 재앙이 있었습니다,,


대무신왕 27년 가을 9월

중국 한나라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바다를 건너와서

낙랑을 다시 공격해서 그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살수 이북이 한나라땅에 속하게되었습니다


<대무신왕>내 비록 낙랑을

중국에 다시 뺏기는 수모를 겪었으나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


한나라에 낙랑을 뺏기고 1달후의 일이었습니다,,


<고구려인들>서울(수도) 국내성에 큰 별이 떨어진다 !



대무신왕은 고구려가 다시 낙랑땅을 수복하는것을

보지 못한채 41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대무신왕은 본명은 무휼으로

어린 나이부터 같은 민족이긴 했으나

강대국이었던 부여에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고

초강대국이었던 중국 한나라군을 지혜로 물리치며

한나라에게 뺏긴 땅들을 찾아냈고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남긴 고구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왕이었습니다

대무신왕 이야기를 쓰면서 저도 황금도장,황금무기,스스로 짓는

솥이야기나 죄인을 교화한 추발소 이야기는 처음보게됬고

놀랍고 즐겁게 본 이야기들 같습니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새롭고 신비합니다,,

대무신왕이 죽자 신하들은 그를 대수촌 언덕에 장사지냈고

호를 큰 大 무예의 武 신 神, 대무신왕 大武神王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응형

'라봉봉 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본왕의 정벌, 폭군 모본왕  (0) 2018.01.28
무덤을 만들지 않은 민중왕  (0) 2018.01.27
호동왕자의 죽음  (0) 2018.01.25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0) 2018.01.24
지혜로 세 죄인을 교화한 추발소  (0) 2018.01.24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