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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6년(397년)

광개토대왕은 후연,연나라의

요동성을 차지하고

요동을 고구려의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없고

동사강목 기록)


광개토대왕 9년

1월 봄

광개토대왕은 연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조공(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추어

예물을 바치던 일. 또는 그 예물)했습니다


<연나라 왕 모용성>흐음,, ;;

(왜 조공을 받는데 무섭지,,)


2월

연나라 왕 성(모용성)은

우리 왕(광개토대왕)의 예절이

오만하다는 이유로

직접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공격해왔습니다


그들은 표기대장군 모용희를 선봉으로 삼아

신성 남소의 두 성을 함락시키고

7백여 리의 땅을 점령해서

그들 백성 5천여 호(가족)을 이주시켜 놓고 돌아갔습니다,,


광개토대왕 11년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보내

요하를 건너 연나라의 숙군성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연나라 평주자사 모용귀가

성을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민족기록화 광개토대왕의 요하 도하(강이나 내를 건넘)>


광개토대왕 13년

11월 겨울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출동시켜

연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집안현의 서안 12호 동벽묘사도,고구려 고분 벽화로

고구려인들은 실제로 철로된 갑옷을 입고

말에게도 철갑을 씌워서 무장했습니다

이를 개마무사,철갑기병이라고 합니다>


<연나라군들>옛날에 우리에게 환도성까지

점령당한 고구려가 맞나 ??

너무너무 무섭다 ;;;;;


광개토대왕 14년

1월 봄

연나라 왕 희(모용희)가

요동성을 공격했는데

성이 함락될 즈음에

모용희는 장병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모용희>성에 먼저 오르지 말라

성이 평정되면 내가 황후와 함께 가마를 타고 들어 가리라


그렇게 모용희는 요동성을 함락하려는때에

시간을 끌게됬고

이로 말미암아 성 안의 고구려 군들은

삼엄한 대비를 할수있었기에

그들은 마침내 승리하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라봉봉>

광개토대왕 당시의 고구려인들의 자신감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할수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만주에서 풍요롭게 나는 철들로

온몸에 철갑옷을 입었고

말들에게 까지 철갑옷을 입혀 무장했고

넓어진 영토에서의 농업생산량 증가와

중국의 분열로 고구려 견제 세력이 마땅히 없었다는 점 등으로

잃어버린 고조선의 옛땅이었던 요동을 수복(잃었던 땅이나

권리 따위를 되찾음)하고

영토를 동,서,남,북으로 확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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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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