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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23년

6월 여름

장수왕은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고

그 나라의 휘 諱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 예를들면

조선시대 태조전하의 이름은 이성계시다 x

태조전하의 휘는 이성계 시다 o )

를 알려줄것을 청했고

세조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서

황실의 계보와 휘를 적어서 주게 하고

원외산기시랑 이오를 보내서

장수왕을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 왕] 으로 삼았습니다,,

(옛날에는 명예를 높이기 위해 이렇게

여러 호칭들을 길게해서 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에 장수왕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사은 謝恩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히 여겨 사례함) 했고

위나라 사람들은 연나라(북연)를 자주 공격했기에

연나라의 형세가 나날로 위급해졌습니다


연나라 왕 풍홍(연나라, 북연 마지막 황제)이 말하기를,,


<풍홍>만약 사태가 위급하면

동쪽의 고구려로 잠시 의탁하여

훗날을 도모하겠다


라고 말하고

비밀리에 상서 양이를 우리나라(고구려)에 보내

받아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장수왕 24년

연나라 왕이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조공하고

사자를 보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위나라 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군사를 동원해서 연나라를 공격하려 하면서

우리나라(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4월 여름 위나라가 연나라의 백낭성을 공격해서

이겼습니다


장수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으로 하여금

군사 수만명을 거느리고

연나라 사신 양이를 따라

화룡에 가서 연나라 왕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연나라왕(북연 황제) 풍홍>오오 고구려가

구원군을 보냈다

성문을 열어주고

예의를 다해 맞아라 !


,,,


<고구려 장군 맹광>갈로 장군 !

연나라의 도성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도와줘봤자 멸망할거 같은데요 ?


<고구려 장군 갈로>그러면 연나라의

자원만 빼먹고 고구려로 돌아가자 !


그렇게

갈로와 맹광은 연나라의 성에 들어가

고구려 군사들에게 헌 옷들을 벗게하고

연나라 무기고에 있는 정장 精仗 (정예한 병기)를

내주어 입게 했습니다


<연나라 신하들>폐하

고구려 군대에게 수도를 방어하게 하는것도

모자라 우리의

귀한 무기와 갑옷들을 내주실것입니까 ?


<연나라왕>,, 귀하고 비싼 무기들이지만

위나라가 공격해오는 와중에

어쩔수 없다,,


그렇게 고구려군들은

연나라의 수도에 들어와

연나라의 정예 무기와 갑옷들을

입게됬고

고구려군들은 이후

연나라의 도성을

대규모로 약탈했습니다,,


연나라 왕은 그래도 고구려군이

연나라를 지키러왔기에

고구려의 대규모 약탈을

지켜볼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명나라군이 조선군을 도와주러왔고

명나라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 일이었으나

이후 명나라군이 점령군 행세를 극심하게 하며

조선 백성들이 명나라군들에게

약탈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고구려의 대규모 약탈은 중국 기록에는

성안의 미녀는 모두 고구려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연나라에서는

형세가 급박했기에 고구려군을 내치지 않고(못하고)

이후에도 고구려에 의존하게 됩니다,,


5월 연나라 왕이 용성(연나라 수도 화룡성)에

남아있는 주민들을 동쪽 고구려로 옮기고

궁전에 불을 질렀고

불길은 열흘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나라 왕 풍홍>위나라의 공세가 거세다

그들에게 나라를 바칠바에

궁전을 태워벌리고 백성들과 고구려로

이주해야겠다 !


화룡성의 불길은

열흘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연나라 왕,북연의 마지막 황제 풍홍은

연나라의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고구려로 대이주를 시작합니다


이동하는 부녀자들에게는 갑옷을 입혀서

행렬의 복판(가운데) 서게 하고

양이등은 정병(정예군)을 거느리고 행렬의

바깥쪽에 서게 했으며

고구려 장수 갈로와 맹광은 기병을 거느리고

후미에 서서 수레를 나란히 몰아

진군,고구려로 연나라 왕과

백성들의 대망명이 시작됬습니다,,

행렬의 길이가 80여리에 이어졌다고 합니다,,


위나라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산기상시 봉발을 고구려에 보내

연나라 왕을 압송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장수왕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바치며

연나라 왕 풍홍의 압송을 거부하되

망명한 연나라 왕 풍홍과 함께

위나라 임금의 교화를 받들겠다고 했습니다


위나라 왕은 고구려왕이 자신의 소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구려를 공격할것을 논의했고

위나라 왕은 농우 지방의 기병을 출동시키려 했으나

유혈,낙평,비 등의 신하들이 간하여

이를 중지시켰습니다


이로인해 고구려를 옛날부터 괴롭히던

연나라 세력들은

연나라 마지막 황제 풍홍 멸망때

마지막 황제 풍홍과 연나라 백성들이

고구려로 대거 이주하게 되고

연나라 인들은 고구려에 흡수됩니다,,


<라봉봉>보통 한국사에서 우리가 주로

약탈을 당하고 지배를 당한거로

알고있었는데 삼국사기를 깊게 읽어보니

장수왕때는 고구려가

연나라를 약탈하고 흡수했다는게

특이한 기록 같습니다,,


또 연나라인들이 위나라보다

고구려에 의존했다는것은

연나라 왕이 성을

고구려의 고씨로 바꿨다는 일같이

고구려계가 왕이된 이후

또 고구려와 전쟁을 했어도

고구려와 가까운 나라였기에

연나라인들은 심리적,정서적으로 위나라보다

고구려와 더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천하는 하나뿐이며

중국이 중심이다라는 중국 중심의 천하관에

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 이후

천하는 중국만의 것이 아닌

세계에는 여러개의 천하가 있다라는

고구려 천하관이 생기게 됬고

이는 오늘날 보기에도

독재와 민주주의 사상이라고 생각될거 같은

세련된 고구려의 천하관이라 할수있습니다


고구려 입장에서도 중국은 강대국이었고

중국 입장에서도 고구려가 유목민족,

중국 동쪽의 질서를 꽉 잡고있기에

서로 상대하기가 껄끄러웠고

결국 중국에서도

중국 동쪽의 질서,패권은 고구려의

것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나라 마지막 황제가

고구려로 망명했다는 것도

고구려가 당시 아시아의 질서,패권을 잡고있는

강대국이었다는거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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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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