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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보장왕 하 (하편)


보장왕 6년


당나라 왕 태종 이세민이 다시 고구려

원정을 하려 했습니다


조정의 논의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나라 신하들>고구려는

산에 의지하여

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조기에 함락 시킬수 없습니다


앞서 폐하께서 직접 원정하셨을때

그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했으며

우리가 정복한 성에서는

곡물들을 수확했으나


가뭄이 계속되어서

백성의 태반이 식량이 부족하게

됬습니다


이제 만약 적은 군사를 자주보내

그 영역을 번갈아 침략하여

그들로 하여금 방어에 지치게하고

쟁기를 놓고 싸움터로 나가게 한다면


수년내에

천리의 들판은 적막해질 것이며

민심은 저절로 이반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압록강 이북은

싸우지 않고도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태종 이세민>말려 죽이자는 거로군

좋다 !


이세민은 이에 따라

좌무위 대장군 우진달을

청구도행군대총관 으로 삼고

우무위 장군 이해안을 보좌관으로 해서

군사 1만여 명을 출동시켜서

누선을 타고

내주로부터 해로로 진격케 하고


또한 태자 첨사 이세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 으로 삼고

우무위 장군 손이랑 등을

보좌관으로 해서


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영주 도독부의 군사와 함께

신성에서 진격하게 했습니다


이 두부대는

모두 수전에 익숙하고

전투에 능한 자들을 선발해서

배속시켰습니다


이세적의 군사가 요수를 건너서

남소 등의 몇 성을 지났는데

그성이 모두 성을 등지고

싸웠으므로


세적이 이들을 격파하고

외성을 불지르고 돌아갔습니다


7월 가을

진달,이해안 등이 우리,고구려 국경에

들어와서

1백여 차례 싸웠습니다

그들은 석성을 공격해서 격파하고

적리성 아래까지 진격해왔고

우리 군사 1만여 명이 나가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해안이 우리,고구려 군사를 공격해서

우리 군사가 패배했고

사망한 우리 군사만 3천명이었습니다


태종은 송주 자사 왕파리 등에게

명령해서

강남 12주의 공인(기술자)들을 징발해서

큰 배 수백척을 만들어서

우리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12월 겨울

보장왕이 둘째아들 막리지 임무로

하여금 당나라에 들어가서

사죄하게 했습니다


당태종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라봉봉>당태종 이세민이 대규모 원정에서

실패한 이후 수만의 병력으로

지속적으로 고구려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태종은 이후에도 다시 대규모 원정을

계획하나 실행에 옮기기 전에 사망하고

아들의 군사적 역량을 신뢰할수 없었는지

유언으로 고구려를 치지 말라

(정확히는 요하는 넘지말라)고

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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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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