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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연개소문은 고구려 정권을

장악하게 됬고,,


중국 역사책인 신당서와 수서에는

원래는 대대로나 태대형이

고구려 최상위 관직이였는데

연개소문이 쿠데타,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후 직접

대막리지라는 직책을

특별직으로 창설해서 올랐다고 합니다

당시 고구려왕,고구려 28대,

마지막왕 보장왕은

실권없는 허수아비 왕 이었고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군사,정치를 장악함으로서

그와 그의 일가로

정치가 이루어지게됩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개소문이 임금,영류왕을

시해하고

국정을 전횡(권세를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

독선적 행위)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 고구려를 치려했으나

영류왕이 당나라와의 우호정책을 하며

별 명분이 없던시기에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자

이를 명분삼아(사실 이도 빈약한 명분)

고구려를 정벌하려 했는데


당나라 당태종 이세민의

신하 장손무기가 말하기를,,


<장손무기>소문(연개소문)이

제 스스로 죄가 큰 것을 알고

대국(당나라)의 토벌을 크게 두려워하여

수비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아직 은인 隱忍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감추어 참고 견딤)

하시어

그가 스스로 안심하고

더욱 나쁜일을 마음대로 한

후에 고구려를 치셔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니

당태종 이세민은 무기의 말대로

했습니다


소문,연개소문이 보장왕에게 고하기를,,


<연개소문>들으니

중국에는 3교 (유교,불교,도교를 아울러 이르는 말) 가

병행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도교가 아직 없습니다


사신을 당에 보내서 구해오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니

보장왕이 드디어

표문을 당나라에 보내서 청했습니다


당나라에서 도사 숙달 등

8명을 보내고

겸해서 도덕경(노자의 도덕경은 도교의

대표적 경전입니다)도 보내줬습니다


이에 고구려에서는

그들을 사찰에 묵게하고

도관으로 삼았습니다


마침 이때 신라에서

당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신라 사신>백제가 우리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또 고구려와 군사를 연합해서

우리가 당나라로 들어오는 길을

차단하려 합니다

우리 소국 신라는 부득이 군사를

출동시킬 것이니

이에 당나라 군의 구원을

엎드려 비나옵니다,,


이에 당태종은

사농승 상리현장에게 명해서

새서(옥새가 찍힌 문서)를 가지고

고구려에 와서

보장왕에게 칙명하기를,,


<상리현장>우리 당나라 황제폐하의

말씀을 전한다면,,


<당태종>신라는 우리 대 당나라의

맹방(동맹국)으로서


조공을 한번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그대와 백제는 각기 군사를

거두어라


만일 다시 신라를 친다면

명년에 군사를 일으켜

그대 나라를 치겠다


라고 고구려 대왕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고 했고

처음 현장,상리현장이 고구려 국경에

들어왔을 때


소문,연개소문은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신라를 쳤는데

보장왕이 불러서 돌아왔습니다


현장이 와서 당태종의 칙서를

선포하니

소문이 와서 말하기를,,


<연개소문>왕년(옛날)에

수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침범하였을때

신라가 이 틈을 타서

우리 성읍 500리를 분취해갔다(빼앗아갔다)


이로부터 원한과 간극이

있는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만일 우리의 잃어버린 옛 땅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싸움을 그칠 수 없다


현장이 말하기를,,


<상리현장>기왕의 일을

어찌 추론할 것인가


지금의 요동은 본시 모두 중국의

군현이었건마는


(진실은 중국의 군현이 들어서기 전

고조선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를 심리적으로 잠식해가려는

당나라의 의도적이거나 과거에 무지한

역사왜곡이라 할 수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오히려 말하지 않는데

고구려에서는 어찌

반드시 옛 땅을 되찾으려 하는가 ?


<연개소문>중국 군현이 생기기전에

요동은 고구려인들의 선조인

조선(고조선)인들의 땅이었다


니까짓게

뭔데 요동이

중국의 군현이라 하느냐 ?


또 니놈 나라에서는

내가 고구려 백성들을 위해

정변을 일으킨것은

책망하면서


니놈 황제(당태종 이세민)가

패륜을 저지른것에는

왜 아무말도 없는가 ?

(실제로 당태종 이세민은

왕자의 난,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너희 황제에게 똑똑히 전해라

우리 고구려는 우리의

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상리현장>,, 내 보고 들은것

그대로 전하겠소

그대는 훗날을 원망하지 마시오


연개소문은 당태종,상리현장의

말을 듣지않았고


현장,상리현장이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하니


당태종이,,


<당태종>개소문이가 그랬다고 ?

(부들부들)

짐이 일어난것은 백성을 위해서였고

연개소문이 일어난것은

사리 사욕을 챙기기 위해서였거늘 !


무엄하구나


개소문이는 그 임금(고구려 27대왕 영류왕)을

시해하고

대신을 살해하며

그 백성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또 지금 나의 조명(조서)을 어기니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사신 장엄을 보내서

다시 한번 설유(말로 타이름)했으나

소문(연개소문)은 끝내

당태종의 조서를 받들지

않았고

군사로서 당나라 사자를 위협했다고 합니다,,


당나라 사자가 굴하지 않으니

연개소문은 당나라

사자를 굴실,굴 속에 가두었습니다,,


이에 당태종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

친정(왕이 직접 정벌)을 했는데

그 사실이 모두 고구려 본기에

기재되 있다고 삼국사기에서는 전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당나라 사신이 굴 속에 갇혔다는 기록은

없는거 같고

여기서 말하는 고구려 본기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가 아닌

김부식님이 삼국사기를 쓰실때

참고한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당시 역사서의 [고구려 본기] 기록같습니다


연개소문은 건봉(당고종) 원년(666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라봉봉>연개소문은 논란이 있으나,,

고구려의 마지막 불꽃,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연개소문 사후

곧 고구려는 멸망했기에

이에 연개소문 이야기만 따로 기록한 열전에서는

보통의 열전과 다르게 연개소문 사후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까지 기록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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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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