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온조왕 10년

9월 가을

온조왕이 사냥하다가

신기한 사슴을 잡았습니다


<백제 장군들>오오 온조 어라하(임금님)시여

또다시 신기한 사슴을 잡아서

아 ~ 기분이 좋습니다 ~


이는 백제가 번영할거라는

증거이옵니다 !!


<온조왕>이웃나라인 마한에

보내자꾸나


온조왕은

이 사슴을 마한에 보냈습니다


10월 겨울

말갈에 북부 국경을 침량했씁니다

온조왕이 200명의 군사를 보내서

곤미천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사가 패해서

청목산을 거점으로

자체 수비를 하고있었습니다


<온조왕>짐이 직접 나서겠다


온조왕은 직접 100명의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봉현으로 나와서 구원했습니다


<말갈군>다른 백제군은 몰라도

온조왕의 군대는 무조건 피해야한다 !!


적(말갈군)들이 이를 보고 즉시 퇴각했습니다


온조왕 11년

4월 여름

낙랑이 말갈로 하여금

병산의 목책을 습격해서 파괴한 다음

1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습니다


7월 가을

온조왕은

독산과 구천 두 곳에 목책을 설치해서

낙랑으로 가는 도로를 차단했습니다


온조왕 13년

2월 봄

서울에서 늙은 할미(할머니)가

남자로 둔갑했고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왕의 어머니(소서노 [혹은 월군녀])가 사망했습니다

나이 61세였습니다


<소서노>파란만장한 인생이었구나

내 여인의 몸으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세웠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부여온조 너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말고

백성들을 위한 어라하(왕)가 되거라 !


<온조왕>어머니 !!


5월 여름

온조왕이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온조왕>동쪽에는 낙랑이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


그들이 변경을 침공하여

편안한 날이 없다


황차(하물며) 요즘에는

요사스러운 징조가 자주 보이고

어머님(소서노)이 세상을 떠나셨으며

나라의 형세가 불안하다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겠다


내가 어제 순행하는 중에

한수(오늘날 서울특별시 한강으로 추정)의

남쪽을 보니

토양이 비옥하였다


따라서 그곳으로 도읍을 옮겨

영원히 평안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7월 가을

한산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백성을 이주시켰습니다


8월

마한에 사신을 보내서

도읍을 옮긴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마침내 국토의 영역을 확정했습니다


북으로는 패하에 이르고

남으로는 웅천이 경계이며

서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으로는 주양에 이르렀습니다


9월

성과 대궐을 수축했습니다


온조왕 14년

정월(1월) 봄

도읍을 옮겼습니다


2월

온조왕이 부락(마을)을 순회하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농사를 장려했습니다


7월 가을

한강 서북방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곳에 한성 주민의 일부를 이주시켰씁니다


온조왕 15년

정월(1월) 봄

새 궁실을 지었습니다


궁실은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습니다

(실제 백제 예술이 이런 느낌입니다)


온조왕 17년

낙랑이 침입해서

위례성을 불태웠습니다


<낙랑군사들>백제는 소국주제에

우리에게 굽히지 않고있다

낙랑이 주도하는

질서를 깨지 말라 !


<백제군사들>이런,,

너희들은

같은 조선(고조선)인들의

후예이면서 

중국인들이 세운 낙랑군의

조종을 받고있구나,,


조상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


4월 여름

사당을 세우고 왕의 어머니(소서노)에게

제사지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백제 초기에는

말갈과 낙랑 두 세력의 위협에 시달린 백제였고

한수 이남으로 도읍을 옮겼다는데


이 하남 河南 (물의 남쪽) 위례성은 700년 백제역사에서

약 500여년간 수도였으며

이 시기의 백제를 한성(오늘날 서울쪽) 백제라고

합니다

이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특별시라고

이야기 되고 있고

풍납토성,몽촌토성 일대가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이번 이야기에서

목책이 건설됬다거나

늙은 할미가 남자로 둔갑했다는 이야기는

뭔가 일본 느낌도 나고

(일본에 큰 영향을 준 백제입니다)


새로 지은 궁궐이 검소하면서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은

백제 특유의 느낌이 있습니다

실제로 백제 예술은 화려하나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들이 있습니다


일본 예술은 화려한 느낌이 강하나

그 원류는 백제에서 나왔고

일본은 섬나라여서

큰 외침이나 전쟁이 없어서

섬 안에서 백제의 예술이 더 크고 화려하게

발달했던거 같습니다,,


반응형

'라봉봉 한국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조왕대의 여러 재난들  (0) 2018.04.04
마한을 병합한 온조왕  (0) 2018.04.04
말갈군을 물리친 온조왕  (0) 2018.04.03
백제의 건국  (0) 2018.04.03
붉은 까마귀를 얻게된 대무신왕  (0) 2018.04.03
Posted by 라봉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