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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0대왕 비유왕 毗有王

재위기간 28년 427~455년


백제 20대왕 비유왕 毗有王 은

백제 11대왕 비류왕 比流王 과 한자가 다릅니다


비유왕은

구이신왕(백제 19대왕)의 맏아들(첫째아들)입니다


<김부식>혹은 전지왕(백제 18대왕)의

서자 庶子(첩의 몸에서 난 아들)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용모가 훌륭하고

말을 잘해서

사람들이 따르고 귀중히 여겼습니다

구이신왕이 붕어,사망하자

그가 즉위했습니다


비유왕 2년

2월 봄

비유왕이 4부를 순행해서

백성들을 위무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정도에 따라

곡식을 주었습니다


왜국(일본) 사신이 왔는데

종자 從者 ([남에게 종속되어]뒤에 따라다니는 사람),수행자

가 50명이었습니다


<비유왕>백제와 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순망치한 脣亡齒寒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즉 서로 의지하고 있어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관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네

백제에 온 왜인들을 잘 대우해주게


<백제 신하들>예 어라하(왕) !


비유왕 3년

가을

사신을 송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10월 겨울

상좌평(백제 최고관직,수상직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 여신(사람이름)이 사망하자

해수를 상좌평으로 임명했습니다


11월

지진이 발생하고

큰 바람이 불어서 기와가 날았습니다


12월

물이 얼지 않았습니다


비유왕 4년

4월 여름

송나라 문황제,송문황제가

백제 비유왕이 다시 공물을 바치자

사신을 보내서

선왕 先王 (앞의 왕) 영 映 (백제 18대왕 전지왕의

이름, 부여영 扶餘映 ) 의 작호를 책봉해줬습니다


<김부식>전지왕 12년

동진의 책명은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진동장군백제왕

이었다


비유왕 7년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7월 가을

신라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비유왕>고구려왕 거련(고구려 20대왕 장수왕)

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군

만약 백제나 신라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지는게 뻔할터이니,,

사신은 신라에 화친을 요청해 양국이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공동대응하자고 전하라


<백제사신>예 어라하(왕) !

비록 신라는 원수의 나라지만

예전 고구려 왕 담덕(고구려 19대왕 광개토대왕)

에게 아신 어라하(백제 17대왕 아신왕)가

무릎꿇으신 치욕을 되풀이 할 수 없습니다 !!


비유왕 8년

2월 봄

신라에 사신을 파견해서

좋은 말 두 필을 보냈습니다


<비유왕>그래 좋은 말 두필을

보냈을때 신라 마립간(왕)의

반응이 어떠한가 ?


<백제 사신>매우 좋아했고

신라인들 역시 고구려에 종속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비유왕>그렇다면 우리가 동맹을

맺고자 하는 당위(이유)를

계속 신라왕에게 전하며

계속 신라에 선물을 보내거라

고구려의 남진 南進 (남쪽으로 나아감) 을 막기 위해서는

신라는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백제 사신>예 어라하(왕) !


9월 가을

다시 신라에 흰 매를 보냈습니다


10월 겨울

신라에서 좋은 금과

구슬을 답례로 보내왔습니다


<신라 사신>눌지마립간께서는

고구려의 종속에서 벗어나고자 하시며

백제와의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시고

이에 확실하게 백제국과 함께 반고구려

노선에 합류하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비유왕이 기뻐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비유왕>됬다 !

비록 우리 양국이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은

양국의 풍전등화 風前燈火 (바람 앞의 등불,

매우 위급한 상황을 뜻하는 말) 의 상황속에서

서로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침략에

단결해서 공동 대응합시다 !


<신라 사신>예 어라하(백제왕) !

늘지 마립간(신라왕)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백제 20대왕 비유왕과

신라 19대왕 눌지왕의 *나제동맹

(*나제동맹 羅濟同盟 신라의 라=나 羅 와

백제의 제 濟 의 동맹이라는 뜻입니다)

이 체결됬습니다

이 나제동맹은

백제 26대왕 성왕이

신라 24대왕 진흥왕과 관산성 전투에서 맞붙는

554년까지 120여년간 유지했고

양국은 강대국이었던 고구려의

남진,남하정책에 공동대응으로

맞서게 됩니다


비유왕 14년

4월 여름

초하루(달의 첫번째 날) 무오일에

일식이 있었습니다


10월 겨울

사신을 송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비유왕 21년

5월 여름

대궐 남쪽 연못에서 불길이 일어났는데

불꽃이 수레바퀴 같았고

밤새도록 타다가 사그러졌습니다


7월 가을

가뭄이 들어서

곡식이 익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굶주려

신라로 들어간 자가 많았습니다,,


비유왕 28년

별이 비처럼 떨어지고

혜성이 서북쪽에 나타났는데

길이가 두 발(2길, 20척 같고 옛날 1척 23cm면

4.6m 같습니다) 정도 되었습니다 長二丈許


8월 가을

메뚜기 떼가 발생해서 곡식에 해를 입혀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비유왕 29년

3월 봄

비유왕이 한산에서 사냥했습니다


9월 가을

검은 용,흑룡이 한강에 나타났는데

잠시 구름과 안개가 끼어서

어두워지자 날아갔습니다

비유왕이 붕어,사망했습니다,,


사망시 기록이

의미심장 意味深長 (말이나 뜻이 매우 깊음)

합니다 흑룡이 날아가고 죽었다는 기록은

백제 내부의 정쟁으로 죽었거나

검은색이 북방의 색을 뜻하기에

백제 북쪽의 고구려에서

비유왕을 죽였다는 해석도있고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비유왕이 신라와의 나제동맹을

맺은거에 분노해서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비유왕 다음왕인 개로왕때 기록에

비유왕의 해골이 들판에 가매장(임시매장)

되있다는 기록 등

어쨋건 정상적인 죽음, 자연사한 왕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검은용,흑룡이 날아갔다는 표현은

예사로운 표현은 아니기에

잔혹한 정쟁 政爭 (정치에서의 싸움, 또는 정계의 투쟁)

이나 전쟁등 상황에 대한

은유적(은유법 隱喩法 표현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겨서 표현하는 방법)

표현일 수 있다는거 같습니다


<라봉봉>중국 역사책 '송서'에는 비유왕의 이름은

비 毗 라고 전하고 있고

비유왕이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신라와의

나제동맹을 성립시킨 왕이 됬습니다


나름 비유왕도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고

신라 역시 반고구려 노선에

확실히 합류했고 나제동맹이 없었다면

백제는 더 큰 위기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고 하며

외교는 성공했던 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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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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