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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에 쓰는 매소성 전투(675년) 이후 당나라의 상황>

매소성 전투로 신라군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당대 당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고구려, 신라 즉 한국공격에 신경쓰는 동안

다시 서쪽의 토번(티베트)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원래 토번은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원정 전에

주변 이민족들을 전부 제압해놓은 상태였는데

한국과의 긴 전쟁기간동안 다시 토번같은 주변 이민족들이 일어난 상태였고

특히 토번 같은 경우에는 중국의 자금줄이었던 비단길(실크로드)

즉 서역과의 교류길을 점거하고(670년 토번이 대비천 전투에서

당나라 최정예 주력군 11만을 전멸시키고 비단길 천산남로 점거)


당나라 수도를 위협하던 상황이었기에

당나라는 신라와의 전쟁을 벌이기 어려워졌고

애초에 신라와의 나당동맹 계약을 파기하고 한국 전체에 대한 지배권 행사를

하려 했던 당나라의 야심에 일어난 것이 나당전쟁이었고

애초 신라는 계약 이행, 자위적 목적으로 당나라와의 전쟁을 벌였던 것에 비해

토번은 고구려같이 당나라와의 패권을 두고 공격한다는 점,

당나라의 경제권(비단길)을 위협하는 세력이었다는 점,

당나라 수도 장안과 가까웠다는 점에서

매우 당나라를 위협하던 상황이었기에

당나라에서도 위협적이었고 676년 3월부터 토번 가르친링의 맹렬한 공격으로

두려움을 느낀 당나라는 토번과 신라에 대한

양면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판단해서

신라와의 전쟁을 사실상 포기하고 옛 백제영토의 거점지 웅진도독부에서

철수를 결정합니다


즉 삼국통일전쟁 기간동안 당나라가 한국 공격에 집중하는동안 다시

주변 이민족들이 발호하는 결과가 생겨났고

나당전쟁 당시 신라는 당나라가 토번으로 인해 전선이 나뉜것을 활용해

비록 토번과 동맹을 맺지는 않았으나

토번과 동맹국보다 더욱 효과적인 협격체제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또 토번 역시 당이 고구려 등 한국과의 전쟁으로 인한 여파 등이

자국의 생존,번영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고 합니다)


즉 신라 입장에서는 나당전쟁 당시

외부,외교적인 상황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무왕 16년(676년)

2월 봄

고승 의상 義相 (한국 화엄종을 연 인물) 이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했습니다


(의상대사는 원효대사와 쌍벽을 이루는 신라, 한국의 전설적인 스님으로

원효대사와 동시대 인물이고

당대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을 때

같이 동행했던 스님이며

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었냐면,,

의상대사는 화엄종을 한국에 퍼트린 인물로

화엄종 사상은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로다' 라는 입장에서

우주만물을 하나로 어울러서 국왕 중심의 체계를 잡는데 사상적 바탕을 제공했기에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왕실종파로 자리잡게 됬다 하며

특히 하나와 전체에 대한 문구로는

'하나가 전체를 위하고 전체가 하나를 위한다'

라는 말이 있고

'삼총사' 소설에도 나오는 유명한 구호인데

이는 전체주의의 유명한 문구이기도 하고

아마 이런 점들이 권력자, 신라와 고려 왕실에서 화엄종을 좋게 본거 같고

이에 문무왕이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 의상대사에게 여러 자문을 구한거 같습니다)


7월 가을

혜성이 북하와 적수 두 별 사이에 나타났는데

길이가 6,7보 가량 되었습니다


당나라 군사가 도림성을 공격해서 점령하고

(신라 도림성) 현령 거시지가 전사했습니다


(도림성 전투는 나당전쟁 마지막 지상전이었음)


양궁 壤宮 (궁궐)을 지었습니다


11월 겨울

사찬(신라 8등벼슬) 시득이 수군을 이끌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와 소부리주(옛 백제 수도 사비성, 오늘날 충청남도 부여군) 기벌포에서

싸우다가 패하였으나


(기벌포 전투[해전]는 11월 당군의 황해 해로를 통한 철군으로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수군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신라 측면을 공격함)


다시 크고 작은 20번의 전투에 나아가 승리하고

(당나라군) 4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기벌포 해전>


재상 진순이 은퇴를 요청했으나

문무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안석(앉을 때 쓰는 등받이 달린 방석)과 지팡이를 하사했습니다


그렇게 기벌포 전투를 마지막으로

신라군은 당군을 완전히 축출하고 통일신라 시대를 열게 됩니다


<문무왕>이제부터 평화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


<신라인들>만세 ! 만세 !


<라봉봉>기벌포 전투는 나당전쟁의 마지막 전투이자

매소성 전투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전투로

매소성 전투는 야전(지상전)에서, 기벌포 전투(해전)은 바다에서 이뤄낸 신라의 승리였고

보통 삼국에서 야전은 고구려가,

해전은 역시 해상강국 백제가 강했을 거로 이야기되나

약소국으로 시작했던 신라는 긴 내부개혁 등으로

야전,해전에서 모두 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고

특히 매소성 전투같은 야전은 고구려 유민들,

기벌포 전투같은 해전은 백제 유민들의 도움이 크게 있었을 것입니다

또 신라 배 자체가 매우 견고하고 빠르다는 기록이 있기에

기벌포 전투는 뛰어난 신라의 수군력을 보여주며

당나라군의 수급, 목을 4천여개나 취했는데 고대시대 해전에서

4천개의 목을 취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수급 말고도

엄청난 당군의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기벌포 전투 당시 당나라 수군 규모는 상당했다고 추정되고

수많은 당 수군이 살상당했다고 합니다


즉 기벌포 전투는 나당전쟁 마지막 전투임에도

매우 큰 살상이 있었던 전투로 이야기 되고

나당전쟁 마지막 전투였던 기벌포 해전을

아마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비유하면

조선 이순신 장군이 조선에서 철수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과 벌인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과 비슷한거 같고

두 해전에서 한국 국토를 유린한 당나라,일본 군을 대하는

당대 신라, 조선인들의 심정은

시대 불문하고 비슷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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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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