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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33대왕 성덕왕 聖德王 김흥광

재위기간 35년 702~737년


성덕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름은 김흥광입니다

본명은 김융기였는데

당현종의 이름(당현종의 이름은 이융기였음) 과 같았기 때문에

선천 연간에 고쳤습습니다


<김부식> '당서' 에는 김지성이라 하였다


(성덕왕 신하중 중아찬[신라 6등벼슬 아찬중에서

또 나뉘는 등급으로 골품제 한계로 6등벼슬 아찬이

승진 한계가 6두품이 끝이기 때문에 그속에 또 나눴다고 합니다]

김지성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당에 사신으로 갔을때 중국 사관이 잘못 기록한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그(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아들이며

효소왕의 동복(같은 어머니) 동생 입니다


효소왕이 붕어했으나 아들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그(성덕왕)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성스러운 덕이라는 그의 시호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라는 기록은 그가 상당히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효소왕이 별세했다는 말을 듣고

애도하기 위해서 2일간 조회 朝會 (벼슬아치가 궐에 모여서

임금에게 문안드리고 정사를 아뢰던 일)

를 하지 않았으며 (당대 측천무후는 여황제였습니다,,,)


사신을 보내서 조문하는 동시에

성덕왕을 '신라왕' 으로 책봉하고

'장군도독' 이라는 형(효소왕)의 칭호를 이어받게 했습니다


성덕왕 원년(1년)


(삼국유사에는 효소왕이 26세에 사망했고

성덕왕이 22세에 즉위했다 했는데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효소왕이 6세에 즉위하여

16세에 사망한 것을 잘못 기록한거 같다하고

실제 신문왕이 결혼후 9년만에 사망했기에

효소왕은 6세에 즉위한게 맞을 겁니다,,

대신 일연스님 기록같이 10을 빼면

성덕왕은 12세에 즉위했다 할 수 있고

성덕왕 역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는데

형이었던 효소왕은 어렸을때는 그나마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섭정이 가능했지만 성덕왕은 그런거도 없었고

단지 선대로부터 태종 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과 관련있던 신하나 강력했던 왕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는 말같이

성덕왕도 할아버지가 문무왕이기는 했으니

아슬아슬 했던 유,소년기였을거 같기도 합니다)


9월

죄수를 크게 사면했습니다


문무관(신하들)에게는 관작 한 급씩을 올려주고

모든 주와 군의 1년간 조세를 면제했습니다


아찬(신라 6등벼슬) 원훈을 중시(오늘날 국무총리)로 임명했습니다


10월 겨울

삽량주 歃良州 (오늘날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상수리(도토리)가 변해서 밤이 되었습니다


성덕왕 2년

정월(1월) 봄

성덕왕이 직접 신궁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7월 가을

영묘사에 불이 났습니다


서울(수도, 서라벌)에 홍수가 나서 익사자가 많았습니다


중시 원훈이 사직하자 아찬 원문을 중시로 임명했습니다


일본국 사신이 왔는데

총 인원이 204인 이었습니다


아찬 김사양을 당나라에 입조(외국 사신들이

조정 회의에 참가하는 일) 시켰습니다


성덕왕 3년

정월(1월) 봄

웅천주 熊川州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지역))에서

금지 金芝 (영지버섯, 한국사 최초의 버섯 기록이라 합니다,,)를

진상했습니다


3월

입당(당나라에 갔던)했던 김사양이 돌아와서

'최승왕경 最勝王經 (불경의 한 종류)' 을 바쳤습니다


5월 여름

승부령 乘府令 (궁중의 수레와 마필 및 행차때 예절 등을

맡던 관청인 승부의 장관) 소판 蘇判 (=잡찬, 신라 3등벼슬)

김원태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성덕왕 4년

정월(1월) 봄

중시 원문이 죽었으므로

아찬 신정을 중시로 임명했습니다


3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서 조공했습니다


5월 여름

가뭄이 들었습니다


8월 가을

노인들에게 술과 밥을 하사했습니다


9월

살생을 금하는 교서를 내렸습니다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특산물을 바쳤습니다


10월 겨울

동쪽 지방의 주와 군에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이 많이 유랑하자(떠돌아 다니자)

성덕왕이 사신(신하)을 보내서 구제했습니다


<라봉봉>성덕왕은 재위기간이 36년으로

기록도 긴 편의 인물이고

신라에서 성인으로 여기는 나이가 15~16세라 하니

일단 유년기 정도 까지 기록만 썼습니다


성덕왕의 이름의 한자는 성덕 聖德 으로

'성인의 거룩한 덕' 이라는 뜻으로 시호로서는

매우 좋은 이름이고 성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역사 인물로는

일본의 개혁 정치가 성덕태자 聖德太子 즉 쇼토쿠 태자가 있습니다

비범한 이름이며 성덕왕과 쇼토쿠 태자 둘다 자국을 발전시킨 인물이고

하여튼 매우 좋은 이름입니다


신라 성덕왕은 고려의 문종, 조선의 세종대왕에 비유될 정도의

인물이고 일단 유년기인 재위 4년차까지의 그의 기록들은

되게 무난하고 성군 聖君 (어질고 덕이 뛰어난 임금)의 자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어린 나이고 신하들 위주로 국정이 운영됬다 하더라도

이는 그의 성향등이 반영이 됬을 거라 생각되며

4년차 기록도 예사롭지만은 않습니다


일단 즉위 첫해부터 죄수사면, 관료들 관작을 높이고

전국에 세금 1년 면제등으로 위문적 모습의 정치를 한거 같고

(특히 세금 1년면제가 가능했던 것은 선대로부터 이어진

강력한 국력, 왕실의 풍요 등에서 가능했던거 같습니다)


노인들에게 술과 밥을 하사했다거나

살생을 금하고 흉년이 들때 구제했다는 모습 등

분명 그가 아직 성인이 되기전 기록이고

신하들의 개입이 있었던 시기였다 하더라도

상당히 모범적인 기록인 것은 분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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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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