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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부인]

[착하고 똑똑한 아이 인선이]

[호를 사임으로 정하다]

[이원수와의 결혼]

[아버지의 죽음]

[용꿈을 꾸고 낳은 율곡 이이]

[현모양처 신사임당]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

<라봉봉>

 

신사임당

 

신사임당 , 일랑 이종상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부인]

신사임당의 원래 이름은 신인선입니다

신인선의 어머니 이씨부인의 어머니는 최씨부인은

부유한 명문 집안의 강릉 대갓집 따님이었으나

아무런 형제, 자매 없이 이씨부인을 낳았고

이씨부인은 양반가문인

신사임당(신인선)의 아버지 신명화와 결혼을 했지만

어머니 최씨부인이 병에 걸려

한양(서울)의 시댁에 올라가지 못하고

강릉 친정에 머물렀고 이후에도 늙은 부모님의 딸이자

무남독녀(딸하나) 인

이씨부인의 사정을 고려해 서로 상의끝에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결혼 후에도 이씨부인은 강릉에 , 신명화는 서울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효녀였던 이씨부인은 어머니 최씨부인의 병간호를 극진히 했으며

약을 미리 맛보고 밤에도 자지 않으며 지극정성으로

어머니 병간호를 했다고 합니다

 

훗날 이씨부인의 딸 신사임당의 아들 즉 이씨부인의 외손자인

'율곡 이이' 선생은 '율곡 전서 : 이씨감천기' 에서 외할머니 이씨를

 

<율곡 이이>(외할머니는) 말은 서툴러도 행동에는 민첩했으며

모든 것에 신중히 하되 착한 일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폭군이라 불리는 연산군 시대여서

선비들이 죽어나가고 백성들의 삶은

고난의 삶이 펼쳐지고 있었던 시대였는데

신명화는 처가집의 도움을 받으며 강릉 처가와

한양을 오가며 과거시험공부에 열중했지만

이후에도 선비들이 죽어나가는 기묘사화가 발생하자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조용히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1504년 10월 29일

이씨부인은 친정집인 강릉 북쪽 북평촌 마을에서

둘째딸을 낳았고

아기는 예쁘고 이목구비가 반듯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신인선' 이 되었고

인선이는 훗날

조선의 대학자이자 대정치가 '율곡 이이' 의 어머니이자

조선의 여성 예술가이자 여학자인 '사임당 신씨'

, '신사임당' 입니다

 

[착하고 똑똑한 아이 인선이]

인선이는 예쁜 얼굴에 똑똑해서

배우면 잊어버리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인선이의 외할아버지는 인선이가 총명한 것을 알아보고

4살때부터 인선이에게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인선이가 7세에는 외할아버지는

인선이가 그림에 큰 재능이 있음을 알아보고

그림을 가르쳤는데 7살의 인선이는

조선의 유명 화가 '안견'의 그림을 따라 그려서

주변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둘째딸인 신사임당 이후에도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이씨부인은

계속 자녀를 낳아

신사임당 집안은 딸만 다섯이 되었고

이씨부인 혼자서 살림을 꾸려가다가

점점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인선이의 아버지 신명화는 영리하고 뛰어났으며

다른 자매들과도 우애가 좋았던

인선이를 다른 자매들보다 특히나 아꼈고

신명화는 딸들에게도 성리학과 글씨 ,그림그리기를

가르쳤습니다

 

이로 인해 인선이는 그림 말고도

학문, 유교적 소양도 갖추게 되었고

그림그리기와 성리학 , 도학 , 문장 , 글 , 역사 등에 해박했습니다

 

신사임당 초서 병풍 - 지방 유형 문화재 제41호 (조선 시대) 강릉시 죽헌동 201 (율곡 기념관)

 

[호를 사임으로 정하다]

인선이는 자신의 호를 '사임' 이라 지었는데

이는 주나라의 명군인

주문왕의 어머니 '태임' 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태임을 스승으로 모신다는 뜻으로 스승사자를 붙여

사임이라 정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부터 임신한 어머니들의 정신이

아기들에게도 전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임산부가 좋은 것을 보고 생활하는

'태교'가 이뤄졌는데

 

주문왕의 어머니 태임은 주문왕을 임신했을때

성실과 덕행으로 태교를 남달리 잘해서

훌륭한 아들을 낳았다 전해졌고

신사임당 역시 태임을 본받아 훌륭한 어머니이자

여성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호를 사임으로 정한 신인선이였고

후대에는 그녀가 여성임을 확실히 하려

집을 의미하는 '당'을 덧붙여

신인선 , 그녀의 호는 사임당 신씨 즉

신사임당이 된 것입니다

 

[이원수와의 결혼]

신사임당은 어느덧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해야할 때가 됬고

 

한양의 덕수이씨 가문의 이원수라는 인물과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조선 전통 혼례 , 출처 : 한국민속촌

 

이원수는 안타깝게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청년이었으나

효성이 지극했으며 천성이 착하고

인정이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혼롓날

부부의 연을 맺는 두 남녀의 혼인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결혼식 하객 1>우왕 ~ 신부가 너무예쁘당 

 

<결혼식 하객 2>신랑이 참 잘생겼는걸 ~ ?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결혼식 후

이원수를 불러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신명화>내가 딸이 많지만 인선이는 특히나

아끼는 딸이라네,, 그래서 그런데 말이지,,

 

<이원수>말씀만 하십시요 ~

 

<신명화>엣헴 엣헴

비록 딸이 결혼하면 시부모를 모시는게 도리지만

내가 요즘 몸도 아프고,,

인선이는 특히 너무 아끼는 딸이라

떠나보내기도 아쉽고 ,,

 

결국 외로운 신사임당의 부모님으로 인해

신사임당은 이원수와 합의하에

그녀의 어머니 이씨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강릉 친정에 남아 부모님을 모시기로 했고

이원수는 장인 신명화가 그랬던것처럼

대관령을 넘어 다시 한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원수>ㅠ

 

[아버지의 죽음]

신사임당의 집안은

조선시대엔 보통 결혼하면

'출가외인' 이라 불리며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을 모시던 여성들의 삶과는 달리

남자들은 한양에 올라가 별거하며 서로

왔다갔다 하는 그런 특이한 경우였고

이런 모습은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부인에서

신사임당 그녀로 되물림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임당은 결혼후에도

그림 그리기와 학문에 열중했고

아버지 신명화는 그런 딸이 기특하기도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그녀의 아버지 신명화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사임당은 특히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아버지를 여의어서 슬픈 마음이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참되고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사임당은 아버지 3년상을 하느라

시댁에 가는게 더 늦어졌고

아버지의 3년상이 끝나자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부인은

신사임당에게

 

<이씨부인>여자란 시집을 가면

남편과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게 도리이니라

너도 얼른 시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

 

신사임당은 어머니의 말씀을 어길 수 없었고

한양의 시댁으로 향했습니다

신사임당이 도착하자

신사임당의 시어머니 홍씨부인도 그녀를 반기며

기뻐했습니다

 

<홍씨부인>며느리가 참으로 곱구나 ~

내 딸같이 여기겠다 ~

 

신사임당 부부는 얼마후 아들을 낳았고

이후에도 여러 자녀들을 낳았는데

신사임당 부부는 시댁 이원수의 본가인

파주 율곡리에 가서도 살다가

한양에도 살다가 다시 강원도에서도 살다가

이리저리 옮겨다녔습니다

특히 이원수의 본가였던 파주 율곡리는

신사임당의 아들이자

조선의 성리학을 정립한 대학자이자

임진왜란 직전 '십만양병설' 을 주장한 조선의 대정치가였던

율곡 이이의 호가 되었습니다

 

율곡 이이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파주 화석정

 

많은 이들이 신사임당 부부의 덕행에 감탄하며 놀라워했고

특히 신사임당의 그림에 큰 감탄을 했습니다

 

[용꿈을 꾸고 낳은 율곡 이이]

이후 1536년(중종 31년)

신사임당은 강릉 북평 '오죽헌' 이라 불리는 친정집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낳기 전 용꿈을 꾸었고

이에 아들 이름을 '이현룡' 이라 지어줬는데

이 아이가 바로 '율곡 이이' 입니다

 

율곡 이이 , 어머니와 아들이 모두 한국의 위인입니다

 

오죽헌의 현룡이(율곡 이이)를 낳은 방을

용꿈을 꾼 방이라 해서 '몽룡실'이라 합니다

 

오죽헌 사랑채
오죽헌 몽룡실

 

그녀는 현룡이(율곡 이이) 를 임신했을 때에도

주문왕을 임신한 태임을 본받아 항상 좋은 행실을 하며

올바른 태교를 하려 노력했고

그 기대에 보답했는지 현룡이는 참으로 총명하고 착했으며

효심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벼슬을 하지 않다가

훗날에야 겨우 과거급제를 해서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신사임당은 그럼에도

불평불만 없이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며

현명한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현모양처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집안일을 하며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학문과 그림 그리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녀는 아이들의 재능보다도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과 따뜻한 마음 ,

사랑을 심어주려 노력했고

잘못이 있을때는 엄격하게 타이르며 반성하게 했고

그녀 스스로도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려한

따뜻한 어머니였습니다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그림 그리기를 정말로 잘했는데

어느날은 잔칫집에 초대받은 신사임당이

여러 귀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국을 나르던 하녀가 넘어져버려

어느 부인의 치마에

국을 쏟아버렸고 사실 그 부인 역시

가난해서 잔칫집에 입고올 옷이 없어

남의 옷을 빌려입고 온것이어서 상황이 난처하게 됬고

이에 신사임당은

 

<신사임당>부인 , 저에게 그 치마를 잠시 벗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수습을 해보겠습니다

 

이에 부인은 이상히 여기며 치마를 벗어주었는데

신사임당이 붓을 들고 얼룩진 치마에

포도와 잎사귀를 덧그렸고 그림이 완성되자

 

<신사임당>이 치마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파세요

그러면 새 치마를 살 돈이 마련될 것입니다

 

국물 묻은 치마에 그린 그림은

실제 포도와 같이 정말 똑같아서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합니다

 

신사임당 포도 -간송미술문화재단

 

또 가장 유명한 그녀의 이야기로는

그녀의 그림 품격이 뛰어났기에

그녀가 풀벌레를 그려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진짜 풀벌레인지 알고

쪼아서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 가지와 방아깨비' , 국립박물관

 

수박과 여치 - 신사임당

 

수박과 들쥐 - 신사임당

 

그녀의 그림은 40폭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는 그림도

여럿 있을거라고 하고

그녀는 현모양처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이자 부인) 이자

조선의 여류(여성)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병이 있었던 그녀는 어느날

병상에 눕게되었고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신사임당>나는 이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1551년 음력 5월 17일

파주 율곡리에서 그녀는

48세의 짧은 나이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효심이 깊었던 그녀의 아들 율곡 이이는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방황하다가

불교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신사임당의 교육정신과 사랑은

그녀의 깊은 학문에서 나온 것이었고

한국의 여성위인인 그녀는

아들인 율곡 이이를 훌륭히 키워내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한국의 모자(어머니와 아들) 위인 이 되었고

그녀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조선의 아름다운 예술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죽헌 신사임당 동상

 

대한민국 5만원 지폐의 신사임당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 [사임당, 빛의 일기 (2017)]

 

<라봉봉>조선시대가 여성이 억압된 삶을 살았다는 이미지가 있으나

신사임당이나 제주거상 김만덕 같은 사례를 보면

과연 그런지도 의문이고

조선시대 남성의 삶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결국 세상은 남녀가 아닌 능력 중심으로 돌아가는게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의 진실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위인들에 대한 고리타분함 ,무능함에 대한

이미지가 씌어졌고 왜 대한민국 최고액권 지폐 5만원에

신사임당이 들어가는가 라는 논쟁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한국 위인들의 삶은 그들에게 씌어진 잘못된 이미지와 다르게

성실함과 노력의 연속이었고

지폐에 들어가는 액수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사임당의 그림 하나하나가 세밀하고 아름다운데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조선의 여성 예술가 신사임당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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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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