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말기
2차 예송논쟁에 남인이 서인에 승리했고
현종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세자였던 숙종이 왕위를 잇자
숙종 1년에 남인들은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숙종은 평화롭게 국정을 운영했던 부왕 현종의
정통성있는 세자여서
강력한 왕권을 물려받았고
신권이 강해지는 것을 싫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숙종은 온화하고 유악했던 아버지 현종과 반대로
몸은 허약했지만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자주바뀌고 까칠해
그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도
<명성왕후 김씨>세자는 내 배로 낳았지만 ,
그 성질이 아침에 다르고 점심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니 ,
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고
고집이 세고 다혈질이며 감정의 표현이 매우 풍부했던 숙종은
무언가 특이한 매력이 있었는지 왕실의 귀여움과 기대를 독차지하며 자랐고
이러한 그의 성격은 그의 오랜 재위기간 내내 계속됬습니다
현종에 뒤이어 왕이된 숙종은 평소 아버지가 신하들에게
예송논쟁등으로 끌려다니는 것에 불만을 느껴 강력한 왕이 되려했는데
이에 숙종은 남인 견제를 하려했습니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삼번의 난'이라는 초대형 반란이 터져서
조선에서는 청의 혼란을 틈타 북벌을 하자는 의견들이 올라와
실제 숙종은 국방을 강화하고 북벌을 준비한다며 군사를 모으고 있었는데
당시 정권을 장악한 남인들이 군권도 장악해 군사를 모으던 상황이었고
이에 남인들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에 경계심이 커진 숙종은
남인 수장 영의정 허적에게
궤장(왕이 공이 있는 노신에게 하사하는 등받이 의자와 지팡이)
을 내리고 허적의 할아버지에게 시호를 내려
허적에게 조정 분열과 붕당을 없애도록 당부했고
이에 허적은 큰 잔치를 열었는데
허적은 허잠의 시호를 맞이하는 축하잔치에
숙종의 허락도 없이 왕실의 천막인 유악을 빌려갔고
숙종은 분노하며
갑자기 돌변해 군부 인사들을 남인에서 서인으로 교체해버렸습니다
이에 남인 수장 허적이 영의정 직을 사임했고
숙종은 곧바로 유배가있던 서인 김수항을 영의정으로 복위시켰고
기회를 틈타 서인들은 남인들을 몰아내 조정을 장악합니다
이후 서인들이 허적의 서자를 역모죄로 고발해
허적일가와 남인들이 줄줄이 묶여 처형당했고
남인들은 처형당하거나 쫓겨나거나 유배 됬습니다
왕권강화를 도모한 숙종의 강력한 의지에
일방적으로 지배세력이 남인에서 서인으로 교체되
이에 다시 서인들이 권력을 잡게되었고
이 사건을 '경신환국(1680년 , 숙종 6년)' 이라하는데
환국 換局 은 바뀔 환에 판(장기나 바둑) 국 자를 써서
판세가 바뀜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공기를 환기시킬때 쓰는 환기의 환자와 같은 글자이고
여야세력교체나 시국등이 바뀌는 현상을 환국이라 합니다
숙종은 비슷한시기인 1680년 왕비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20살에 요절하자
결국 1681년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의 주도로
서인 민유중의 딸 인현왕후 민씨를 왕비로 맞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숙종은 왕비 인경왕후가 죽고나서
당시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궁녀 장옥정에게 푹 빠져있었는데
조선왕조 실록은 유독 외모평이 별로 없는데도
장옥정에 대한 기록은 사관들이 인정할 정도로
그녀의 미모가 아름다웠다 기록되 있고
이에 여러 풍문을 남긴
그녀의 이야기들이 사극으로 많이 만들어지게 됬고
특히 장옥정 역에는 미인 배우들이 항상 들어가게 됬다 할 수 있습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장옥정을 보고
'성품이 극악하며 왕(숙종)이 꾀임을 받을 수 있다'
는 이유로 궁밖으로 쫓아냈고
이후 숙종이 병에걸리자 무당이 왕의 어머니가
한겨울에 삿갓을 쓰고 얇은 옷만 입고 물벼락을 맞아야
계시를 내려 명성왕후는 실제로 그걸 따라하다
독감을 얻어 어이없게 사망했고
이후 장희빈은 다시 궁궐로 돌아와
숙종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렇게 숙종은 장옥정에 빠져
인현왕후 멀리했고
인현왕후는 덕이 뛰어났고 성숙한 인물이었고
그녀도 사람인지라 장옥정을 질투하기는 했으나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인현왕후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평생 아이를 가지지 못했는데
그러다 1688년 10월 28일
장옥정은 숙종의 첫 아들(훗날 경종)을 낳아버렸고
이에 숙종은 그녀를 희빈으로 책봉했고
그녀와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하려했지만
서인들은 인현왕후가 아직 젊으니(당시 인현왕후 20대초반) 기다려보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여러 의견들이 올라오다
숙종은 장옥정이 낳은 왕자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장옥정을 정 1품 후궁직인 희빈에 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흔히 장희빈이라 불리게 됨)
이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상소를 올려
숙종의 성급함을 지적했는데
이에 숙종은 크게 분노해 송시열을 삭탈관직해
제주도로 유배보냈고 사약을 내려 죽였습니다
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송시열 및
18명이 죽고 59명이 유배를 당하고
100명 이상의 서인들이 처벌을 당했는데
결국 이로인해 10년동안 유지된 서인정권은 몰락했고
이에 이번엔 다시 남인들이 정권을 잡았고
이를 '기사환국' 이라 합니다
기사환국의 마지막 절차로
서인집안 딸이었던 인현왕후는 폐위되
궁궐에서 쫓겨났고
장희빈(장옥정) 을 왕비로 승격시켰습니다
이후 숙종은 너무 커진 남인과 장희빈이 질려서
후회했고
이에 숙종은 영조의 어머니가 되는
숙빈 최씨에 빠졌는데
숙빈 최씨는 원래 궁중의 '무수리' 였는데
왕실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을 보통 '궁녀' 라 하면
무수리는 궁녀의 시중을 드는 계집종으로서
궁중 최하위직이라 할 수 있고
숙빈 최씨는 천민 출신이었습니다
숙종의 눈에 띈 숙빈 최씨가 승은(왕과 잠자리)을 입자
왕비 장희빈의 새로운 경쟁자로 급부상하게 되었고
남인과 엮여있었던 장희빈의 시기와 질투 및 공격을 받다가
인현왕후가 사라진 궁내에서 서인들은 숙빈 최씨를 끌어들였으며
천민출생에 지지기반도 없었던 숙빈 최씨였기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행실을 보이며 나름 장희빈과 인현왕후 , 남인과 서인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숙빈 최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한양내 서인 노소론 자제들의 음탕한 행위들이 있었는데
(저도 많이 직접 들은거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돈많은 집[솔직히 졸부] 자녀들은 음란한 짓을 많이하나봅니다)
이에 내부고발이 숙종에 올라왔고
숙종은 이들을 모두 체포해 의금부(오늘날 검찰청 , 중대한 죄를 처리하는 사법기관)
에서 조사받게 했는데
왕비 장씨(장희빈) 의 오빠로 여동생 덕에 포도대장(오늘날 경찰청장) 이 된 장희재가
소론들과 친하게 지내온 것을 사죄하며 사직서를 제출했고
숙종은 장희재에게 작은 일에 불안해 하지 말라 위로했고
장희재는 무죄판결됬지만 일은 점점 커져
서인들이 망할 위기까지 몰리게 됬는데
서인 노론 유생 김인은 장희재가 역모를 꾀한다 역고변을 했고
숙종은 처음에는 허황된 고변(고발)이라 믿지 않았지만
갑자기 돌변한 숙종은 장희재를 직권남용으로 삭탈관직(죄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 명부에서 지워버림) 하고
남인들을 대거 정계에서 쫓아내고
서인에게 다시 정권을 주고
왕비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격하시켰고
폐비된 민씨를 다시 궁에 불러들여
왕비로 복위시켰습니다
결국 또다시 여야교체가 이뤄졌는데
이 사건을 '갑술환국' 이라 합니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궁중에 돌아와 곧 사망했고
인현왕후는 자손을 못남겼지만
품행이 바르고 예의바르고 정숙해 많은 이야기를 남겨
한국사의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편 장희빈은 인현왕후 를 저주하고
다시 중궁(왕비)이 되려 기도하다 숙빈 최씨의 밀고(몰래 고발)로 발각되서
사약을 받고 죽었고 그녀의 오라비(오빠) 장희재도 처형되고
남인들은 완전히 재기불능한 상태로 망해버렸고
서인들의 세상이 오게 됬습니다 (신사의 옥)
서인집안에서 태어난 인현왕후는 양갓집 규수로서
왕비가 되어 정숙한 모습을 보였고
숙종이 다른 여인들을 총애하는 와중에도 정도를 지키다
폐비가 되어 원래 살던 집으로 쫓겨났고
다시 돌아와 왕비가 되었다 사망했던 인물로서
서인들의 세상이 오자 그녀는 분명 숙종이 총애한 장희빈을
질투하기도 했음에도 서인들에게 성녀급 인물로 미화됬고
태어났을때 향기가 났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들도 생겨나기도 했지만
분명 변덕쟁이 전제군주 임금이었던 숙종의 부인으로서
올바르고 현명한 태도로 폐비가 된 와중에도
조용히 버티다 다시 궁으로 돌아온 인물로 보이고
그녀의 이야기는 조선 양반여인의 정숙한 삶이나
'양갓집 규수' 가 행해야할 미덕 등의 예시로서 이야기되며
사랑받게 되었고
반대로 그녀를 밀어냈던 장옥정은 희대의 악녀로 이야기되고 있으며
또 미약한 출신에 존재감은 적지만 또다른 숙종의 여인이었던
숙빈 최씨(사실상 최종 승자가 아닐까 싶습니다)는
인현왕후와 친하게 지내며 적당히 줄타기를 했고
하여튼 숙종의 세 여인들의 얽히고 섥히고 꼬인
전제군주정기의 막장드라마 시대가 숙종시기 있었고
숙종 역시 왕권강화를 위해 이 세 여인들과
여인들과 결탁했던 신하들을 이용하며
수많은 신하들이 죽어가거나 귀양가던 시기였습니다
숙종 시기는 하여튼 '환국' 이 많았고 환국은 사실상
잧은 숙종의 변덕 등에서 나왔다 할 수 있는데
신하들에게는 좋은 시기라고만 할 수가 없었고
왕권은 엄청 강했던 숙종이었기에
흔한 전제군주적 모습을 보인 인물이라 할 수 있고
프랑스의 '짐이 곧 국가다' 라고 말한
'태양왕' 이라고도 불리는 '루이 14세' 의 한국버전 왕이라 생각됩니다
또 숙종대 환국은 무능한 조선 정치판의 당파싸움 및
물갈이 등으로도 볼수가 있지만
점차 시대가 변화하고 발전하며
오늘날 여당과 야당의 관계등이 확립 , 정리되고
한국의 의회정치가 원시적으로나마
생겨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숙종을 둘러싼 세 여인 인현왕후와 장희빈과 숙빈최씨는
가히 조선의 2차 '여인천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기와 질투와 음모와 배신과 등등 ;; 여러 이야기를 남겼지만
결국 숙종에게 역시 좋은 이야기라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광폭한 모습을 보인 숙종이 연산군이나 광해군같이 폐위되거나 하지 않았던 것은
경신대기근같은 오랜 대재앙으로 이미 많은 양반세력들이
옛날같지 않게 몰락하거나 힘을 잃었던 것도 있고
숙종은 인자했던 아버지 현종의 영향도 받아서인지 무너져가던 나라에 대해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줄여주는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민생안정에 노력했고
상평통보라는 화폐를 발행해서
오랫동안 쌀이나 옷감등을 화폐로 쓰던 조선에
편리한 화폐경제를 발달시켰고
일본과 은무역에서 크게 번영하는 등
경제를 발전시켜 민생을 크게 안정시켰다는 업적도 있습니다
숙종은 강력한 전제왕권으로 하렘판타지를 '실제로' 구현해 세 여자를 후리며
환국으로 신하들을 잡아 죽여 인간성은 쓰레기지만
경제는 매우 번영시켜서 나름 보이지 않은 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왠지 제 느낌상 숙종은 경제감각이 뛰어났던 인물로 보이고
당연히 사농공상등으로 상인과 경제를 천시하던 조선에서
그의 경제기술등이 자세히 기록될 일은 없었을 것이고
단순히 변덕스러운 임금으로 묘사된 거 같은데
단순히 변덕스럽고 광폭한 임금이 45년이라는 엄청난 기간을 재위하며
절대왕권을 행사했다는 점은
정계에서 잔뼈가 굵어왔던 신하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분명 그 이유가 있다 할 수 있으며
악녀로 묘사되는 장희빈 역시 숙종이 총애한 것은
그녀가 조선 갑부의 딸이기도 했고
뛰어난 경제감각이 있는 여인이어서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결국 그의 힘은 뛰어난 경제능력에서 나오게 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라봉봉>오늘날에 들어서야 자본주의들이 발달하고
경제의 중요성이 나타났고 실제 조선시대 이전시기까지만 해도
한국은 동북아의 교통로 및 반도적 특성을 살려 중계무역과 국제 무역 등으로
상업경제를 크게 발달시키며 발전해 왔지만
조선시대에는 상업 천시정책등으로 왕 , 신하 , 백성 할 것없이
농업만 중요시하고 상업이나 경제에 대해 무관심하다싶이했으며
경신대기근 동안 그 피해를 뼈저리게 느낀 조선이었는데
숙종은 재위기간 내내 반대파는 서인 남인 가릴 것 없이 처단해가며
불도저같이 경제정책을 밀어나갔던 인물로 보이고
신하들도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며 나름 민생에 신경쓰는 왕을 보고
반정등은 꿈도 못꾸며 조용히 몸을 사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여튼 전제군주적 모습을 보이고
세 여자와 얽히고 섥힌 이야기는 드라마화하기 딱좋은 임금이기에
수많은 영상매체에서 조선 미녀이자 악녀라 불리는 장희빈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장희빈이랑 여인천하의 정난정은 개인적으로 헷갈리지만 비슷한 느낌들이고
하여튼 저도 어렸을때 집 서재에 있던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능인 출판사의
'우리고전 만화 인현왕후전' 이 있어 읽은 기억들이 나는데
무언가 조선 양반 여인과 왕비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 , 기풍등이 그려진 이야기로
기억되고 여러 쓰여진 인현왕후전은
단아함 , 정숙함 , 올바른 유교적이고 이상적인 조선 여인의 삶의
모범이 되는 인현왕후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숙종 역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라는 황금만능주의가 생각나는 인물이기도 하고
가족사나 여인들의 암투 등은
숙종 스스로에게도 큰 독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숙종은 이외에도 영토문제에서 중요한 이야기들을 남겼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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