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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을미사변으로 부인(왕비)이 일본 건달들에게 살해당하자 충격을 받은 고종은

일제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결국 궁녀가 타는 가마를 타고 순종과 함께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대사관(공사관)으로 피신했는데

이 사건을 '아관파천(1896)' 이라 합니다

 

당시 러시아공사관 모습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난가자

조선 조정의 친일 내각은 무너지며

친러파가 일어났고

고종을 보호하는 러시아에게 각종 이권들이 넘어갔습니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하자마자

을미사변의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었던

김홍집 , 유길준 등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처형할 것을 명했고

유길준은 일본으로 튀었지만

김홍집은 조선 500년 사직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조선 최초의 내각총리대신의 책임감을 가지고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고종을 배알하려 했고

당시 만류하는 일본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홍집>시끄럽소 ! 일국의 총리대신으로서 백성에게 죽는 건 천명이오 !

남의 나라 군인의 도움까지 받아서 살고 싶지는 않소 !

 

결국 러시아공사관으로 가는 김홍집은 순사에게 붙잡혀

광화문 앞으로 끌려나가 분노한 군중들에게 돌을 맞고

집단구타당한 끝에 숨을 거두었고

분노한 군중들은 죽은 김홍집의 사지를 찢고

종로까지 시체를 끌고갔으며

김홍집의 부인은 연좌(죄인의 가족까지 처벌) 될것을 생각하며

아들을 죽이고 자결했습니다 (계백과 비슷)

 

김홍집 , 그의 죽음은 사실상 '자결'이라 할 수 있으며 일본으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조선의 신하' 로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김홍집은 온건개화파의 수장이자

조선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조선의 주요 근대적 개혁들을 실시한 의의가 있는 인물이었고

일본의 손에서 놀아난 인물이지만

그 역시 김옥균같이 일본을 동경하며 일본식 모델의 개혁을

시행하려 했던 인물로 보이고

그렇다고 이완용이나 박영효 같은 친일 매국의 길을 걸었다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그 역시 혼란한 시대속에 조선의 왕 다음의 권한을 가진 인물로서

친일 성향이 강한 인물들과 깊게 어울리다가

줄줄이 엮여 처신을 잘못하다 참살당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일본으로 망명해 목숨을 건진 유길준은

이후에도 살아남아 친일적 행보를 보였지만

그 역시 김옥균 , 김홍집과 같이 조선의 지식인으로서

일본의 도움을 받아 힘을 키우려는 의도였으며

일제의 조선 피탈에 반대하며

아슬아슬하게 친일매국의 길은 걷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뚜렷한 독립운동행보를 보인 것도 없어서

평가가 갈리는 인물이 됬습니다

 

유길준

 

이렇게 당대에도 적극적으로 친일매국행위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 이외에도

이렇게 일본의 강대한 힘을 인정하고

일본을 배우려 했다거나 혹은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할 용기는 없어서

방관하는 방관자 , 애매한 조선인들도 많았고

실제 독립운동가들 역시 집안 재산을 전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고

척박한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모질고 어려운 삶을 살았고 그런 인물들이 조선의 대다수는 아니었지만

조선내에 살며 평범히 살며 일제를 미워하거나 조용히 독립운동가들을

지원 , 응원하거나 일제에 붙어버리거나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되고

당장 저희 친가 외가도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일제를 두려워하던 평범한사람이었고

당장 저라도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은

솔직히 못했을 거 같고 상황을 지켜보며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제에 맞서거나 정의로운 일에 힘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여튼 고종이 러시아의 보호를 받게되며

조선 내에 친일파 인물들이 숙청됬고

점차 러시아의 입김이 강해지며 러시아는 노골적으로

조선 영토의 각종 채굴 , 채벌권등을 요구하였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는 동안

 

'독립 협회'

 

라는 단체가 일어났는데

독립협회는 외세에 맞서 자주독립을 이루자는 목적을 가진

조선 지식인들이 조직했던 단체였고

독립협회는 독립문 건설 , 독립신문 발간 , 만민공동회 개최 등의 활동을 하며

조선 민족 독립의식을 고취 , 민중을 계몽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독립문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또 독립협회는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에게

환궁할 것을 호소해 고종은 다시 궁궐로 돌아오게 되었고

고종은 환궁하자마자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 ,

연호를 '광무' 로 고치며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해

왕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이는 외세의 간섭에 맞서 자주국임을 알린다는 것과

왕권(이제부터는 황권) 을 강화한다는 의미였다 할 수 있습니다

 

환구단

 

곤룡포를 벗고 황제의 옷을 입은 광무황제(고종) 로서 광무황제는 조선의 마지막 '왕' 이자 최초의 황제였습니다

 

대한제국 고종 혹은 광무황제(광무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1897년 근대적 개혁인 '광무개혁' 을 실시했고

광무개혁은 갑오개혁 이후 의의있는 조선의

굵직한 근대적 개혁으로 유명했던 개혁이었습니다

 

광무개혁 내용으로는

광무황제(고종)는 절대황권을 공고히 하려 했으며

구본신참(옛것을 기반으로 새것을 참고한다) 사상을 바탕으로

개혁을 실시했고

광무황제는 미국 수도 워싱턴을 모델로

똥들이 넘쳐났던 대한제국 수도 서울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깔끔한 도시로 개조했으며

토지 소유증서인 지계를 발급해 토지제도의 소유주를 기재했고

전환국을 설치해 화폐를 만들고

광무 황제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인삼 , 목재 , 쌀 ,소가죽 , 금 등을 수출해

나라 빛을 갚게했으며

이렇게 번 돈을 바탕으로

서울에 전기를 보급하고

대한제국군을 창설해 시위대 , 원수부 , 무관학교를 설치하며

군비를 확장했지만 군사개혁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는 않았고

 

이외에는 청과 간도(만주) 영유권을 두고

다툼이 발생하자 광무제는 대한제국군을 간도와 요동에 파병했고

1903년 간도관리사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해 간도를 관리하게 했습니다

 

(한국 한반도 지도를 대륙에 포효하는 호랑이로도 비유하는데

5000년 역사에서도 힘이 약할때는 조용히 있어도

힘이 생기면 계속해서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거나

북방으로 진출해 고토를 수복하려는 한국인이었습니다)

 

간도 지도
간도관리사 '이범윤'

 

여러 개혁을 했던 광무개혁이었고 소기의 성과도 남겼지만

광무개혁 자체가

 

황제의 내탕금(비상금) 에 의지했기에

황제의 재정은 기존 조선 예산보다 커져가는 불균형한 상태를 만들었으며

또 일본같은 자체적인 제조업 육성 및 군사 개혁이 아닌

외화를 써가며 외국의 이미 완성된 무기나 문물들을 사들이는

외형적인 , 일시적인 모습에 치중한 개혁이었다는 점 ,

결국 광무황제도 황권을 강화시키는데 집중하는

봉건군주적 한계를 보였다는 점등의

한계가 있습니다

 

나름 광무황제는 이 개혁으로

근대식 정부를 편성하고 황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결국 일제의 간섭으로 중단됬습니다

 

다시 독립협회 이야기를 하면 ,,

독립협회가 점차 독립신문을 통해

민주 , 민권 사상을 보급하고 대신들을 탄핵하거나

지도자의 무능에 대한 비판 , 비난을 시작했고

아예 독립협회는 공화정을 시행할거라는 이야기가 고종에게 들어오자

위기를 느낀 '황제' 는 은 독립협회를 없애려 했고

이외에도 독립협회 인사들이 친일파들이 많았기에

광무황제가 불안해 했던 것도 컸습니다

 

결국 광무황제는 보부상으로 이루어진 친황실단체였던

'황국협회' 를 시켜 독립협회를 무력 진압하게 했고

독립협회는 해산됬지만

독립협회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선

여러 인물 ,독립운동가들이 나왔고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독립협회에 영향을 받아

민족 의식을 키웠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이승만(한국 초대대통령) , 이완용(매국노 ;;) 등 여러 인물 혹은 이상한 인물들도 나온 독립협회지만 독립협회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단연 한국의 위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 같습니다

 

<라봉봉>저도 근현대사는 많이 보고 느끼기는 한거같지만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 못다한 이야기도 많지만

나름 어린시절에 봤을 법한 주요 사건들을 추려 썼습니다

 

대한제국은 비록 허울뿐인 제국 , 약한 황제가 운영했던 나라였지만

사실상 한국이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뚜렷하게 제국을 칭한

처음이자 마지막 나라였으며

이전에도 한국은 황실적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외왕내제' 즉 외국에는 왕임을 표하고 내부적으로만 황제를 칭했다 할 수 있으며

나름 눈치를 봤는데 고종시기에는 청나라도 열강들에게 도륙당해

말이 아니었던 시기고 외국들도 조선의 이권을 얻어내려

괜히 고종에게 청에서 멀어지라 부추겼다고도 할 수 있기에

나름 고종은 오랫동안 한국의 '황제국' 콤플렉스 등을 씻기 위해

청이 약해진 틈을 타 대한제국을 선포하려 했던 것으로 보여서

일단 은근 이름도 멋지고 대한민국의 이름의 유례가 됬던 나라기에

이상한 팬심같은게 생겨나 오늘날 '궁' 같은 만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대한제국 황실판타지' 같은게 생겨나기도 했고

오늘날 역사계의 판타지인

한국 '대체역사소설' 류에서는 주인공이 고종으로 환생해서

역사를 바꾼다는 이야기가 무수히 많습니다,,

 

나름 한국 고토였던 간도를 찾으려는 자주적인 모습도 보였기에

고종 , 광무황제 역시 비판도 많지만 완전 욕을 먹는 인물도 아니고

진짜 평범한 군주였다 할 수 있고 동정론도 많지만

혼란의 시기를 지혜롭게 이겨내지는 못했던 인물이었고

당시 독립협회가 일어나

점차 조선에도 왕 , 황제 중심 사상이 아닌

민권 , 민주적 사상들이 보급되며

독립 사상들이 고취됬고 독립협회 해산후에도

독립협회 인물들은 독립운동으로도 이어져

결국 '대한민국' 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친 단체가 되었습니다

 

독립협회가 배출한 가장 큰 인물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라 생각되지만

한국 초대대통령 이승만도 나왔고 (명암이 뚜렷하게 공존하나 나름 유능했던 인물)

독립협회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인물은

결국 '서재필' 이었기에 가히 '서재필의 독립협회' 라고도 할 수 있고

서재필 역시 독립운동활동도 했지만

서재필 역시 애매한 스텐스를 보이던 인물어서

안창호 선생님같이 대중적인 지지나 큰 존경은 받지 못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고

애초에 미국으로 망명해 한국최초로 미국국적을 취득했던 인물로서

영문명 '필립 제이슨' 으로서

조선에 돌아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했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성향이 강했던 인물이라

독립협회가 실패하자 다시 미국으로 갔고

그는 오늘날에도 한국명인 '서재필' 이 아닌 '필립 제이슨' 으로 불리던가

'검머외(검은머리 외국인)' 으로 비판 , 비난되기도 하는 인물로

그렇다고 독립운동을 안한것도 아니기에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로 이야기 됬고

이렇게 당시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고

단순히 독립운동가 vs 친일파(매국노) 구도로만 보기도 어렵고

실제 사람은 '쟤는 착하고 쟤는 나빠' 라고 단순하게 보기도 어렵고

여러 입체적인 모습이 있고 역사 인물 , 독립운동가들도 이렇게

여러 다양한 인물들이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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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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