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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시대와 아스카시대>

[고훈시대]

[야마토국의 등장]

[아스카 시대]

[쇼토쿠 태자]

[일본인과 와 사상]

[외국 유학생 파견]

[다이카 개신]

[백강 전투]

[일본 국호 사용]

<라봉봉>

 

[고훈시대]

일본의 청동기 , 철기 시대인 야요이 시대도 저물어가고

고훈시대가 시작됬는데

본격적인 일본 왕조국가가 등장한 시기로

서기 250년~538년 정도의 기간을 말합니다

 

당시 일본은 일본이 아닌

왜 倭 라고 불리고 있었고

왜적 , 왜구등이 여기서 나온말입니다

 

야요이 시대와 고훈시대 사이기간

잠깐 왜국에는 여왕이 나온 적이 있는데

야마타이국이라는 일본내 나라에는

히미코(비미호) 라는 여왕이 등장했는데

그녀는 귀신을 섬겨 사람들을 혹하게 했고

주술 , 종교적 모습으로 사람들을 통치했던 것으로 보이며

남편이 없고 남동생이 있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일본게임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하는 히미코

 

히미코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에게

사신을 보낸 적도 있다고 삼국사기 기록에 나올정도로

의외로 당대 국제사회에도 알려진 인물이었고

그렇다고 그녀가 좋은 인물은 아니었지만

주술 , 귀신 , 제사등을 주관하며 사람들을 두렵게해

지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죽자 무덤을 크게 만들었는데

노비 100여명을 순장(지배자 무덤에 생매장하거나

죽여서 묻음) 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히미코 사후부터

일본내에는 여러 분쟁이 있었고

이후에는 왜국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어

조용히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마토국의 등장]

그러다 히미코가 다스리던 야마타이국은

야마토국으로 발전됬다 하고

고훈시기는 오늘날 일본의 전신격인

일본 고대국가 야마토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야마토 정권의 세력범위 (남부에 한정되 있음)

 

고훈시대 의복

 

한국인들을 자신들을 한국인 , 한민족이라 부르듯이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야마토 민족이라 부르고

야마토는 일본의 별칭이 되기도 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는 의미있는 고대국가입니다

 

(태평양 전쟁시기 일본 해군의 초거대전함 야마토전함도

이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고훈시대 대표적 유적 오사카의 다이센 고분

 

단 당시까지만 해도 야마토국은

일본 남부정도만 지배했을 정도로 세력범위가 작았고

점차 발전한 일본은 이후 중부 , 북부지방까지 정복하며

일본 열도를 통괄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전 야요이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도 일본은 한국의 큰영향을 받았고

처음엔 가야에게 그러다 백제에게 큰 영향과

문물을 받으며 일본은 점차 발전합니다

 

가야 토기와 일본 스에키 토기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

 

[아스카 시대]

고훈시대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538~710년 사이동안

아스카 시대가 시작되는데

아스카 지역이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어

이 시기를 아스카 시대라 부릅니다

 

한국의 백제는 점차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었고

백제 성왕은 일본에 불교도 전해주었고

아스카 시대동안

일본은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화를 받아들이며

큰 발전을 이루어 냅니다

 

[쇼토쿠 태자]

일본 황실내에서는

쇼토쿠 태자라는 훌륭한 인물이 나왔는데

고모인 스이코 덴노의 섭정으로 정권을 잡고

외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켰고

불교를 공인해 부흥시키고 일본의 중앙집권을 강화하려

17조 헌법(율령)과 관위 12계(공복제정 및 관등제) 등을

만들었고 여러 뛰어난 개혁정책으로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쇼토쿠 태자

 

쇼토쿠태자는 607년에 당시 초강대국이었던

중국 수나라 앙제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그가 수양제에게 보낸 편지에는

 

<쇼토쿠 태자의 편지>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내노라

 

라는 배짱을 부렸고

수양제는 기분이 안좋아졌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참았다고 합니다

 

점차 나라꼴을 갖춰가며 자신감이 생기던

왜인들이었고

오랜 기간동안 백제의 영향이 참으로 컸지만

이후 왜인들은 점차 백제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도

직접교류하는 모습들을 보이며

백제의 분노도 사게됩니다

 

일본 지역이 한국을 종합적인 면에서 추월하기 시작한게

보통 임진왜란 전후라고도 하는데

그전까지는 동쪽 끝 섬에 있는 외부와 단절된 후진국이었고

철저하게 살아남기위해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외국과의 교류를 국시로 하다싶이하며

매달려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섬나라 일본은 내륙지역이 아닌

해안가 지역에 대도시들이 발달한

해양국가적 특색이 강한나라이고

 

(옛날 카르타고 , 백제 , 영국 , 미국 , 일본 등이 해양국가로 분류되는 나라이고

해양국가는 대륙국가같이 지역 전체정복이 아닌 해안가 지역 거점만 정복해

무역 , 교류로 이어져왔다는 특색이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하여튼 당시에는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글도 모르고 옷도 못지어입고

야만적이고 매우 미개한 후진국민들이었는데

백제인들이 많이 건너가 문물을 전파해

아스카 시기부터 나라꼴을 갖추었으며

그럼에도 당시에도 왜국은 영토가 넓고 비옥해서

인구가 많이 살았고

선진국이었던 한국 입장에서도

단순히 만만한 나라였다고 보지는 않았고

특히 일본과 가까운 경상도에 자리잡은 신라는

건국 초부터 일본 해적들에 크게 시달립니다

 

[일본인과 와 사상]

쇼토쿠 태자는 이렇게 보여지는 국가개혁 이외에도

어쩌면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일본인들의 정신적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됬는데

바로 와(화 , 화목 , 화평) 사상과

이이토코토리 정신(외국것도 좋으면 기꺼히 배우자)을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친절한 일본인들

 

당시 왜는 섬나라였기에

내부 분쟁이 일어나면 엄청난 피해가 컸고

이에 자국민들끼리는 서로 선을 지키고 평화롭게 지내고

외국과의 교류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고

쇼토쿠 태자가 만든 와 사상으로 일본 내부에서는

싸울지언정 제한적 싸움만 벌이는 모습이 생겨나게 됬고

오늘날까지 여러 질서정신 , 서비스 정신이 매우 강해

가끔 징그러운 듯한 느낌도 드는 일본인들은

이렇게 쇼토쿠 태자가 만든 와 사상에서

서로의 자리를 만들고

남의 자리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하는

문화 풍조가 생겨난 것입니다

 

(북방계나 몽골 유목민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에서 얌마 ~ 하며 뒤통수를 치거나 살을 맞대며 친밀감 표시하는 것은

일본인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일본에서는

그런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지나치게 일본인처럼 예의차리면

밥맛없는 재수없는놈 취급을 당합니다)

 

또 섬나라는 고립되면 곧 섬의 전체의 위기가 됬기에

외국과의 관계에서도 자존심보다는

좋은 것을 기꺼히 취하는 , 받아들이는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은 특유의 섬세한 장인정신으로

외국 선진국들의 좋은 물건들을

베껴서 더 좋은 품질의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카피력이 엄청나게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장인 정신으로 유명한 일본 , 일본 초밥장인 오노지로가 아베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에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

 

일본에 다양한 면에서 사실상 일본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든

쇼토쿠 태자였기에 당대나 오늘날까지 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그러다 말년에는 소가가문의 권력이

강해지고 자신의 권력이 축소되자

속세에 허망함을 느끼고 불교에 귀의했고

죽기직전 아내에게

 

<쇼토쿠 태자>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난다

 

말했는데 다음날 아침 진짜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외국 유학생 파견]

하여튼 쇼토쿠 태자의 활약에 힘입어

아스카시대는 순풍을 타고 왜인들은

백제나 중국등의 외국 문물들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고

이러한 외국과의 교류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파견한 견수사와 견당사가 있습니다

 

견당사 항로

 

견당사선 모형

 

한국인들은 이시기 일본에 많이 건너가

또다시 도래인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땅도 넓고 비옥하고 인구도 많은 왜지역은

한국인들의 거대한 실험공장화 되었습니다

(자국에서 설계한 기술들을 넓은 왜 지역에

대규모로 건설시킴)

 

백제인들이 가져온 설계도로 건설된 '아스카데라' 사찰

 

[다이카 개신]

아스카 시대때인 646년부터

중앙집권 정치개혁이 실시됬는데

바로 이 개혁을 다이카 개신이라 부르고

당의 율령제를 도입하고 중앙집권을 수립하려

4가지 사항을 발표했고

토지 국유화 , 수도와 군사 , 교통제도 정비

호적 , 기록대장 , 세금제도 도입

등 여러 사항이 담겨있었습니다

 

[백강 전투]

한편 당시 왜에서는 엄청난 사건을 겪는데

바로 종주국이었던 백제의 멸망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신라가 강대하게 번영하자

고구려와 백제 , 왜는 동맹을 맺고

신라를 포위 압박하고 있었고

분노한 신라는 중국 당나라와 나당동맹을 맺고

백제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왜의 주요 지배세력 역시 백제계였기에

왜인들은 마치 자신의 나라같이 백제를 구원하려

수많은 대군을 백제에 파견했고

백제인과 왜인들이 연합한 백제 부흥군은

백강지역에서 벌어진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처참하게 패해

버리게 됩니다

 

백강 전투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자

백제 부흥군 지도자 및 백제세력들은

그대로 자국에 남거나 , 당나라에 끌려가거나 ,

왜국으로 건너갔고

왜는 백제 멸망 이후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와 적대하게 됩니다

 

일본 초기 고대 및 백제 멸망시기 이야기가 나오는 만화 '불새' , 정통 사극만화는 아니지만 작가가 일단 수준이 높은 인물이고 일본인들의 고대사 인식 , 한국과 백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고 한국과 당나라라는 새로운 선진세력에 대한 막연한 일본인들의 공포감 역시 나타난 만화라 생각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작품

 

[일본 국호 사용]

당시 백제 국호의 별칭은 일본이었는데

태양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자부심 강한 백제인들의 별칭이었고

왜인들은 이 백제의 별명을 자신들의 국호로 지정하고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 니혼 , 닛폰)' 으로 정하게 됩니다

 

아스카 시대 일본인 복장

 

이 시기부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일본과 적대 및 교린관계를 형성하게 되서

한반도 도래인들도 더이상

적극적으로 일본에 건너가지 않게 되었고

일본과 한국은 이 시기 전까지는 언어도 비슷하고

많은 것이 판박이같이 동질성을 공유했는데

점차 백제멸망 , 신라 삼국통일 이후부터

한국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점차 자국의 문화들을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라봉봉>오늘날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고

이는 일본의 역사인식 부재등에서 나왔지만

사실 저는 요즘 한국인들 역시 역사를 잘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양국의 평화 , 우호관계는 결국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본은 당시 백제 중심으로 한국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던 나라이고

이러한 문화적 열등감 , 콤플렉스로 이때부터 일본인들의 역사주작이 시작됬는데

단 그럼에도 오늘날 백제연구나 한국 고대사시기 일본과의 역사 , 우호관계에 대해

일본인들은 상당한 호감이 있다 생각하고

일본인들은 천황가부터가 백제인의 후예이기도 해

백제인들의 후예라 해도 별다른 콤플렉스를 가진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백제를 은인의 나라로 생각하고 아직도 백제인들을 기리며

당시 고대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학자는 한일 양국의 우호관계는 결국 고대사 연구에서 시작되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스카 시기 이후부터 일본과 한국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됬지만

하여튼 이 시기까지만 해도 동질성이 엄청났던 시기이기도 하고

한국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종주국의 자부심이 있는 시기이며

일본으로서는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가던 근본적인 시기이기도 하는 시기고

하여튼 당시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는 상당히 신비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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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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