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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와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

[사무라이들의 등장]

[겐페이 합전]

[미나모토 요시츠네]

[가마쿠라 막부]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

<라봉봉>

 

[사무라이들의 등장]

마치 한국 통일신라 말기 후삼국시대처럼

일본 헤이안 시대는 점차 왕권(천황)이 약해지고

지방 귀족들의 힘이 강대해졌고

귀족들의 장원(개인 영지) 들이 확대됩니다

 

당시 지방 세력가 , 지방관들은 '고쿠시' 라 불렸는데

고쿠시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려

지방 유력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사업을 맡겼는데

이를 '다토' 라고 합니다

다토들은 스스로 토지를 개간해 새 경작지를 만들고

스스로 영주라 자처하며 일어났고

이에 다토와 고쿠시의 권력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점차 권력충돌이 발생하자

다토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력집단을 만드는데

이 무력집단 일부는 중앙 귀족의 눈에 들어

귀족의 사병인 '시종' 이 됬는데

이 시종에서 나온 것이 '사무라이(무사)' 입니다

 

이후 지방 유력자들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사(사무라이) 들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고쿠시 , 유력자들과 사무라이들은 봉건적 주종 관계를 형성했는데

 

그렇게 무사들이 권력이 생기며 점차 세력이 커져갔고

이중 타이라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이 크게 일어납니다

 

[겐페이 합전]

결국 헤이안 시대 말기인 1180~1185년 동안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는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 전쟁을 겐페이 전쟁 , 겐페이 합전 이라 부른 전쟁입니다

 

당시 미나모토씨는 흰 깃발을 사용하고

타이라씨는 붉은 깃발을 사용했기에

여기서 유래해 홍백가합전 (한국으로치면 청군과 백군) 이 나왔고

당구에서도 내기당구를 뜻하는 말인 '겐페이' 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이 전투에서 승리한 미나모토씨는

가마쿠라 막부를 열게 됩니다

 

<겐페이 전쟁당시 이야기를 다룬 13세기 일본 군담소설

'헤이케 이야기' 중에서>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 있으니

사라쌍수의 꽃의 빛깔

성한 자 필히 쇠한다는 이치를 드러낸다

교만한 자도 오래가지 못하고

단지 봄날 밤의 꿈과 같으며

강한 자도 마침내는 멸망하니

오로지 바람 앞의 티끌과 같도다

 

[미나모토 요시츠네]

겐페이 전쟁시기 무장으로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겐페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입니다

 

미나모토 요시츠네

 

요시츠네는 얼굴도 여리여리 귀공자 모습으로 잘생겼다고 하고

무패의 장군 경력 , 화려한 로맨스 , 비극의 영웅적 이야기로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역사인물 중 하나로

(한국으로 치면 이순신 , 중국으로 치면 제갈량급 ??)

 

한국인도 이름은 몰라도

일본 만화나 게임에서

빨간색 사무라이 갑옷 입은 잘생긴 남자 얼굴을 봤다면

미나모토 요시츠네일 확률이 높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하여튼 요시츠네는 뛰어난 능력으로 겐페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그의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동생의 활약에 힘입어

겐페이 전쟁을 승리로 거두고 일본 전국을 제패한 후

헤이안 시대를 끝내고 '가마쿠라 막부' 를 세웁니다

 

1대 쇼군 미나모토 요리모토 (일본은 과장미를 중시해서 초상화에 화려한 화장이나 어깨뽕을 넣었다 합니다 , 어깨가 뽕인지 각인지 일본 지배자들 어깨각이 장난 아닙니다)

 

막부(일본명 바쿠후)는 군대에서 쓰는 막사를 의미하는데

당시에도 일본은 덴노(천황) 은 교체하지 않고

귀족들 내부에서 정권이 이루어졌기에

권력을 잡은 미나모토 가문은 조정 대신

군대에서 쓰는 막사의 지휘소 같은 정치 기관을 만들었고

또 고려 무신정권 지도자들처럼

왕(천황)이 되는 것이 아닌 왕(천황)을 허수아비로 앉혀두고

권력을 직접 쥐었는데

최고 권력자의 명칭을 정이대장군 (세이이타이 쇼군) , 줄여서

쇼군이라 불렀습니다

 

일본의 막부정치

 

일본의 실제 왕이라 할 수 있었던

이러한 쇼군들은 천황 및 일본귀족들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늘 긴장 관계를 유지했고

 

1867년 도쿠가와 막부의 도쿠가와 가문이 권력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대정봉환' 을 한 이후까지 일본은 쇼군과 사무라이의 나라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일본 무가정권의 시초이자

가마쿠라 막부의 1대 쇼군이 된 요시츠네의 형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의심이 많고 정치적인 인물이었고

쇼군이 된 후 측근에 대한 자비없는 숙청을 시작하고

첫 타겟으로 동생 미나모토 요시츠네를 전쟁 승리 후 추격병들을 보내 죽이려 했는데

결국 요시츠네는 코로모 강가에서 추격병에 둘러싸여

부인과 4살짜리 딸을 죽이고 자결하는데 그의 나이 31세였습니다

 

그역시 최후당시 무사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요리모토에 비해 무사들이 모이지 않아 도주했다는데

이는 영웅적 모습 뒤에도 인망이 없다거나

잔인한 모습이 있었던 그의 모습 때문입니다

 

하여튼 요시츠네는

너무 빨리 죽어버려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이에 그가 몽골로 건너가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전설이 일본에서는

되게 유명합니다 (어처구니 없 ;;)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

하여튼 가마쿠라 시기부터는 쇼군이 주도하는

본격적인 무인정치가 시행됬고

그러다 대륙에서 크게 일어나던 몽골족들은 원나라를 건국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했는데

일본까지 정복하려 해서

이미 속국으로 만든 한국 고려에 정동행성이라는 일본 정복 기구를 설치하고

해전에 강한 고려인들에게 배를 만들게 해

고려군과 여몽(고려+몽골) 연합군을 형성해

대마도를 손쉽게 썰어버리고

일본에 상륙해 가마쿠라 막부와 전투를 벌입니다

 

여몽 연합군의 원정

 

뭔가 화려한 갑옷 무장을 하고 강력해 보이는 사무라이들이었지만

일본은 중국이나 고려에 비해 아직 역량적으로 후진국이었고

그냥 가죽옷으로 무장한 고려군에 썰려버립니다

 

이때 그려진 그림으로 '몽고습래회사' 라는 그림이 있는데

고려군이라 알려진 병사들은 시시한 사냥감을 잡듯이 웃으면서

일본 무사에게 활을 쏘고 있습니다

 

웃으면서 일본 무사에게 활을 쏘는 고려군 (왼쪽으로 당대 고려 갑옷으로 추정)

 

당시 일본군들은 모든 면에서 여몽 연합군에 열세였기에

복합궁을 애용한 한국과 달리 궁을 만들 재료도 마땅히 없어

대나무와 나무를 엮어 큰 활을 만드는게 전부였고

여몽 연합군이 애용하는 복합궁은 140m 가 날아가는 것에 비해

오늘날 일본 전통궁이 그렇듯이 50m 안쪽에서 쏘는 짧은 거리 활이었기에

결국 일본인들은 달려들어 싸우는 백병전을 강요받게 됬습니다

 

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가계 , 이름 , 전적들을 자랑하고

싸우는 일기토 전투가 일본 전투의 매너였는데

그런거 없는 여몽연합군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여몽연합군의 압도적인 무기들에 썰려나간 일본군이었습니다

 

대륙계 국가의 첫 침입을 받은 일본인들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였고

국력과 군사력도 넘사벽이었기에 일본인들은 엄청난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나름 가마쿠라 막부도 병력을 끌어모아 대항했는데

김방경이 지휘하는 용맹한 고려군들은

후쿠오카 지역을 거쳐 내륙으로 진격하며

닥치는대로 일본군들을 싹쓸어버리고 있었고

몽골군 지휘관 훈둔도 고려군의 용맹에 감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몽연합군의 1차 일본원정 당시 훈둔의 말>

비록 몽골군이 전투에 익숙하다고는 하나 어찌 고려군보다 더 낫겠느냐

 

고려 장군 김방경

 

위기에 몰린 일본이었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태풍이 불어 여몽연합군의 군함들이 엄청나게 침몰하게 됬고

결국 여몽 연합군은 일본에서 철수하게 됬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태풍을 신의 바람 (신풍 神風 , 카미카제) 라 부르면서 기렸는데

훗날 태평양전쟁때 미군을 상대로 일본군은 비행기로 비인륜적 자살폭탄 공격을 하며

이 자살폭탄 공격대를 '가미카제 특공대' 라 불렀습니다

 

일단 물러난 여몽연합군이었고

당대 원나라 쿠빌라이 칸은 일본이 충분히 쫄았을 것으로 여기며

원나라에 굴복할 것을 권하는 사신단을 보냅니다

 

원나라 초대 황제 쿠빌라이 칸

 

가마쿠라 막부는 이들을 접견한 후

고려인 수행원 4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참수해버렸고

이후에도 간 사신단마저 처형당해버리자

분노한 쿠빌라이 칸은 2차 원정을 결심해

또다시 고려를 강요해 여몽연합군을 꾸밉니다

 

고려는 형편이 어렵다 무리라했지만

분노한 쿠빌라이칸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원의 의사를 막을 수 없다 판단한 고려는

그전부터 침몰하던 왜구(일본 해적) 가 지긋지긋하기도 해서

이틈에 원과의 관계에서도 지분을 얻고 왜구들의 패악질을 차단하기 위한 과정으로

원에 적극적으로 붙기로 했고

결국 2차 여몽연합군은 또다시 일본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바다에 강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고

2000여 척 이상의 함선들이 충돌하거나 바위에 부딪혀 침몰하거나 하자

결국 몽골 지휘관들은 일본에서 도망쳤고

남겨진 고려군들도 배를 타고 탈출하는데 성공하는데

남겨진 병사들은 모두 일본의 포로가 되거나 몰살당합니다

 

또다시 분 '신의 바람'

 

1, 2차 여몽연합군의 원정에 모두 '카미카제' 가 불어

기적적으로 생존한 일본인들이었지만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대륙국가의 첫 침략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주었고

일본인들이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지역을 교두보로 삼기도 하지만

또 한국지역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도 생기게 되어

중국이나 일본 모두 한국을 중립지대나 완충지대로 여기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여튼 여몽연합군에 열세를 느낀 일본인들이었고

비록 구사일생으로 여몽연합군을 물리친 일본인들이었지만

일본 내부적으로 피해도 심각했으며

이겼음에도 자국에서 일어난 전투였기에

참전한 무사들에게 보상해줄 토지가 없었고

결국 자비를 들여 나선 무사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해

갈수록 궁핍해졌고 가마쿠라 막부에 대한 불만도 커집니다

 

이에 가마쿠라 막부는 흔들리게 되고

1333년 정권 타도 깃발이 올라

가마쿠라 막부는 결국 여몽 연합군을 막아낸 지 반세기도 못넘기고

역사에서 막을 내리게 됬습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가 배경인 역사 고전게임 '징기스칸 4' , 일본 게임이라 일본 중심 역사관도 나타나긴 하지만 상당히 개성있고 특이한 게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라봉봉>그렇게 가마쿠라 막부시기를 거치며

천황의 나라에서 쇼군과 사무라이의 나라가 된

일본이었고

 

한국도 여몽연합군을 편성하라는 원의 강요로 고려백성들이 무리하게

원정준비를 서둘렀고 이에 많은 피해를 얻었는데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으로

일본 측에서도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은

섬나라로 외국의 침략이 없다싶이 했던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과 트라우마를 남긴

전쟁이 되었습니다

 

매체등에서 봤는데

일본인들도 의외로 대륙세계에 대한 공포증같은게 있다 생각되고

그래서 끊임없이 외부 세계 , 외국에 관음증같은 모습을 보이는

섬나라 인들의 생존 방식이 생겨났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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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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