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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

[나라시대]

[헤이안 시대]

<라봉봉>

 

[나라 시대]

아스카 시대는 백제멸망 ,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일본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고

점차 아스카 시대도 막을 내리고

710년부터 794년기간까지 나라시대가 시작됩니다

 

나라시대 , 한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아스카 시대와 독자적 노선을 타는 헤이안 시대의 중간시대입니다

 

이 시기 일본은 헤이조쿄(나라 지역)에 수도를 세웠고

헤이조쿄는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나라시대 내내 수도로서 역활을 했습니다

 

헤이조쿄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본따 남북으로 뚫린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바둑판 모양 도시건설을 했고

인구는 1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헤이조쿄

 

헤이조쿄 귀족들은 거대 저택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고

학과 개 등을 기르고 빙실을 지어 얼음을 가져다 먹고

우유를 자양강장제 삼아 마시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나라시대는 율령시대의 전성기로

천황 , 황족에게 권력이 집중되 있었기에

대규모 도성계획 ,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이어졌고

지방과 교류하기 위해 수도를 중심으로 도로가 정비됬고

 

대외 교류 역시 활발히 이어졌는데

비록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켰지만 통일신라와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졌고

다만 7세기부터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크게 성장하며

일본은 신라보다는 발해쪽에 마음이 기울어졌고

 

(그 이유는 비록 삼한의 뿌리가 조선에서 나왔지만

고구려나 백제는 모두 부여계통 왕조였고

백제에게 키워진 일본 역시

상대적으로 조선계의 영향이 강했던 신라에 비해

같은 부여계인 고구려계를 더욱 좋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점차 다시 신라와 일본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하여튼 84년간 이어졌던 나라시대는

항상 귀족들에 조종당하며 허수아비이기 일쑤였던

일본 천황이 진짜 왕답게 군림했던 일본사의 몇 안되는 시기이며

귀족중심 문화 , 불교 문화가 발달하던 시기입니다

 

거대한 동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다이지

 

[헤이안 시대]

일본은 나라시대 이후부터 점차

외국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포화상태가 됬고

일본인들은 점차

 

'우리도 외국에 꿀릴 것 없지않냐 ?

아나 그동안 선진국들 비위맞추느라 고생 오지게 했구만 !!'

 

하던 심리상태가 됬고

결국 나라시대가 막을내리고

794년~1192년 사이의 시대인 헤이안 시대가 시작됩니다

 

헤이안 시대의 복식

 

당시 일본 천황 간무 천황은 모계가 백제의 도래인 출신이었고

혹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었다고 합니다

 

2001년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

 

백제와 관련있는 간무천황은 헤이안쿄(교토) 에 수도를 정하고

헤이안 시대를 열었고

초기에는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이 이뤄졌고

그러다 858~1068년에는 후지와라 가문이 천황의 외척으로

섭정과 관백 (최고위직) 을 독점하며

왕권이 약화되고 귀족정치가 이루어졌고

 

점차 외국과의 격차를 많이 좁히게 되

실력에 자신감이 생긴 일본인들은

외국에 보내는 견당사를 중지시키고 (894년)

대외교류는 규슈의 다자이후에만 제한하며

국풍문화라 부르는 독특한 귀족문화가 발달합니다

(국풍은 말그대로 나라기풍 , 외국이 아닌 자국 중시를 의미합니다)

 

당시 귀족들은 점술가인 음양사에게

길흉을 점치게 했다고 하고(일본 고유신앙의 발달) 불교도 크게 융성합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일본 고유문자인 가나 문자도 생겨났고

당시 작가이자 궁녀인 무라사키 시키부는

'겐지 모노가타리 (겐지 이야기)' 라는 '세계 최초의 소설' 을 써냅니다

 

군사제도도 개혁되 상비군제 , 모병제적 군제로 전환해

백성들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헤이안시대 중기 후반부터 변방에서 반란이 끊이질 않았고

율령제 핵심인 왕토사상 등은 이미 헤이안 시대대 무너졌고

점차 천황 , 황족이 아닌 귀족들의 시대가 시작되어

귀족들의 개인 장원(영지)이 발달했고

장원들은 거대해지고 국가의 수탈이 심화되며

토지 경작자들도 대귀족이나 대사원에 토지를 바치고

예속되는 현상도 커져갔습니다

 

지방 토지 소유자들은 점차 국가권력에 저항하기 시작하며 성장했고

(신라 말기 호족들이 일어나는 후삼국시대와 비슷)

 

지방 유력 가문들은 지방관 고쿠시가 되어

지방에 근거를 마련하고 토지를 가진 지방 무사(사무라이)들과

봉건적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19세기 무장한 사무라이의 사진 , 한국은 선비와 양반나라가 됬고 일본은 점차 사무라이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무사출신들의 권한이 강해졌고

무사 출신들이 성장해 타이라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이 크게 성장했고

미나모토 가문이 타이라 가문을 밀어내며 가마쿠라에 막부를 설치하며

헤이안시대는 막을 내리고 가마쿠라 막부 시대가 시작됩니다

 

<라봉봉>나라시대는 한국식 문화가 일본 고유문화로 바뀌는 시기의

중간점이었다 할 수 있고

본격적인 일본의 색채가 가득한 일본 고유문화는 헤이안시대대부터 시작됩니다

 

나라시대 대표유산인 동대사(도다이지) 는

신라 거대사찰 황룡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하는데

정작 한국은 여러 외국의 침략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이 꾸준히 파괴되고

약탈되왔고 일본은 섬이라 외세의 침략이 없다싶이하고

내전은 있었을지언정 귀족들간의 전투에 한정되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고대 유산들이 보존되있습니다

 

어렸을때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 이라는 바둑만화가 있었는데

거기 나오는 바둑기사가 헤이안시대 인물이라는 점이 생각나고

하여튼 일본인들에게 헤이안 시대는 가나문자 , 겐지모노가타리 등 큰 진보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뭔가 글이 너무 심플한 느낌인데 일단 이후 시작되는 가마쿠라 막부는

나라와 헤이안 시대와 엮기는 어려운 본격적인 일본의 무사정치의 시작기라 볼 수 있고

(한국으로 치면 무신정권)

점차 일본은 사무라이들의 나라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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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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