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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시기 인권유린>

[삼청교육대]

[부림 사건]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항소 이유서]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라봉봉>

 

[삼청교육대]

전두환은 12.12 사태 (쿠데타) 로 정권을 잡아 대통령이 됬기에

정통성 컴플렉스가 심한 인물이었고

이는 박정희 5.16 군사정변의 연장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박정희는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민선 대통령에 뽑히기도 했던 인물이고

유신독재부터 선거를 생략하고 헌법 위에서 논 인물이지만

적어도 그 전까지는 나름 순수 실력의 영향도 있었기에

전두환보다 더 정통성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전두환은 권력을 잡고나서부터 반대파 세력을 찍어눌렀고

대표적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 김대중 내란은모조작사건 등을 일으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가혹한 인권탄압도 있었는데

바로 전두환 정부 시기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건이라 불리는

'삼청 교육대' 입니다

 

삼청 교육대에서 목봉체조를 하는 사람들

 

1980년 8월 4일 전두환은 사회에 존재하는 범죄자 및 인간쓰레기들을

모아놓아 훈련시키고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 를 만들었는데

이는 북한의 아오지 정치범 수용소 처럼 극단적인 인권유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라고도 비유되긴 하나

아우슈비츠처럼 유대인 학살목적을 가지고

대대적인 학살까지는 벌이지 않았지만

삼청교육대 역시 여러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혹한 인권유린 , 폭력을 저질렀고

사망자도 나왔습니다

 

당시 군대 및 교도소 등에서는 '사회에 있는 불량인들' 을 수용할

숙소와 훈련장을 삼청교육 실시 전부터 준비했고

조교들은 육군 여러부대에서 차출되 강도높은 유격훈련을 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피교육생(교육 받는 사람) 들에 대한 적대감과

폭력성이 높아졌습니다

 

삼청 교육대

 

사회내에서 현행범 및 재범우려자 , 불건전 생활 우려자 , 조폭 ,

도둑 및 강도 , 전두환 비방자 , 윤락가나 매춘업자 등

대상을 징집했다고 하는데

이런 기준들은 귀에 걸면 귀걸이 ,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악용됬고

실제 진짜 잡혀야할 조폭들은 이미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조용해질때까지 잠적했고

끌려간 대부분은 도둑질이나 폭력을 저질렀다 잡힌 잡범 , 양아치 들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도 잘한것은 아님)

 

끌려간 사람들 중 미성년자도 있었고

히키코모리 (혼자 지내는 사람) , 문제아 , 우울증 환자 , 사회 부적응자나 지적장애인들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에 피해끼친다는 이유로 잡아갑니다

 

또한 어떻게든 할당량을 채우라는 명령에

연고없으면 잡아가기도 했고

결국 돈없고 힘없는 서민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집중대상이 된 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쓰레기들을 소탕 , 교화시킨다는 목적으로

삼청교육대가 운영됬고

삼청교육대 생활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청 교육대 생활수칙>

1. 선동 및 도망치는 자, 반항자는 사살한다.

2. 수련생은 교육대 요원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3. 음주 및 흡연은 금한다.

4. 신문, 잡지 구독 및 라디오, 티브이 시청을 금한다.

5. 허가되지 않은 면회, 외출이나 외인(외부인) 접촉을 금한다.

6. 동료간의 장난행위 및 시비, 기간 장병에 대한 반항자는 엄단한다.

7. 집단 행위를 금한다.

 

범죄자를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삼청교육대에서는 수많은 가혹행위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죽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조교들에게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며 인간이길 포기해라는 말을 들으며

입소때부터 구타당했고

조교들 증언에따르면 처음부터 혹독히 다루지 않으면

우리가 잡힐 수 있다며 말안들으면 무조건 빳다(몽둥이) 로

후리라 가르쳤다고 증언했습니다

 

(어느 독재국가나 그렇지만 독재자 밑의 군인들도

사실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삼청교육대에서는 목봉체조 , PT 체조 , 유격훈련 , 똥통에 빠졌다 나오기 ,

깨진 유리병 밑에서 낮은 포복 실시 등을 했는데

이처럼 사회 교화와 전혀 관련없는 인권유린들이 시행되기도 했고

수많은 사망자들이 나왔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전두환의 삼청교육대 덕분에

사회의 쓰레기들이나 조폭들이 힘을 못쓰게되

1980년대 사회 치안이 좋아졌다고 근거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1979년에 비해 전두환 마지막 임기년도인 1987에는

범죄 건수가 5755건에서 9342건으로 늘었고

 

저는 가장 문제될거는 설사 삼청교육대의 의도에 맞는 사람들이

잡혀가서 반성한 사람이 소수 있다 할지언정

수많은 무고한 (당연 가난한) 사람들이 끌려가 가혹한 인권유린 및

사망을 당했다는 사실이고

정부는 도봑과 술에 쩔어 살던 남자가 순화교육을 받고

새마을 역군이 됬다거나

건달출신이 새사람이 되 나왔다 하거나 하며 홍보했고

당시 언론들도 발맞춰 삼청교육대의 감동취지등을 내세우며 홍보를 했습니다

 

전두환 정부시기는 가혹한 공포정치에 묻혀

이런 문제들이 미화됬지만

점차 진실이 드러나며

오히려 대다수 일반인이나 잡범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며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포와 분노심만 얻어가는게 대다수였고

 

결국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로

광주 민주화운동 , 공직자 해직 , 삼청교육대 사건등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실시하겠다 발표하자

1989년까지 피해 신고자 3221명중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무려 200명에 달했고

나머지 2800명은 장애자나 상해자로 신고됬다 하고

노태우 정부의 피해보상 약속도 예산 부족을 핑계로 전부 거짓이었다고 합니다

 

삼청교육대로 인해 한국사회 일부에서는

'한국인들은 패야 말을 잘듣는다' 라거나

'나쁜놈 잡아다 사람만드는 곳' 이라는

여러 미화된 이미지가 생겨났고

젊은 이들도 이런 글들을 보며 삼청교육대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도 있다 하는데

이는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라서 그렇습니다

 

당장 이러한 사태들이 또다시 반복되면

결국 죄가 있어도 돈 , 연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빠지게 되있고

잡혀가는 것은 무고한 평범한 , 가난한 사람들인데

정작 역사 인식 ,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고

 

(저는 일단 역사 의식이 뛰어나야만 반드시

사회의 상류층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상류층 이미지가

무슨 와인곁들이며 위에서 국민들 내려다보는 이미지가 있는데

현실은 사회적 의무와 책임 , 사회를 이끌고 약자를 보호해야 할 힘과 능력이 없으면

사회는 결코 그 사람을 상류층으로 밀어주지 않습니다 ,

오늘날에도 괜히 어찌저찌 자리 하나를 얻어

상류층 이미지 따라하는 사람들도 결국 사회와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 삼청교육대를 지지하는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 잡혀간다는

아이러니한 점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 내에서도 이미 지식인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숨어버렸고 히틀러 지지자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이

히틀러 지지한 덕분에 2차대전 끌려가서 엄청나게 죽습니다)

 

[부림 사건]

전두환 정부의 인권유린은 삼청교육대로 대표되기도 하지만

겨우 이정도에서 끝나지 않았고

1981년에는 제 5공화국(전두환 정부) 집권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용공조작(공산주의 용인하는 세력들로 몰아가기) 사건을 일으켜

여러 대학생 , 일반인들을 불법연행 후 감금하고 통닭구이 , 몽둥이 맞는 등의

고문을 했고

 

전두환 정권은 당시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회사원 , 교사 등 22명을

영장없이 체포해 불법감금하고 고문했던 것이고

무고히 잡힌 사람들은

대공분실에서 오랫동안 고문을 당하며 공산주의자로 조작됬습니다

 

부림 사건 피해자들이 출소후 야유회를 가진 모습

 

당시 전두환 정권은 불온서적들을 읽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양산해냈고

사회 비판적 요소가 있는 책들이 전두환 정부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잘나가는 변호사로 돈도 잘벌고 사회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노무현 변호사는 우연히 부탁으로 변론을 맡게 된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대통령이 됨)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

 

노무현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사회적 주목도를 높였고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때로는 거칠게 판검사들을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피해자 중 최준영씨는 노무현 변호사가 편한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부림 사건 피해자들을 변론하느라 험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지만

당대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 , 군부독재에 의문과

두려움 ,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하나둘 힘을 합쳐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부림 사건이 배경인 영화 '변호인(2013)'

 

당대 진실된 정의를 외치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도

오늘날은 기성세대가 되어

여러 전두환 정부시절 기성세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당대에는 정말로 순수한 정의를 위해 힘썼다고 생각됩니다

 

또 전두환 정부는 이외에도

'녹화사업' 이라는 것을 벌였는데

박정희 정부시기 나무를 심는 녹화사업이 아닌

대학생들의 머릿속 '붉은(공산주의) 물' 을 뺀다는 뜻으로

녹화 사업이라 명명하고

많은 민주화운동에 힘쓰던 대학생들을 지도교수를 시켜

반강제로 휴학시킨 후 입대영장을 뽑아와 바로 입대시켜버립니다

 

전두환 정부의 녹화사업 당시 군대에서 의문사한 6명의 대학생들

 

이전에도 박정희 정부시기 운동권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갔지만

무조건 전방으로 보내지는 않았는데

전두환 정부시기에는 전방 철책에 매치된 몇몇 강제입대자들이

탄압에 염증을 느끼거나 하며 월북을 했고

강제 입영된 동료 병사를 죽이고 월북한 사건도 있었다 합니다

 

(사실 진짜로 이렇게 월북한 병사들은 이미 진짜 공산주의에 심취했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 월북보다 무기를 소지하는 군인 월북이 더욱 무서운 문제일수도 있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도

괜히 갑질하다 살인사건나는 요즘 사회현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미군이 배경인 영화인 '풀메탈 재킷' 이라는 반전쟁 , 사회 고발영화가 있는데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에 징병되 관심병사가 된 이병이

병영 부조리 , 갈굼에 참아오다 총기난사를 하는 내용이 나오고

 

[솔직히 군 입장에서는 이런 영화들을 정말 싫어할 수 있다 생각하고

영화속 인물들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어두운 현실을 다룬 영화입니다]

 

오늘날에도 군대를 다른 목적도 아닌

사고치고 도망치는 곳 , 사람되어 나오는 곳이라는

목적으로 애초에 가면 안될사람들이나

전혀 군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보내다가 사고나는 현실이 생각납니다 ,

저도 옛날에는

연예인들 군회피 문제가 큰 문제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문제가 맞지만 ! ,,

[사실 유승준같은 군회피 연예인들 문제가 다른 것도 아니고

일단 국민 기만 , 거짓말이 컸다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군에서 피하려는

그런 사람들을 그렇다고 강제로 보낼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생각되고

 

군생활 3분의 1을 외부에서 보내 부실 군복무로 논란이 생긴

지드래곤 사건처럼 군 내에서도

서로 불편해지고 사회적 손실을 유발하게 된다 생각됩니다)

 

하여튼 전두환 정부시기에는

소위 말하는 나쁜사람들을 척결하고 교화시킨다는 것을 많이했고

'정의사회구현' 이라는 말을 전두환 정부가 애용했는데

 

(오늘날 이에 게임판 등에서도 정의구현해줬다 , 참교육 해줬다

이런말이 정치권에서 나온것이지만 젊은이들의 유행어가 됬습니다)

 

이러한 정의는 진실된 인간성등에서 나오는 정의라기보다

결국 전두환에 대해 충성을 하느냐 , 그의 입맛에 맞냐 맞지 않냐로 구분되었고

단순 , 직선적 경향이 강했던 전두환 답게

많은 사람들이

'두둘겨 패면 사람되겠지' , '한번 당해보면 더 못개기겠지' 이런

단순하고 폭력적인 생각들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생각됩니다

 

(나름 어느정도 명분을 찾으려 했다거나 조용히 끌고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린 박정희와 다르게 [이것도 나쁜 일이지만,,]

전두환은 일반 사람들 , 평범한 사람들에게 까지

여러 피해를 줘서 박정희보다 전두환을 더 최악의 대통령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과 항소 이유서]

1980년대에는 나치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 처럼

군대 , 경찰들이 일반 민간인의 옷을 입고

일반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반정부 집회 , 반정부 교회 등으로 숨어들어가

조사하고 감시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당시에는 이를 프락치(신분을 숨기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 라 불렀고

 

1984년 9월에는 서울대학교 운동권 학생들이

자교내 학생 등 타학교 학생들을 프락치로 오해해

납치 및 고문한 구타 , 물고문을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 , 학생 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던 운동권 학생들의 명백한 실수였지만

당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느낌으로

살벌했던 운동권과 정부의 대립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되고

(물론 그럼에도 운동권 학생들이 잘못한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당대 직접 폭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관련자였던 유시민은 잡혀들어가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는데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잡혀가는 도중 웃고있는 유시민 (유시민 이외에도 당시 잡혀가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웃고 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도 그렇고 한국 독립운동가 , 민주화 운동가들은 일제에 저항하거나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잡혀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강했습니다 물론 이 사건은 유시민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나름 문필력이 좋았던 유시민은

직접 항소를 하게 됬고

재판부에 자신이 쓴 '항소 이유서' 를 제출하게 됩니다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하는데 있지 않다

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정권 ,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 데 그쳤지만 ,

주 유왕 미녀 포사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올린 일은

중국 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 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 , 황정하 , 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여러 그의 발언이 담긴 긴 글이었는데

본인도 피해자 감금 등에 찬동했고 잘못된 책임은 인정하지만

이미 정부의 거짓말 , 감시조작이 만연한 사회이고

자교 학생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저도 예민하게 반응한게 있다는 식의 항소 이유서였고

 

여러 비판과 옹호론도 있지만

하여튼 항소이유서 제출 사건으로 유시민은 뛰어난 엘리트 지식인이라 여겨지게 됬고

저도 그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를 인상적으로 읽기도 해

일단 나름 오늘날까지 진보계의 지식인 노릇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단 그 역시 기성세대가 된 후에도 무조건적인 진보계 감싸기 ,

여러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많이 등을 돌렸다 생각되고

옛날 그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에 비해 (드레퓌스 사건 등

인권 주제의식이 뚜렷한

그의 명작 서적이라 생각합니다)

 

'역사의 역사' 같은 책은 시대의 유행을 타고

괜히 교양서적으로 있어보이려는 생각 ,

책팔려고 쓴 느낌이 강해

읽다 덮었고 나름 저같이 역사를 좋아하는 느낌이 들어

코드가 맞는 부분도 있는 인물이라고도 생각하지만

하여튼 진보계의 모순도 보여주는 모습이 있어

한국 현대사의 아쉬운 지식인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서울대 프락치 사건도 무조건 적인 학생들 잘못으로만

몰아가기에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가 없지 않은게

전두환 , 군부 정부는 엄청나게 많은 프락치들을 풀어

학생들을 잡아죽이거나 고문했기에

당대 학생들도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고

매일같이 전쟁터 , 현실 배틀그라운드가 반복되는 사회속에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팽배해져 일어난 사건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6년 6월 5일에는

부천 경찰서에서 학생운동과 권인숙이 성폭행당하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이 일어났는데

이전 대규모 민주화 시위등에

전두환 정부는 재야 운동권에 대한 대대적 탄압에 들어갔고

 

당대 대학교를 다님에도 학력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취업이 안되거나

노동 현실을 알기위해 신분을 속이고 위장취업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고

결국 서울대 의류학과 학생이던 권인숙이라는 여대생은

가스배출기 제조업체에 허명숙이라는 가명으로 위장취업하다 잡혀들어갑니다

 

끌려들어온 그녀가 자백을 하지 않자 경찰서장이 분노했고

그녀는 문귀동 형사에게 뒷수갑이 채워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기로 추행당하며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문을 당합니다

 

이 사건으로 군사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인권유린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운동권이 마침내 성까지 혁명의 도구화를 하고있다는

언론의 왜곡보도까지 있어

 

경찰 , 사법부 , 언론까지도 민중의 지팡이나 국민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닌

독재 정권의 하인이었을 뿐임이 국내외에 알려지게 됩니다

 

당시 담당변호사 '조영래' 씨와 피해자 '권인숙' 씨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당시 조선일보는 노골적인 전두환 정부편을 들었고

사실 조선일보가 어찌보면 민족 정간지 노릇도 하긴 했지만

독재 정권과 결탁하는 모습들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고

한때 '민족 정간지' 에서 보수계 대표언론으로 '격하' 된 것은

결국 조선일보사의 책임도 큽니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 친일 순사들에게 수많은 고문을 당하고

군사독재시기에는 민주화 , 반독재 운동가들이 자국 경찰들에게 수많은 고문을 당했는데

이 시기까지도 고문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뿌리 뽑히지 못하고 자행됬는데

결국 올것이 오듯이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 박종철 군의 사진을 든 사람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학생은

경찰에 연행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심문을 받다가 고문으로 사망했는데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

박종철 군에 집에서 하루 묵은 수배중인 인물인 박조운의 소재를 말하라 추궁당했고

박종철은 모른다 했습니다

 

과민반응한 수사관들은 박종철의 옷을 모두 벗기고

조사실 안에 있는 욕조로 끌고 가 물고문을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모른다 하자

결박당한 두 다리를 들어올려 또다시 물고문을 했고

고문 도중 욕조의 턱에 목부분이 눌리며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으로 의식을 잃었고

경찰이 부랴부랴 의사를 불러왔지만

이미 사망해버렸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출입기자였던 신성호 기자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보고해 신문에 올렸는데

 

소문이 퍼져나가 모든 신문사에서는 중앙일보에 전화를 걸어 진위를 물었고

문화 공보부(문화 체육부) 에서는 중앙일보에 와서 깽판을 치고 갔다고 합니다

 

결국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박종철의 사망 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 치니까 억 ! 하고 죽었다'

 

고 거짓시인을 했고

이게 정식사인으로 언론에 발표됩니다

 

<당시 1987년 1월 16일 경향신문>

이어 10시 50분쯤부터 수사관의 심문을 받기 시작 ,

11시 20분쯤 수사관이 수배된 박모 군(서울대생)의 소재를 물으며

책상을 세게 두드리는 순간 의자에 앉은 채

갑자기 '윽' 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이었고

 

(전두환 정부는 보수계 정부라고도 이야기되지만

오늘날에도 정당 할 것없이 거짓말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저는 과연 보수주의자가 정말 있을까도 싶습니다)

 

결국 박종철의 죽음으로

이전 4.19 혁명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주열 학생의 죽음에 분노했듯이

더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두환 정부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고

수많은 사람들이 '종철이를 살려내라' 는 구호를 외치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

결국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5.16대부터 27년이나한 어마어마한 군부독재 시기가 한국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엄청난 기간을 군부독재를 겪은 나라라

오늘날에도 사회 각계에 군대식 사회풍조가 만연해있기도 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2017년 작품)'

 

<라봉봉>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화제가 된 사건이

전두환이 흐믓하게 '좋아 ~ 아주좋아 ~' 하는 것도 아니고

삼청교육대의 잔혹한 구타 , 인권유린 현실 묘사편이 었다고 생각하고

삼청교육대 내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등 슬픈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범죄자들 논란이 나오면

 

'저 쓰레기새끼들 때문이라도 삼청교육대 부활시켜서 가둬놔야 한다'

 

라고 삼청교육대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글들이 많지만

저는

 

'1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말'

 

이 있는 것처럼

삼청교육대 의도는 애초에 국민 교화가 아닌

공포분위기 조성 및 독재정권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었고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입은 것 때문에

이러한 발언들은 상당히 역사 인식이 없는 가벼운 발언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당시에도 진짜 빨갱이(공산주의자) , 극악 범죄자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을 잡기 위해 또 정권 반대자를 그런 사람으로 몰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문당했던게 불과 몇십년전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이었고

물론 이렇게 비유 하는것도 문제지만

오늘날 유대인들이 세계의 여러 기관을 장악했다는 음모론 , 불만이 나옴에도

그렇다고 아우슈비츠를 부활시키자는 말이 나오면 절대 안되는 것처럼 (;;)

당시 사건들을 가볍게 여겨서만은 안됩니다

 

많은 이들의 인권유린과 탄압 , 감시의 공포등이 만연한 1980년대였고

 

'그래도 전두환때가 서민들은 살기 좋았다'

 

는 말도 나오지만 경제적 모습에만 치중한 발언으로

당대에도 서민 , 일반인들이 무고히 잡혀가고

탄압받는 공포 사회 분위기는 만연해있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군사정권의 악몽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저도 이러한 강압 , 꼰대적 문화들을 겪으면

'우리나라(대한민국) 참 대단한 나라야 ! (안좋은 의미로)'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에도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저는 무심코 최근 '대한민국은 참 위대한 나라'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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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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