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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시기 사건사고>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북한 공군 이웅평의 귀순]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북풍과 평화의 댐]

[KAL기 폭파사건]

<라봉봉>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전두환 정부시기 여러 사건 사고들 중

주요 사건 사고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먼저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입니다

 

1980년 11월 13일 경서중학교 1학년 이윤상 학생이 유괴되어

그의 체육교사 주영형에게 다음날 살해됬는데

이윤상 학생이 유괴될 때 처음 그의 가족에게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주영형>당신 아들을 수원에 감금했다. 

우리는 전과자들로 4명이다. 

일본으로 밀항하려는데 돈이 필요하다. 

현금 4천만원을 준비하라. 

경찰에 신고하면 당신 아들을 죽이겠다

 

이에 이윤상 아버지는 형편상 4천은 어렵고 2천까지 준비할 수 있다 답했고

결국 범인은 내일 12시에 전화할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 했습니다

 

다음날 이윤상 아버지는 경찰에 유괴사실을 신고했고

경찰은 신고접수 직후 이윤상 집 전화에 녹음장치를 부착하고

감청 , 잠복근무에 들어갔는데

이후에도 범인은 6차례의 협박편지와 62회의 협박전화를 했습니다

 

1981년 2월 26일 결국 경찰은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특별 대국민담화를 열어

 

<전두환>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

 

라는 말을 했고

 

전두환 대통령 담화

 

범인이 자수할 경우 관용을 베푼다 했지만 끝내 범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시 이윤상군 자택을 직접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 전두환의 인간적 면모가 보여 회자되는 사건입니다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을뻔하다가

1981년 11월 교사이자 범인 주영형이 여중 재직시절 여학생 20여명을 성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경찰의 수사는 활기를 띄었고

결국 주영형의 자백을 받아냅니다

 

주영형은 도박으로 빚 1천을 져서 빚독촉때문에 유복한 가정의 이윤상을 유괴했고

그러다 죽이게 되었습니다

 

잡힌 이윤상은 사형이 확정됬는데

이윤상은 사형을 면하려 재심을 여러 번 청구했지만 기각되었고

1983년 7월 9일 교수형으로 처형됬고

전두환의 말은 사실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1980년 12월 9일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규탄하려

사회 운동가들이 광주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고

80년대 반미운동의 서막을 알린 사건입니다

 

반미운동의 서막 ,, 광주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반미적 모습이 담긴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 중에서...>

대머리(전두환)야 쪽바리(일본)야 양키놈(미국)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피!피!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자신들을 도와주고

독재자 전두환을 몰아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미국은 도움은 커녕 계엄군의 진압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어

한국내 민주화 운동 세력과 운동권에 큰 충격과 배신감을 가져다 줍니다

 

미국에 대한 기대가 헛된 짝사랑이었음을 알자

분노한 사람들은 광주에 있는 미국문화원 권물에

휘발유 , 석유 등을 들고 건물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질렀고

이후 잡혀 징역등을 선고받고 사건은 묻혀버렸습니다,,

 

그러나 2년 뒤

이 사건의 영향을 받은 부산지역 대학생들은

부산의 미국 문화원에서 방화를 했고

미국 피해자는 없었고 문화원 내 도서관에서 공부중이던

동아대 학생 장모군이 질식해 숨져버려

지나친 반미감정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운동권을 비판하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이후 관련자들은 잡혀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미국 문화원은 동네북화되어 ,,

1983년 대구 미국 문화원에서 폭발물이 터져버렸고

1985년 서울 미국 문화원에서는 서울지역 대학생 73명이 연대해

서울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고  기습 정겅해 농성을 벌였고

미국 문화원 2층 도서관을 점거해

 

'광주사태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과하라'

 

라는 구호를 내붙이고 농성을 벌입니다

 

점거 당시 모습

 

체포되어 연행되는 대학생들

 

[북한 공군 이웅평의 귀순]

1983년 2월 20일

북한 공군의 이웅평은 북한 원산지역 바닷가를 거닐다

바닷물에 떠밀려온 대한민국(남한) 의 삼양라면 봉지를 줍게 됬고

 

삼양라면 봉지에

 

'판매나 유통과정에서 변질 , 훼손된 제품은

판매점이나 본사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라는 글을 읽고 이런 작은 물건까지 소비자 편의를 보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받고 지상락원(지상낙원) 이라 주장하는 북한 정부에 회의감을 느낍니다

 

자신은 북한 인민들이 부러워하는 비행군관이 됬음에도

정작 자신은 퇴근후 배급받은 석탄가루를 진흙과 섞어 연탄을 만들어

난방을 하고 살았고

 

80년대부터 한국(남한) 경제는 북한을 추월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적 우위에서

확실하게 승리했다는 내부 분위기가 퍼져나고 있었던 시기이며

비행기 라디오로 몰래 남한 방송을 들으며 남한 사정까지 어렴풋이 알던 그는

결국 자신이 수령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전투기를 타고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진입합니다

 

한국군은 요격에 나섰지만

이웅평은 투항의사를 보이며 귀순의사를 밝혔고

결국 수원비행장에 안전하게 착륙합니다

 

귀순한 이웅평씨

 

당시 그가 가져온 비행기는 북의 최신 전투기였기에

전두환 정부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양 좋아했고

15억 6천만원의 보상금을 줍니다 (지금 봐도 많은데

현재 가치로 수백억 수준)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천 하던 시기라

은마아파트 78채를 살 돈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탈북자들은 소수였는데

거기다 고급인력이라 여겨지는 비행사가 비행기를 들고 탈북해오니

한국 사회내에서는 체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에 빠졌고

이에 그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입니다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1983년 5월 18일

정치인 김영삼은 5.18 민주화운동 3주년을 기념하려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단식투쟁에 돌입합니다

 

전두환은 5월 25일 김영삼을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시켜

링거 치료를 받게했으나

김영삼은 6월 9일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식투쟁 당시 김영삼

 

이때 안기부 직원은 김영삼이 있던 병실에 찾아와서

병실앞에서 불고기 구워먹기 등의 유치한 짓을 했는데

(80년대 특유의 코미디 감성이 있습니다)

 

물론 효과는 없었고

김영삼은 이후에도 단식을 풀것에 대한 권유에

 

<김영삼>협상은 없다. 난 죽기로 결심했다

 

라고 말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등이 찾아와 간곡히 설득하자

결국 단식투쟁을 멈춥니다

 

가톨릭 사제라는 신분을 넘어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김수환 추기경'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9월 1일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 007편은 사할린 근처 섬에서

소련 방공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추락해버렸고

대한항공 007편에 타고있던 승객 , 승무원 269명은 전원 사망합니다

 

당시 소련측에서 회수한 유품들

 

소련의 민간 항공기에 대한 엄청난 국제 범죄였고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이 계속되자

소련은 5일만에 격추를 인정하고 적기로 오인했다 주장하나

이후 소련이 붕괴하자 민항기임을 알고있었다 시인합니다

 

당시 미군은 정찰기들을 민항기로 위장하는 페이크를 자주쳐와

소련 조종사도 보나마나 민항기로 위장한 미군 정찰기겠지 하고는

과감하게 발사버튼을 눌렀다하고

민항기였음이 알려지자 충격을 받았다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시카고 협약이 개정되 민간항공기 격추는 그 이유가 영공침범이던 항로이탈이던

격추 자체에 대해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고

한국 현대사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버마) 를 방문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일행에 대한 북한의 암살시도가 있었고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 독립영웅 아웅 산 장군 묘소에 참배하러 가자

(아웅산 수치[수찌 , 수지] 여사가 아웅산 장군 딸)

 

많은 한국 정부 수행원 , 관료들이 모였고

그때 놀랍게도 전두환 대통령은 탈 승용차가 고장나버려

결국 다른 차를 타고오느라 지각해버렸고

먼저 출발한 이계철 주 미얀마 한국대사가 머리스타일이 전두환 대통령과

흡사한 대머리에 안경까지 착용해

이를 본 아웅산 묘소 나팔수들은 그가 전두환 대통령인 줄 알고

연주를 시작해버렸고 그때 북한 공작원들은

연주가 시작되면 폭탄을 터트리려 했기에 곧바로 테러를 진행했고

모여있던 한국정부 관료(수행원) 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기다리던 와중

폭탄이 터져 사망해버립니다

 

테러 발생 몇초전 찍힌 한국 수행원들의 사진 , 사망하신 수행원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사실상 북한의 선전포고였고

한국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말려 인내한 대신

미국의 압력으로 개발을 포기해야 했던

지대지 탄도 미사일 백곰 등 군사무기 재개발 허용을 요구했고

미국은 수용해 결국 현무미사일이 만들어졌습니다

 

미얀마는 국부 아웅산 장군 묘소가 박살난 것도 있고

나라자체가 뒤집어지다싶이해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해버리고 북한 정권 승인을 취소하고

한국에 위로 및 사과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세계사회는 이 사건으로 대북 규탄성명을 받아들였고

북한은 결국 이때부터 외교적 고립에 빠지게 됬습니다

 

아웅산 폭탄테러사건을 다룬 드라마 '시티헌터 (2011)' , 한국 현대사와 오늘날 한국사회 어두운 현실들을 다룬 고급스러운 한국 현대사 명작드라마라 생각합니다

 

[판문점 총격사건]

이후에도 1984년 11월 2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으로 귀순하려던 소련인을 막으려

북한의 총격사건이 있어 한국군 1명 , 북한군 2~3명이 전사했던

무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풍과 평화의 댐]

이러한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자

전두환 정부는 그동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정당성이 부족했는데

북한의 도발로 많은 국민적 결집을 이끌어냈고

(만약 전두환이 아웅산에서 테러를 당해 죽었다면 그 또한

한국에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이 왔을 수도 있었음)

 

이를 정치권 용어로 '북풍' 이라 합니다

 

전두환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자

이 관심을 돌리려고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려 금강산댐을 건설해

물을 방류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것이라 발표하는

'평화의 댐' 사건을 일으켜

 

당시 티비에 나온 서울 물바다 모형

 

당시 티비에서 사람들은 63빌딩이 물에 잠기는 것 , 서울 주요 건축물들이

잠기는 모형을 보고 유명 대학교수들이 출연해

그럴듯한 설명까지 붙여버리자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게 됬고

결국 그것을 막기위해 북한강 최북단에 평화의 댐을 짓자는 모금운동이 벌어져

기업과 국민들은 국민학생(초등학생) 까지 저금통을 털어

평화의 댐 건설에 돈을 보탰고

온 나라가 반공분위기로 얼어 붙게 됬습니다

 

근데 의도와 달리 실제로 댐건설 효과를 봐서

북한이 예고없이 금강산댐을 방류할때 효과를 봤다 하나

일단 결과와 달리

과정중에서

위정자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들을 속였다는 죄가 커

한국 현대사의 북풍 기만사건으로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시기부터 북한의 위협에 재미를 본 한국 보수계는 이후부터

뭔일이 있으면 북한의 위협이 있다며 정권 결집을 꾀하는

'북풍' 스킬을 꾸준히 사용하게 됬습니다

 

[KAL기 폭파사건]

1987년 11월 29일

아웅산 테러 이외에도 전두환 정부시기 최악의 테러사건인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이 일어나는데

'KAL기 폭파사건' 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당시 폭파된 비행기와 동일 기종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대한항공기는

김포로 오기전 방콕지역으로 비행하던 도중

인도양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되어 실종됬고

비행기는 인도양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자 115명 전원 사망합니다

 

당시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비행기 안에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숨겨놓고

중간에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고 그들이 내리자

비행기가 정해진 시간에 인도양 상공에서 폭발했다 합니다

 

김현희와 남성한명은 도중에 아부다비 국제공항에서 내려서

위조여권을 사용해 출국을 시도하다 검거됬고

검거후 담배갑에 숨겨둔 청산가리 앰풀을 물어

자살하려 했고 남자는 자살했고

김현희 역시 앰풀을 깨물었지만 빠르게 빼앗겨 자살에 실패합니다

 

사로잡힌 김현희 , 자살을 막기위해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를 붙여놨음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김현희는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북한 정보를 김현희로부터 더 파내야한다는 차원으로

전격 사면을 받았고 가끔씩 안보경연에 나타나며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테러였다 하고

일부 음모론자들은 남한에서 북풍몰이를 하려 일부로 폭파시켰다고도 이야기하나

근거는 없습니다

 

한국 현대사 최악의 테러사건이라 불리고있고

KAL기 폭파사건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남긴 사건이 되었습니다

 

<라봉봉>당시 여러 사건들이 있었는데

특히 테러의 공포는 오늘날까지 존재하며

한국은 다행히 이슬람 테러문제에서는 청정한 편이라 하나

이렇게 오래전부터 북한의 테러공격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항상 테러행위를 주도했지만

그럼에도

남북 정치인들의 적대관계로 피해입은 것은 결국

남북한 국민 , 인민이었고

이러한 테러공격 , 화해는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사용됬다는 악평도 여럿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저는 또다른 테러로 누군가 죽을까 괜히 겁나기도 하고

도대체 왜 같은 민족끼리 정치적 논리에 애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도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아웅산 폭파테러 사건 시기 굳이 드라마 시티헌터를 소개한 이유는

시티헌터는 아웅산 폭파테러 사건으로 시작되는 드라마이지만

정부 기관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현실 ,

오늘날 한국사회 권력형 비리 , 범죄 , 어두운 현실 , 군문제 등까지

여러 어두운 현실을 다루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비록 제 5공화국같은 정통 현대사극은 아니지만

상당히 잘 만들어져 많이 본 드라마입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군인 , 국민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않고

조금더 정치인들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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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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