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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시대를 연 6월 항쟁>

[김대중 귀국당시 인간방패]

[4.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6월 민주항쟁]

[6.29 선언]

<라봉봉>

 

[김대중 귀국당시 인간방패]

온갖 부정부패 , 뇌물 , 인권탄압 , 학살 등으로

시작부터 12.12 쿠데타로 정통성도 인정받지 못한 전두환 정부는

이미 수많은 국민들이 전두환 정부에 등을 돌렸기에

임기 내내 위험한 온갖 사건 사고가 가득했습니다

 

결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권 심판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두환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망명해 있던 정치인 김대중은

총선 3일 전 미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과감한 귀국을 했는데

사실 김대중은 이전부터 한국 , 고국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김대중의 1984년 4월 15일 메모>요즘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다. 

돌아만 간다면 감옥도 달게 받겠다. 

우리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바치고 싶다. 

바칠 것이 너무 적은 것이 한이다

 

김대중은 계속해서 한국에 돌아가려 했고

전두환은 김대중이 돌아오면 투옥하겠다 합니다

미국 정부는 김대중을 만류했지만

계속되는 그의 의사에 결국 김대중의 안전귀국 보장을 해야했고

 

2년전 필리핀 정치인이 미국 망명후 귀국하다 공항에서 암살 당한 적이 있기에

레이건 정부는 김대중의 안전귀환을 보장하지 않을 경우

전두환의 방미를 무산시키겠다 압박하며

그럼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미국 저명인사 37인이 김대중 귀국에 동참하겠다 나섰습니다

공화당 , 민주당 의원 , 퇴역 해군 대장 , 가수 ,

인권운동가 등이 김대중 귀국길에 자진 동참했는데

 

전두환 정부의 가혹한 탄압앞에

사실상 인간방패를 자처한 것입니다

 

김포공항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김대중과 그를 몸으로 보호하는 미국 저명인사들 (내리면 바로 잡혀갈 기세라 김대중씨 표정이 썩 좋지가 않습니다)

 

김대중이 김포공항에 내리자

사복경찰이 뛰쳐나왔고

김대중 동행인사들이 얼른 몸으로 김대중과 이희호 여사(김대중의 부인) 를

에워싸 경찰들을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고

결국 김대중과 이희호는 대기중인 버스에 강제로 태워집니다

김대중은 주머니속 귀국 성명을 꺼내지도 못한 채

곧바로 연행됬습니다

 

그시각 김포에서 김대중 귀국을 환영하는 인파들 , 민중의 벗 김대중 선생이라 써있고 김대중은 당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핵심인물이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공항에서의 전두환 정부의 폭력을 알렸고

이러한 모습들에 국민들의 반감이 강해졌습니다

 

4일 후 치뤄진 총선에서 그 위력이 입증됬고

신민당은 67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제 1야당 민한당은 81석에서 35석으로 줄어졌습니다

 

김대중은 집에서 가택연금을 당했고

계속해서 그의 집에는 경찰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연금이 계속되자 비서들은 김대중의 집을

'동교동 교도소' 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집 근처에서 김대중 연금 해제를 외치며 기습 시위를 벌였습니다

 

'김대중 선생 불법 감금 해제하라'

 

김대중은 차마 그 모습들이 마음아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4.13 호헌조치]

전두환은 점차 허둥대기 시작합니다

정권 말기현상 ,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매일같이 벌여지는 시위 ,

매일같이 터지는 최루탄들은 이전 시위들과 체감이 달라졌고

점차 그도 올라오는 민중의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일단 1985년 12대 총선에서 야당돌풍이 일어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자

국민들은 전두환 정부와 전두환의 폭력성에 분노하며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고

여기에 대통령을 체육관 대통령이나 간선제 같은

국민의 의도를 무시한채 뽑는 게 아닌

국민이 직접 투표해서 뽑는 '직선제' 개헌 압박이 커졌습니다

 

이에 전두환은 권력 유지에 위협을 느끼고

중대 선언을 합니다

 

4월 13일 전두환은 특별담화를 합니다

 

국민여러분 ,, 하며 엄청나게 긴 글인데

요약하면

 

'좃까셈 , 다들 닥치셈 난 이대로 현행 유지할거고 ,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 뽑을 거고

권력 내려놓을 마음없음'

 

이었고

이를 1987년의 '4.13 호헌조치' 라고 합니다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는 전두환

 

비겁한 전두환의 변명에

이에 국민들은 참고참다 결국

폭발하듯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두환의 최악의 자충수였고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또 전두환 정부가 박종철 고문 사실을 은폐 , 왜곡 한 것까지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는 절정으로 향했습니다

 

[이한열 열사]

그러던 와중 1987년 6월 9일

시위도중 연세대생 이한열이 전경이 수평으로 직사한

수류탄에 뒷머리를 맞았고

곧 그의 얼굴에서 피가 번지고 코에서도 피가 쏟아집니다

 

최루탄에 맞아 부축받고 있는 이한열 열사

 

뛰어온 학생들은 그를 급히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옮겼지만

그날 오후 5시 30분 이한열은

 

'내일 시청에 나가야 하는데 ...'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6월 민주항쟁]

27년전 4.19 혁명때도

김주열 열사가 사망할때 최루탄 직사때문에 엄청난 국민적 분노가 있었던 것이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학생이 정부의 폭력진압으로 쓰러지는 것을 본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가 결국 폭발했고

 

결국 6월 ,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이 일어납니다

 

당시 국민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너도나도 거리로 뛰어나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호헌철폐 ! 독재타도 ! 민주쟁취 ! ,

 

종철이를 살려내라 ! 한열이를 살려내라 !'

 

시위가 엄청나게 거대해지자

경찰력도 무력화됬는데

국민들은 계속해서 경찰들에게 잡혀들어갔고

수용할 공간이 없어 또 금방나왔습니다

 

당시 서울시내 곳곳에서 집회가 일어납니다

 

특히 6월 10일 서울에서는

저녁 6시에 차량 경적이 울리자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고

이에 6월 항쟁은 원래 6.10 민주항쟁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한열 열사 사진과 더불어 6월 항쟁을 대표하는 사진 , 쏘지마시오 !

 

종교계까지 가세해

명동성당의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입지를 활용해

시위대를 잡으려는 경찰을 막아주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수녀들이 나와서 앞에 설 것이고 ,

그 앞에는 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

그리고 그 맨 앞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날 것이다

 

6월항쟁 당시 종교계의 참여

 

한국 가톨릭 상징인 명동성당에

88올림픽을 앞두고 함부로 경찰을 투입할 수 없었고

전두환은 결국 명동성당에 공권력 투입을 할 수 없게 됩니다

 

6월 10일 대규모 시위로 일순간 긴장됬지만

점차 소강상태에 이르렀고

전두환은 잠시 자신감을 회복하지만

이후 다시 엄청난 인파가 몰려왔고

이러한 시위는 1987년 6월 내내 전국에서 이어졌습니다

 

미국 정계와 여론도 계속 민주화 요구를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전두환에 지쳐버려

결국 전두환에 호의적이지 않게 되었고

군부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강경진압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때에는

한국 안보상황 및 자국 여러 이슈때문에 침묵했지만

6월 항쟁기간대에는

한국 정치상황에 관심을 두고 적극 개입할 상황이 됬고

무엇보다 얼마후 88올림픽이 한국 수도 서울에서 개최되기에

외신 기자들이 대거 체류중이었기에

외국의 눈치와 감시가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시위가 계속되자

대학교를 졸업한 도시봉급자 , 화이트칼라들인

'넥타이 부대'도 참여했고

 

넥타이 부대

 

휴대용 최루탄인 사과탄이 터지며 명동앞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자

명동하늘에서는 빌딩 위에서 시위대를 지켜보던 직장인들이

창문을 열어 두루마리 휴지 , 휴지를 던져주었고

명동 하늘에서 휴지가 비처럼 쏟아집니다

 

(6월 항쟁기간동안 최루탄 35만발이 사용됩니다)

 

강남 아파트 촌에서도 소등형식으로 시위가 진행됬고

음식점 주인들은 시위 시민들을 위해 김밥을 싸주고

넥타이 부대들은 시위를 막는 전경들에게

장미꽃을 꽂아줍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전경들의 가슴에 꽃을 꽂아주며 최루탄을 쏘지 말것을 당부하는 어머님들

 

남녀노소 , 빈부격차를 떠나

전국민들의 거국적인 민주시위였습니다

 

[6.29 선언]

결국 국민들 및 세계 여론의 거센 저항과 반대에

전두환은 결국 타협을 택했고

김대중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고

6월 29일에는 노태우 후보(노태우=전두환 베프)의 직선제 수용선언

'6.29 선언' 이 발표되

한국은 직선제 개헌 및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6월항쟁은 7월 9일 서울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으로 끝나게 됬는데

이때 100만여명의 시민이 참여들었습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당시 문익환 목사의 연설

 

<문익환>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황정하 열사여! 

김의기 열사여! 

김세진 열사여! 

이재호 열사여! 

이동수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진성일 열사여! 

강상철 열사여! 

송광영 열사여! 

박영진 열사여! 

광주 2천여 영령이여! 

박영두 열사여! 

김종태 열사여! 

박혜정 열사여! 

표정두 열사여!

황보영국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홍기일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우종원 열사여!

김용권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한국 민주화 운동의 거목 '문익환 목사'

 

슬픔에 잠긴 백만여명은 운구행렬 이후

전두환 퇴진 , 청와대 진격을 외치며

6.29 선언에 주저하지 않고

전두환 퇴진항쟁을 계속하자 했고

이후 광화문 4가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광화문 4가쪽을 방어하던 경찰병력이

다연발 최루탄을 발사하자 결국 군중들은 흩어지고

6월 항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하신 아버지 말을 들으면

매일같이 잡아가고 잡혀들어갔다 나오는게 반복됬다하고

경찰들은 사복경찰들 , 프락치를 앞세워

일부로 모여있는 시위대들이 폭력시위로 변질되게 앞장서 선동하기도 했다고도 하고

또 집에 가는길에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사복경찰들이 연행해

아버지도 몇차례나 잡혀갔다 나왔다를 반복하시다

유치장에서 오늘 6.29 선언이 발표됬다며

경찰이 이제 곧 풀려나실 거라고 전해주었다고 회고하십니다

 

저의 아버지는 평범한 소시민이셨지만

시위대 앞에서 좀 목소리를 크게 냈다가

사복경찰의 눈에 띄어 집갈때 팔짱끼고 잡혀갔다 하고

이외에도 닭장차(경찰버스)에 단체로 잡혀 업드리게 하고 몇바퀴 뺑뺑돌다가

경찰서로 가기도 했다 하시고

경찰서 유치장에 몇번 들어갔다 하루이틀만에 나오셨다는데

(경찰들도 사람이 너무많아 대충 호구조사하고 가둬놓다 훈방시킴)

 

나름 저의 아버지의 명예로운 추억같은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국민들은 결국 진짜 민주화가 되가고 있음을 점점 체감하기 시작했고

길고 길던 군부독재정권도 이 날을 계기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을 다룬 만화 '100도' , 뛰어난 현실고증이 많아 6월 민주항쟁 매체 , 창작물 중 가장 추천드리는 것입니다

 

<라봉봉>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에서 결국 독재는 모두 필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내부분열이던 , 민주화운동이던 어떠한 방식으로던 망해왔고

국민의 분노를 막아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 민주화운동은 결국 성공한 민주화운동이 됬고

한국의 승리 뿐만 아닌

아시아와 세계의 승리이기도 했고

한국은 일본의 전공투 진압 , 중국의 천안문 진압과 달리

6월 항쟁에 성공해

사실상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평범한 것들을

중국 , 일본인 , 아시아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우리가 정부와 정권에 두려워하지 않고 ,

숨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당연한 권리들이 이때에 이루어져서이고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독재국가에 신음하는 독재국가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사치와 호화로운 일상으로

비쳐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기득권이 되어 부패한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는 존경을 표하지 않지만

이당시 최루탄을 맞아가며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 , 정의와 미래를 위해 몸바쳐 나서신

당시의 젊은 시절의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는 무한한 존경을 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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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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