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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시기의 정책>

[보통사람 노태우]

[한겨레 신문]

[여소야대와 3당합당]

[범죄와의 전쟁]

[남북 기본합의서와 북방정책]

[지방선거 부활]

[SK 그룹과의 유착]

<라봉봉>

 

[보통사람 노태우]

yo

일단

저번에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 , 정치적 민주화가 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13대 대선이 1987년 12월 16일 실시됬는데

전두환의 베스트프렌드이자 신군부출신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민주화 진영의 김영삼 후보를 8.6% , 194만여표 차로 꺾고

당선됬습니다

 

13대 대선 포스터

 

<1987년 10월 29일 확정된 개정헌법>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당시 대선 열기는 뜨거워 89.2% 라는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고

신군부에 대한 반감이 커져있어 민주화 진영에 유리한 대선이었지만

야당에 3김이라 불리는

김영삼 , 김대중 , 김종필 후보가 모두 나와

서로의 표를 갈아먹었고

단일화도 제대로 안되 결국

 

민주정의당 노태우 36%

통일민주당 김영삼 28%

평화민주당 김대중 27%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표로

민주화 진영의 표가 갈려

끝내 군부독재를 끝내지 못하고

노태우 정부의 제 6공화국이 시작되어

마지막 군부독재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임기중의 노태우 , 외모로만 보면 독재자라 보기에는 선한 모습도 보여집니다

 

전두환시기를 제 5공화국이라 부르고

제 6공화국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오늘날 까지 대한민국을 부르는 말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장수하고 있는 체제라

제 O공화국 정치사 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져온 대한민국이지만

제 6공화국 드라마가 언제 나올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합니다

 

이 선거당시에는 재야 시민운동가 및 민중진보계 후보인

백기완씨가 출마하기도 했고

 

한국 시민운동가의 원로 백기완

 

백기완씨는 백범김구와 관련있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으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로 유명한

5.18 민주화운동 상징곡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의 작사가이자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어가 생활속으로 자주 사용되자

하꼬방을 달동네라고 순화해 고치시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 , 민중사에 뛰어난 기여를 하신 분이었고

이런분이 나오기도 했고

 

백기완의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국 현대 민중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생각됩니다

 

하여튼 민주계에 여러 후보들이 난립했던 것에 비해

군부독재세력은 노태우 단 한명만을 내세워

결집을 꾀했고

당시에도 공무원 , 기업가 등 군부독재에 결탁해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기에 이런 사람들 , 가족들의 표를 끌어모아

낮은 득표수임에도 노태우가 당선되게 됩니다

 

하여튼 노태우 정부부터 다시 한국에는

군정이 아닌 민정이 실시됬다는 의의가 있는데

그럼에도 사회 분위기는

전두환 정부시기와 다를 바 없었고

단지 경찰들이 범죄수사할때

범죄자 앞에서 착한 역활 형사 , 나쁜 역활 형사 , 중도 역활 형사를

번갈아 보이며 범죄자를 회유 , 정보를 얻어내는 수사요법이 있다 하듯이

노태우는 착하고 '보통사람' 의 이미지를 내세웠지만

개가 똥을 끊을 수는 없고

전두환의 베프이자 12.12 쿠데타 주역으로서

결국 전두환이 나쁜 , 어둠의 독재자 캐릭터 역활을 ,

노태우는 착한 , 빛의 독재자 캐릭터 역활을 하며

국민들을 회유하려 했을 뿐이지

똑같은 독재자이고 , 끼리끼리였고 전두환 정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전부터 이어진 사복경찰 , 사복입은 군인들의 감시는

노태우 정부대에도 계속되 노태우 정부대에도

민중적 , 반신군부적 성향의 교회에는

사복입은 군인들이 쫙깔려 수첩에 메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길을 간 전두환과 노태우였지만

일단 그럼에도

새롭게 대통령이 된 노태우와 전두환의 성향은 정말 정반대로 달랐고

 

이전 청년시절부터 전두환과 노태우는 죽마고우로서

전두환은 싸움킹에 쌉일찐 노릇을 했다면

노태우는 공부킹에 모범생 노릇을 하며 서로를 보완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며

조직을 장악해 왔다 할 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나

영화 내부자들처럼 정치인들이 조폭이랑 연관되있었듯이 그런 느낌입니다)

 

육사 시절의 전두환(왼쪽) 과 노태우

 

일단 노태우는 하나회 부두목 이미지를 씻기 위해

자신을 신군부계 인사가 아닌

너희 국민쿤들과 다를 바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뜻의

'보통사람' 이라 주장했고

민정정부임을 내세우며 나름 군부계 색을 빼는데 주력하고

이전 강경하고 국민들을 탄압했던 전두환에 비해

유약하고 소극적 모습도 보여

'물태우' 라고도 불리게 됬습니다

 

(나름 노태우는 대한민국 마지막 군부독재자로서

그래도 악어의 눈물이던 착한 이미지던 착한역활이던

착한 모습을 보이려 했고[물론 야당이 강세여서 힘도 없었음]

그런 모습때문에 전두환에 비해 욕은 덜먹지만

일단 그럼에도 한통속이라고 이야기 됩니다)

 

[한겨레 신문]

하여튼 점차 군부 , 독재의 힘이 빠져가고

이러한 시대상속에

정치계에 민주화가 되자

민주화 바람은 언론계에도 불어

이전 유신반대로 해고당해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어려워진 기자 130여명은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다 6.29 선언 이후

민주주의 시대가 시작되자 점차 복직됬는데

이미 독재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인들의 정신적 타락이 심각했고

기득권 사수에 집중해 왕따시키자

해직기자 출신들은 결국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로 인해

1987년부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 중심으로 또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형식등으로

새로운 신문을 만들게 됬고

1988년 5월 15일부터 '한겨례 신문' 이 출간됩니다

 

창간 당시의 한겨레 신문

 

한겨례 신문은 오늘날까지 3대 언론사인

조선 , 중앙 , 동아 일보에 밀려 있는 신문이지만

기득권화 , 보수정권과 결탁해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

3대 언론이 하지 못하는 민중사 ,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들을 하는 의의가 있는

언론이기도 했고

오늘날 한국 진보계 대표적 언론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단지 한겨례도 초기에는 군부독재 , 언론타락에 맞서는 등

좋은 의도로 시작한 언론사였지만

이후 김대중 , 노무현 정부 들어 커지고 기득권화되며

노골적인 진보계 편향 및 가짜뉴스 유포 , 노골적 북한 비호 ,

무비판적 여성주의 옹호 등

여러 문제를 낳게 되었고

그렇다고 조중동이라 불리는 3대 언론사 역시

노골적 보수계 편향 및 민중 ,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해서

나름 오늘날에는 한국에는 딱히 범국민적으로 신뢰 , 존경받는 신문사는 없고

이렇게 조중동(보수) VS 한겨례와 경향신문(진보)

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웃긴것은 중앙일보는

방송으로 진출해 JTBC 를 열었고 JTBC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언론 방송사로 이야기 되고 있다는 점으로

결국 상업적 목적으로 진보 , 보수계에 모두 발을 뻗친 면도 있다 생각됩니다)

 

[여소야대와 3당합당]

일단 신군부의 민정당은

표를 결집시켜 , 또 민주계가 분열된 틈을 타

겨우겨우 노태우를 당선시키는데 성공했지만

1988년 13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고작 125석을 확보하며 과반수에 한참 못미치며

야당에게 캐쳐발리는 상황이 벌어졌고

 

(아무리 대선에서 승리해 겨우겨우 큰 구멍을 막았다 한들

이미 민심은 기울었고 다른 부분에서 구멍이 뚫리게 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이를 '여소야대' 라고 합니다

 

여당이 작고 야당의 힘이 커지자

노태우는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 노태우 , 통일민주당 김영삼 ,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이렇게 셋이서 힘을합쳐

3당합당을 선언해

1990년 2월 9일 216석의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을 만들게 됩니다

 

3당합당 축하연에서 손을 맞잡은 김영삼 , 노태우 , 김종필 (왼쪽부터)

 

김대중과 더불어 한국 민주화운동계의 거목이었던 김영삼이었지만

뜬금없이 노태우에게 붙어버리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실망감 , 배신감을 느꼈고

욕을 왕창 먹습니다

 

민주당계 인사였지만

기회주의 성향이 강했던 김영삼은 차기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

비교적 온건했던 노태우와 손을 잡은 것이었고

이후 노태우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되 다시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

칼을 꽂은 인물이라

오늘날 보수계 , 진보계 할 것없이

기회주의자로 까이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범죄와의 전쟁]

하여튼 다시 노태우 정부 이야기로 돌아가서

뭐가 됬든 민심은 노태우 역시 박정희 , 전두환의 연장선으로 보며

반 신군부 , 반 노태우 정서로 형성되있었기에

노태우는 민선당선자임에도 이전 체육관 선거로 당선된 전두환보다

힘이 약했고 이러한 상황속에 정치 , 노동 , 종교 , 재야계를

몰래 사찰하며 친위쿠데타(청명계획) 를 하려다

육군 이병의 폭로로 (이등별 ㅇㅈ) 한번 걸려가지고 여론이 들끓자

위기에 빠진 노태우 대통령은 국민의 분노를 무마하기 위해

치안유지에 공을 들여

'범죄와의 전쟁' 을 선포하며

정국을 전환하려 했습니다

 

탈영해 내부고발을 한 이병 윤석양씨

 

불안한 민심을 정화시키는 방법으로

치안유지들을 내세우며

조폭들을 처단한 것은 군부독재계의 전통이었고

이는 아주 오랜 역사가 있어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가 정치깡패 이정재를 죽인 것도 그렇고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도 그렇고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80년대 높은 경제성장 , 3저호황 , 3S 정책 등으로

윤락업 , 성매매가 커졌는데

더불어 포주역활을 하는 조폭도 커졌고 또

여성 인신매매 , 납치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노태우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

 

을 선포하고

범죄조직 단속을 강화해

흑산도나 경북 시골까지 뻗어진 윤락가 , 인신매매 단속을 시작했고

 

팔다리가 잘린 여성이 성매매를 한다거나

납치되 철창에 갇혀 좁은 방에서 지내며 강제로 남성을 받아야 했다거나

마약에 중독되어 폐인이 된다거나 하는

 

한국 인신매매 괴담들이 보통 이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집니다

 

노태우정부는

 

'인신매매, 가정파괴, 조직폭력, 마약, 부정식품 사범'

 

5대악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이런 뉴스는 티비 생중계 및 일간지 톱기사를 장식하게 됬습니다

 

노태우정부 시기 범죄와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결국 대통령령으로 범죄조직 소탕이 시작되자

그동안 적당적당히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묵인되었던 조직들도

싸그리 소탕되고 1년동안 전국 200여개 조직에서

700여명이 구속되는 등 대규모 체포가 이뤄졌지만

그럼에도 친위쿠데타 청명계획이 탄로되자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홍보전쟁적 성격도 있었고

경찰들도 성과를 내라는 압력에

무고한 사람들이 사소한 트집으로 잡혀 수없이 체포되는 등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막장사회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삼청교육대와도 비슷합니다)

 

이런 조폭이나 사회악 근절은 반드시 있어야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에겐 독재자도 사실 조폭중의 조폭이고

조폭 두목이 만만한 조폭졸개들을 잡는 아이러니한 , 모순적 상황이라 할 수 있고

당연 민심을 돌리기 위한 형식적 , 퍼포먼스적 성향이 강했기에

왜 이전부터 꾸준히 단속해도 창녀와 조폭들이 늘어가냐라는

근본적 사회현실과 모순에는 칼을 들지 못했다는 점 등

한계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범죄소탕이었고 나름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한국 조폭이 쇠퇴한 것은

민주화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속에

부패도도 많이 줄어 조폭 활동기반 및 정경유착이

과거보다 힘들어졌고

또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급하게 어려워지자

조폭들이 많이 진출하는 사업들 역시 쇠퇴했고

언론 자유가 늘어나고 정보화매체가 발달해

과거처럼 음지에서 행패를 부리기 쉽지 않아지자

쇠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름 범죄와의 전쟁 , 민주화 등으로

한국사회에 그많던 조폭과 창녀들은

일본 야쿠자나 서구권의 마피아 , 갱단처럼

오늘날 양지에서는 보이지 않게 됬지만

 

음지로 이동해 창녀들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창녀생활을 하는 '오피방' , '유사 성행위 업소' 등을 하고 있다 하며

오늘날에도 한국조폭은 필리핀 등지에 세력을 마련하고

불법 도박사이트 , 코인판 등을 하고 있다 하고

가수 승리나 정준영 , 버닝썬 사건처럼

정계 , 연예계와도 유착되 성범죄 , 마약공급을 한다고도 하고

 

2018년 11월 말에 발생한 가수 승리와 연관된 '버닝썬 게이트'

 

또 아직도 강남일대에 기업형 조폭이 남아있어

(조폭들이 옛날같이 패거리식이 아닌 기업화됬다 합니다)

 

여러 '물건' 들을 배송한다거나

정계 , 사법부와 유착되있다는 이야기도 저가 게임에서 만난 조폭에게

들은바가 있습니다 (신빙성은 모르겠지만

본인이 청소년 조폭이라 했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이제 이바닥에서 시마이[끝내다] 하겠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도 생각해보니

한국 조폭 , 창녀들이 음지로 간것일 뿐

완전 사라졌다 보기도 어렵고

저도 그런쪽은 직접 가본적이 없지만

최근 잠시 배달일 하면서 그런 업소에 배달가거나 (전 배달일을 했을뿐 죄가 없습니다)

조용한 카페에서 배나온 중년아재들

술따라주는 젊은 여성 아가씨들을 보기도 했고

하여튼 관련은 없지만

어쩌다 알게 된 돈많은 집 녀석들에게 그런 이야기들도 들으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그런 바닥은 실제로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미 이런 한국사회 문제들을 이런 소문으로 들은 바 있어

언론 공개전부터 미리 알게됬고

유명 연예인 누구누구의 문란한 뒷이야기 같은 것도 들었는데

그들도 한번 터질 지 모릅니다 [제가 연예 전문기자나 그런거는 아니라

사실 저도 근거는 모르겠]

 

제가 보니 돈많은 집애들은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연예계나

재벌들 뒷이야기들을 직접 보거나 소문으로 미리 알고있고

좀 이런 정보를 언론보다 빨리 아는 경향이 있는거 같습니다

알고도 조용히 있다가 이후 대중적으로 터지면

슬금슬금 같이 물어뜯는다거나 증인이 되기도 하는거 같고

하여튼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같이 결국 소문은 퍼지게 되있습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그들이 언제 양지로 나올지도 모르는 법인데

저는 조폭 문제는 조폭일이나 그런쪽에 있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역사적으로도

일시적으로 소탕하듯이 해봐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해지면

또 나오고 , 빠지게 되는게 그쪽이고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게 올바른 교육계의 노력도 필요하고

국가가 국민을 사지로 내밀지 않도록 국가폭력도 줄어야 하고

하여튼 저역시 범죄조직 소탕에는 적극 적극 찬성이지만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보여주기식 , 일시적 범죄소탕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단 옛날에는 대놓고 인신매매하고 집창촌 늘어나고 그런 시절은

그렇게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사라져갔고

 

[남북 기본합의서와 북방정책]

음 또 노태우 정부시기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일단 88올림픽은 다음이야기때)

 

냉전이 해체되는 세계 사회 분위기에 대처하며

1988년 7.7선언으로 대북비난방송을 중단하고

북한에 유화적 제스쳐를 취했고

1991년 12월 '남북 기본합의서' 를 채택했는데

남북 기본합의서 내용 요약으로는

 

남북끼리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파괴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평화적 상태를 유지하며

교류 협력 및 통일에 노력한다였고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에 최종합의를 하고 손을 맞잡은 남북의 총리

 

<남북 기본합의서 발표후 김대중>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있다. 

'남북기본합의서' 의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

 

1991년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 선언을 하고

남북한이 UN에 동시에 가입하는 등

미지의 , 사악한 괴뢰 세계라고만 여겼던 북한 및

공산권 국가들에게도 유화적 모습을 보였고

이를 노태우의 '북방정책' 이라합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옛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한-소정상회담

 

[지방선거 부활]

1991년에는 지방의회를 뽑는

지방선거가 31년만에 다시 열렸고

투표율 저조등으로 민자당(노태우)이 승리했지만

그럼에도 민자당내 파벌 , 당권다툼이 여전해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수의 공천탈당자가 통일국민당 ,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부정사건도 터져 야권 지지자 결집이 강해져

민주 자유당은 한때 200석이 넘는 거대정당에서

과반에 1석 모자르는 149석을 얻고 참패해

노태우 정부의 레임덕(정권 말기 힘을 못쓰는 현상) 이 가속화됩니다

 

[SK 그룹과의 유착]

이외에도 노태우는 재임기간중 비자금 확보를 위해

딸 노소영을 선경그룹(SK) 회장 최종현의 장남 최태원과 결혼시켰고

선경에 이동통신 사업권을 주는 등 각종 특혜를 줘

논란이 있었고 비난속에 선경그룹은 사업권을 반환하나 이후 다시

이동통신 사업권에 진출해

'SK텔레콤' 이 되어

대통령의 사위가 된 대가로 한국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말이 나오게 됬습니다

 

노태우 일가와 연관이 깊은 'SK 텔레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이후 불륜녀와 혼외자를 만든다거나 가정을 파탄내고 불륜을 미화하는 등

자신을 키워준 노태우 일가에 대한 배신을 하게 되고

노소영에게 이혼 조정을 신청하게 됬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아온 노소영은 이혼을 막으려 하다 결국

2019년 12월 4일

 

'이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는 사유로 이혼 맞소송을 걸어 SK 주식등을 요구하게 됬고

오늘날 많은 여론들이 노소영을 동정하고

불륜을 한 최태원을 비난하게 됬습니다

 

저도 어짜피 정경유착에 관련한 끼리끼리의 사건이라고도 보고 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못할 망정

무슨 야동이나 망가에 나올법한 일들을

대기업 회장이 실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노소영이 불쌍하다 생각되고

 

부부유별이라고 서로는 남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고

또 부부간의 존중과 존경이 필수인 것인데

첩만들기 , 배우자에 집중 못하기 , 가정파괴 등은

참으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한국 상류층의 추악한 민낯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이 자기절제를 못하고

영혼의 순수함을 잃고

그저 쾌락과 돈과 육체적 환락에만 집중하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입니까 ?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

이런 놈들때문에 평범한 사람들 , 죄없는 사람들이

가정파괴의 고통을 겪는 것이고

제발 음란한 망상은 생각만으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캭퇘 !!

 

 

<라봉봉>하여튼 참 뭐같은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있고

일단 노태우 정부는 신군부의 연장이기도 했지만

민주화 이후 한국의 형식적인 민주주의 정부로

시작되기도 했고

이전보다 독재의 힘들이 점차 축소되던 시기였습니다

 

군부시대와 민정시대의 중간에서

나름 온건 , 유능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과

그 또한 군부독재의 연장선이었다는 비판이 공존하는 인물로

한국사에서 크나큰 존재감은 없지만

민주화 , 진보 세력이 힘을 모으던 시기이기도 하고

나름 조용조용 여러 일들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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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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