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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

[면죄부]

[95개조 반박문]

[보름스 의회]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

[칼뱅의 종교개혁]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가톨릭 교회의 대응]

[종교개혁이 남긴 것]

[마녀사냥]

<라봉봉>

 

[마르틴 루터]

르네상스가 일어나면서 유럽 사회에는

교황과 신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펼쳐지게 되었고

이에 유럽 백인 형들은

드디어 계속 위에서 군림하며 꿀만 오지게 빠는

교황과 성직자 계급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납니다

 

물론 오늘날 가톨릭교와 교황은 세계 사회에

선한 일들을 하는 좋은 이미지가 되었지만

당대에는 권력을 독점하며 졸라 부패하고 타락했고

이에 합리적인 백인 형들의 분노와 의구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독일의 '마르틴 루터'라는 형은

공부를 졸라게 많이해서 위대한 생각을 가지게 됬는데

루터가 세속적인(일반 세상속) 관료 등으로 출세를 하기 원했던

루터의 부모님은 루터에게 대학교육 및 비싼 교육을 다 발라놨더니

갑자기 루터가 수도자가 되겠다하자 벌컥 화를 내며 반대했으나

마이웨이로 가는 루터형은 결국 아버지와 몇년간 의절하고

사제의 길을 걷습니다 (이후 아버지도 마음을 바꾸고 화해함)

 

마르틴 루터

 

떡잎부터 비범했던 루터형은

사제시절에도 규율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너무 잘 지켰고

신학공부도 열심히 해서 박사학위도 받고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됩니다

 

[면죄부]

그러다 1515년

독일에서는 루터의 일생과 유럽의 운명을 바꾸는 대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중세 교회의 '면죄부' 판매입니다

 

면죄부 판매 모습

 

당시 가톨릭 , 교황 , 교회는 썩어도 너무 썩어있었는데

교황청은 로마시 재건사업 , 성 베드로 대성당 축조 , 전쟁 비용 등으로

재정이 어려워지자

부패한 교황청과 중세 교회는 신도 , 사람들의 돈을 빨아먹으려고

돈을 받고 죄를 사해준다거나 구원해준다는 '면죄부' 를 판매합니다

 

<당시  가톨릭의 독일지역 면죄부 판매위원장>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벌을 용서 받을 수 있다.

현세에서 자손들이 낸 동전이 헌금함에 쨍그렁 하는 순간 ,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

 

당시 독일지역 면죄부는 살인과 신성모독을 제외한 모든 죄목에 대한

면죄부를 팔았고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용서받는다는 광고도 했습니다 ;;

 

아따 돈만 내면 죄가 사라지고 천국 프리패스랑께 ? , 면죄부 판매 모습

 

가히 중세인다운 무식한 모습이 있는 시기이고

이외에도 중세 교회에서는 가짜 맹인이나 절름발이들을 앉혀놓고

신앙의 힘으로 그들의 병을 고치는 약팔이 쇼도 하며

신도들의 돈을 빨아먹었다고도 합니다

 

[95개조 반박문]

당시 중세 유럽의 일반 신도들은 그저 호구같이 교회에 삥을 뜯겼지만 (ㅠㅠ)

신학 권위자에 졸라게 똑똑해서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음을 눈치깐 루터 형은

결국 교회의 문(교회의 문은 게시판 역활도 함)에

'95개조 반박문' 을 내걸었고

 

95개조 반박문을 내거는 루터와 95개조 반박문

 

루터형은 교회 내부에 만연한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 목적으로

이 글을 올렸고

당시까지만 해도 루터형도 자신이 빡쳐서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이 글이 유럽 사회와 세계 기독교 사회를

대변혁에 이끌것 까지는 몰랐고

그저 가톨릭 세계관을 존중하며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개혁을 바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종교계에서는 루터형이 반항아 이미지가 졸라 강한형인데

참고로 배운놈이 해야 멋진 반항아같은 것이고

잘못된 권위와 질서에 요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것이지

못배운놈이 하면 그저 찐입니다 ..)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중에서..>

5. 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을 가지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기껏해야 그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들을 그가 사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도 만일 그의 사죄하는 기능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될 때 

사함 받았다는 죄는 확실히 그대로 잔재한 것이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하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분에

루터형의 95개조 반박문은 순식간에 독일어권 전역에 퍼져버렸고

유럽 사회를 충격과 대변혁으로 가게한

'종교 개혁' 이 시작됩니다

 

당시 교황청은 95개조 반박문이 걸린날 교황 암살스캔들이 나는등

독일지역에 신경쓸 겨력이 없었고

또 졸라 비범하고 똑똑한 루터형을 건들기도 애매한 정치적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교황청에서는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서

면죄부에 대한 논쟁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파문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루터는 이에 불복해 신자들이 면죄부에 의존하면

오히려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기에 신자가 죽으면 진짜 지옥행이니

성직자로서 양심상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조리있게 반박합니다

 

당시 로마 교황에게 계속 돈을 빨아먹히며

분노해있던 독일 백인 형들은

부조리에 천재적인 두뇌로 합리적으로 맞서는 루터에 열광했고

(맨날 양아치 , 일진들에게 삥뜯기다가

그것을 싫어하는 졸라 쎈 슈퍼맨 형이 나타난 격)

 

일단 독일의 루터 추종자들이

수도원 타락 , 성직매매 , 수준 이하 성직자 , 면죄부 판매 등

비합리적이고 약탈적 과세로 인한 경제 , 사회문제에 집중한 반면

루터형은 신학적 면을 빼면 이런것은 부차적 문제로 보았고

신학적으로 교황청을 비판합니다

 

교회에서는 일단 루터에게 분란의 책임을 물어

회개(반성)를 명했지만

루터는 교회에서 명한 회개 자체를 거부했고

이에 교황은 루터를 로마로 잡아와 종교재판에 회부하려 했고

루터가 로마로 소환되면 죽을게 뻔했기에

독일 지배층(제후)들은 교황의 조치를 씹고 끝끝내 루터를 보호합니다

 

교황청은 루터를 숨겨준 독일 지배층을 회유하려 했지만

역시 독일 지배층은 교황청의 요구를 씹고

교황청의 횡포에 질려있었고 합리적이었던 루터를 보호했고

점차 루터는 가톨릭 교회와 멀어집니다

 

교황청은 주님의 포도밭에 루터라는 멧돼지가 날뛴다고 비하했지만

결국 루터는 교황의 교서와 가톨릭 교회 법전을 불태우며

로마 교회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로마 교회 , 교황의 횡포에 맞선 루터는

점차 독일 국민의 영웅이 되고 있었고

당시 독일인들은 로마 교회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해

지나가던 여행자들에게

 

<독일인들>당신은 마르틴(루터) 의 편입니까 ?

 

라고 물으며 아니라 대답하면 구타까지 할 정도였다 합니다 ;;

 

[보름스 의회]

루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1521년 '보름스 의회' 에서

루터의 견해를 들어보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루터>황제 폐하께서 분명한 답변을 원하시니 

다음과 같이 공손히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성경의 증언을 통하여 ,

또는 분명한 이유에 의하여 승복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나 공의회는 자주 실수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것이 확실하며 ,

이들만으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서나 명백한 이성적 근거라는 증거를 통해 제가 설득될 수 없다면 ,

그렇다면 저는 저로부터 나온 말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제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

저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을 거스르는 일은 위험하고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 저를 도우소서 아멘.

 

보름스 의회의 루터 (1877 , 안톤 폰 베르너 작품)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독일왕인 카를 5세는

루터가 이단이라며 루터의 신학적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열변을 통했지만

청중들은 루터를 연호하며 상황이 기울었고

카를 5세는 루터가 떠나길 명령했고

결국 루터는 동료들과 은밀히 보름스를 탈출하고

카를 5세는

 

'루터는 법 밖에 있다 !!'

 

선언합니다

 

루터는 행방불명 됬고

독일인들은 루터가 죽었다 생각했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

사실은 루터를 지키던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독일에서 황제 다음으로 서열이 높음)가

루터가 살해당하는 것을 막기위해 부하들을 시켜

루터를 성으로 납치해왔고

루터는 그곳에서 수도복을 벗고 수염을 길러 신분을 숨기고

10개월동안 성안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출판시킵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루터

 

(루터는 영어 발전에 기여한 영국 셰익스피어처럼

성경 독일어 번역으로 근대 독일어의 기반을 만듭니다)

 

독일어 성경 루터 번역판은 전 독일에 퍼지며

종교개혁의 불길을 들불처럼 번지게 만들었고

 

다행히 카를 5세는 반란을 진압하느라

루터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고

또 독일에서는 농민전쟁이라 불린 거대한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때 루터는 그렇다고 농민들의 편이 아닌 기존 질서를 지지하다

농민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잃습니다

 

(루터는 일단 신학 부조리는 졸라 깠지만 사회나 현실문제는

그닥 시큰둥 했던 마이웨이형 인물이라

교황이나 황제의 편도 , 농민편도 아니었던 독일 귀족들이 좋아했습니다)

 

이에 점차 독일 농민전쟁 이후

정치적 문제는 루터의 손을 벗어났고

스위스에서 점차 사회개혁을 이어받게 됩니다

 

[칼뱅의 종교개혁]

스위스는 용병업으로 먹고사는 알프스 용병들의 나라였는데

아직 완전히 독립을 못해서 독일이 혼란한 틈을 타 일어나다가

카를 5세에게 진압됬고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는

루터의 뜻을 이어받아

'장 칼뱅' 이라는 인물이 종교개혁을 이어받게 됬고

신성 로마제국 선제후들 중심의 루터교회와 달리 (제후들에게는 황제도 민중 반란의 편도 아닌

루터의 생각이 제후들의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칼팽의 사상은 일반 민중들이나 상공업자들에게 널리 퍼졌고

프랑스와 영국에도 퍼져 결국 기존 로마 교황 독점체제의 '가톨릭' 이라는 기독교가 아닌

루터와 칼뱅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라는 기독교가 생겨납니다

 

장 칼뱅

 

1534년 영국 헨리 8세는 영국교회를 로마치하에서 독립시켜

영국 국교회로 국가교회화 시켰고

또 칼뱅파는 1550년대 무렵 결국 스위스 전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합니다

 

(북유럽 형들이 하나 둘 로마 교회에서 탈주중)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이런 상황속에서 신성로마제국(독일)은 점차 분열하기 시작했고

황제의 권위가 추락하자

제후들이 일어나게 됬고

강해진 제후들은 1618년 서로 맞다이를 뜨는

'30년 전쟁' 이 일어납니다 (서유럽 최후의 종교전쟁이자

유럽 왠만한 나라가 전부 전쟁에 휘말린 서양 최초의 국제전쟁)

 

30년 전쟁

 

30년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유럽에 평화가 찾아왔고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을 맺어

개인의 종교 , 신앙의 자유가 인정받았고

루터파와 칼뱅파는 가톨릭과 평등한 종교적 권리를 인정받고

종교개혁은 완수됩니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썼던 시기에서 100년이 더 지난 뒤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대응]

한편 가톨릭 교회도 새롭게 독립한 개신교 , 종교개혁에 맞서

반격을 시작했고

트리엔트 공의회로 교회 내부 강화 , 가톨릭 교리 재확인 ,

사제 양성을 위해

모든 교구에 신학교를 세우라 선언했고

이전에 마구잡이로 뽑은 중세식 신학자가 아닌

엄격한 교육을 통해 근대적 성직자를 뽑게 됬고

또 가톨릭의 로욜라라는 인물은 교황청 직속기구

'예수회' 를 조직해

아시아와 남미지역 포교 , 선교활동에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중국에 가서 포교한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종교개혁이 남긴 것]

중세 교회에 분노한 루터 형의 반박문에서 시작된

'종교개혁' 이 유럽사회에 남긴 것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가히 태풍이 지나간 것과 같았고

유럽은 종교개혁 전후로 엄청나게 바뀌게 됩니다

 

일단 종교 개혁이 시작된 신성로마제국은

후대의 볼테르의 말처럼

 

'더이상 신성하지도 않고 , 로마도 아니고 , 제국도 아니게 되었다'

 

같이 되어

교황의 권리와 황제의 권리가 둘 다 약해졌고

독일의 인구는 전쟁으로 상당수 줄어

이후 독일에서는 강력한 군사대국인 프로이센이 나타나기 전까지

유럽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하고 짜져있게 됩니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는 직접적으로 30년 전쟁에 휘말리지는 않아

오랫동안 유럽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또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와 가톨릭은 격렬한 대립을 하고

자신들의 사회를 개혁하려 했고

개혁자들은 사회를 신성화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나게 세속화된 유럽이 나타났고

고고한 이미지이나 세속화된 이중적 모습의 '유럽 근대' 라는 반항적인 사생아가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마녀사냥]

종교개혁 시기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로

이단심문(종교재판) 과 마녀사냥 이야기가 있는데

유럽 사회가 혼란에 빠져있자

가톨릭권과 개신교권은 모두 서로의 신앙심이

상대방보다 경건함을 증명하려

무고한 생사람들을 '마녀사냥' 이라는 명목으로 잡아 족쳤고

 

마녀사냥 ,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는 여인

 

마녀사냥으로

10만명이 고발당해 4만명이 사망했다는데

이 학살대상의 마녀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악마와 계약을 맺어 악마를 섬기고 ,

그 대가로 부여되는 마력을 사용하며 ,

공중을 날아다니며 마녀 집회에 참석하여 악마와 교접을 하는 자'

 

였는데

주로 돈많은 홀로사는 과부(남편잃은 여자) 가 주 타겟이 되었고

가족은 없고 돈만 엄청나게 많은 나이많은 여자들이 ,

하층민 여성 , 지위가 낮은 여성들이

주 희생자였고

결국 돈때문에 사회에서 떨어져있는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학살당하고 돈을 뺏긴 것입니다

 

이단 , 마녀 재판도 주먹구구식이라

체포후 자백을 하지 않은 사람의 손발을 묶어

물속에 던져 가라앉으면 무죄 , 떠오르면 마녀라는 감별법이 사용됬는데

사람은 물에 살짝 뜨기에

대략 이런경우로 물고문을 당하고 끌려나와 화형당했다 합니다

 

또 달군 쇠판을 걷게하여 사망하면 무죄 ,

살아나면 마녀로 보아 화형되었고 (뭘 해도 죽음)

 

보통 마녀임이 인정되면 즉시 화형당할 것을 알기에

희생자들은 격렬하게 자신이 마녀임을 부정했지만

지독한 고문에 견디지 못하고 자백해 사형당하는

말도 안되는 학살이었고

가끔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여성들은

자진해서 재산을 헌납하거나 권력층에 연줄이 있거나 하는 경우였다 합니다

 

종교개혁 시기 유럽은 각계각층의 몰락 , 흑사병과 가축들의 전염병 , 전쟁 등

여러 불행이 연달아 터져있어

사람들은 연속된 불행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 , 희생양을 찾고 있어

마녀와 마법사를 죽여 혼란의 원인을 차단하면 안전하다는 인식 생겨

애꿎은 사람들이 학살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애꿎은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공격하거나 죽이려 하는 것을 '마녀사냥' 이라 비유하고 있습니다

 

<라봉봉>루터 형은 스티브잡스같은 반항아 성격의 인물 같은데

(단 잡스는 장사꾼기질이 , 루터는 학자기질이 강했음)

 

종교계의 스티브잡스 같이

고집 졸라쎄고 독선적이고 개쩌는 형이라 생각되고

 

다들 가톨릭 부패의 좆같음을 알고 있으나 예예 하며 참고있는데

홀로 NO 를 외치며 일어난 인물이라

엄청나게 용기가 있었던 위대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21세기 , 2020년인 오늘날에도 수많은 부조리가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에

이런 루터 같은 용기있는 인물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개인적 생각이고

 

루터가 보름스 제국 의회에 죽음을 무릅쓰고 참여한 사건을 두고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지옥 그 자체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했던 루터의 행위는

두려움 없는 최고의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라고 극찬했고

가히 대장부 다운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까도 제대로 까야 하는 법이고

애꿎은 힘빠진 시체에 잽을 날리면 치졸할 뿐이고

그렇다고 너무 강성한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면 목숨이 위험하기에

 

루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 자신이 배운 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고 맞섰다고 생각되고

이런 용기있는 인물의 이야기는 참으로 사이다를 마신것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루터 , 칼뱅 등이 가져온 유럽의 종교개혁으로

기독교 세계는 가톨릭 독점체계가 끝나게 됬고

독점으로 부패해오던 가톨릭도 이후 위기를 느껴

자체적 정화 , 개혁을 했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개신교가 더 돈을 밝히고

가톨릭이 덜 밝힌다고도 이야기 되고 있고

하여튼 종교계 이야기도 여러 의의가 있다 생각됩니다

 

나아가 루터의 개혁으로 개신교인들은 미국을 건국하게 됬다고도 하고

한 사람의 용기있는 발언이 인류 역사를 뒤바꾼 것으로서

루터는 부조리와 모순 , 왜곡으로 가득한 오늘날 현실에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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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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