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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공화국과 IMF 경제위기>

[사고 공화국]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삼풍 괴담]

[건축계의 노력]

[지존파 살인사건]

[한보 사태]

[IMF 경제위기]

[IMF 의 원인]

<라봉봉>

 

[사고 공화국]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라 불리지만

이면에는 '사고 공화국' 이라 부릅니다

 

김영삼 정부당시 사고들 , 출처 : 위키백과

 

유독 김영삼 정부대인 90년대 한국사회에 대형 사고 , 악재들이 엄청나게 터졌고

이는 단순 김영삼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

이전부터 한국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하며 '앞만보고' , '빨리빨리' 하는 경제성장이있었기에

정치인들 뿐만 아닌 기업들도 공사를 날림 , 날치기로 해냈고

 

한국인의 정신 '빨리빨리 문화' , 단기간에 추월식 경제를 할때에는 큰 효과를 봤지만 따라잡기가 아닌 선도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무턱대고 빨리빨리한다 되는것도 아니고 또 빨리빨리가 대충대충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 한국 1군 대기업들은 빨리빨리 했음에도 안정성을 중요시 했습니다

 

이에 시대가 지나 김영삼정부대에 이르러

허술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하나하나 균열이가고 무너지게 됩니다

 

단 이 사건들이 김영삼 정부만의 잘못이라 할 수는 없지만

사고대처 및 관리측면에서 김영삼 정부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우며

김영삼정부는 사고를 이전정부에게 돌리는 책임회피 발언을했고

이러면 밑도끝도 없어져서 비난을 받게 됩니다

 

(현재 정부가 욕먹으면 전정권을 탓하면 되고

그럼 전정권은 그전정권을 탓하는 식)

 

하여튼 김영삼 정부 시작년도인

1993년 1월 7일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로 29명 사망 , 48명이 부상당했고

1993년 3월 28일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로 78명 사망 140명 부상 ,

1993년 7월 26일 목포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로 66명 사망 5명 부상 ,

1993년 10월 10일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로 292명 사망해

취임년도부터 최악의 사건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무엇보다 한국사에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합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건

 

한강위에 있는 서울사람들의 주요 이동로였던 성수대교는

10월 21일 새벽 균열 및 이상징후가 발생했고

서울시는 대충 땜질식 대처만 하고 교량진입 통제등의 긴급조치는 시행하지 않습니다

 

결국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갑자기 성수대교는 붕괴해버렸고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 자동차 , 시내버스 등은 한강으로 추락했고

동승자들은 사망합니다

 

붕괴 당시 모습

 

평소같은 평온한 등교길에

학생 및 직장인 , 교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이 사건은 한국건설사의 안전불감증을 대표하는 사건이며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시공사 동아건설은 설계와 시공이 미흡하고 유지보수도 부실했고

서울시 역시 제대로된 유지관리가 미비했는데

일반적 법적견해로는 시공사였던 동아건설은 일반 성수대교 건설후 5년간 안전관리 계약을 해

충분히 이행했기에 그 다음 안전관리를 맞은 서울시는 그 의무를 의행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는 동아건설보다 서울시의 책임이 더 컸다고 이야기됩니다

 

당시 많은 한국시공사들이 정부 공무원과 결탁해 계약을 따내고

날치기 , 날림 공사를 했고

그나마 현대건설 , 현재 한국 대기업 건설사들이 그나마 기본이나 원칙은 지키려 했기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고 이런 건설사들이 그나마 저는 제일 양호한 회사라 생각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성수대교 이외에도

19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 ,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등으로 계속 사람이 죽었고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로 102명 사망 117명 부상이 있었고

1995년에는 성수대교 붕괴급으로 또다른 초대형 악재가 터졌는데

바로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6.25 전쟁 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사고였고

502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부상 , 6명이 실종됩니다

 

서울 서초구의 고급 백화점이었던 삼풍백화점은

사장 이준이 중앙정보부 인맥으로 강남 서초구의 군용지를 불하받아 강남 개발열풍에 힘입어

돈을 많이 벌다가

서초구에 짓게 되었고

1989년 12월 개장합니다

 

삼풍백화점 모습

 

삼풍백화점은 아파트 단지내 상업지구로 지었지만

강남 한복판의 노른자땅에 지어진

전국 2위규모 단일매장이었고

일반적 상업지구 치고는 규모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삼풍백화점은 샤넬 , 디올 , 구찌 , 버버리 등등

온갖 당시사람들은 생각도 못한 외국 고급브랜드들이 입점해있었고

심지어 쓰레기통이나 수세미까지 비싼 수입품을 판매한다는 초호화 대형 백화점이었습니다

(강남 백수 아줌마들 놀이터)

 

당시 삼풍백화점의 광고

 

그러나 외관이 크고 화려한것과 달리 삼풍백화점은

사실 최악의 부실건물이었고

원지 부지 용도도 상업용이 아닌 주고용 부지였는데

삼풍 사장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 용도를 변경해 공사를 지은 것이었고

삼풍백화점은 건설시작부터 철저한 비리의 온상이었습니다

 

공사 역시 건물의 안정성을 무시한채 독단적으로 구조설계를 변경해

철근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기둥들의 지름도 깎거나 없애서

온갖 불법 , 위법 건축물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참 당시 한국사회 수준을 보여주는

껍데기만 신경쓴 대표적인 부실건물이었습니다)

 

결국 삼풍백화점은

붕괴 전부터 건물 전반에 균열이 보이는 등 여러 신호들이 발견됬지만

그럼에도 삼풍백화점은 계속 영업을 강행하게됬고

온갖 무거운 물품들이 백화점에 입점하고

결국 삼풍백화점은 옥상으로부터 붕괴 시작 5분만에

땅을 향해 완전히 무너집니다

 

여기저기서 놀란 쇼핑객들이

 

'악 !'

 

'사람 살려 !'

 

하고 소리쳤고

순식간에 엄청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무너진 콘크리트에 깔리며 땅속에 매몰됩니다

 

기업의 탐욕에

너무 어처구니 없게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한국사 최악의 사건이었고

점차 이 원인이 부실공사임이 밝혀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당시 구조도 대형사고에 대한 대규모 구조개념이 없던 한국사회였기에

후진적 , 미흡한 대응을 보였고

소방서 , 경찰 , 군대 , 해병대 전우회 , 민간 자원봉사자 , 주한미군까지 동원되

사고 현장에 몰렸는데

너도나도 서로 관할권을 주장하며 체계적 지휘통제가 이루아지지 않았고

각종 불협화음이 속출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 , 자원봉사자들이 매몰자들을 구하기위해 노력했고

수많은 사회 각계층의 온정이 전해져

군장병들은 혈액이 모자란다는 소식을 듣고 헌혈를 했고

부녀회원들은 컵라면과 빵등을 작업자에게 배식했고

매몰자들을 구하기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최후의 생손자 3인은 사고 발생 11일 , 13일 , 17일만에 구조되는 기적같은 모습을 보였고

매몰된 상황에서 빗물을 마시며 견디거나 하는등으로 견뎠다 하고

13일만에 구조된 유지환 양(1977년 생)은

구조된 직후 소감으로

 

'구조대원 오빠랑 데이트하고 싶다'

 

는 엉뚱한 말을 해서 소소한 웃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삼풍 사장 이준은

사고 직후 엄청난 국민적 분노를 샀으며

이준을 비롯한 백화점 경영진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비난 수준이상으로 엄청났고

결국 이준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징역 7년 6개월을 받습니다

 

법률의 한계로 이준 일가에 내려진 형벌은 솜방망이에 가까웠지만

벌금이 매우 강해 재벌이었던 이준일가 전재산으로도 부족할 정도였고

1996년 대기업이었던 삼풍건설은 사실상 공중분해 되고 ,

그 밑의 중소기업 1100여곳은 부도처리됩니다

 

삼풍건설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또다른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다니던 회사가 악의축으로 국민들에게 찍히는 바람에

이후에도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렸고

이후 IMF 외환위기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다른 곳에서 취직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수장의 중요성)

 

[삼풍 괴담]

삼풍백화점 붕괴는 한국사 최악의 대형사고라

수많은 충격을 주고 괴담을 퍼지게 만들었는데

실제 존재한 괴담은 '악마의 미소' 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당시

백화점내 고급 물품들 약탈도 일어났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이 물품들을 훔치는 여성의 미소가 사진에 찍혀

'악마의 미소녀' 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삼풍 사고 당시 악마의 미소녀

 

또한 어떤 사람의 부모님은

붕괴 3일전 삼풍백화점을 보고

 

'왠지 좀 부실하다 무너질거같네'

 

하고 넘겼다가

무너졌다고도 하고 (근데 이 직감이라는게

과학적으로도 인간의 본능과 지식 , 경험의 총집합이라

무시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워낙 유동인구 많은 동네이고 큰 백화점이었기에

간발의 차이로 삼풍백화점에서 나왔는데

곧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한 아이는 엄마랑 삼풍백화점에 들렸는데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아이가 엄마한테 계속 울고불며 백화점에서 나가자 했고

의문을 느낀 엄마는 울며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삼풍백화점을 나갔는데

곧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후 엄마가 아이에게 왜 나가자 했냐 물으니

아이는

 

'엄마 머리위에 어떤 이상한 아저씨(혹은 여자)가 짓누르고 있었어..'

 

했다는 괴담은 참 유명합니다

 

[건축계의 노력]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사고공화국이라 불리던 김영삼 정부시대의

정점을 찍은 사건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삼풍 불법증축과 불법시공은

이전정부인 노태우 정부때 발생한 사안이지만

그럼에도 오랜 관행으로 축적된 관료주의 문제점이 폭발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인해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관리감독하에 발생한 부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안전문제에 전면 재고에 들어갔는데

당시 안전검사에서 통과된 대한민국 건물은 고작 2%였고 ;;

즉시 보수지시에 들어가며 여러 건문들이 다시 지어졌고

문민정부 후반기부터는 이러한 대형 악재들은 사라집니다

 

(요즘도 문재인정부시기 계속 재해 , 재앙이 터져서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단 사고공화국이라 불리던 김영삼 정부때가

지금보다 더했습니다)

 

사고 발생이후 한국 건축기술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해외공사수주율이 뚝 떨어졌지만

이후 겨우겨우 위기를 넘긴 한국 건설사들은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며 다시금 안전관리에 집중했고

오늘날에는 한국 건축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참 우수하지만

세계에서도 삼풍백화점 파장이 컸기에

외국에서 한국 건축기술을 자랑하면

아직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사고를 이야기하는 외국인들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건설한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인 아랍 에메리트의 '부르즈 할리파'

 

단 한국은 온대하우기후 , 온난 습윤기후라는 비가 잘내리고 끈적거리는 기후적 요인이 커서

건물 수명이 유럽같이 100년씩 버틸 수는 없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건물이 조금만 오래되어도 철거하고 2~30년 주기로 빨리 재건축 하는 관행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이후로 더욱 부채질되었습니다

 

(한국 건물이 직각모습에 쌈마이한게 강하고 물건이나 구조물들도 되게 녹이 슬어있는게 강한데

저도 처음엔 선진국들은 오래되도 다 새거같고 깔끔한데 우리나라가 못살아서 그러는줄 알았더니

그냥 기후가 문제인 것도 있고 외국 선진국 건물은 외관은 화려하거나 고풍스럽지만

재건축도 어려워 수십년 , 백년 이상건물도 많아 세탁기나 보일러도 못들어간다거나

내부가 노후화된 단점도 있습니다)

 

오늘날 강남의 건물들

 

[지존파 살인사건]

김영삼 정부당시

건축사고 뿐만 아닌 흉흉한 사회 분위기속 엽기범죄 , 범죄조직들도 일어났는데

'지존파 살인사건' 이 있습니다

 

지존파 살인사건

 

두목의 별명이 지존(최고 , 옛날에 임금을 달리 부른 말) 이라는 별명이 있어 지존파라 불린 것이고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전 훈련을 할때 지존이라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했다 합니다

 

<지존파의 행동강령>

●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신자는 죽인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지존파 조직원들은 불우한 환경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대학입시부정사건에 분노해 가진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결성됬다 하고 고소득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살해하는 범죄계획을 세웁니다

 

지존파는 남자 6명 , 여자 1명으로

아지트를 만들어 소각장까지 만들었고

 

지존파 조직원

 

지존파 아지트 (살인공장이라 불립니다)

 

납치와 감금 , 살인을 하고

자신들이 만든 소각장에 시신을 태우거나

시체를 토막내어 인육을 먹는 등을 했던

한국사 최악의 범죄조직사건이었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피해자가 겨우 경찰서에 신고하며

지존파 살인사건은 세상에 알려져 그들은 검거됬고

그들은 빈부벽차와 부자들에 대한 증오로 살인행각을 시작했다지만

실제 피해자들은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었습니다

 

<당시 기자>왜 식인을 했느냐 ?'

 

<지존파 조직원>인간이길 포기하기 위해서

 

당시 화제가 된 범인의 인터뷰

 

지존파 두목 김기환은 사형선고를 받고는

 

'전두환 ,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야'

 

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고

여러 살인자들의 궤변과 잔혹함속에 한국사회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표창원 경찰대교수(프로파일러 , 범죄 분석관)는 지존파 등 연쇄살인범들의 배경에는

뒤틀린 심리상태 , 성장과정의 문제 , 사회적 불만 등이 있다 지적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좌절을 사회탓으로 돌리며

범죄를 저질러 썩은 사회를 단죄하려한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있다 합니다

 

[한보 사태]

금융범죄도 일어났는데

한국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은 이미 비리사건으로 망해가던 시점이었는데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철강사업에도 마수를 뻗치며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 했고

당시 은행들은 오늘날과 달리 정치권과 긴밀히 엮여있었기에

정태수는 정치인들 위주로 대형로비를 벌여

국회출석자리에서

1조원을 빌려 제철소를 지으면 10조가치의 공장을 만들겠다는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한보회장 정태수

 

한보는 정부의 비호아래 결국 대출받은 돈으로 제철소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문어발식 세력확장을 해서 자금이 들어와도 메꿀 수 없는 처지가 됬고

결국 꼬리가 잡힌 정태수는 1997년 5월 재판을 받고 수감됬고

부도 여파로 백수십여개의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한국 대외 국가신용도 하락이 가속화되어 IMF 로 이어집니다

 

권력형 금융부정 , 특혜대출로 일어난

대한민국 건국후 최대의 금융부정사건으로 이야기되고 있고

금융계에도 영향이 커서 시중은행장들도 쫓겨나거나 구속됩니다

 

이 사건때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현철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운영차장 김기섭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2019년 6월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아들 정한근이 21년간의 도피생활끝에 국내로 송환됬고

정태수 한보회장은 2018년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 합니다

검찰과 국세청은 현재도 은닉재산 발견시 해외 불법재산을 포함한 범죄수익 환수를

검토중입니다

 

[IMF 경제위기]

한국은 1996년 GDP에 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맞았고

정부는 국민들의 사치가 원인이라며

투자로 수출을 늘리려했지만

1997년 1월부터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며 미국의 수입이 감소하자

한국같은 수출주도형 국가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달러의 금리인상으로 달러를 빌리며 외국자본을 유치한 한국같은 나라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

 

그상황에서 수출을 늘리기위해 자국화폐를 평가절하시키자

갚아야할 돈이 더더욱 크게 늘어가는 상황도 맞게 됬고

 

한국기업들은 이런 악재상황을 버텨야 했고

이러한 와중 한국은 1997년 자동차를 미국에 덤핑판매(싸게 판매)하려다

미국의 반덤핑 무역 제재 법인 슈퍼 301조를 받게됬고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한국 외환보유고가 매년 300억달러를 유지한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지만 실상은 외환보유액의 5배가 넘는

1700억달러의 외채가 있었고

이러한 여러 악재속에 외국 자본들도 한국의 대외신용도를 낮추며

돈을 점차 회수했고

결국 1997년 IMF 경제위기가 시작됩니다

 

1997년 12월 사태 초기까지 국내 실업률은 3.1%였으나

1998년 1월이 되자 실업률은 한달만에 1.4%나 폭등해

한달만에 무려 3300여개의 한국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다음해인 1999년 2월에는 실업률이 무려 8.7% 에 달하는 등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 , 한국전쟁 이래 한국사 최대 위기라 불리우는

외환위기 사건이 터집니다

 

당시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던 대기업 , 기업들 도산 이야기입니다

 

결국 나라 곳간이 텅텅비자

김영삼정부는국제통화기금  IMF 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세계 은행에 돈빌리는거)

 

IMF 구제금융 요청 기사

 

미칠듯한 환율폭등에 절망하는 외환딜러들

 

IMF 구제금융요청으로

대한민국은 전세계에 국가부도를 인정함과 동시에

1970년부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급속히 성장한 대한민국 고도경제성장은 종료되고

한국 사회 , 경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양식으로 움직입니다

 

IMF 의 구제를 받는 기간동안

한국경제는 IMF 경제정책에 무조건적 복종을 하게 됬고

한국사회는 실업자들이 넘쳐나며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자살하는 등 엄청난 대혼란 , 고통의 시기가 시작됩니다

 

IMF 이후 꾸준히 증가한 한국 자살율 , 현재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있습니다

 

IMF 는 이런 복잡한 여러 사정도 있었지만

더 쉽게말하면

일본 버블경제처럼 기업들이 한창

문어발식 양적성장 , 평균사회 움직이다가

그 한계를 맞고 줄줄히 도산한 것이었고

일본의 1980년대 버블경제 붕괴때랑 양상이 똑같습니다

 

한국사회역시 1980년대 호황을 누리며

기업들은 '만들면 팔린다' 라는 인식이 생겨나며

외국의 좋은 상품이 있거나 특이하다 싶으면

일단 조잡할지라도 만들었고 , 시장에선 그게 팔렸습니다

 

(근데 그래서 8~90년대 문방구나 이런데에 불량식품 , 완구 등

기괴하거나 재밌는 물건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는 당시 베이비붐 세대등의 여파로 인구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한창 외국 자본들을 받아들이며 쑥쑥커갈때는 별다른 위기의식을 못느낀 것이었지만

점차 고도성장등에 기업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가 일어나고

모두가 하면된다 신화에 빠져들어 (안되는 것도 있건만..)

마구마구 문어발식 사업확장 , 방만한 기업운영을 하다가 결국 거품이 꺼지며

한국 경제가 망해버린 것도 있고

한국 사회 역시 일본 버블경제 붕괴때와 마찬가지로

자살하는 가장들이 속출했으며

중산층들이 엄청 두터워서

모두가 그럭저럭 비슷비슷했던 평균사회에서

중산층들이 무너지며

무한경쟁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당시 가장들이 회사에서 실직하고 집에서 지내거나 막노동판을 전전했다하며

이에 가정이 해체되고

비행청소년도 많아져 가출과 원조교제도 성행합니다 (일본 버블붕괴후와 똑같습니다)

 

당시 갈곳 없는 청소년들은 거리에 나와 방황했고 원조교제 , 유흥업소 등 성매매를 하게됩니다

 

당시 한국 어린이들은 IMF 경제위기 , 외환위기때에도 그저 순진 , 순수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잘린 부모님이 어려워하는 모습 , 좁은 집으로 이사가는 등 IMF 를 겪게 됬고

한국사회에서 IMF 경제위기는 줄여서 아이엠에프 , IMF 라 부릅니다

 

[IMF 의 원인]

버블경제나 IMF 외환위기같은 것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전

양적성장의 한계에서 질적성장을 요구받는 하나의 과정이라고도 생각이 들고

되게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본은 이미 버블붕괴전부터 미국을 위협할정도로 세계 경제를 씹어먹고 있었고

땅도 의외로 한국보다 훨씬 넓은 일본이고 내수 인구도 1억이나 되어

버블 붕괴 이후에도 오랫동안 쌓인 연구 , 기술력과 그간 벌어들인 돈 ,

풍부한 내수로 나름 경제위기를 버텨낸 일본인들이었는데

 

한국은 1980년대 나름 호황을 맞았지만

일본같이 세계 시장을 주도해본 경험도 부족했고

내수 인구도 훨씬 적고 북한과의 군사 , 안보적 상황도 있었기에

한국의 IMF 사태는 일본의 버블붕괴보다 훨씬 상황이 심각했었고

결국 한국은 일본과 달리 IMF 에 돈을 빌리고

IMF 에 절대복종하게 되는 양상으로 흘러갔습니다

 

IMF 터지기 전까지 한국기업들이

계속된 고도성장에 하면된다 신화에 사로잡힌 경향이 컸기에

외국에서도 막가파식 사업확장을 벌여 세계인들의 눈총을 샀고

 

(일본인들도 버블경제전까지 외국에서 엄청 나댔고

한국은 IMF 전까지 그랬고

요즘은 중국인들이 나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나마 현대나 삼성등 한국 1군 대기업들은 사장이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고

기업내 독창적 상품들이 있었기에 IMF 경제위기에서 버텨갔지만

이도저도 아니며 독창적 상품도 없이 카피캣 전략(잘되는 상품 배끼기)만 쓰며

몸집만 크게 불린 아류 대기업들은 철저하게 몰락 , 부도나며

그밑의 중소기업들까지 줄줄히 도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슬픔과 고통에 빠져듭니다

 

사실 문어발식 확장 , 정경유착 , 방만한 경영 , 경영진의 부패와 사치 등

진작 망했어야할 기업들이 정리된 사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기업들에서 평생을 일하던 중년가장들이 실직하자

한국 중산층들이 붕괴했고

한국사회는 엄청난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힙니다

 

IMF 경제위기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 (2018) Default' , 이작품 이전에도 김혜수와 유아인이 호흡을 맞춘 '좋지 아니한가(2007년)' 라는 가족영화도 있는데 IMF 이후 변화한 가족상으로 무너진 부권 , 콩가루 가족과 원조교제 이야기들이 담긴 독립영화가 인상깊었습니다

 

IMF 경제위기로 김영삼 정부는 철저히 몰락했고

김영삼은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이야기 되었으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깨긴 깨는데 ..

박근혜 정부는 무능함과 도덕성 문제로 밀린 것이지

이렇게 사회 전체적 대혼란까지는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결국 수십년만에 야당이 집권하게 되며

김대중 정부가 탄생합니다

 

<라봉봉>김영삼 정부때 태어난 저로서

확실히 옛날이 엄청 위험하고 야성적인 면이 강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고

참 지금까지 살아남은게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정도로

지금보다 정치 , 법제적 안정성도 훨씬 덜했고

사회전반적으로 치안이 매우 위험해

인신매매 , 납치 , 강간들이 성행했던 시기라

오늘날 대한민국이 치안이 세계1위라 불리기 시작한 것도

CCTV가 대거 도입된 200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근데 참 한국이 빠르게 발전한것도 있는데

그런 빠른 성장 , 발전등으로

아직도 오늘날 한국사람 , 기성세대들이

선진화된 시스템을 못따라온다거나 하는 일면도 있고

 

제 기억속에 IMF는

그때 부모님이 일하고 집 대출금 갚느라 고생 많이 하셨다하는데

다행히 저의 집은 IMF 가 직격탄같이 오지는 않았고

근데 부모님이 바빠서 잠시 할머니랑 살기도 했고

맨날 놀이터 다니고 순수하게 지내서 잘 기억은 없지만

당시 힘들게 지낸 사람이 참 많았다는 것은 보고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버블경제붕괴 후 가장들이 대거 실직해 자살하자

 

'왜이리 일본인들은 자살을 많이하는가 ?'

 

하며 의문을 던졌지만

IMF 이후 자살공화국이라 불리며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인들이고

인간성을 무시한채 빨리빨리 , 급한 성향으로 발전한 한국경제는

이때 쌓여온 문제들이 폭발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자살을 했기에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특히 심각한 '질병' 수준까지 왔습니다

 

'헬조선' 이라는 말이 처음나왔을때 저는 그말에 공감하지 못했고

지금도 이 말에 공감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저도 어려운 시기들을 겪으며 자살충동이 여러번 올라온적이 있었고

물론 저는 자기애와 삶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기에 살기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나오긴 했지만

 

어찌보면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자살충동이 올라온다는 것은

인내하고 성실히 산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또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은 살인사건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등의

충동적 사건을 일으켜 문제를 일으킨다 생각하고 있고

 

이에

 

'한국에서는 참으면 자살(혹은 암) ,

못참으면 살인'

 

이라는

잔혹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도 이 나라에서 이유없이 큰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등

ㄹㅇ 제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나 또 이후 좋은 날도 온거 같고

사람들이 좀더 인내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하여튼 IMF 이후부터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참 중요한 질병수준이라

암과 더불어 아주 위험한 사회적 질병이기도 하고

오늘날에도 참 중요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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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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