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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시기 사회·문화>

[운동권]

[산아제한 정책]

[신도시 건설]

[해외여행 자유화]

<라봉봉>

 

[운동권]

노태우 정부(1988~1993) 시기 사회문화 이야기입니다

먼저 운동권 학생들 이야기로서

민주주의 데모를 하는 학생들을 80년대부터 '운동권' 이라 불렀는데

친정부 언론에서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고립 , 구분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즐겨 쓰기 시작합니다

 

이 운동권 세대들은 80년대 한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고

사람들은 이 세대를

386세대라고 부릅니다

 

90년대 30대였고 , 80년대 학번에 , 60년대 출생한 세대들로

386컴퓨터에서 명칭이 유래되 이 민주화 운동권 세대들을 '386 세대' 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들이 나이가 들며 486 , 586 으로 변함)

 

한국 민주화 청년운동의 낭만시기이자 최루탄을 맞아가며

목숨걸고 한국 정치 , 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세대였습니다

 

386세대와 6월 민주항쟁을 대표하는 사진

 

군사독재정권의 시위진압부대 '백골단' 등이

 

'야 ! 살 !! (죽일 살 , 죽여 !!)'

 

이라는 구호와 함께

덮쳐오는 시위진압전술을 자주 사용할때

사수대라 불리는 학생들이 백골단과 방패부대의 압박을 저지했고

나머지 대오가 플랜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팜플렛을 길에 살포하거나 시민들에게 나눠주었고

운동권 학생들은 백골단 등 정부의 폭력에 시간을 벌기 위해

앞장서 무력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국가폭력의 상징이자 청청패션으로 유명한 한국경찰의 시위 진압부대 '백골단'

 

사수대의 모습

 

운동권 학생들은 시위대 은어로서

꽃병과 파이를 자주 사용했는데

꽃병은 화염병을 , 파이는 파이프를 말하는 것이었고

바리게이트 , 각목 , 짱돌도 사용합니다

(홍콩 시위의 원조)

 

백골단의 진압모습이 나온 드라마 'TV 문학관 외등' , 박범신 소설 원작

 

당시 87년 6월항쟁이 성공하고 직선제 개헌 , 정치적 민주화가 달성됬는데

이에 운동권 학생들은

 

'민주화가 되었으니 앞으로 무슨 운동을 할 것이냐 ?'

 

라는 논쟁이 벌어지게 됬고

이 이후부터는 분파가 형성되 노선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집니다

 

운동권 학생들은 대표적으로 NL 과 PD로 나뉘었는데

NL은 National Liberation , 민족 해방 의 약자이고

PD는 People's Democracy , 민중민주 의 약자입니다

 

NL은 민족성 , 자주성 , 반미 , 친북의 성향(대표 정치인 임종석)을 띄고 있었고

PD는 노동해방과 반자본주의 성향(대표 정치인 노회찬 , 심상정) 을 띄었는데

하여튼 한국사회에서 현대 정치사를 본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말이지만 저도 아직도 이게 뭔소린지도 모르겠고

 

북한과 친한쪽이 NL 이고

소련 및 공산주의 순수사상과 친한쪽이 PD 로 이야기 되는듯합니다

 

하여튼 공산주의 , 북한에 대한 반감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운동권 학생들은 이런 모습들로 비판받기도 했고

 

하여튼 이 세대들 , 운동권들이 80년대 한국민주주의 운동의 중추로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불의에 항거했기에

오늘날 한국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가 달성되고

시간이 흐르며 점차 운동권 학생들의 분열 및

쇠퇴가 시작됬고

시간이 지나며 90~2000년대 들어 점차 운동권 학생들도

무력사용도 자제하게 됩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주화를 위해 목숨걸고 나섰던

운동권 학생들은 강경한 폭력성과 배타성도 존재해

민주화가 이뤄진 후부터 한국사회에서 예전같은 호응을 받지 못했고

점차 가려져왔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타납니다

 

운동권 학생들은 학벌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했고

(명문대 학생들은 같은 운동권임에도 3류대 학생들은 비웃었음)

 

내부적으로 지나치게 엄격한 계율을 적용한다거나

성 정체성을 중성화시키려 여성들도 오빠가 아닌 형이라 부르게 했고

집단 혼숙 , 강간(떼씹이라 표현함) 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당시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운동권만이 아닌 시민 , 직장인 , 공장 노동자 , 지방민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었고

결코 운동권만이 이뤄낸 민주화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보니 운동권 , 386세대는 민주화 세대의

공격수 , 군인 역활을 한 것이었고

이러한 분위기속에 여러 내부적 병폐 , 수직적인 분위기도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도 학생운동중 최루탄에 맞아 기절했을때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간호로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현재 문재인 정부가 386세대 , 운동권을 대표하는 정부이고

이로 인해 민주당에서도 김대중 , 노무현 정부와 다르게

여러 급진적 성향이 강한 느낌도 있습니다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과 운동권 인물들(임종석[NL] , 조국[PD])의 모습

 

[산아제한 정책]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엄청난 베이비붐 세대가 있어

수많은 자녀들이 태어났고

베이비붐 세대들이 출산할 시기가 되어도

출생자가 좀처럼 줄지 않자 결국

1980년대와서는 정부가

 

'하나씩만 낳자'

 

라고 매우 강력하게 나갔습니다

이에 1984년부터는 출산율이 1.74명으로 떨어졌는데 (출산율 2 이상이 되야

인구 유지가 가능)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홍보 , 정관수술 , 피임 장려 등

80년대 후반들어 점차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정부는 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라는 홍보 ,

80년대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 '둘도 많다'

 

등 여러 산아제한 홍보를 했습니다

 

시대별 산아정책 포스터

 

국제적으로도 앞으로 인구가 120억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산아제한정책은 큰  흐름이었는데

이시기 낮은 출산율이 시작되자

이전부터 남아를 선호하는 성향이 강했던 한국사회에서는

남자 아이만 가지기 위해 여아를 임신할 경우 낙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에 1983년부터 2006년까지 남녀 성비는 불균형을 이뤄

여성의 인구가 적게 됩니다

 

통계별 남녀비율

 

노태우 정부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저출산 풍조는 이어졌지만

노태우 집권기대에는 출산율이 올라가는 경향이 보였고

다만 노태우 정부대부터는 너무 통일을 염두한 나머지

1996년까지 산아제한정책을 추진하는 오판을 해서

잠시 IMF 경제위기 이전 호황시기로 태어난

'에코붐 세대(90년대 초중반)' 를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한국은 매우 저조한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1991년~1996년 세대를 에코붐 세대라 부르는데

제가 바로 에코붐 세대로서

오늘날과 달리

어렸을때 놀이터나 문방구 등에는 항상 아이 , 친구들로 가득 붐볐던게 기억납니다

 

음 .. 요즘도 남녀성비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저는 거의 도시에서만 살아왔기에 항상 여자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서울 등 도시는 여성 비율이 높고 농촌은 낮은 비율이 있다 합니다)

 

또 통계적으로 남자가 많이 죽는 경향이 있고..

남아선호사상의 후폭풍으로

오늘날 여아선호사상이 나타나기에 다시금 기묘한 균형이 맞춰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여튼 한국 인구는 세계에서 최악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어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에코붐 세대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기는 하는데

저도 일리는 있다 생각하지만 너무 거기에만 집중해서도 안되고

그냥 하기 나름인거도 같고

어렸을때 추억이 참 많았는데

어느새 저도 어리다 여기질 나이가 아니게 됬기에

나름 앞으로도 뭘 해야할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 장가가고 싶다..

 

[신도시 건설]

한창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며

서울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새로운 도시건설계획을 수립했고

서울 집값폭등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4월 27일

일산과 분당을 개발하겠다 합니다

 

신도시로 인한 서울의 인구분산효과

 

일산과 분당은 1기 신도시라 불리지만

이전 성공적으로 건설된 강남과 같은 신도시 형태였고

바둑판식으로 깔끔하게 건설됩니다

 

일산 신도시의 모습 , 분당도 일산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분당 사람들도 자부심이 강해 분당을 '천당아래 분당' 이라고도 합니다

 

제가 서울에서 태어나서 곧 일산에 와서

평생 일산에 살며 초기 일산부터 오늘날까지

일산의 발전을 지켜본 일산 토박이인데

(저 어렸을때엔 호수공원 옆에 밭 , 깻잎밭도 있었고

아파트 상가에 말벌집도 있었습니다 ;;)

 

하여튼 일산은 너무 일산스러워서 일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지만

저도 서울과 지방 , 외국 대도시에도 가봤지만

일산은 참 좋은 도시라 생각합니다

 

신도시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자

부동산 가격도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그 이전까지는 물가 상승률이 연 20%까지 오르기도 했어서

일산 , 분당 신도시는 오늘날까지 성공한 신도시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

한국은 외화낭비 , 공산권 국가들과의 접촉 차단을 이유로

일반인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은 한 해외로 나가는게 불가능해왔고

제 5공화국(전두환 정부) 부터 해외여행에 대한 규제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1989년부터 여권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뤄져

이때를 기점으로 해외여행자수가 급증합니다

 

해외여행

 

이전까지는 유학생 , 사업 등의 이유로만 가능했던 외국나가기가

이시기부터 가능해졌고

당시에 해외여행은 사치라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로 고가였기에

대다수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대학생등은 돈을 아끼려

배낭여행 등을 떠나려는 사례가 급증했다하고

초기에는 해외여행 자유화를 하는 대신

반공 , 안보교육을 필수로 받아야했는데

늘어나는 관광객의 숫자를 감당하기 어렵고 상당히 형식적이라

반공교육은 곧 폐지됩니다

 

정부는 늘어나는 관광객을 통제하기 보다는

외화낭비와 밀수 , 사치소비등에 대해 경계했고

IMF 경제위기로 주춤했지만

오늘날까지 한국의 해외여행 산업은 엄청나게 커지게 됩니다

 

급속도로 늘어난 해외여행 출국자수

 

오늘날 인천국제공항의 여행객들

 

1990년대부터 한국인들은

중국이나 동남아 , 동유럽지역으로

'기생관광(여행하며 성매매)'을 떠나게 됬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그이전 한국에 와서

기생관광을 하며 '현지처(그 나라에서의 부인 역활을 할 여성)' 를 만든 것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이었습니다

 

90년대부터 동남아에서 기생관광을 하다 에이즈에 걸렸다거나

현지처를 만든다거나 하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펼쳐지게 됬고

(IMF 경제위기가 진짜 괜히 온게 아닙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어둡고 부끄러운 일면입니다

 

또한 현재는 옛날처럼 해외가는게 어렵지가 않게 되었기에

해외가는 것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강해졌는데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도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문란한 성생활 , 마약파티 (대마초 쿠키등을 먹고 핀다고 합니다) , 도박을 하다

인생과 젊음과 돈을 탕진하고 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고

 

(돈있는 집 없는 집 , 남녀 할 것없이 이런 문제들이 있고

특히 젊은 층의 경우에는

자리도 잡지 못한 나이에 외국에 가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생각됩니다

저도 어렸을때 가족따라 해외 몇번 가봤지만

무턱대고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요즘은 해외여행이니 뭐니 SNS 등에 그런거 올리는 애들 봐도

문란한 느낌이 강해

인생 조진아이라는 생각이 들뿐..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무계획 , 무생산적으로 해외에 나가고 그것을 과시 , 자랑하는 풍조는

분명 옳지 않다 여겨지고

오늘날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세상 , 세계를 너무 만만하고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보입니다

 

<라봉봉>이 시기부터는 오늘날 사람들의 시기이기 때문에

많은 공감 , 현실 사회 이야기를 한다 할 수 있고

쓰면서도 내가 이렇게 시니컬 , 회의적인가 싶긴 한데

어렸을때는 여러 동경 , 낭만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나이들며 잘못된 방향으로 간 면이 있음도 보여져 그런거 같기도 하고

 

옛날엔 막연히 해외여행=좋은 것이다 생각됬고

저도 어린시절 가족따라 중국과 미국 등 유명 나라 , 도시들을 가기도 했고

나름 느낀것도 , 추억도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 점차 해외여행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요즘 이런 과시적 , 소모적 여행이 많아지고 또 문란해지는 느낌을 차마

지울 수가 없는거 같고

해외에서 여러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한국인의 모습 등

깨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독은 차지 않듯이

이러한 모습들은 그저 자랑하고 방탕한 모습들로 보일 뿐이며

해외에 나가기전 우리 스스로가 '깨진 바가지' 가 아닌지에 대해

심각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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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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