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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입양아 잡스]

[컴퓨터를 알게되다]

[워즈니악과의 인연]

[대학을 자퇴하다]

[인도 순례 여행]

[애플 창업]

[애플 1]

[애플 2]

[최연소 억만장자]

[연이은 실패]

[존 스컬리]

[매킨토시와 1984]

[애플에서 쫓겨나다]

[넥스트 시절]

[픽사와 토이스토리]

[애플로 돌아온 잡스]

[아이맥]

[아이팟과 아이튠즈]

[아이폰]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봉봉>

 

스티브 잡스

 

[입양아 잡스]

스티브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대학원 다니는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젊은이 아버지에게서 태어났는데

둘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형편이 안되 잡스를 입양보냈습니다

 

잡스는 곧 친부모와 헤어져

양부모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됩니다

 

이 두 부부는 스티브 잡스를

친부모보다 더 지극정성을 기울이며 키웠고

잡스는 영리하고 호기심많은 아이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아기때 스티브 잡스

 

어느날은 집에서 탄내가 심하게 났는데

스티브잡스가 전기콘센트에 머리핀을 넣어서였습니다

 

잡스는 호기심천국의 어린이였고

어린시절부터 가만히 있지를 못해

장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티브잡스는 바퀴벌레약을 삼켜서 응급실에도 가고

자전거타고 동네휘젓다 시끄럽다 항의도 받고

기계들을 분해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잡스는 매일같이 혼자 기계만 잡고

또래친구랑 어울리지도 않았고

처음엔 아버지가 걱정하다가

잡스가 기계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차고에 가서 도구 다루는법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차고에서 처음 잡스에게 가르친 것은

망치와 톱질이었고

아버지는

기계조립법도 알려주었습니다

스티브는 아버지랑 차고에서 노는시간이 제일 좋았습니다

 

훗날 차고에서의 스티브 잡스

 

차고에서 기계수리에 빠진 잡스였는데

이후 잡스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잡스는 매일 공상에 잠겨있어서 선생님한테 혼나게 되었고

풀이 죽었습니다

이후 잡스는 매일같이 말썽을 피우며

선생님한테 대들거나 교실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말썽을 피웠고

선생님들도 잡스가 머리는 좋은데 학교공부에 흥미없음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설득에

잡스는 잠깐 열공하기도 했지만

곧 다시 돌아왔고

 

[컴퓨터를 알게되다]

그러다 새롭게 미국에서 나타나던 '컴퓨터' 를 알게됩니다

잡스는 앞으로 컴퓨터 일을하기로 결심했고

학교에서 더이상 사고를 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잡스는 차고에서 기계 만지기를 좋아했고

잡스는 차고에서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다

부품 한개를  구할 수 없어

용기를 내어

당시 미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전자회사인

HP , 휴렛 팩커드에 전화를 걸어 도움달라했습니다

 

잡스는 전화번호부를 보고 HP 사장에게 당돌하게 전화를 걸어서

부품을 달라했고

 

HP 사장은 어린 잡스의 패기에 깜짝 놀랍니다

 

HP 사장은 어린잡스가 기계에 관심이 많다는게

자신의 어린시절이 생각나

부품을 달라는 그의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어린 잡스의 열정에 감동한 HP 사장은

잡스에게 연락해 여름방학동안 자신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것을 제안해주었습니다

 

잡스는 컴퓨터회사에서 일할 수 있음에 기뻤고

매일 HP 에 가서 두시간씩 일했습니다

 

컴퓨터 나사가 조여졌는지 확인하는 단순업무였지만

잡스는 컴퓨터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워즈니악과의 인연]

이후 고등학교에 입학한 잡스는

컴퓨터를 연구하고싶어했는데

비슷한 부류 친구 한명 빼고는 또래랑 역시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18세의 스티브 잡스

 

그러다 잡스는 그 친구랑 동네에서 전자공학의 천재로 불리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 다니던 스티브 워즈니악 형네 놀러갑니다

 

이 형은 잡스보다 5살이 많았는데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었고

곧 둘은 서로 컴퓨터에 강렬한 호기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장난기가 많고

또래 무리에도 끼기 싫어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둘은 곧 나이를 떠나 인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잡스와 워즈니악

 

두 인물은 장난이 많아서

공짜전화를 걸 수 있는

'블루박스' 를 만들었습니다

초기 전화는 상당히 간단한 구조였기에

천재였던 워즈니악의 기술로 전기교환기를 조작 , 해킹해

전화 요금을 공짜로 만들어버리는 기계였고

 

워즈니악이 만든 전화해킹장치 '블루박스'

 

이 제품(?) 은 전화를 공짜로 걸 수 있게해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습니다

 

블루박스는 워즈니악이 만들고 잡스가 판매했고

40달러로 만든 거를 150달러에 팔았습니다

 

잡스의 상업술이 매우 뛰어나서 판매에 재미를 좀보다가

결국 불법이기에 잡스는 판매중에 흉기로 위협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그만두게 됩니다

 

[대학을 자퇴하다]

이후 성인이 된 잡스도 대학에 갔는데

1972년 인문학교인 리드대학교에 들어갑니다

 

1970년대 당시 미국은 히피열풍이 불었기에

잡스는 여느 20대들 처럼

너저분한 옷차림 , 긴수염 , 맨발 , 불교나 힌두교같은

동양사상 , 채식주의 , 문학과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잡스 명언>소크라테스와 오후를 보낼 수 있다면 나의 모든 기술을 넘길 수 있다.

 

영화 '잡스' 에서 대학에서 히피생활과 명상에 빠진 잡스

 

잡스는 대학에서 유일하게 흥미를 느낀 것이

서체수업이었고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은

예술적 영감을 중시하던 잡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다른 강의는 관심이 없어

한학기 지난후 받은 성적이 형편없어

자신의 진로에 회의를 느꼈고

 

부모님이 힘겹게 평생 번돈이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과

비싼 학비를 낭비 할 수 없다 판단해

 

'다 잘될거야'

 

라는 마음으로

대학교를 자퇴하기로 합니다

 

한번 결심하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었던 잡스는

곧 즉시 부모님에게 학교를 자퇴한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을 자퇴하면 무엇을 하고 살거냐며 타일렀지만

결국 고집쟁이 잡스의 뜻대로 됩니다

 

<훗날 스티브 잡스>대학을 자퇴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의 하나였다

 

[인도 순례 여행]

잡스는 대학 자퇴이후에도 바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

학교에 머물며 도강(몰래 강의를 들음) 하다가

 

1974년부터

잡스는 캘리포니아의 부모님 집에 돌아가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고

이후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보고

비디오 게임회사 '아타리' 에 면접보러갔고

 

아타리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회사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명망있는 회사였습니다

 

잡스는 히피 옷차림으로 아타리 면접에 들어갔고

아타리 로비에 들어가 채용해줄때까지 버틴다 고집을 부렸는데

 

아타리 사장은 잡스를 눈여겨보았고

결국 잡스는 아타리의 게임 프로그래머로 얼마간 일하게 됩니다

 

아타리에서 일하던 청년 잡스는 명상과 선불교에 심취했기에

깨달음을 얻고싶어서 명상과 요가의 나라인 인도에 가고싶어합니다

 

점차 회삿일은 뒷전이 되었고

결국 잡스는 퇴사 후 아타리에서 모은돈으로

인도에 순례 여행을 갑니다

 

잡스는 일반적인 여행자같이 다니고싶지않아서

수행자들의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다녔고

잘곳을 못구하면 길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설사병에 걸려 고생도하고

여행 경비까지 도난당했는데

 

처음에 잡스는 수행자 , 명상 , 깨달음에 대한 환상으로 인도에 갔지만

물질적 풍요로 가득한 미국과 달리 가난과 더러움이 많은

인도였기에 환상이 확깨졌고

이곳에서 고생만했다가 답이없어보여

결국 7개월만에 미국에 돌아갑니다

 

인도의 이상과 현실 , 타지마할 사진

 

단 이때 공부한 불교등에 대한 경험은

잡스 인생에 평생의 영향을 끼쳤고

아이팟 등의 단순한 디자인이

불교의 참선의 정신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인도 순례 여행 이후 잡스는 다시 아타리로 돌아갔는데

아타리 사장은 잡스를 다시 웃는얼굴로 흔쾌히 맞아주었고

잡스는 아타리에서

벽돌깨기 게임을 만듭니다

 

게임 개발자 시절의 잡스

 

[애플 창업]

그러면서도 잡스는 계속 기회를 노리고있었고

1975년 개인용컴퓨터가 최초로 나오자

잡스는 개인용컴퓨터의 시대가 올것이라 생각해

워즈니악에게 함께 컴퓨터를 만들자합니다

 

워즈니악은 당시 대기업이자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HP 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워즈니악이 홀로 만든 컴퓨터는 대단했고

잡스는 그 가능성을 보고 워즈니악에게

회사를 만들자 제안합니다

 

굳이 좋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던 워즈니악은

잡스의 제안이 부담스러웠지만

HP 는 워즈니악의 개인용 컴퓨터 사업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워즈니악은 계속되는 잡스의 설득과

화려한 언변에 결국 HP에서 퇴사합니다

 

둘은 컴퓨터 만들기에 자신들의 미래를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76년 4월 1일 만우절날

잡스와 워즈니악은 잡스네 집 차고에서 회사를 만들었고

미국 가정집의 차고는

미국의 꿈꾸는 소년 , 청년들이 마음껏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기에

차고에서 회사를 만드는 것은 미국 사업가 , 공학도들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드는 잡스와 워즈니악 , 만우절에 만들어진 작은 차고에서 만든 회사는 거짓말처럼 세계 최고 회사가 됩니다

 

둘은 매일같이 차고에서 일하며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냈습니다

 

잡스는 새로 만든 회사에

그럴싸한 회사이름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머리속에서 갑자기 '애플' 이라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사과를 좋아하던 잡스였는데

애플은 전화번호부에서도 A 로 시작해서 맨 앞에나오고

전자회사의 고루한이미지보다 상큼하고 신선한 회사의 느낌을 주었습니다

 

애플로고 변천사

 

결국 회사 이름은 애플 ,

그들이 만든 컴퓨터에는 '애플 1' 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워즈니악은 팔릴까 걱정했지만

잡스가 걱정말라며 앞장섰습니다

 

[애플 1]

그렇게

개발은 뛰어난 기술의 워즈니악이 ,

판매는 화려한 언변의 잡스가 담당했습니다

 

처음 잡스는 애플 1을 판매하려

컴퓨터 클럽에 찾아갔지만

회원들은 애플1이 아마추어제품이라 여기며 무시했고

결국 잡스는 실망만하고 차고로 돌아왔으나

이후 폴 테럴이라는 인물이

애플 1에 상품가치가 있다 판단해

한개에 500달러로 해줄테니 50개를 만들어 달라했고

잡스는 놀랐습니다

 

그렇게 첫거래가 이루어졌고

이후에도 애플1은 추가로 150대를 제조해 판매합니다

 

애플 1 , 처음 애플컴퓨터는 수공업 성향이 강했습니다

 

애플 1의 성공으로

점차 애플은 커지고있었고

차고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어엿한 기업이 되갔습니다

 

워즈니악은 부품조달 , 마케팅은 잡스에게 맡기고

개발에만 전념했고

 

점차 잡스는 광고를 만들기로했습니다

광고비를 마련하려

아타리랑 휴렛패커드에 돈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굴하지 않은 잡스는 결국 이후 투자자를 구해

자금을 투자받았습니다

 

[애플 2]

1977년 애플은 낡은 차고에서 벗어나

번듯한 회사건물을 갖췄고

새 회사건물에서 워즈니악은

애플 1보다 훨씬 뛰어난 애플 2를 만들었습니다

애플 2는 최초의 일체형 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애플 2

 

그해 4월 잡스는 애플2를 들고

컴퓨터 박람회에 참석했고

사과모양 로고를 박고 애플 2를 광고합니다

 

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애플2는 관람객들의 큰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애플2에 매료됩니다

 

잡스와 애플 2

 

박람회 이후 사람들의 애플2 주문이 이어졌고

가볍고 예쁜 상자 플라스틱 상자에 쌓인 애플2 는

개인용컴의 기본이 되었고

폭발적으로 팔리게 됩니다

청년 잡스는 무서운 속도로 큰 부자가 되고 회사는 나날이 커졌고

애플의 사과로고도 크게 유명해집니다

직원수가 30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회사치고 너무 커져버린 애플이었고

1980년이 되자 애플은 1천명 직원을 둔 기업으로 커집니다

 

[최연소 억만장자]

결국 잡스는

1980년 12월 애플 주식을 발행했고

애플 주식 460만주는 한시간만에 모두팔리며

주가는 30배 가까이 폭등했으며

애플은 엄청난 사업자금을 모았고

잡스는 25살에 미국에서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명언 >무덤에 묻힌 부자가 되는 것은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루를 끝내고 침대 위에 누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해왔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저에겐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느새 기업화 된 애플은

점차 경영권 문제로 싸우게 되었고

애플 직원이나 투자가들은

세계 최대 개인용컴퓨터 제조업체로 성장한 애플이

25살의 젊은 철부지 사장에게 휘둘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자신이 세운회사 직원들이 자신말을 안듣자

분노해 있었고

결국 잡스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위해

애플 2를 능가하는 컴을 만들려 노력합니다

 

[연이은 실패]

잡스는 심사숙고하며

1980년 애플3를 만들었는데

잡스는 자신이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었다 생각했지만

비싼 가격 , 애플2와 호환성이 떨어지고 발열 , 멈추는등의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시장에서 외면받습니다

 

애플 3

 

한편 애플의 경쟁업체였던

IBM 이 개인용 컴퓨터로 일어났고

 

워즈니악은 경비행기를 조종하다 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쳐 5주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등

안좋은 일이 겹칩니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있기에

애플이 잘될거라 믿고 애플을 떠났고

워즈니악에겐 그간 고생에 대한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이후에도

1983년 잡스는 새로운 컴퓨터 리사를 발표합니다

리사는 스티브잡스의 딸 이름까지 붙인 것으로

잡스가 열중한 것이었고

 

리사에는 당시 신기술이었던 '마우스'가 도입됩니다

이는 잡스가 제록스 연구소라는

컴퓨터 연구회사를 방문하고서는

그곳에서 개발된 쥐 모양의 '마우스' 를 보고

애플에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애플 리사와 마우스를 잡고 있는 스티브 잡스

 

일일히 명령어를 입력하지 않고

마우스를 움직여 조작할 수 있게되었고

컴퓨터에서 마우스의 도입은 엄청나게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근데 리사는 너무 비쌌는데

리사의 가격은 9995달러였고

아무리 컴퓨터가 좋아도

1만달러에 컴퓨터를 살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경쟁사인 IBM 은 개인용 컴퓨터를 훨씬 싸게 팔았고

계속되는 판매부진에

애플내의 스티브 잡스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존 스컬리]

리사가 실패하자

애플 이사진은 잡스에게 마케팅에 뛰어난

새인물을 영입해야한다했고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펩시사장 존 스컬리를 데려오자 제안합니다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

 

존 스컬리는 30살에 펩시 최연소 마케팅 담당부사장이 되고

코카콜라와 콜라전쟁을 벌여

눈을 가리고 두 잔(코카콜라와 펩시)의 콜라를 마셔보게 하고

눈을 가린 사람들은 펩시가 더 맛있다는 광고를 낸

'블라인드 테스트' 로 펩시의 주가를 엄청나게 높인

입지전지적 인물이었습니다

 

펩시와 코카콜라의 대결

 

잡스도 그가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할거라 생각해

그에게 찾아가 애플의 CEO (사장) 를 맡아달라 부탁합니다

 

스컬리에게 애플은 마음에 들지만 애매한 회사였는데

잡스는 스컬리에게

 

<스티브 잡스>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

아니면 나와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

 

라는 한마디를 날립니다

 

잡스의 이 감동적인 한마디에

스컬리는

잡스의 두둑한 배짱에 마음이 끌려

애플에 이직합니다

 

잡스를 포함해 대부분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일하던 애플직원들은

정장에 넥타이입고 나타난 스컬리에 놀랬고

(한국 기업들의 경우는 정반대)

 

처음 잡스는 스컬리에게 애플 사장자리에 앉혔고

처음엔 스컬리를 조종하며 애플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 했지만

산전수전 다겪은 스컬리는 잡스뜻대로 움직여줄 마음이 없고

스컬리는 회사 주도권을 자신의 손에 넣으려합니다

 

[매킨토시와 1984]

이후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라는 컴을 내놓습니다

 

매킨토시

 

매킨토시 개발은

1979년부터 리사와 동시에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리사와 달리 매킨토시는 개인 사용자 시장이 목표였기에

잡스는 매킨토시의 대박성을 봤고

매킨토시가 개발되자 매킨토시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려 노력합니다

 

<매킨토시 개발당시 스티브 잡스>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돼라 !

Pirates! Not the Navy !

(고리타분해지지 말자는 말)

 

잡스는 매킨토시 광고에 돈을 쏟아부었고

애플을 거대 컴퓨터 기업

IBM 에 맞서는 다윗같은 이미지를 만들려합니다

 

매킨토시를 안고있는 잡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

 

1984년 출시된 매킨토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사회 풍자소설 '1984' 의 소설을 차용한 광고를 만들며

 

정보화 시대를 독점 지배하려는

IBM 을 1984 소설속 '빅브라더' , 독재자에 묘사했고

그것을 부수는 애플은 혁신적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매킨토시 1984 광고

 

잡스는 매킨토시 광고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는데

미국내에서 가장 비싼 광고였던

미국 국민스포츠인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 시합광고에도 나갔습니다

 

<슈퍼볼 광고에서>1984년 1월 24일, 애플은 매킨토시를 공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가

1984가 되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서른을 앞둔 야심만만한 청년 사업가 스티브 잡스는

한껏 멋낸 양복차림으로 대중들앞에 매킨토시를 발표합니다

 

야심만만한 눈빛으로 매킨토시를 보이는 스티브 잡스

 

잡스는 가볍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가방에서 매킨토시를 쓰윽 꺼냈습니다

 

잡스의 설명과

독특한 매킨토시 광고가나가자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애플에서 쫓겨나다]

초기 매킨토시는 폭발적으로 팔렸지만

생각보다 잘 팔리지는 않았고

경쟁사인 IBM 컴퓨터는 승승장구 하고 있었습니다

 

IBM

 

잡스 역시 독선적 성격과 무리한 사업등으로

계속해서 애플 직원들의 원망을 사고 있었고

 

애플의 스컬리는

잡스가 잘팔리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비싼 고성능 컴을 고집해서

회사를 망친다며 잡스를 쫓아내기로 했고

 

애플내에서 계속 의견충돌이 커지자

잡스 역시 스컬리를 쫓아내기로 해서

과감하게 이사회에서 투표를 걸었는데

 

이미 인망을 잃고 실적도 부진했던 잡스는

스컬리에게 져서

1985년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회장직을 빼앗기고 쫓겨납니다

 

잡스는 10년동안 자신이 일군게 파괴되

엄청난 상처를 받았고

1주만 남기고 애플주식을 모두 매도(판매)합니다

 

<이후 잡스>애플에서 퇴사 당한 것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이었어요. 

성공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바뀌었거든요. 

이 변화가 저를 더 창조적으로 바꿔주었죠

 

[넥스트 시절]

애플 주식을 판매하고 수많은 거금이 잡스 수중에 들어왔고

잡스는 자신이 애플로 다시 돌아올것을 생각하지 못하다

애플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싶습니다

 

그는 애플에서 다음단계로 넘어가기로 생각해

개인 재산으로

NeXT(넥스트 , 다음)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넥스트 시절 잡스

 

31살의 잡스는 넥스트를 설립하고

잡스를 따르던 충성스러운 애플직원 몇몇도 넥스트로 따라옵니다

 

이때부터 잡스는 고난의 시기가 시작됬는데

그동안 번 돈을 계속해서 넥스트에 투입했고

 

애플보다 더 멋진 이미지를만들려

로고제작에 돈을 쏟아붓고

넥스트 건물도 화려하게 만들며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이곳에서도

완벽에 완벽을 기하려 노력했고

완벽에 대한 집착때매

3년간 넥스트는 컴퓨터한대도 팔지못하고

돈만 쏟아 붓게 됩니다

 

언론은 그럼에도 잡스에게 기대하고 우호적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잡스를 믿고 응원했습니다

 

(이때 애플이나 잡스한테 존버한 사람들이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이후 제너럴 모터스 이사이자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

와 일본 프린터 회사 캐논이

넥스트에 거액을 투자하기로 했고

 

넥스트는 초현대적 디자인과

업계 최고성능을 갖춘 첫 PC '넥스트큐브'

를 출시합니다

 

넥스트 큐브 (현재 컴퓨터랑 거의 흡사합니다)

 

큐브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엄청나게 칭찬했고

잡스 역시 자신감에 넘쳐있었지만

다른 PC보다 비싼 가격이었고

시장에서 생소한 제품이고

다른 제품과 호환도 안되서 폭망합니다

 

[픽사와 토이스토리]

그럼에도 굴하지 않은

잡스는 결국 1993년 넥스트의 하드웨어(보이는 물체)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소프트웨어(프로그램) 에 전념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부터 잡스는 점차 기술보다 감성의 세계에 들어가는데

스타워즈를 만든 감독 조지 루카스가

재정난으로 루카스 필름을 매각한다는 소문을 듣자

잡스는 그곳에 방문했고

 

이곳에서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이 다 모여있는 것 ,

디지털 사진 , 3D 영상물 , 컴퓨터 그래픽 시스템들을 보고

이 컴퓨터 그래픽 회사 , 루카스 필름을 전부 사들였고

회사 이름을 픽셀과 아트를 합친 이름의 '픽사' 로 지습니다

 

잡스가 자기 돈을 털어서 산 픽사는

돈이 계속 들었고

잡스는 애니메이션을 개발해야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올거라 생각합니다

 

1991년 디즈니도 잡스에 손을 내밀어

픽사에 투자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진짜 영화를 제작하겠다

우리의 꿈은 세계 최초로 컴퓨터 합성기술에 의한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다시 무모한 도전을 한다생각했지만

잡스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개발에

지닌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픽사와 넥스트는 적자였고

캐논가 투자자도 잡스를 떠났고

스티브 잡스는 파산수준까지 몰립니다

 

그러다

1995년 픽사 첫장편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가 개봉됬는데

토이스토리는 엄청난 대성공을 합니다

3차원 입체영상과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에

관객들은 크게 놀랐고

토이스토리는 잡스에게 최소 1억달러를 벌어주어야 했는데

3억 5800달러의 수익을 올립니다

 

잡스의 눈물이 담겨있는 최초의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이후에도 픽사는 벅스라이프 , 몬스터주식회사 ,

니모를 찾아서 등

여러 작품들을 흥행시켰고

문화산업을 새로운 기술과 결합시킨다는

잡스의 과감한 투자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픽사는 주식상장되어

잡스는 다시 엄청난 부자가 됬고

픽사는 이후 2006년 디즈니에 매각되

잡스는 디즈니 개인 최대 주주로도 올라섭니다

 

잡스는 더이상 기술에서만 머무르면 안되고

그 이상의 콘텐츠 , 문화산업에 집중합니다

 

[애플로 돌아온 잡스]

그렇게

픽사는 대성공했으나

넥스트는 망해갔고

당시 잡스가 떠나있었던 애플 역시

사업실패 , 적자로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애플의 경쟁사였던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 라는 운영체제를 발표해

애플을 위협하고 있었고

애플은 잡스가 떠난 10년뒤인

1995년 시장점유율 8% 의 초라한 기업으로 전락합니다

 

잡스가 떠난시기 애플에서 만든 '뉴턴 패드' , 아이패드나 PDA의 조상이 되나 당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결과는 폭망

 

애플 역시 윈도우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하는데

애플은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결국 잡스를 다시 불렀습니다

 

첫사랑 애플에 애정이 깊었던 잡스는

애플과 소프트웨어 회사 넥스트가 손잡으면

새로운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고

1997년 1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직전의 애플에 임시 CEO 로 돌아왔고

넥스트와 애플은 합병됩니다

 

돌아온 잡스는 자신의 연봉을

단 1달러를 받겠다합니다

잡스에게 애플은 돈이 문제인 회사가 아니었고

사람들은 망해가던 애플에 잡스가 들어감에 흥분합니다

 

잡스는 애플에 돌아오자마자

매우 엄격한 숙청을 시작했는데

무분별하게 늘어난 제품 종류를 줄이고

필요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기타 사업에서 손을 뗍니다

 

또 재정적자때문에 당시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던 잡스는

직원 3000명을 해고했는데

당시 애플 직원들은 잡스와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매우 무서워했고

잡스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직원에게

 

<잡스>지금 하는 일이 뭐죠 ?

 

하고 묻고

우물쭈줄 대답을 잘 못하거나 신통치 않은 대답이 들리면

곧바로 해고통보를 했기에

애플 직원들은 한동안 계단을 이용했다 합니다

 

이전 CEO 도 해야할 일들이었지만

내부저항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일들이었고

잡스는 회사가 위기상황이라는 점과

창업자의 후광을 이용해 회사를 강도높게 구조조정합니다

 

애플 임원과 직원들의 불만과 저항이 거셌지만

스티브잡스는 이 한마디로 모든 저항들을 침묵시켰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스티브잡스는 애플에서 '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을 전개했고

이전보다 다른 생각을 해야 애플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혁신을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캠페인

 

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동안 싸우는 이미지였지만

잡스는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눌러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기로 결정합니다

 

1997년 잡스는 맥월드 컴퍼런스에서

사람들에게 애플달라질거라 발표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와 위성통신을 합니다

 

빌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혁신기업이었던

잡스와 애플을 고사시켜버리면

IT 업계에 큰 위기가 온다 판단했고

애플에 거액을 지원합니다

 

한때 크게 화제가된 잡스와 빌게이츠가 만난 사진

 

[아이맥]

점차 애플의 회사분위기가 달라졌고

애플은 이전과 달리

고가의 고성능 컴퓨터보다는

단순하고 쓰기 좋으며 값싼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잡스가 돌아오자 10억 적자의 회사는

1년만에 3억달러 흑자로 돌아섰고

 

잡스는 이전 애플에서 쫓겨나던 당시 경험으로

디자인과 소프트트웨어를 중요시 하고

새로게 출시한 컴퓨터를 '아이맥' 이라 발표합니다

 

1세대 아이맥

 

스피커 , 모니터 등 각종부품이 모두 컴하나에 일체형으로 들어갔고

미적감각이 들어간 반투명한 깔끔한 플라스틱케이스 등

아이맥은 엄청나게 팔려서

1년만에 200만대가 팔렸습니다

 

이로 인해 망해가던 애플 주식가격이

껑충뛰고 잡스와 애플은 부활합니다

결국 잡스는 2000년 애플의 정식 CEO 로 완전하게 복귀합니다

 

[아이팟과 아이튠즈]

21세기부터

점차 잡스가 어릴적 꿈꾸던게 현실이되었고

인터넷은 급격히 보급되고

누구나 개인용컴퓨터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활한 잡스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음악산업이었습니다

 

컴퓨터가 급격히 도입되자

사람들은 CD나 mp3로 음악을 들었는데

디지털 형식이라 불법복제가 매우 쉬웠습니다

 

또 워크맨같은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음반 , CD를 사지않고 불법 다운로드로

공짜로 음악을 들었고 음악계가 망해갔습니다

 

잡스는 mp3 시장에 주목하고

2001년 애플의 mp3 인 아이팟을 출시합니다

 

초기 아이팟 , 휠이 있었고 투박한 당시 mp3들 보다 세련된 디자인이었습니다

 

컴퓨터로 음악 불법복제가 성행하자

당시까지 사람들은 음반시장이 죽었다 한탄하며

불법 다운충들을 처벌하고 이를 방지하는 캠페인을 벌어야 한다 주장했는데

스티브 잡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잡스는 불법 다운로드를 막을 수 없다면서

 

<스티브 잡스>불법 복제를 멈추고 싶다면 불법 복제와의 경쟁을 하면 된다. 

더 나은 제품을 공정한 가격에 제공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공정한 가격을 받고 싶으면 더 훌륭한 제품을 제공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불법 복제가 멈춰질 것이다

 

라는 전혀 다른 대안을 제시했고

그 대안으로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를 출시하게 됩니다

 

아이튠즈를 설명하는 잡스

 

잡스는 음반업계를 설득해서

디지털화시키라 했고

돈을 내고 고품질의 음악을 다운받으면

불법다운 문제를 막을 수 있었기에

음반업계도 애플 뮤직스토어에 적극 참여합니다

2003년 4월 28일

온라인 미디어 판매서비스인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가 개장해서

사람들은 합법적 음악 판매 , 구입이 가능해졌고

잡스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당시까지만해도 미국의 불법다운충들은

돈문제가아닌 편의성을 이유로 불법다운을 했던 것이었고

아이튠즈로 인해 미국 음악업계는 다시 살아납니다

 

점차 잡스는 컴퓨터 뿐만아닌

문화와 소프트웨어 , 음악업계 거물이 되었고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할리우드 , 음악시장을 개척한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아이폰]

잡스는 이후에도 통신시장에 뛰어들었고

2007년 6월 29일

그의 일생일대의 총집합인 '아이폰' 을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오늘 , 바로 오늘 , 애플은 휴대폰을 재발명합니다

Today, today, Apple reinvents the phone

 

아이폰은

핸드폰 안에 아이팟+전화+인터넷+컴퓨터 기능을 모두 갖춘

'스마트폰'이었고

버튼이 사라지고 넓은 화면과 올터치와 동그란 버튼 하나밖에 없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폰입니다' , 2007년 아이폰을 처음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또 아이폰 내의 앱스토어에는

수많은 어플들이 있어 사람들은 이 어플을 통해

삶이 편리해지고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새로 정립했고

엄청나게 팔려나가 스마트폰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잡스는 애플 tv를 만들고

2010년에는 대화면의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 출시하는데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든 스티브잡스를

십계명 돌판을 든 모세에 비유했습니다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같은해 2010년 6월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이클라우드가 생겨서

애플 제품들이 하나로 묶여버려

애플생태계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예술가 , 제작자들이 애플 생태계에 참여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21세기부터 재기한 잡스는 잘나갔지만

2004년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져 건강검진을 했는데

췌장암이었습니다

 

결국 췌장암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후부터 눈에띄게 몸이 쇠약해졌고

그러한 와중에도 잡스는 애플 주가하락등의 이유로

건강이상설을 부인해왔고

 

사람들은 그의 건강에 관심에 귀기울이며

잡스가 아프다하면 애플 주가가 급락하고

잡스가 괜찮다하면 애플 주가가 폭등해버렸기에

사람들과 애플이 얼마나 잡스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애플 그 자체)

 

췌장암 투병중 앙상해진 스티브 잡스

 

결국 잡스는 2011년 10월 5일

8년간 투병생활끝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잡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

오 와우 , 오 와우 , 오 와우

 

사람들은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 , IT 황제의 죽음에

슬퍼했고 그가 만든 컴퓨터 , 아이폰으로 잡스를 추모했습니다

 

잡스 추모 당시 놓여진 사과

 

<2005년 스탠포드연설에서의 잡스 명언>

계속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봉봉>최근까지 생존해있던 인물이고

오늘날까지도 IT 기업가 , 사람들의 멘토가 되는 인물로서

참 용기있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 생각됩니다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남기고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고

실제로 참 직관적인 사람이며 저도 많이 이 인물에 대한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던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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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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